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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그너스 대륙전기-191화 (191/522)

# 191

리그너스 대륙전기 191

“괴물을 물리쳐라!”

“카니앗산과 웨어 타이거의 정비는 어떻게 됐지?! 마장기를 출진시켜!”

수인의 병사와 마장기들이 괴물을 물리치기 위해 나섰다. 하지만 지휘 체계가 잡히지 않은 병사는 오합지졸이나 다름없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이제껏 미소를 짓던 천족들도 본색을 드러냈다.

“여신 라헬님의 이름으로. 더러운 생명체들을 정화하겠습니다.”

천족들의 조직적인 공격에 나크 평원의 도시들이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이럴 수가!”

불타오르는 도시들을 보며 타레스는 좌절감에 무릎을 꿇었다. 이것은 천족들의 계획된 음모였다.

순순히 마장기와 병사들을 지원한다고 말을 했을 때부터 그들의 호의에 의심을 했어야 했다.

“도망쳐!”

“처, 천족이 배신했다!”

“여기 있다가는 죽을 거야! 우끽!”

눈치 빠른 수인들이 도시의 골목골목을 돌아다니며 천족들의 배신을 알렸다. 그리고 피난 행렬이 시작되었다. 하지만 수인들이 향할 수 있는 선택지는 많지 않았다.

원인들의 영토였던 나크 평원과 페렛 습지대에 있는 영지 대부분은 천족과 괴물들로 인해 엉망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렇다고 다른 수인들의 영토까지 가기에는 머나먼 길을 떠나야만 했다. 몬스터와 괴물들의 습격도 견뎌내야 했다. 하지만 안전지대가 전혀 없는 건 아니었다. 림드 산맥의 에스트라다. 그들을 받아줄 수 있는 안전한 도시가 가까운 곳에 있었다.

* * *

“그런 끔찍한 일이 일어나다니!”

“미친놈들.”

웃소의 뒤를 이어 리아 캬베데의 보고서도 도착했다. 그렇게 연이어 보고를 받고 정확한 상황을 파악한 호는 시선을 아래로 향했다. 집무실의 탁자에는 림드 산맥을 비롯한 주위 영토들이 그려진 지도가 펼쳐져 있었다.

“그 작자들은 우리 마족보다 더한 놈들이라니까? 왜 이 대륙의 종족들이 천족은 착하고 마족은 나쁘다는 선입견을 가지고 있는 지 알 수가 없어.”

“음음.”

천족들의 행위에 크게 분노한 멜리아 비쉬가 탁자까지 내려치며 흥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런 그녀의 말에 호 역시 인정한다는 듯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껏 여신 라헬로 인해 당한 게 한두 개가 아니었다.

물론 그중 대부분은 리그너스 대륙전기라는 가상현실 게임에서 경험했던 일이었다. 하지만 이 세계가 리그너스 대륙전기와 흡사한 세계인데다가 자신이 이곳으로 오게 된 원인 역시 여신 라헬에게 있는 만큼 좋은 맘이 들래야 들 수가 없었다.

게다가 수인들은 천족이 준 식량을 먹고 끔찍한 괴물로 변했다고 했다. 그리고 이는 호의 기억 속에도 남아 있었다.

‘과다한 신성력 흡수로 인한 폭주.’

호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과다한 신성력의 폭주로 인해 괴물로 변해버린 존재들의 습격. 오래되기는 했지만 기억 속에는 남아 있는 이벤트였다.

아이러니하게도 호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이 이벤트는 리그너스 대륙전기를 플레이하던 유저라면 쌍수를 들고 환영했던 이벤트였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호 역시 가상현실게임을 했을 무렵 이 이벤트를 경험하고 리그너스 대륙을 통일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었다.

“에스트라다로 수인들이 몰려들고 있다고 하지?”

“네. 그 수가 굉장히 많아 에스트라다의 병력으로는 감당이 안 될 정도라고 해요.”

예전보다는 수가 많아지긴 했지만, 에스트라다에 주둔하고 있는 병력의 수는 엄밀히 말해서 국경지대 치고는 많다고 할 수 없는 숫자였다. 다만, 다들 전쟁을 경험한 정예병이라는 것이 차이라면 차이랄까?

“그 와중에 몇몇이 괴물로 변해버리는 바람에 인명피해도 크게 난 모양이던데…….”

“디르시나에 연락을 해서 에스트라다로 마장기와 병사들을 수송시키도록 해. 그리고 우리 역시 에스트라다로 이동한다. 한시진과 브로리, 로우덴에게도 연락을 하도록. 엘 라스엘도 합류한다.”

