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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그너스 대륙전기-185화 (185/522)

# 185

리그너스 대륙전기 185

“순찰은 잘 다녀오셨나요?”

“남쪽지역으로 다녀왔지. 큰 문제는 없더라고.”

남쪽 지역이라면 킬리드에 거주하고 있는 마족들의 주거 지역이었다. 마족의 영웅이라 그런 걸까?

다른 종족보다는 마족을 먼저 챙기는 게 느껴지는 행동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행동들은 소환자를 제외한 다른 종족의 영웅들도 비슷비슷했기에 호는 크게 신경을 쓰지 않은 채 입을 열었다.

“그런데 위험해요? 제가요?”

“그래. 마족도 아니면서 마족들의 마음을 제대로 사로잡았던걸?”

멜리아 비쉬의 말에 호는 어깨를 으쓱였다. 그녀는 자신이 알르드라는 이상향으로 그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고 말하고 있었다.

하지만 정확히 말하자면 킬리드에 영지민들의 만족감을 높여주는 건물들을 잔뜩 세워놨을 뿐이었다. 그것도 각 종족별로 필요한 건물들을 말이다. 자신에 대한 킬리드 영지민들의 마음은 전부 그런 건물들의 효과일 뿐이었다.

‘그것도 휘하에 다양한 종족의 영웅들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지.’

이는 가상현실게임인 리그너스 대륙전기와 흡사한 시스템이었다. 하지만 게임 속의 유저처럼 다양한 종족들의 건물들을 동시에 세울 수 있는 게 자신뿐인지 혹은 다른 소환자들도 되는 것인지는 아직 파악할 수 없었다.

안타깝지만 소환자로서 한 도시를 지배하는 영주의 자리까지 오른 인물은 아직까지 만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호는 멜리아 비쉬의 눈동자를 마주보며 떨떠름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마족이 아니라니 이거 섭섭한걸요? 그래도 한 때는 마족의 소환자였다고요.”

호는 유독 자신이 마족이었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실제로도 볼 붸르니체스의 일만 아니었다면 아직도 자신은 마족이었을 터였다. 물론, 지금은 아니었다.

“그리고 멜리아 님도 이제는 마족의 영웅이 아니잖아요?”

“하아……. 그러게. 어쩌다가 이렇게 됐는지.”

멜리아 비쉬가 한숨을 내쉬었다. 여러 감정이 담겨 있는 한숨이었다. 수인 왕국의 포로로 붙잡혔던 그녀는 두 달 전 만마의 지배자 쉐르난비체에게 등을 돌리고 알르드의 영웅이 되었다.

그렇지 않으면 목숨을 잃을 수 있는 상황이었기에 어쩔 수 없이 내린 선택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마의 지배자를 배신했다는 생각이 불안한 모양인지 최근 멜리아의 표정은 그리 좋지 못했다.

“게다가 네 덕에 비쉬 가문의 소원을 푸나 싶었는데. 커티삭에서 전쟁이 터지는 바람에 망해 버렸어.”

“아, 그 환락가?”

“그래.”

그녀의 대답에 호는 멜리아의 호감도 퀘스트를 떠올렸다. 환락가들을 건설하고 궁극적으로 카지노가 포함된 환락의 대도시를 건설하는 것이 퀘스트의 목표였었다.

‘카지노라…….’

자신의 영지 중 한 곳에 유흥의 도시 하나쯤은 있어도 괜찮을 것 같았다. 하지만 지금 당장 건설에 착수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 워낙 돈이 들어갈 곳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여유가 생기면 멜리아 님에게 카지노 건설을 맡기도록 해볼게요.”

“어, 정말?! 진짜야?”

표정이 다 죽어가던 멜리아가 반색을 하며 호를 바라보았다. 그럴 만도 한 게 환락의 도시 건설은 그녀의 궁극적인 소망이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호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네, 하지만 나중에요. 지금은 여유가 없어요.”

“괜찮아. 여유가 될 때까지 충분히 기다려 줄 수 있어.”

멜리아가 빙그레 웃었다.

“글쎄요. 그 여유를 만들기 위해서는 우리의 서큐버스님께서는 일을 더 열심히 해야 하지 않을까요?”

그리고 뒤에서 한 여성을 목소리가 들려왔다. 엘프 왕국의 군단장이자 A등급 엘프 영웅인 엘 라스엘이었다.

은은한 녹빛의 갑주를 입고 있는 그녀는 한 달 전, 그녀의 부관인 엘 릿츠와 함께 오너 시스템이 사용되어 호의 휘하 영웅이 되었다.

