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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그너스 대륙전기-186화 (186/522)

# 186

리그너스 대륙전기 186

크리솔라이트의 꿈 퀘스트를 진행하기 위한 준비가 착착 이뤄지기 시작했다. 먼저 엘프 왕국의 특수 병종인 크리솔라이트 궁수의 연구가 진행되었다. 다행히 선행기술도 몇몇 보유하고 있었고 디르시나에서 생산되는 많은 양의 리스와 영웅들을 갈아 넣은 결과 크리솔라이트 궁수의 개발은 순식간에 끝이 났다.

“나를? 갑자기 왜?”

“퓨리온 산맥으로 여정을 떠난다고 합니다. 이미 한시진 영주님께서도 허락하셨습니다.”

“그래? 뭐, 엘프 왕국 녀석들도 잠잠한 모양이니 상관없겠지.”

이어서 토갈론 요새에 있던 브로리가 킬리드로 이동했다. 개인 전용기를 가지고 있는데다가 무력 수치까지 뛰어난 그녀는 드래곤의 시험을 치르는 데 꼭 필요한 영웅이었다.

“레피스트 퓨리온 님이라면?! 설마 저희 크리솔라이트 부족을 수호하던 위대한 존재를 만나러 가시는 건가요?”

코르다를 다스리던 엘 샤난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녀는 감격에 겨운 눈동자로 호의 명령을 전해온 엘프를 바라보았다.

“레피스트 퓨리온이라면…….”

“우리들의 기억 속에서는 전설로 잊힌 고대의 존재가 아니었던가요? 그것을 어떻게 영주님께서?!”

코르다에 주둔하고 있던 엘프들이 서로 속닥였다. 다들 얼굴에는 놀라움이 가득이었다.

그렇게 퓨리온의 산맥으로 떠날 인물은 필수 영웅인 엘 샤난을 포함해 브로리와 리아 캬베데, 그리고 리젤 칼리노와 신윤아로 결정되었다.

함께 하는 마장기는 호가 탑승할 B등급 마장기 엑스칼리버를 포함해 브로리의 골든 스테이트, 리아 캬베데의 릴라릴라 그리고 저번 전쟁에서 전리품으로 획득해 수리를 끝낸 엘프의 B등급 마장기 윈드라이더까지. 총 네 기나 되었다.

“저도 가야 되나요? SS등급의 퀘스트라면서요?”

“물론. 너 등급 업 안 할 거야? 지금 몇 등급?”

“……C등급요.”

그리고 갑작스러운 명령에 따라 에스트라다에서 킬리드까지 먼 거리를 이동해온 신윤아가 자신의 클래스를 떠올리며 조그마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러니까 가야지. 최소한 B등급으로 올려야 되지는 않겠어?? 퀘스트 클리어 경험치가 엄청날 텐데?”

“그……. 위험하지는 않겠죠?”

“위험해도 감수해야지.”

호의 말에 신윤아는 고개를 푸욱 숙였다. 내키지는 않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이 땅의 주인은 자신이 아닌 눈앞의 남자였다.

“나도 함께 가오. 힘내오.”

“……응.”

그나마 에스트라다에서 정이 들고 친해진 묘인 영웅인 리젤이 함께 한다는 게 윤아에게는 위안이었다. 하지만 호는 크리솔라이트 꿈 퀘스트를 위해 당장 떠나자는 명령을 내릴 수는 없었다.

식량을 구입해서 리셴르나에게 무상으로 제공, 그녀의 호감을 사는 일에 시간이 걸렸기 때문이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자신이 자리를 비운 사이 림드 산맥을 비롯한 엘프, 수인의 공격이 있을 수도 있었기에 방어 준비도 철저히 해야만 했다. 그리고 두 달 후, 리셴르나에게서 한 통의 편지가 킬리드로 보내졌다. 소중한 친우인 호를 만나고 싶다는 리셴르나의 내용이 담긴 편지였다.

“좋아! 출발한다.”

호와 함께 퓨리온의 산맥으로 향하는 병사들은 S랭크의 기병대인 훗사르 한 부대가 전부였다. 어차피 공략본에 따르면 드래곤의 시험을 통과하는 데는 마장기가 필요할 뿐, 병사들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나와 있었다. 그리고 훗사르는 호가 수인들을 얼마나 생각하는지 리셴르나에게 보여주기 위한 병사들이었다.

두두두두!

“히이이익?!”

“리젤 살려오오오!”

수인의 S랭크 기병대인 훗사르의 이동 속도는 흡사 드워르기니를 연상케 할 만큼 빨랐다. 특히나 평원을 내달릴 때의 최대 속력은 호조차도 겁이 날 정도였다. 그 때문에 호와 일행들은 일주일도 되지 않아 리셴르나가 머무르고 있다는 S등급의 영지, 아트리그에 도착할 수 있었다.

