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2
리그너스 대륙전기 192
전투는 대승이었다. 병사들의 피해라고는 두 자릿수에 불과했다.
“역시!”
괴물들을 물리치고 에스트라다에 진입한 호는 흡족한 기분으로 고개를 주억였다.
SS등급 영웅 브로리 그리고 인피니티 소드라는 A등급 클래스를 보유한 한시진의 위력은 명불허전이었다. 그 둘이라면 충분히 각 종족의 실력자과도 충분히 붙어볼 만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병사들에게 휴식 명령을 내리고, 마장기들을 정비한다.”
성내에 도착한 호는 곧바로 병사들에게 휴식 명령을 내렸다. 먼 거리를 이동한데다가 오자마자 전투를 겪은 병사들이었다.
“음머어! 오랜만에 뵙습니다. 영주님.”
“그래. 오랜만이네.”
집무실에 도착하자 큼지막한 눈동자가 특징인 영웅 웃소가 호를 반겼다. 그 옆으로는 리아 캬베데가 죽은 듯 쓰러져 있었다.
“……리아 캬베데 님은 그저께부터 쉬지 않고 전투를 치르시다가 지원군이 도착했다는 보고를 받고 잠에 빠지셨습니다만 깨울까요? 음머?”
“아니 됐어. 먼 원정을 다녀온 것도 얼마 되지 않았는데 아무래도 피곤할 테지.”
보고 받은 바에 의하면 신성력 폭주 사건은 리아 캬베데가 에스트라다로 복귀하자마자 일어난 사고였다.
“일어나게 되면 그때 나를 찾아오라고 하도록.”
“알겠습니다. 음머. 역시 영주님은 자비롭습니다.”
호의 말에 웃소가 탄성을 흘리며 감격에 겨운 표정을 지었다. 그런 웃소를 뒤로한 채 호는 에스트라다의 정보창을 열었다.
<영지 정보(Status)>
에스트라다(중 도시[B등급])-‘림드 산맥’
인구 -77942
보유 리스 -367215
보유 식량 -443471
병사–아벨리우스(S) 32400, 훗사르(S) 12610, 에머넌스 아쳐(B) 12000, 스파크 마장병(E) 3000.
내정 건물-대형 식량 저장고 34, 주점 2, 대시장 45, 채석장 4…….
군사 건물 -대형 망루 28, 병영 6, 대장간 6. 마법 연구소 2, 마력이 깃든 단단한 성벽.
리스 수입 -42710 / 월
식량 수입 -75472 / 월
특산품–한혈마
바로 옆 도시인 디르시나가 메트로폴리탄급 규모의 S등급 도시인 것을 감안하면 굉장히 초라한 정보창이었다.
다른 도시의 특성화와 내정 발전에 온 힘을 쏟느라 어쩔 수 없는 상황이기는 했지만 초라한 건물들의 상황을 보니 에스트라다 주민들의 불만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슬슬 에스트라다도 발견시켜야겠네.’
최근 급격하게 늘어난 영토 확장으로 인해 신경을 써야 할 곳이 굉장히 많아졌다.
다행히 디르시나의 특성화가 성공적으로 끝나면서 리스 수입이 폭발적으로 늘어난 까닭에 그나마 재정적으로는 한숨 돌리고 있는 판국이었다. 하지만 넓어진 영토에 비해 인재가 부족했다.
‘이런 상황에서 나크 평원과 페렛 습지대까지 삼킨다면? 이거 제대로 배탈이 나겠군.’
멀리서 한시진과 로우덴이 다가오는 모습을 보며 호는 에스트라다 주변의 지리를 떠올렸다. 원인들이 차지하고 있는 영토인 나크 평원과 페렛 습지대는 림드 산맥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큰 영토였다.
“그렇다고 수인족의 영토를 차지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기에는 아쉽단 말이지.”
전략시뮬레이션 게임에서 유저의 영토는 넓으면 넓을수록 좋았다. 도시 하나의 생산량이 여러 도시의 생산량을 따라갈 수는 없기 때문이었다.
하물며 나크 평원은 기름진 토양으로 인해 많은 식량을 수확할 수 있는 지역이었다. 아무래도 이에 대해서는 로우덴과 이야기를 해 봐야 할 것 같았다.
다행이도 괴물들의 습격은 더 이상 이어지지 않았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정찰을 나간 다크 엘프들의 보고에 따르면 괴물들은 에스트라다와 나크 평원의 경계지역 근처에서 어슬렁거리기만 할 뿐 별다른 행동을 보이지는 않는다고 했다.