뭐가 그리 마음에 들지 않는지 그녀의 입가에는 쓴 웃음이 맺혀 있었다. 아무래도 킬리드의 영지 전반의 업무를 홀로 처리하기 때문 것으로 보였다.

“으……. 그럼 난 이만. 잠시 급한 볼일이 생겨서.”

“자, 잠깐! 이봐요! 서큐버스! 멜리아!”

안타깝게도 내정 일을 기피하던 멜리아는 이곳 킬리드에서도 마찬가지의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어쨌든 엘프 왕국과 경계를 맞대며 림드 산맥과 붉은 핏빛의 대지를 연결하는 통로 역할을 했던 킬리드는 현재 호의 지휘 아래에서 빠르게 발전해나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A등급 만능 영웅인 엘 라스엘이 있었다.

덕분에 상업 도시로서 특성화 개발이 거의 완료된 디르시나나 현재 광업 도시로서 특성화가 진행 중인 해머스 만큼은 아니지만, 킬리드 역시 예전의 조그맣던 모습은 찾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자신의 영지들이 점점 발전해나가는 모습을 보던 도중 문득 하나의 생각이 호의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아!”

빠르게 손을 움직인 호는 자신이 보유하고 있는 퀘스트 창을 열었고, 그중 가장 위에 자리하고 있는 퀘스트의 이름을 확인했다. SS등급의 퀘스트 크리솔라이트의 꿈이었다.

“이것도 슬슬 해결해야 되는데…….”

크리솔라이트의 꿈은 SS등급이라는 난이도답게 총 9단계로 이루어진 퀘스트였다. 그리고 호는 현실적인 한계 및 계속된 사건으로 인해 퀘스트의 2단계까지 밖에 클리어 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3단계-크리솔라이트 부족의 B랭크 특수 병종인 크리솔라이트 궁수의 개발을 끝낸 후, 동료가 된 크리솔라이트 부족 엘프와 함께 퓨리온의 산맥에 살고 있는 그린 드래곤 레피스트 퓨리온을 찾아가면 됩니다.

단, 레피스트 퓨리온을 찾는 도중 드래곤의 시련 3단계를 거쳐야 하는데, 난이도가 제법 되는 만큼 B등급 마장기 두 대 이상의 전력으로 시험에 응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리고 퀘스트를 진행하기 위해서는 호감도를 높인 엘프 엘 샤난과 함께 퓨리온의 산맥에서 레피스트 퓨리온을 찾으면 되었다. 그와 함께 퓨리온의 분노라는 S등급 던전의 공략을 완료되면 성공적으로 퀘스트를 완료할 수 있었다.

“지금이라면…….”

퓨리온의 산맥은 바리안스의 대지 남쪽에 위치해 있었다. 리셴르나의 영토를 통과해야 하는 일이지만 영원한 친구도 적도 없는 법.

현재 호는 그녀와 돈독한 관계를 맺고 있었다. 영토를 가로지르는 것쯤은 어렵지 않게 허락해 줄 터였다. 겸사겸사 예전에 말했던 대로 이번 기회에 리셴르나와 한 번 만나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 같았다.

퓨리온의 분노라는 던전 공략이라는 드래곤의 시련도 어렵지 않게 해결할 수 있었다. 예전이라면 상상도 못했을 일이겠지만 호는 B등급 마장기 두 대 아니, 그 이상의 전력도 동원할 수 있었다.

“클리어 하자.”

거기까지 생각이 들자 호는 퀘스트를 진행해야겠고 마음을 먹었다. SS등급의 퀘스트인 크라솔라이트의 꿈. 이 퀘스트를 획득한지도 어언 몇 년이 다되어가고 있었다.

전이었다면 퀘스트를 클리어할 엄두도 못 냈겠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랐다. 주변 상황도 나쁘지 않았다. 그렇기에 지금 퀘스트를 클리어하지 않으면 후회가 될 것 같았다.

[크리솔라이트의 꿈은 한때 크리솔라이트의 부족을 수호했던 그린 드래곤을 얻기 위한 여정입니다. SS등급인 만큼 상당한 난이도를 자랑하지만 그에 따른 보상도 굉장합니다. 무려 드래곤을 동료로 맞이할 수 있기 때문이지요.]

호가 크리솔라이트 꿈 퀘스트를 클리어하기로 마음을 먹은 이유는 바로 드래곤이라는 존재 때문이었다.

‘관우는 내 여자’의 공략본에 따르면 이 퀘스트를 성공적으로 모두 클리어할 경우 드래곤을 동료로 삼을 수 있다고 나와 있었다.