레피스트 퓨리온을 만나기 위해 퓨리온의 산맥까지 멀고 먼 원정을 다녀 온지 불과 일주일도 안 됐다. 하지만 이 기회를 그냥 놓칠 수는 없었다. 게다가 자신이 가만히 있으면 나크 평원과 페렛 습지대는 천족의 영토로 변해 버릴 터였다.

‘그걸 그냥 두고 볼 수는 없지.’

명령을 내린 호가 눈동자를 빛냈다.

피해가 있더라도 천족들이 영토를 손에 넣는 것은 무슨 일이 있어도 막을 생각이었다. 다른 종족이라면 모를까 라헬의 추종자들에게 이익이 될 법한 일은 나중을 위해서라도 방해를 해야 했다.

* * *

“비켜요! 비켜!”

“어이! 거기 자리 좀 만들어봐! 여기 앉을 자리도 없다고!”

“사람들을 수용할 공간이 부족해요!”

“저기 수인들이 또 오고 있어요!”

에스트라다는 때 아닌 난장판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나크 평원과 페렛 습지대의 수인들이 물밀듯이 몰려들고 있었다. 초창기와 달리 제법 많은 발전을 이룬 에스트라다였지만 이 모두를 수용하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에스트라다에 주둔하고 있던 병사들은 수인들을 통제하는 것만으로도 힘에 부쳤다.

“캬앙!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냐앙!”

계속해서 몰려오는 수인 무리를 보던 에스트라다의 영주, 리아 캬베데가 날카로운 목소리로 외쳤다. 그런 그녀의 얼굴은 피로로 가득했다.

호와 함께 퓨리온 산맥까지 먼 원정을 다녀왔다가 업무에 복귀한 게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이제는 수인 때문에 쉴 틈이 없었다.

“푸르르. 음머억. 수인들을 디르시나 쪽으로 보내는 게 어떨까요? 에스트라다는 이미 포화 상태입니다.”

“으으. 첩자라도 끼어 있으면 어떻게 하려고?”

“그건…….”

리아 캬베데의 반박에 웃소가 투레질과 함께 고개를 푸욱 숙였다.

“그런데 갑자기 왜 이렇게 수인들이 몰려오는 거야? 이유는 알아냈냥?”

“음머어. 과다한 신성력 흡수로 인해 몇몇 수인들이 폭주를 하면서 끔직한 일이 벌어졌다고 합니다.”

“과다한 신성력 흡수로 인한 폭주? 수인들이 신성력 폭주가 일어날 일이 뭐가 있지. 냥?”

“당연히 천족 때문이죠. 푸우! 몇몇 원인들이 그러는데 천족들이 나크 평원에 주둔하고 있다던데요?"

“천족이?”

웃소의 말에 리아 캬베데의 얼굴이 굳어졌다. 수인과는 또 다른 세력인 천족의 등장은 에스트라다로 밀려오는 수인족의 파도만큼이나 가볍게 흘려 넘길 만한 사항이 아니었다.

“이 둔한 소 새끼야! 그런 건 바로바로 보고 했어야지!”

그리고 천족들의 등장 소식에 리아 캬베데는 곧바로 다크 엘프들을 나크 평원과 페렛 습지대로 파견했다.

에스트라드의 안전을 위해 천족들이 어째서 원인족의 영토에 주둔하고 있는지 또한 두 영토를 다스리고 있는 원인족의 부족장 버독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파악하려는 의도였다.

하지만 리아 캬베데의 명령을 받고 떠났던 다크 엘프들은 별 소득 없이 에스트라다로 복귀를 해야만 했다. 무언가를 알아 볼 만 한 건덕지도 없었다.

나크 평원에 있던 수인족의 영지에는 신성력이 폭주해 괴물로 변해버린 원인들로 가득했기 때문이었다. 천족들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나쁜 소식은 그것만이 아니었다.

“괴, 괴물들이 몰려온다!”

다크 엘프들이 복귀하고 며칠 뒤, 성벽 위에서 경계를 서던 병사가 에스트라다를 향해 꾸물꾸물 접근하는 괴생물체를 보며 외쳤다. 신성력이 폭주한 괴물들이 피난한 수인들을 따라 에스트라다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음머어! 내가 나간다!”

괴물들의 등장과 함께 전투가 벌어졌다. 웃소가 수인족의 S랭크 기병 훗사르와 함께 출진했고, 리아 캬베데가 탑승한 카니앗산이 연신 마동포를 발사했다.