“우리 직접 만나는 것은 처음이죠?”

“안타깝지만 그렇습니다. 바리안스 대지의 지배자인 리셴르나 님.”

말과 함께 호는 눈앞의 묘인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자신과 관계를 맺은 몇 안 되는 타 세력의 영주 리셴르나였다.

“호호호. 이런 기회는 진즉에 만들었어야 했는데요.”

호는 그녀가 해맑게 웃으면서 묘인 특유의 타원형 눈동자로 자신을 훑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늦었지만 이렇게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먼 길을 간다고 들었어요. 냥. 뭐, 일단 들어와요. 변변치 않지만 식사를 준비해놨답니다.”

그렇게 가벼운 인사와 함께 호는 수인 왕국의 특징들이 잘 가미된 막사의 내부로 향했다. 윤아와 브로리, 리젤을 포함한 다른 동료들도 호의 뒤를 따랐다. 리셴르나의 응접실로 사용되는 장소인지 일행들이 도착한 곳에는 벌써 음식들이 준비되어 있었다.

“차린 것은 없지만, 많이 드셨으면 해요.”

“과찬이십니다. 맛있어 보이는 음식들이 산더미 같이 있는데요?”

“전부 림드 산맥의 패자 덕분이죠.”

리셴르나가 웃으며 말했다.

“최근 마족과 드워프들의 도발을 막기 위해 많은 군대를 유지하느라 식량에 허덕이고 있었는데, 갑작스레 보내주신 식량이 크게 도움이 되었습니다.”

중간 중간 귀엽게 그녀의 입에서 냥냥거리는 발음이 들려왔지만, 그래도 또박또박 리셴르나는 묘인 특유의 발음을 내지 않은 채 말을 이었다.

“엘 로즐린의 탐욕으로 인해 위기에 빠졌을 때, 리셴르나 님의 도움이 아니었다면 저는 아마 살아 있는 목숨이 아니었을 겁니다. 그 때의 도움과 비교하면 세 발의 피에 불과합니다.”

“호호호. 그런가요?”

호의 말에 리셴르나가 앙증맞게 웃었다. 그 모습을 보며 브로리가 쩝 하며 입맛을 다셨지만, 이런 자리에서 나누는 대화들이 다 그런 법이었다.

“그나저나……. 오랜만에 다시 뵙는 친구도 있군요?”

리셴르나의 시선이 리아 캬베데에게 향했다. 그 모습에 호는 자신도 모르게 흠칫 몸을 떨었다. 생각해보니 리아 캬베데는 과거 리셴르나의 부하였던 영웅이었다.

“털에 윤기가 반지르르한 것을 보니 림드 산맥의 패자와 함께하는 생활이 꽤 즐거운가 보네요?”

“냥냥냥.”

리셴르나의 말에 리아 캬베데가 부끄럽다는 듯 고개를 숙였다. 다행히 리아 캬베데에 대한 리셴르나의 관심은 거기까지였다. 굳이 과거의 일을 들추지는 않으려는 모양으로 보였다.

‘다행이군.’

리셴르나의 덤덤한 태도를 보며 호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수인 영웅들로 일행을 구성하면 리셴르나의 영토를 통과하는 게 좀 더 수월할 거라는 생각에 리아 캬베데를 일행에 넣은 게 실수였다. 만약 리셴르나가 과거의 일로 트집을 잡았다면 난감했을 법한 상황이었다.

계속된 식량 수송으로 기아에 허덕이는 그녀의 마음에 기름칠을 한 게 어느 정도 도움이 된 것 같았다.

“흥흥.”

그렇지만 가끔씩 묘한 콧소리와 함께 리셴르나의 시선이 리아 캬베데로 향할 때면 호는 자신의 가슴이 철렁거리는 것을 느껴야 했다.

“그나저나 바리안스의 대지를 통과하고 싶다고요?”

“네, 그렇습니다. 퓨리온의 산맥으로 갈 예정입니다.”

“퓨리온의 산맥이라. 남쪽으로 한참을 이동해야 되는데……. 만약 이 사실을 알게 된다면 시끄러운 원숭이들이 소란을 피우기야 하겠지만, 호 님과 저와의 관계를 생각하면 딱히 허락하지 못할 일은 아니에요.”

리셴르나의 말에 호는 주먹에 힘을 꽉 쥐었다. 이 지역의 패자인 그녀의 허락이 떨어지면 퀘스트를 진행할 수 있는 퓨리온의 산맥까지 이동하는 건 시간문제였다.

“하지만 그대가 어떤 이유로 퓨리온의 산맥을 가려고 하는지는 궁금한데요?”

“그건…….”

그녀의 말에 호는 빠르게 생각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리셴르나에게 퀘스트의 내용에 대해 어느 선까지 이야기를 할지가 애매했기 때문이었다.