덕분에 괴물들의 추가 공세를 대비하고 있던 엘 릿츠의 아벨리우스 부대 역시 에스트라다로 귀환했다.
하지만 모든 병사들이 쉴 수는 없었다. 일부는 휴식을 취할 수 있었지만 나머지는 괴물들을 피해 에스트라다로 모여든 수인들을 통제해야 했다.
“우리는 안전한 곳에서 생활하고 싶다. 우끽.”
“괴물들이 있는 나크 평원으로는 돌아가고 싶지 않아요.”
전투가 끝나고 얼마 후 에스트라다를 찾은 난민들을 대표하는 수인들이 호를 찾아왔다. 에스트라다 성문 앞까지 몰려왔던 괴물들을 봤기 때문일까? 그들의 얼굴은 두려움으로 가득했다.
“하지만 수인들을 에스트라다에 머무르게 할 수는 없습니다, 멍멍. 에스트라다는 이미 포화상태입니다."”
호의 옆에 있던 로우덴이 말했다. 로우덴의 말대로 에스트라는 이미 한계 상태였다.
중도시에 불과한 에스트라다의 총 인구수는 77000명. 하지만 근 일주일 사이에 에스트라다로 몰려든 수인들의 수는 그 다섯 배가 넘었다. 이미 수용 인원의 한계를 뛰어넘은 상태였다.
리스와 식량 수입량 또한 급감한 상황이었다. 한 달에 약 4 만 가량의 리스 수입을 올리던 에스트라다였지만 지금은 마이너스를 찍고 있었다. 그나마 보유한 재화들이 상당량 있던 터라 버티는 데는 크게 문제가 없었지만, 이대로 시간이 계속해서 흐른다면 곤란한 상황에 빠질 건 불을 보듯 뻔했다.
“하지만 저희들은…….”
“저희들을 괴물들의 손에서 구해주세요. 제발 부탁입니다.”
간절한 표정으로 말하는 수인들을 보던 로우덴이 호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멍멍.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자신이 뭐라고 해도 이들의 처분은 림드 산맥의 패자인 호의 선택에 달려 있었다.
로우덴은 개인적으로는 이들을 받아들이는 것에 대해 찬성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림드 산맥은 현재 많은 부분에서 개발이 이뤄지고 있는 상황. 이런 와중에 이들을 흡수해 영지민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면 상당한 도움이 될 터였다.
그리고 호 역시 로우덴과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안 그래도 인구수가 도시 발전에 비해 따라가지 못하는 도시가 하나 있었다. 약간의 시간이 흐른 후, 호가 수인들을 훑어보고는 말했다.
“괴물들의 손에 구해달라는 말은 굳이 에스트라다가 아닌 다른 곳에서 생활을 해도 상관이 없다는 뜻이겠지? 로우덴. 해머스의 특성화 상황은 어떻지?”
“멍멍! 거의 끝난 상황입니다. 몇 달 후면 해머스는 림드 산맥을 대표하는 광산 도시로써 이름을 날릴 것입니다. 멍.”
“하지만 해머스는 사람이 부족하지. 일할 인부들의 수도 부족하고. 그렇지 않나?”
“그렇게 호가 살짝 말꼬리를 흘리는 순간…….
“우리가 가겠습니다!”
“우리가 먹을 수 있는 버내노우만 달라!”
“제 가족들과 친구들의 안전만 지켜주시면 됩니다.”
이야기를 들은 수인들이 이구동성으로 외쳤다. 그들은 자신들의 고향은 이미 괴물들로 인해 폐허가 된 상황이라며 식량과 안전만 보장된다면 림드 산맥의 아무 곳에서나 터전을 잡아도 상관없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게 바로 호가 듣고 싶었던 말이었다.
“일단 에스트라다에 있는 수인들의 수를 파악하도록 해. 그리고 먼저 십만 명을 우선 선발해 해머스를 보내도록."”
“멍멍. 알겠습니다. 수인들의 인솔자는 누구로 임명할까요? 멍?”
“음. 웃소와 함께 해머스에서 사드나인을 부르는 게 좋을 것 같군.”
사드나인과 웃소. 각각 D 등급, E등급 영웅으로 등급은 높지 않았지만 둘 다 수인 영웅인 만큼 수인 난민들을 이끄는 데는 큰 문제가 없을 것 같았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멍멍.”
로우덴도 고개를 끄덕이며 호의 의견에 동의했다. 그렇게 수인 난민들의 처우는 어느 정도 해결된 것 같았지만 아직 중요한 문제들이 남아 있었다.
