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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그너스 대륙전기-194화 (194/522)

# 194

리그너스 대륙전기 194

“나쁜 제안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멍.”

“고생은 우리가 하고 과실은 저 녀석들이 먹는 게 나쁜 제안이 아니라고냥?!”

로우덴의 말을 들은 리아 캬베데가 손에서 발톱을 꺼냈다. 그런 리아의 행동을 제지한 호가 회의실에 모인 모두를 훑어보며 말했다.

“나 역시 로우덴과 비슷한 생각이야.”

“하지만 오빠. 제 생각은 그래요. 전쟁이 벌어지면 피를 흘리는 건 우리들이라고요. 굳이 토리아 항구를 넘겨줄 필요가 있을까요?”

한시진이 말했다. 불만에 찬 표정은 아니었다. 단지 호의 갑작스런 결정이 의아한 모습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우리만 싸우는 것은 아니지.”

육상 전력을 지원하지 않는 대신 블루 스케일은 호에게 마장기를 지원하기로 했다.

정확히 말하면 현재 림드 산맥에 주둔 중인 마장기의 소유권을 일정 기간 동안 넘기기로 한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똘레오는 블루 스케일이 자랑하는 해군 병력과 수상용 마장기가 이번 전쟁에 참여한다고 했다. 전투에 직접적으로 참여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들은 혹시나 있을 천족들의 수송함대를 견제하는 역할을 할 예정이라고 했다.

“그리고 솔직히 말해서 블루 스케일의 육상전력은 있으나마나한 수준이잖아?”

“뭐, 그건 그렇죠.”

기껏 해봤자 B, C랭크의 병사들로 구성이 된 게 블루 스케일의 육상 전력이었다.

아벨리우스와 훗사르로 구성된 호의 병사들과 비교하면 전투 시 괜히 걸리적거리지나 않으면 다행이었다. 마장기라면 큰 도움이 되겠지만, 이번 전쟁에서 마장기는 동원되지 않는다고 했다.

그리고 한시진을 향해 부드럽게 웃어준 호는 다른 영웅들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블루 스케일의 해군이 바다를 넘어오는 천족들의 병력을 견제하면 뒤통수를 맞을 이유도 없어. 모든 병력을 최전선으로 배치할 수 있다는 말이지.”

“조인들은 어떻게 하고요?”

“디치 플레이스만과 경계를 맞대고 있는 페렛 습지대까지 차지할 생각은 없어. 우리는 말이지.”

호의 손이 지도의 한 부분을 가리켰다.

“나크 평원 하나만 손에 넣을 생각이야.”

천족들이 조인들과 거래를 했다고 했던가? 그들의 거래대로 페렛 습지대는 조인족이 차지해도 상관없었다. 다만, 호는 천족이 나크 평원을 차지하는 것만큼은 제대로 훼방을 놓을 생각이었다.

“에머넌스 아처 부대를 준비해야겠어.”

인병, 엘보, 마마, 수기, 드공, 천비, 정궁, 용만의 규칙에 따라 천족들은 공중 병력이 상당히 강력했다. 하지만 그런 공중 병력의 천적은 다름 아닌 궁병이었다.

상위 랭크는 아니어도 B랭크의 엘프 궁병인 에머넌스 아쳐라면 주비어스에서 넘어오는 천족들을 물리치기엔 큰 문제가 없어 보였다.

“그리고 리아 캬베데.”

“냥?”

“주비어스를 다스리는 천족이 누군지 조사해봐.”

그렇다 하더라도 상대의 객관적인 전력이 어느 정도나 되는지는 파악해야 했다. 특히 상대의 마장기 전력은 무슨 일이 있어도 파악해야만 했다.

이제까지 교류가 전혀 없던 세력이라 그런지 정보창을 이용해서는 별다른 정보를 알아낼 수 없었다.

“알겠습니다. 냥.”

호의 명령에 리아 캬뱌데는 잠시 로우덴을 째려보더니 고개를 숙이고는 자리에서 물러났다.