“비밀스러운 내용인가 보죠?”

“아, 아닙니다.”

약간 토라진 것 같은 리셴르나의 목소리에 호는 재빨리 손을 내저었다. 그녀의 기분을 상하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랬다가 바리안스의 대지를 통과하지 못하면 자신만 손해였다.

그래도 퀘스트의 내용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고 싶지는 않았다. 지금이야 서로의 이해관계에 따라 돈독한 관계를 맺고 있지만, 나중 일은 모르는 법이었다.

“크리솔라이트 부족 때문입니다.”

“크리솔라이트 부족? 붉은 핏빛의 대지에 터를 잡고 있는 엘프들 말인가요?”

“네, 그렇습니다. 강철의 난장이라 불리는 드워프들이 퓨리온의 산맥을 차지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산맥 깊숙한 곳에는 먼 옛날 붉은 핏빛의 대지에서 떠난 크리솔라이트 부족들이 살고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저는 앞으로의 전쟁에 대비해 그들의 힘을 빌리기 위해서 퓨리온의 산맥을 찾아가려고 하고 있습니다.”

호가 말했다. 그리고 잠시 후, 리셴르나가 고개가 비스듬하게 기울어졌다.

“그런 일이 있었군요. 하지만 과연 그들이 호 님을 도울까요?”

“그건 알 수 없습니다. 다만, 그러기를 바랄 뿐입니다. 또한 설득을 위해 현재 크리솔라이트 부족을 이끌고 있는…….”

말끝을 흐리며 호는 뒤에서 불편하게 앉아 있는 한 엘프를 눈으로 가리켰다. 그리고 엘 샤난을 보던 리셴르나가 눈동자를 세로로 동그랗게 떴다.

“흐냥? 그렇다면 저 여인이 현재?”

“크리솔라이트 부족을 이끌고 있는 엘 샤난이라는 이름의 엘프입니다. 현재 저와 뜻을 함께 하고 있는 엘프죠.”

“그렇군요.”

호의 대답을 들으며 리셴르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토갈론 요새를 점령하면서 이 녀석은 엘프 왕국과 척을 졌단 말이지. 지금이야 잠잠하다지만 엘프 왕국이 가만히 있을 리 없고…….’

호가 대단하다고는 하지만 엘프 왕국이 제대로 된 전력으로 요새를 탈환하려 호가 막아낼 수 있을 리 없었다. 그만큼 엘프 왕국의 저력은 대단했다. 그리고 그렇게 되면 다음은 자신들의 차례였다.

‘그렇게 되느니 차라리 소환자에게 힘을 실어주어 이 자가 엘프와 공멸하는 게 나에게는 좋다는 말씀!’

리셴르나는 고개를 주억였다. 호의 말이 사실이라면 딱히 위협적일 것도 없었다. 결국 그녀 입장에서는 호가 퓨리온의 산맥을 찾아가는 것을 굳이 막을 이유가 없었다.

“알겠습니다. 그런 이유라면 통행증을 발급해 드리도록 할게요.”

“감사합니다.”

“하지만 조건이 하나 있어요.”

리셴르나의 대답에 호는 기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다가 멈칫하고는 그녀의 얼굴을 바라봤다.

그리고 리셴르나의 뒷이야기를 듣고는 다시금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 * *

“이거 섭섭한데요? 너무 빨리 떠나시는 것 아닌가요?”

“마음 같아서는 리셴르나 님과 오랫동안 함께 하고 싶지만 제 사정이 여의치가 않아서요. 토갈론의 요새를 노리는 엘프족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은 것 같습니다.”

“그래도 아쉽네요.”

이틀 뒤, 다시 출발 준비를 마친 호는 리셴르나가 머무르고 있는 아트리그를 떠났다. 하루라도 빨리 퓨리온의 산맥에 도착해 레피스트 퓨리온의 시험을 통과해야만 했기 때문이었다.

“오빠. 정말로 엘프들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아요?”

그리고 아트리그의 거대한 성문을 벗어나자 윤아가 호에게 물었다.

“그거야 나도 모르지.”

“에? 아까는?”

“그냥 하루라도 빨리 퓨리온의 산맥으로 가야했기에 한 말이지. 그 정도야 눈치껏 알아차려야 하는 거 아니야?”

“아. 그, 그런 것 같긴 했는데. 그래도 혹시나 오빠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지 모르는 일이니까요.”

윤아의 당황한 모습을 뒤로 한 채 호는 어깨를 으쓱였다.

“게다가 바로 퓨리온의 산맥으로 갈 수도 없게 되어서. 하루라도 빨리 떠나야 했어.”

“왜요? 무슨 일이 생긴 거예요?”

“리셴르나가 귀찮은 일을 하나 맡겼다.”

대답을 한 이는 브로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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