그리고 드래곤은 리그너스 대륙전기의 등장하는 생명체중 최강의 전투력을 자랑하는 괴물들이었다.

능력이 가장 떨어진다는 개체만 해도 SS등급의 영웅이었고, 대부분이 SSS등급을 자랑하는 영웅들이었다. 가뜩이나 뛰어난 영웅이 부족한 자신에게는 큰 도움이 될 게 분명했다.

게다가 드래곤을 동료로 맞이하면 용족의 건물과 병사도 양성할 수 있었다. 비록 연구 기간이 오래 걸리고, 양성비용도 굉장히 비싼 축에 속하지만 용족의 병사들은 모든 부분에서 만능이라 불리는 병사들이었다.

“리셴르나의 영토를 가로지르겠다고? 미쳤어? 무슨 생각이야? 과연 그녀가 허락을 할 것 같아? 아니, 갑자기 퓨리온의 산맥에는 왜 가겠다는 거야?"

퓨리온 산맥으로 떠나겠다는 호의 말을 들은 멜리아 비쉬가 부정적으로 말했다. 아무리 리셴르나가 호에게 호의를 가지고 있어보여도 자신의 영토를 타국의 병사들이 가로지른다? 그녀가 허락할 리가 없었다.

“꼭 해야 할 일이 생겼거든요.”

“하아, 그래. 그렇다 쳐. 그런데 바리안스의 대지는 어떻게 통과하려고?”

“안 그래도 지금부터 밑밥을 깔 생각이에요.”

“밑밥?”

“네. 일단 리셴르나의 호감을 살 생각이에요. 바로 돈으로 말이죠.”

“어, 어어? 돈?”

뜻밖의 말에 멜리아 비쉬는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호의 말이 잘 이해가 되지를 않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멜리아는 가만히 호의 뒷이야기를 기다렸다.

그녀는 호가 아무 생각 없이 말을 꺼낼 인물이 아니라는 것은 잘 알고 있었다. 이제껏 보여준 결과가 그랬다.

그리고 호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아시다시피 바리안스의 대지는 굉장히 척박한 땅이에요.”

“맞아. 영토가 넓기는 해도 영토 중앙에 제덴 사막이 떡하니 자리 잡고 있으니 환경이 좋은 영지는 아니지. 너는 알지 모르겠지만, 리셴르나는 예전부터 붉은 핏빛의 대지에 있는 영토를 차지하지 위해 정말 엄청난 노력을 기울이곤 했어. 전부 이지역의 농경지 때문이었지.”

“자신의 휘하에 있는 수인들을 먹여 살릴 식량이 필요했겠죠.”

“맞아. 아무리 그녀가 십이멀 중 하나라고는 하지만 알잖아? 수인 왕국의 특수한 환경.”

“묘인들에 대한 견제가 있었나 보죠?”

“그래. 정확히 말하면 리셴르나에 대한 견제였지. 십이멀이라 불리는 유능한 인재잖아?”

식량 부족 정도는 왕국 내의 다른 부족들에게 지원을 받으면 어렵지 않게 해결할 수 있는 일일 지도 몰랐다. 하지만 부족 연합체에 가까운 수인 왕국의 특성상 다른 종족의 유능한 영웅은 환호보다는 질시를 받을 뿐이었다.

“아, 그래도 커티삭과 지크 로리를 점령하면서 어느 정도 농경지는 확보했으니 문제가 해결되었으려나?”

“아니죠. 식량은 그렇게 빠르게 생산되는 게 아닙니다.”

멜리아 비쉬의 말에 호는 손가락을 까닥였다.

바리안스의 대지에 있는 리셴르나 휘하의 도시만 해도 네 개. 거기서 커티삭과 지크 로리에 주둔한 병사들도 수십만에 다다랐다. 하물며 폐허가 된 커티삭과 아직 발전이 필요한 지크 로리의 식량 생산은 형편없는 수준에 불과했다.

게다가 리셴르나는 자신의 영토에서 생산되는 리스의 대부분을 병사들의 유지비용에 쓰고 있었다. 커티삭을 노리는 볼 붸르니체스 휘하의 마족과 호시탐탐 바리안스의 대지를 노리는 드워프들 때문이었다. 분명 식량이 부족할 터였다.

“먼저 그녀의 간지러운 부분을 긁어줄 생각입니다. 고양이과 동물들은 배나 목덜미를 긁어주면 굉장히 좋아하거든요.”

호가 자신의 앞머리를 살짝 넘기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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