하지만 괴물들의 수는 상상을 초월했다. 그들은 죽여도 죽여도 계속해서 에스트라다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렇게 전투가 길어지기 시작했고, 연이은 전투로 인해 병사들도 지치기 시작했다. 훗사르가 S랭크의 기병이라고 해도 무적은 아닌 만큼 피해가 조금씩 누적되고 있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전선이 조금씩 뒤로 밀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리아 캬베데는 영지의 모든 병사를 전선에 투입시킬 수 없었다. 통제가 불가능한 수인들 때문이었다. 그들을 관리하는 병사들까지 전투에 나서면 에스트라다는 혼란에 빠질 게 불을 보듯 뻔했다.

“꼭 세기말 좀비 영화를 보는 것 같군.”

그런 상황에서 호가 이끄는 병력이 에스트라다에 도착했다.

“끔찍하네…….”

한시진도 전장을 둘러보며 말했다. 그녀의 말대로 에스트라다의 성벽 아래는 무시무시한 외형을 한 괴물들로 가득했다. 얼마나 치열하게 전투를 치렀는지 멀리 떨어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괴물들의 체액으로 땅이 물든 게 눈에 보일 정도였다.

고약한 악취 또한 바람을 타고 풍겨오고 있었다.

“그래봤자 약해 빠진 녀석들에 불과하다. 나의 골든 스테이트라면 저 녀석들을 전부 곤죽으로 만들어 버릴 수 있다.”

“브로리님의 실력이라면 당연히 가능할 겁니다. 멍멍.”

웨어 타이거급 마장기인 골든 스테이트에 탑승한 브로리가 말하자 로우덴이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호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녀의 실력이라면 괴물들을 아작 내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더욱이 그녀가 탑승한 골든 스테이트는 브로리 전용의 커스텀 마장기였다.

“일단 에스트라다를 도와 괴물들을 물리쳐야겠어. 한시진이 우측 브로리가 좌측을 맡는다. 괜히 전투의 열기에 취해 무리는 하지 말고. 아직 정확히 정체가 밝혀지지 않은 녀석들이니 만큼 더욱 조심해야 해.”

“알았어요.”

“알았다.”

거친 엔진음과 함께 한시진의 데스 사이더와 브로리의 골든 스테이트가 출격을 개시했다. 그 모습을 보며 호는 조용히 생각에 잠겼다.

신성력의 폭주로 인해 생겨난 괴물들은 상대하기가 까다로운 녀석들은 아니었다. 동수라면 C랭크 병종들로도 충분히 상대할 수 있었다. 다만, 그 수가 더럽게도 많은 게 문제일 뿐이었다.

하지만 마장기 그것도 실력 있는 오너가 탑승한 마장기들이 전장에 나선다면 게임 끝이었다. 썩은 살과 뼈로 이루어진 괴물들의 공격이 마장기의 단단한 장갑을 뚫어낼 리 없었다.

“그래도 전쟁은 안전하게. 로우덴! 우리도 포격을 준비한다.”

“알겠습니다. 멍멍!”

자신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이번 이벤트를 위해 호는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에스트라다로 향했다.

자신의 투톱이나 다름없는 한시진과 브로리를 소환한 것도 모자라 원거리 포격이 가능한 MLC 를 무기로 보유하고 있는 엑스칼리버도 모조리 끌고 왔다. 엘 라스엘을 오너 한 엘프의 B등급 마장기 윈드라이더도 함께였다.

다행이도 엘프 왕국과의 전쟁은 소강상태. 게다가 엘프와 경계를 맞대고 있는 토갈론의 요새는 웬만한 전력으로는 뚫어낼 수 없는 천연의 요새였다. 또한 남쪽의 리셴르나와는 좋은 관계를 맺고 있는 만큼 병력을 빼는 데는 큰 문제는 없었다.

콰콰콰쾅!

엑스칼리버의 포격으로 시작으로 전투가 개시되었다. 가장 먼저 한시진의 데스 사이더가 자신의 낫을 휘두르며 물경 열 개체가 넘는 괴물들을 단숨에 베어냈다.

브로리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데스 사이더보다는 한 등급 떨어지긴 하지만 골든 스테이트는 브로리만의 전용기였다.

캬아아아앙!

괴물들을 학살하던 브로리가 비명에 가까운 기합을 내질렀다. 그와 동시에 골든 스테이트가 자신의 입을 쩍 벌렸고, 강력한 마력포가 전장을 일직선으로 훑고 지나갔다. 순식간에 수십, 아니 수백 개체에 다다르는 괴물들이 먼지로 변해 사라졌다.

에이스들이 출격한 전투는 일방적인 학살이나 다름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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