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7
리그너스 대륙전기 187
어느새 나란히 말을 달리고 있는 브로리를 보던 윤아가 머리를 갸웃했다.
“귀찮은 일이요? 무슨 의뢰? 퀘스트 같은 건가요?”
“퀘스트? 그건 모르겠고, 의뢰라는 표현이 옳겠군. 사막의 개미굴 청소다.”
“개미굴?”
“너 던전 알지?”
“네.”
호의 말에 윤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 또한 리그너스 대륙전기를 플레이해 본 유저. 많은 시간을 플레이 한 것은 아니지만, 던전이 무엇인지는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던전 청소 의뢰다. 바리안스 대지를 통과시켜 주는 대가로 맡긴 일이지. 그리고 우리가 청소를 해야 할 던전은 제덴 사막의 개미굴이라는 던전이다.”
“어렵나요?”
“어렵지는 않지만 귀찮은 편이야. 난이도는 C등급에 등장 보스는 네 마리로 적당한 편이지만, 개미굴이라는 말답게 지형이 엄청난 미로로 되어 있지.”
“메이즈 케이지처럼요?”
“아니, 그 정도까지는 아니니까. 클리어 하는 것은 그리 어렵진 않을 거야.”
호의 말에 윤아는 다행이라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고는 주변을 둘러봤다. 자신의 주위에는 든든한 S랭크의 수인족 기병 훗사르들이 있었다. 그뿐인가?
뒤쪽에는 리그너스 대륙전기의 강력한 병기인 마장기들도 함께하고 있었다.
‘C등급이면 어렵지 않겠지?’
리그너스 대륙전기라는 게임에 SSS등급의 던전까지 있는 것을 감안하면 C등급 던전은 난이도로 따지면 하위급에 속하는 던전이었다. 그리고 가슴을 쓸어내리는 윤아를 보며 현준은 그녀 몰래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제덴의 개미굴이면 윤아의 경험치를 제법 높일 수 있겠지.’
C등급 던전인 제덴의 개미굴. 워낙 많은 수의 몬스터들이 나오는 까닭에 플레이어들 사이에서는 일명 경험치 던전이라 불리는 장소 중 하나였다.
“나도 이제 슬슬 전직을 해야 하는데…….”
말과 함께 호는 자신의 정보창을 열었다.
<플레이어 정보(Status)>
1. 이름 : 윤호
2. 성별 : 남(29)
3. 종족 : 인간
4. 소속 : 마족
5. 레벨 : 376
6. 직업 : 제네시스–전장의 마에스트로(A)
7. 세부능력
통솔 : 750(+70) / 750(+70)(SS)
무력 : 300(+15) / 300(+15)(A)
지력 : 300(+5) / 300(+5)(A)
정치 : 300 / 300(A)
매력 : 200 / 200(B)
8. 특성 : 부대 강화, 통솔 상승(소), 사기의 외침, 호위병 소환, 아크 스피릿, 전장의 노래
9. 스킬 :
<침착하라!> D랭크.
많은 전투를 경험한 상급 사관은 다양한 악조건 속에서도 부대의 병사들이 전투에 집중할 수 있도록 만들어 줄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효과 : 병사들이 혼란 및 이상 상태에서 쉽게 빠져 나옵니다. 또한 부대의 공격력을 10% 상승시킵니다.
<지휘관의 독려> B+ 랭크.
수많은 전투를 경험한 전투의 스페셜리스트인 전쟁 군주는 자신의 노련한 경험을 바탕으로 자신이 지휘하는 병사들의 능력을 끌어 올릴 수 있습니다.
-효과 : 휘하에 있는 모든 병종의 공격력, 방어력 수치가 4 상승합니다.
<아크 스피릿> A랭크.
아크 로얄은 먼 옛날 리그너스 대륙의 5 분의 1를 차지했던 인간의 유명한 황제를 일컫는 명칭이었습니다. 뛰어난 전략과 전술을 선보이며 각 종족들과의 전쟁에서 승승장구를 거뒀던 아크 로얄의 위명은 아직까지도 전설로 남아 있습니다.
-효과 : 통솔 수치 50 상승. 휘하에 있는 모든 병종의 공격력, 방어력 수치를 30% 상승시켜 줍니다.
<전장의 노래> S랭크.
전장상황 파악 능력이 인간의 경지를 뛰어넘었다는 평가를 받는 제네시스는 그 어떤 상황에서도 상대의 약점을 파악해 외통수에 몰리게 만듭니다.
-효과(1) : 스킬을 발동한 순간, 휘하에 있는 모든 병종의 공격력이 10, 방어력이 5 상승합니다.
-효과(2) : 1시간 동안 휘하의 모든 병종들이 상대의 방어력을 50% 무시한 공격력을 가합니다.
정보창을 연 호의 눈동자가 향한 곳은 바로 경험치 수치였다.
