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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그너스 대륙전기-183화 (183/522)

# 183

리그너스 대륙전기 183

“엘 라이린 님의 복수를 해야 합니다!”

“토갈론의 요새로 진격합시다!”

“엘 로즐린의 추종자를 물리칩시다!”

그렇게 호가 이끄는 군대가 아멘드마를 점령한지 이틀. 아멘드마에 거주하던 엘프들이 조금씩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토갈론의 요새의 진격이었다. 그런 엘프들의 움직임은 의아함을 지나쳐 충격적일 정도였다.

토갈론의 요새는 어디까지나 엘프들의 영토였다. 하지만 아멘드마의 전 영주이자 크리솔라이트 부족을 이끄는 수장이었던 엘 라이린의 처형은 아멘드마의 영지민들에게 큰 분노를 일으킨 모양이었다.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가는데?”

“우리가 토갈론의 요새를 점령할 수 있을까요?”

“점령을 하는 건 어렵지 않을 걸? 다만…….”

호가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점령 이후의 후폭풍을 우리가 감당할 수 있을까가 문제겠지.”

“토갈론의 요새는 충분히 수백만 대군도 막아낼 수 있는 요새예요. 붉은 핏빛의 대지에서 이백 년을 살면서 토갈론의 요새가 점령당했던 적은 단 두 번밖에 보지 못했어요.”

이어서 엘 샤난이 말했다. 토갈론의 요새를 점령만 할 수 있다면 엘프족의 대군이 밀려와도 충분히 막아낼 수 있을 거라는 뉘앙스였다.

‘그게 문제라는 거야.’

호의 시선이 지도로 향했다. 아멘드마의 북쪽에 위치한 토갈론의 요새는 S등급에 가까운 A등급 요새 도시로 엘프 왕국의 남부 관문이라 불리는 곳이었다. 그 만큼 방어도 두터웠다. 평시에도 최소 두 개 군단이 주둔하고 있는 곳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랐다. 연이은 전쟁으로 병력과 마장기 전력에 크나큰 피해를 입은 엘 로즐린이 인간 왕국에게 빼앗긴 자신의 영토를 되찾기 위해 토갈론의 요새를 지키고 있던 수비병들을 많이 빼냈기 때문이었다.

‘토갈론의 요새라…….’

두터운 요새 도시. 탐이 나는 먹잇감이었다. 거기에 토갈론 요새의 특산품은 무려 세계수의 잎이었다.

자신이 주력으로 운용하는 병사이자 S랭크 보병인 아벨리우스를 양성하는 데 필요한 특산품이었다. 한 마디로 아멘드마와 코르다 그리고 토갈론의 요새만 있다면 상단을 도움을 통한 특산품의 거래 없이도 아벨리우스를 양성할 수 있었다.

띵동.

-‘토갈론 요새 점령’ 퀘스트가 발생합니다.

[아멘드마의 엘프들은 한 마음 한 뜻으로 토갈론의 요새를 점령하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만약 토갈론의 요새를 점령하게 되면 아멘드마, 코르다에 거주하고 있는 엘프들의 만족도가 크게 상승합니다.]

좋은 보상을 주는 퀘스트까지 활성화되어 있었다.

그러나 무턱대고 공격을 감행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만약 자신이 토갈론의 요새를 점령하면 엘프 왕국이 가만히 있을 리 없었다. 하지만 호는 곧 고개를 저었다.

가뜩이나 병력이 빠진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토갈론의 요새를 그냥 두기에는 너무나도 아쉬웠다.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넌 사이가 왜 이리 많은지 모르겠네.”

호의 혼잣말에 회의장에서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 지 각자 고민을 하고 있던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로 향했다.

“방어 병력이 빠진 지금. 토갈론의 요새를 점령한다.”

그리고 이틀 뒤, 호의 군대가 토갈론의 요새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 * *

“흐냥? 소환자들이 토갈론의 요새를 점령했다고?”

“그렇습니다.”

“그 녀석들 엄청나잖아? 대체 얼마나 간이 크면 그런 행동을 할 수 있는 거지?!”

부하의 보고에 리셴르나의 탄성이 막사를 울렸다. 동그란 눈동자가 어찌할 바를 모르고 커져 있었다. 엘프 왕국의 장로 엘 로즐린이 이끄는 정예군을 상대로 병력과 마장기 전력이 열세인 상황에서도 백중세 아니, 오히려 로즐린을 패퇴시킬 정도의 전과를 올린 것만 해도 놀라울 정도였다.

하지만 그들은 거기에 만족하지 않고 오히려 엘프 왕국의 남부 거점. 토갈론의 요새를 점령해 버리기까지 했다.