“그러면 지금 당장 나크 평원으로 출진할 생각이에요?”

“아니. 일단은 천족들의 동태를 파악해 볼 생각이야. 게다가 블루 스케일이 정말로 군대를 움직이는 지도 봐야하고.”

블루 스케일이 자신을 속이지는 않을 터였다. 하지만 돌다리를 두들겨 보고 건넌다고 해서 나쁠 이유는 하나도 없었다.

그러던 도중 호의 시선이 한쪽으로 향했다.

쟁쟁한 영웅들 앞에서 점점 존재감이 사라지고 있는 신윤아가 호의 눈에 들어왔다. 회의실의 의자에 앉아 고개를 숙이고 있는 그녀는 양손을 식탁 위에 올려놓고 꼼지락거리기만을 반복하고 있었다.

서머너라는 희귀한 클래스의 소유자였지만 신윤아의 영웅 등급은 C등급. 이 자리에 있는 S, A등급의 영웅들에 비하면 별 볼일 없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호는 이번 전쟁을 통해 신윤아를 S등급, 아니 최소한 A등급까지 승급을 시킬 생각이었다.

바로 자신의 클래스 승급 때문이었다.

현재 호가 보유하고 있는 클래스는 A등급의 레어 클래스인 제네시스–전장의 마에스트로였다. 통솔하는 부대의 공, 방 수치가 50% 씩 상승하며 그 외에도 좋은 효과를 보여주는 전술가형 클래스.

하지만 이 세계에서 좀 더 안전하게 살아남기 위해서는 빠른 시간이라도 승급을 해야만 했다. 나이가 깡패라는 말처럼 리그너스 대륙전기는 고 등급 클래스가 깡패나 다름없는 세계였다.

이미 염두에 둔 클래스는 있었다. 작전지휘관–백우선의 깃털. S등급의 레어 클래스로 가볍게 표기된 설명만 봐도 전장에 미치는 영향이 어느 정도일지는 상상도 가지 않았다. 참고로 자신이 지휘하는 부대의 공방 수치는 마장기에도 적용되었다.

‘MLC 의 파괴력이 두 배가 되면.’

상상을 한 순간 호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 정도라면 정타를 명중 시켰을 경우 상대의 C등급 마장기 정도는 한, 두 방에 파괴할 수 있는 위력이었다.

하지만 S등급의 레어 클래스답게 전직 조건이 꽤나 까다로웠다. 그리고 호는 이번 전쟁을 통해 백우선의 깃털 전직의 조건 중 일부를 달성할 생각이었다.

바로 소환자인 신윤아를 통해서였다. 방법은 어렵지 않았다. 신윤아에게 전투 공적을 몰빵해 많은 양의 경험치를 획득하게 하면 되는 일이었다.

“로우덴.”

“멍멍?”

그리고 그 계획은 자신의 충성스럽고 유능한 참모 로우덴이 세워줄 수 있었다.

* * *

시간은 어느새 흘러 림드 산맥 각지에서 주둔하고 있던 마장기 편대가 에스트라다에 도착했다.

블루 스케일의 C등급 마장기인 자넷과 골드이글로 구성된 이들은 총 네 기, 일 개 편대로 이루어져 있었다.

어쨌든 주 무기로 검, 보조 무기로 권총과 흡사한 무기를 사용하는 자넷 그리고 활을 주 무기로 원거리에서 지원이 가능한 골드 이글로 구성된 블루 스케일의 구성은 꽤나 균형이 잘 잡혀져 있었다.

마치 정석적이라 할까?

“또 뵙겠습니다. 림드 산맥의 패자이신 호 님.”

“그렇군. 에스트라다를 방문한 것을 환영하네. 뭐, 좋은 의미의 방문은 아니겠지만.”

자신의 향해 경례를 올리는 익숙한 외모의 남성을 보며 호 역시 자연스럽게 손을 들어 올렸다. 전의 전쟁에서 함께했던 마장기사였다.