“먼저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논의를 해보도록 하지.”
회의실로 영웅들을 소집한 호는 말과 함께 몸을 돌려 집무실에 걸려 있는 커다란 지도를 가리켰다.
림드 산맥을 중심으로 주변 영토의 지리들이 그려져 있는 지도였다. 지도에는 수인족의 영토인 나크 평원과 페렛 습지대 지리 및 도시들의 위치도 표시되어 있었다.
그리고 호가 에스트라다의 위치가 표시된 곳에 동그라미를 그러고는 나크 평원과 페렛 습지대를 가리키며 말했다.
“수인들의 말에 따르면 괴물들은 나크 평원과 페렛 습지대 전역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고 하더군."”
“저 넓은 영토 전역에 걸쳐 괴물들이 나타났다고요?”
한시진이 곧바로 물었고, 호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어디선가 갑자기 생겨난 것도 아니고 신성력 폭주로 인해 나타난 괴물이야. 원래는 수인이었던 존재들이니 만큼 수인족의 영토 전역에서 발견된다고 해도 이상하지는 않지.”
“신성력 폭주라는 거. 정말로 끔찍하네요. 천족들은 선한 존재일 줄 알았는데.”
“그럴 리가 있나? 절대로 외모에 속으면 안된다냥. 리그너스 대륙의 큰 사건에는 무조건이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천족들이 끼어 있는 경우가 많았다냥.”
“그렇습니다. 멍멍.”
리아 캬베데와 로우덴의 말에 한시진은 입을 다물었다. 회의에 함께 참여한 신윤아도 마찬가지였다.
그 모습을 보며 호는 그녀들이 조금 놀랐을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을 했다. 외형으로만 따진다면 천족은 원래 있던 세계의 천사와 비슷한 외모를 지니고 있었다. 또한 미남미녀에 인상도 선했다.
에스트라다를 공격했던 괴물들하고는 티끌만큼도 연관이 없을 것 같은 존재들이었다. 하지만 소환자인 그 둘을 제외한 나머지는 리아 캬베데의 말이 옳다며 연신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그리고 잠시 후, 회의장의 말석에 앉아 있던 한 여인이 손을 들었다. A등급의 엘프 영웅 엘 라스엘이었다. 호가 고개를 끄덕이자 라스엘이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렇다면 영주님은 나크 평원과 페렛 습지대를 차지하실 생각이신가요?”
“가능하다면 그러고 싶지.”
페렛 습지대는 그렇다 치더라도 비옥한 토지로 이루어져 있는 나크 평원은 손에 넣고 싶었다.
“하지만 두 영토의 중요성을 생각하면 수인 왕국이 가만히 있지는 않을 겁니다. 특히 페렛 습지대 옆에 위치한 디치 플레이스만을 다스리는 종족은 수인 왕국의 부족 중에서도 가장 성질이 포악하다는 조인들입니다.”
“그 조인족이 공격해 올 거라는 건가?”
“그렇습니다. 게다가 이번 사태를 일으킨 원흉인 천족들이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는 것도 조금 수상합니다.”
호가 인상을 찌푸렸다. 그녀의 말대로 나크 평원과 페렛 습지대에 괴물들을 만들어낸 천족들은 코빼기도 안 보이고 있었다. 자신들의 영토로 돌아갔을 가능성이 가장 높기는 했지만, 엘 라스엘은 다른 가능성 또한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말인 즉, 그녀는 나크 평원과 페렛 습지대를 손에 넣는 것이 우리에게 있어 이득이 되지 않는다고 말하고 있었다. 오히려 전선이 늘어나면서 군사력만 낭비할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모두가 엘 아스린처럼 생각하는 것은 아니었다.
“우리들의 전력이라면 조인쯤은 충분히 상대할 수 있다.”
“천족도 함께 상대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천족? 신성력 폭주로 인해 괴물만 만들어 놓고 도망을 간 그 겁쟁이들을 말하는 건가?!”
조금 의외이긴 했지만 브로리는 지금 당장이라도 진격을 해 나크 평원과 페렛 습지대를 손에 넣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런 브로리의 의견에 동의하는 인물들은 리아 캬베데와 로우덴으로 공통적으로 수인 영웅들 이었다. 아무래도 그 지역에서 생활을 했던 만큼 두 지역의 중요성이 얼마나 큰 지 아는 것 같았다.
“흐음.”
그리고 호는 여기서 대충 회의를 마무리 짓기로 했다. 솔직히 의견이 대립된 상황에서는 절충 없이 회의를 진행해 봤자 서로의 감정만 소모할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