“햐! 엘프의 눈앞에서 세계수를 태워버린 셈인데. 그 녀석들 어떻게 후폭풍을 감당하려고 하는 거지?”

그리고 이 소식이 엘프 왕국의 여왕 유스타시아의 귀에 들어간다면? 그녀가 어떻게 나올지는 뻔한 일이었다.

“그래도 소환자들의 마장기 전력이 꽤나 대단한 모양이던데요? 그 토갈로 요새를 공략에 들어간 지 사흘 만에 점령했다고 합니다.”

“브로리가 있으니까. 그럴 만하겠지.”

리셴르나가 고개를 주억였다. 그녀의 강력함은 리셴르나 본인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유스타시아의 친위군은 달라. 그녀는 엘프 왕국을 이끄는 여왕이라고. 게다가 이번 전쟁에서 소환자가 승리를 거둔 것에는 크리솔라이트 녀석들이 힘이 굉장히 컸어.”

고개를 끄덕이던 리셴르나가 재차 말했다.

“멍청한 엘프 장로의 아집이 아니었다면 이 전쟁은 소환자가 지는 전쟁이었다.”

말과 함께 리셴르나는 꼬장꼬장한 늙은 엘프를 떠올렸다. 장로라는 직함에 오랫동안 머물렀기 때문일까? 그녀는 자신의 종족만을 챙길 줄 알았지 아래를 내려다 볼 줄 몰랐다.

“결국 이번 전쟁은 소환자가 아주 가까스로 이긴 전쟁에 불과해. 만약 그렇게 끝이 났으면 엘프들은 소환자에 대한 관심을 거둬들였을 거야. 하지만 호라는 녀석은 토갈론의 요새를 점령해 버렸지. 이건 엘프 왕국 전체에 대한 도발이나 다름없는 행동이라고.”

리셴르나가 흥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엘프들이 어떻게 나올지 그리고 소환자가 어떤 식으로 그런 엘프들을 막아낼지 벌써부터 기대가 되고 있었다.

“아! 그리고 드려야 할 말이 또 하나 있습니다.”

“뭐지?”

리셴르나의 혀가 빠르게 입술을 훑었다. 그녀는 부하의 보고가 이번에도 재미있는 정보이기를 바랬다.

“아멘드마에서 라홀로프 상단을 통해 호표기 천 기를 보내왔습니다. 편지와 함께 말이죠.”

“어엉?”

리셴르나의 고개가 크게 기울어졌다. 아멘드마는 엘프들의 영토. 수인족의 자랑인 호표기가 있을 리 없었다.

하지만 이어서 리셴르나의 입에서 낮은 신음이 흘러나왔다. 충분히 짐작가는 바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편지를 읽어본 리셴르나는 한참이나 웃음을 터뜨렸다.

편지에는 의도했던 그렇지 않았던 군대를 움직여줘서 고맙다는 말과 함께 조만간 자신을 만나게 위해 지크 로리로 찾아가겠다는 호가 쓴 내용이 적혀 있었다.

“수인족의 체면이 있지 소환자에게 그냥 받고만 있을 수는 없는 노릇. 우리도 선물을 준비해야겠는데?”

“마침 괜찮은 선물이 있습니다. 이번 커티삭 공략전에서…….”

“아하! 그래. 그걸로 준비하자. 아마 좋아할지도 모르겠어.”

부관의 말에 리셴르나는 고개가 끄덕이고는 한참이나 키득거렸다.

* * *

순식간에 영토가 넓어져 버렸다. 림드 산맥뿐 아니라 세 개의 도시를 손에 넣은 결과물이었다.

덕분에 방어선도 넓어졌다. 원인과 경계를 맞대고 있는 에스트라다 뿐 아니라 토갈론의 요새에도 신경을 써야 했다. 게다가 코르다와 아멘드마도 그냥 둘 수 없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호의를 보이고 있는 리셴르나가 언제 뒤통수를 칠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일단은 리셴르나의 환심을 사기 위해 페이샬을 통해서 호표기들을 보내긴 했는데.”

실수했다는 생각도 조금 들고 있었다. 그 호표기가 발톱을 거꾸로 세워 자신을 공격할 지도 모르는 일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다행이 리셴르나는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다만, 볼 붸르니체스의 움직임을 경계하는지 커티삭에 제법 많은 수의 병력들을 배치했을 뿐이었다.

“후”

호는 현재 킬리드에 주둔하고 있었다. 디르시나라는 중심도시가 있기는 했지만, 디르시나에 머무르기엔 토갈론의 요새가 너무나도 멀었다.

“엘프들의 움직임은 어떻지?”