B등급의 영웅으로 평범함의 극치를 달리는 능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하지만 마장기 운용 능력만큼은 나쁘지 않았던 기억이었다.

“아닙니다. 악마의 탈을 쓴 천족의 껍데기를 벗기는 임무를 맡게 되어 영광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악마의 탈을 쓴 천족이라. 그거 마족에게 굉장히 실례가 되는 말인 거 같은데?”

“핫! 실례했습니다!”

호의 말에 마장기사가 당황스러운 표정과 함께 자세를 바로 했다. 인간이라고 하지만 한때 호는 마족의 소환자였던 인물이었다.

“뭐, 지금은 딱히 마족들과 관계를 맺고 있는 것도 아니니 크게 신경 쓸 필요는 없네.”

“패자의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그런데 블루 스케일의 해상 함대는 언제 출발하는 거지?”

“사파이어에서 도베르만 사령관님이 나셨다는 소식을 에스트라다로 출발하기 전 보고를 받았습니다.”

“호오…….”

마장기사의 말에 호의 얼굴로 놀랍다는 기색이 스치고 지나갔다.

블루 스케일의 도베르만.

이름만 보면 수인 영웅으로 착각할지도 모르겠지만 도베르만은 블루 스케일의 SS등급 영웅으로 블루 스케일을 대표하는 장군이라고 할 수 있는 인물이었다.

‘이거 도베르만이 직접 나설 줄은 몰랐는데? 세이라 클리퍼드가 단단히 마음먹었군.’

아무래도 블루 스케일의 수도인 스완에서 신성력 폭주가 일어난 것에 대해 꽤나 위기의식이 든 모양이었다. 어쨌든 도베르만이 직접 나섰다면 천족의 수상 함대가 웬만한 규모의 전력으로 나서지 않는 이상은 뒤통수를 맞을 일은 없어 보였다.

‘슬슬 출진 준비를 해도 되겠어.’

포화상태였던 에스트라다도 지금은 정상으로 돌아온 상황이었다.

한때 에스트라다를 가득 메웠던 수인 난민들은 디르시나, 해머스와 같은 림드 산맥의 도시 및 붉은 핏빛의 대지로 이동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괴물들의 손에서 무사히 도망친 수인 무리들이 아직까지도 에스트라다에 도착하고는 있었지만 예전에 비하면 그리 많은 수는 아니었다.

그렇지 않아도 이틀 전 리아 캬베데가 보내온 보고도 있었다.

‘이미 천족의 선봉대가 나크 평원에서 주둔하고 있어요. 병사들의 수는 약 사천 정도로 많지 않습니다. 그리고 구성 역시 C랭크 병종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냥. 하지만 엔젤 등급 마장기가 한 기 발견되었습니다.’

천족들 역시 나크 평원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있는 것일까? 별 볼일 없는 전력에 마장기가 포함되어 있었다.

어쨌든 천족들의 선봉대가 나크 평원에서 모습을 드러낸 시기는 호의 예상보다도 훨씬 이른 시기였다. 호는 모든 것이 마무리될 때쯤이야 천족들이 나타날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마장기의 오너는 헬림이라는 이름을 한 천족의 B등급 영웅으로 리그너스 대륙 전역에서 일반적으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능력을 지닌 평범한 영웅이었다. 상대하는 건 어렵지 않을 터였다.

“일단 본대가 도착하기 전에 가볍게 응징할 필요가 있겠어.”

나크 평원을 순조롭게 손에 넣기 위해서는 그 땅에 사는 수인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필요가 있었다.

영지를 다스리고 있던 원인 영웅들은 하나같이 행방불명된 상황. 소문에 따르면 원인족의 부족장 버독 역시 신성력 폭발로 인해 괴물로 변해 버렸다고 했다.

신성력 폭발이 일어난 후 많은 수의 수인들은 괴물들을 피해 다른 영지로 도망쳤다. 하지만 아직까지 두 영토에는 상당수의 수인들이 살고 있었다. 그런 그들이 자신들의 땅에 신성력 폭발을 일으킨 미친놈들에게 적대적인 시선을 보내는 건 당연지사였다.