계속된 전쟁과 승리, 그리고 퀘스트의 보상으로 인해 차곡차곡 쌓인 경험치가 어느새 100만에 다다르고 있었다. 이렇게 획득한 경험치는 플레이어의 세부 능력을 올리는데 사용되었지만 현재 호는 자신의 한계 능력을 모두 끌어 올린 터라 세부 능력에 경험치를 투자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얻은 경험치를 사용해 능력을 상승시키려면 이제는 S등급 클래스를 획득해야만 했다.
그리고 현재 호가 생각하고 있는 S등급 클래스는 Chief of Staff, 플레이어들에게는 코스라 불리는 지휘 계통의 클래스였다. 상태창으로 나타나는 직업명은 ‘작전지휘관–백우선의 깃털’이었다.
[작전지휘관–백우선의 깃털(S)-과거 위대한 정치가이자 하늘이 내린 전략가였던 인물의 능력을 이어받았다고 생각될 정도로 뛰어난 지휘 능력을 보이는 클래스입니다. 자신의 통솔 수치가 50% 상승하고, 지휘하는 부대의 공, 방 수치가 100% 상승합니다.
조건-전 종족 가능. 통솔 계열 A등급 직업을 보유한 상황에서 통솔 수치가 통솔 수치가 750, 지력과 정치 수치가 200씩 필요.
-휘하에 특성화 개발을 시킨 도시를 세 개 이상 보유해야 합니다.
-S등급 이상의 영웅 다섯 이상을 보유해야 합니다.
-다섯 부대의 마장기 편대를 보유해야 합니다.
-휘하 영토의 리스 수입량이 5억을 넘어야 합니다.]
작전지휘관 -백우선의 깃털. 지휘관 계열의 클래스긴 하지만 만능이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로 대다수의 능력에서 보너스를 받는 S등급의 레어 클래스였다.
‘전략가라기보다는 정치가로 전직하는 것 같긴 하지만.’
이 때문에 전직을 위해서는 군사적인 부분뿐 아니라 여러 가지 조건들을 만족시켜야만 했다.
어쨌든 지금 당장은 할 수 없는 목표들이었기에 호는 천천히 자신의 클래스를 상승시키기로 마음을 먹을 수밖에 없었다. 대신…….
‘다른 애들을 키우면 되지. 어차피 휘하에 S등급 이상의 영웅도 다섯이나 필요하잖아?’
호의 시선이 윤아와 리젤에게 향했다. 현재 호의 휘하에 있는 S등급 이상의 조건을 만족하는 영웅은 브로리와 로우덴, 이 둘밖에 없었다. 전직 조건을 만족시키기 위해서는 세 명의 S등급 영웅이 더 필요했다.
“히익?!”
“갑자기 소, 소름이!”
그 영웅이 윤아와 리젤이 되지 않으리라는 법은 없었다. 그리고 윤아와 리젤이 죽을 고생을 하며 제덴의 개미굴을 모두 클리어 한 것은 호가 아트리그에서 떠난 지 보름 뒤에 일어난 일이었다.
* * *
키키키킷!
칠판을 손톱으로 긁어내리는 소름끼치는 소리가 들려온 순간 윤아는 귀를 막으며 크게 인상을 찌푸렸다. 이 소리의 주인공은 제덴 사막의 주인이나 다름없는 몬스터 거대 병정개미가 자신의 날개를 파르르 떠는 소리였다.
그리고 거대 병정개미가 날개를 떨 때는 먹잇감을 발견할 때뿐이었다.
“신윤아. 몬스터다.”
“네이네이…….”
호의 목소리에 윤아는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자신의 손을 들어올렸다. 겁이 많은 그녀는 호나 한시진처럼 이 세계의 몬스터를 직접 맞상대하는 전투는 죽어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렇기에 선택한 직업이 바로 서머너였다.
그리고 그녀의 손가락 끝에 맺힌 붉은 색 실선이 허공에 하나의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차원의 문 소환. 디멘션 게이트.”
붉은 색의 선은 하나의 문을 그렸고, 곧 그 문은 강렬한 빛에 휩싸인 채 사방팔방으로 마력을 쏘아 보내기 시작했다.
스아아아! 그대에게 어둠을!
그리고 잠시 후, 검은색의 갑주로 무장한 기사들이 하나둘씩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시린 냉기를 입에서 뿜어내는 기사들은 살아 있는 생명체가 아니었다.
B랭크의 마족 기병대 데스나이트들이었다. 그 수는 고작 서른 남짓밖에 되지 않았지만 여기저기서 몰려오는 거대 병정개미들을 상대하기에는 충분했다. 그녀의 주위에는 마장기와 훗사르들도 있으니 말이다.
“공격!”
슈가가각!
윤아의 명령에 따라 검은색의 마기로 감싸인 검들이 춤을 추기 시작하며 몬스터들을 반으로 갈라버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데스 나이트들도 무적은 아니었다. 열심히 싸우던 데스 나이트 한 마리가 거대 병정개미의 커다란 이빨에 끼었고, 곧 우지직 거리는 소리와 함께 우그러들었다.
“이잌!”
입술을 질끈 깨물며 소환수들의 움직임에 정신을 집중하는 윤아의 모습을 보며 호는 속을 미소를 지었다. 갑작스런 기습이기는 했지만 거대 병정개미들 쯤은 자신들의 전력으로는 어렵지 않게 물리칠 수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전투 하나하나가 윤아에게는 큰 경험이 될 거라는 게 호의 생각이었다.
실제로 제덴의 개미굴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며 전투경험을 쌓은 윤아는 서머너라는 자신의 클래스에 대한 이해도가 크게 높아진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아직 부족한 점도 있었다.
“엇차!”
짧은 기합과 함께 윤아에게로 달려들던 거대 병정개미가 호가 휘두른 검에 두 동강으로 갈라지며 무너졌다.
“조심해야지. 아무리 강력한 존재를 소환할 수 있다고 해도, 소환자가 당하면 끝이라고.”
“아! 고, 고맙습니다, 오빠.”
그리고 그 동안 호는 윤아의 경험이 늘어날 때까지 그녀의 안전을 지켜주어야 했다.
퓨리온의 산맥까지 가는 여정은 딱히 험난한 편이 아니었다. 제덴 사막을 건너며 개미들의 습격이라는 귀찮은 일을 겪어야만 했지만, 윤아가 쌓은 전투 경험과 획득한 경험치들을 생각하면 오히려 득이 되는 일이었다. 덕분에 이동시간을 꽤나 잡아먹기는 했지만, 어쩔 수 없는 투자였다.
게다가 사막을 건너는 수인들을 개미 몬스터들에게서 구해주며 식량과 호감도, 소량이지만 리스와 아이템도 획득할 수 있었다. 아쉽게도 그리 쓸모가 있는 아이템들은 아니었다.
“이제 이틀 정도면 퓨리온의 산맥 초입에 도착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냥.”
어둑어둑한 밤, 임시로 만들어 놓은 회의실에서 리아 캬베데가 말했다.
“아트리그를 떠난 지 얼마나 됐지?”
“한달 정도요.”
“엄청나게 오래 걸렸네. 원래는 보름 정도를 예상하고 있었는데…….”
“제덴의 개미굴도 무너뜨려야 했고, 사막의 수인들을 구하기 위해 많은 수의 개미굴을 무찔러야 했으니 어쩔 수 없었다.”
브로리의 말에 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예상 범주 내였던 만큼 크게 문제될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오. 호 님. 한 가지 질문해도 되나오?”
리젤이 손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뭔데?”
“곧 있으면 퓨리온의 산맥에 도착해오. 호 님은 엘프들을 찾는다고 했어오. 하지만 퓨리온의 산맥은 굉장히 큰 산맥이에요. 그 넓은 산맥에서 엘프들을 찾는 것은 어려워오.”
“아아.”
호의 입에서 짧은 탄성이 터져 나왔다. 그와 함께 모두의 시선이 자신에게로 쏠리는 것도 느낄 수 있었다. 그러고 보니 이 자리에서 엘 샤난을 제외하면 자신들이 왜 퓨리온의 산맥까지 떠나왔는지 정확한 이유를 아는 이는 소환자인 윤아 밖에 없었다.
그리고 잠시 퀘스트 창을 열어 진행 중에 있는 퀘스트의 내용을 살펴본 호가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엘프를 찾기 위해 퓨리온의 산맥을 가는 것은 아니야.”
“그렇다면?”
“과거 크리솔라이트 부족을 수호했던 그린 드래곤, 레피스트 퓨리온을 찾는 게 목적이지.”
브로리의 물음에 호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리고 그 파장은 적지 않았다.
“히익?!”
“캬아앙?!”
“드, 드래곤!”
하나같이 놀랐다는 얼굴로 서로를 번갈아 보고 있었다. 평온한 표정을 짓고 있는 것은 엘 샤난 뿐이었다. 이미 호한테서 퀘스트의 내용을 알고 있는 윤아조차도 파르르 몸을 떨고 있었다. 그리고 가볍게 박수를 쳐 이목을 집중시킨 호는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물론, 넓은 퓨리온의 산맥에서 레피스트 퓨리온을 찾는 일은 쉽지 않을 거야. 게다가 어떤 몬스터가 우릴 반겨줄지도 모르는 일이지.”
“그건 그렇다 치고 과연 드래곤이 우릴 만나 줄까? 내가 알기로는 드래곤들은 자신의 안식을 방해하는 이들을 굉장히 싫어한다고 했다. 우리가 퓨리온의 산맥을 찾는 일 자체가 그들에게는 불쾌한 행동일 텐데…….”
“아마, 만나줄 거야. 우리에게는 현재 크리솔라이트 부족을 이끌고 있는 엘 샤난이 있으니까. 그리고 나는 레피스트 퓨리온을 만나서 그의 힘을 빌릴 생각이야.”
브로리의 말에 호는 확신을 담아 말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레피스트 퓨리온은 자신들을 만나줘야만 했다. 그래야 퀘스트를 진행시킬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