“천족들을 쫓아내면 나크 평원의 수인들은 틀림없이 우리들을 환영할 겁니다. 멍.”

“나크 평원을 안정화시키는 데도 어렵지 않을 거고요. 전쟁에서 가장 힘든 것 중 하나가 바로 토착민들의 안정이잖아요.”

회의가 열렸고, 호의 의견을 들은 로우덴과 한시진이 말했다. 그러던 중 브로리가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그런데 조인들은 왜 천족과 동맹을 맺은 거지? 그것 때문에 사파리에서 난리가 벌어졌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멍멍. 저도 들었습니다. 원인과 조인이 사파리에서 한바탕 했다고 하더군요.”

“결과야 들으나 마나겠군요.”

브로리와 로우덴의 말을 듣던 엘 라스엘이 끼어들었고, 호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똑같은 부족이라고 해도 원인들은 이미 망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자신들의 본진이나 다름없는 나크 평원과 페렛 습지대가 회생 불가능할 정도의 피해를 입었기 때문이었다.

“흠. 조인들의 생각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군. 천족들이 준 식량이 안전하다고 생각하고 있는 건가? 신성력 폭발이 어떻게 일어났는지 모르지는 않을 텐데?”

“멍멍. 그들이 새대가리라고는 해도 멍청한 편은 아닙니다. 이미 조인족의 주술사들이 식량 속의 신성력을 제거했다고 하더군요."”

“그래도 같은 수인들이잖아요. 자신들의 동료에게 피해를 준 천족과 그렇게나 쉽게 손을 잡을 수 있는 건가요?”

한시진이 이해가 가지 않는 듯 물었다. 하지만 이는 수인 왕국의 특수성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한 상황에서 나온 질문이었다.

“어차피 원인들이야 가까이 지내봤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 모양입니다. 멍.”

“그렇다고…….”

로우덴의 대답을 들으면서도 한시진은 계속해서 고개를 갸웃했다.

생각을 해 보면 천족들과 손을 잡은 조인족의 행동은 상식적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는 행동이었다. 하지만 이건 인간의 기준에서 나온 상식이었다.

여러 부족의 통합체나 다름없는 수인 왕국의 특성을 생각하면 그렇게까지 이상하다고 느낄 정도는 아니었다.

그 예로 혼혈이긴 해도 수인 영웅이나 다름없는 브로리나 로우덴은 그런 조인족의 행동이 당연하다는 반응이었다.

브로리도 천족들의 식량에 대해서만 이상하다는 의문점을 제기했을 뿐, 조인족의 행동이 이상하다는 말은 꺼내지 않았다.

그렇게 영웅들과 함께 회의실에 앉아 있던 호는 슬쩍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제 출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몸으로 깨닫고 있는 것일까? 신윤아를 제외하면 다들 전쟁의 흥분을 억누르고 있는 모습이었다.

‘후.’

호 역시 마찬가지였다. 가상현실게임 리그너스 대륙전기를 통해 셀 수도 없을 정도로 많은 횟수의 전쟁을 겪어 봤지만, 이 세계에서 겪는 전쟁은 하나하나가 느낌이 달랐다.

“그럼 출진하도록 하지. 시간은 내일 오전 9시.”

“아!”

“멍멍!”

호의 명령에 여기저기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목표는 에스트라다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나크 평원의 도시인 레스트였다.

밤새도록 부대의 편성이 이루어졌고, 다음 날 아침 골든 스테이트와 데스 사이더를 선두로 S랭크 병과인 아벨리우스와 훗사르 부대가 출진하기 시작했다.

그 뒤를 이어 에머넌스 아쳐 부대도 모습을 드러내었다. 그렇게 물경 삼 만에 가까운 대군이 에스트라다에서 출진했고, 이 소식은 곧바로 나크 평원 전역으로 퍼져 나갔다.

전쟁의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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