“멍멍. 아직까지는 변함이 없습니다만 토갈론의 요새와 경계를 맞대고 있는 엘프들의 영주들은 발등에 불이 떨어졌는지 부랴부랴 병사들과 용병을 모으는 중이라고 합니다.”

“공격할 생각은 전혀 없는데.”

호가 심드렁하게 말했다. 군소 엘프 영주의 영토를 차지하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하지만 득이 될 게 아무것도 없었다. 오히려 방어선만 늘어나는데다가 관리할 영웅만 부족할 뿐이었다.

“멍멍. 또한 엘 로즐린과 함께 또 다른 엘프 장로의 군단이 합류해 골든 크로우와 블루 스케일의 연합군을 몰아내고 있다고 합니다. 확실한 정보는 아니지만, 전쟁의 흐름이 인간들에게 불리하게 돌아가는 모양입니다. 멍.”

“그들이 시간 좀 많이 끌어줬으면 좋겠는데.”

“그게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멍멍.”

로우덴이 말했다. 현재 호의 곁에 있는 영웅 중 중요 영웅이라고 말할 수 있는 이는 그 밖에 없었다. 한시진과 브로리는 토갈론 요새에 주둔하고 있었고, 리아 캬베데는 에스트라다에, B등급 인간 영웅인 페이샬 티슈와 다크 엘프인 케이든 크로스 그리고 벨은 디르시나에 머무르고 있었다.

또한 컹컹이는 아멘드마에 주둔하고 있었고, 엘 샤난은 예전처럼 코르다의 영주로 영지 복구에 힘쓰고 있었다. 로우덴 또한 특성화 발전으로 인해 곧 킬리드를 떠날 예정이었다. 덕분에 킬리드에 남아 있을 영웅이라곤 호 혼자밖에 없었다.

“관리해야 될 영지는 늘었는데, 영웅의 수는 그대로니…….”

절로 한숨이 나왔다. 엘 샤난이 합류했다고는 하지만 그게 전부였다. 주점에서 새로운 영웅들을 등용하려고 노력은 하고 있지만, 별다른 성과가 없었다. 미봉책에 불과한 일이지만, 그래도 해결책은 있었다.

바로 킬리드의 지하 감옥에 붙잡혀 있는 엘프들을 이용한 방법이었다. 그리고 그중 한 명은 설득이 끝난 상황이었다. 바로 엘 트라인이라는 이름의 남성 엘프였다. 아쉽게도 엘 라스엘과 엘 릿츠는 오너 시스템을 이용해야 했다.

전쟁에서 패배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들은 엘프 왕국의 영웅으로 죽기를 바랐기 때문이었다.

“이번에 사용하면…….”

호는 자신의 손목에 새겨진 숫자를 바라보았다. 다행이 2 라는 숫자가 새겨져 있어 엘 라스엘과 릿츠 두 영웅 다 자신을 따르게 만들 수 있었다.

다만, 이번에 오너 시스템을 사용하고 나면 다시 횟수가 충전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필요할 것 같았다.

* * *

“엘 로즐린. 그녀의 편협함이 결국 문제를 불러일으켰군요.”

하늘하늘한 흰색의 옷을 입은 미모의 엘프가 말했다. 엘 유스타시아, 엘프 왕국의 여왕이었다.

“가까스로 인간들의 침입을 물리쳤다지만 입은 피해가 상당합니다. 영지민들의 피해도 커 이번 전쟁에서 입은 피해를 복구하려면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하루라도 빨리 그녀에게 지원을…….”

“지원? 징계를 내려야 하는 게 옳은 일 아닐까요? 이번 전쟁에서 엘 로즐린이 크리솔라이트 부족과 시스테인 부족을 상대로 행한 일 때문에 소문을 들은 소수의 부족들이 우리들을 경계하기 시작했습니다.”

“후우. 맞습니다. 게다가 크리솔라이트 부족이라면 남쪽의 마족들을 상대로 피를 흘리던 우리의 친구들 아닙니까? 그런 친우들이 세계수에 등을 돌리다니요? 이게 말이나 되는 일입니까?”

왕국의 장로 엘 카드위드의 말에 또 다른 육장로 중 하나인 엘 라이렉스가 반박하듯 말했다. 그러면서 낮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이건 우리 엘프 왕국의 분열을 불러온 행동입니다. 반드시 로즐린을 소환해 그 책임을 물어야 합니다.”

“로즐린이? 하! 지금 당신의 행동이야 말로 우리 왕국을 위험에 빠뜨리는 것 같군.”

엘 라이렉스의 말에 카드위드는 혀를 찼다. 지금 중요한 것은 그런 사소한 문제가 아니었다.

인간들의 침입이 언제 본격화 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엘프 왕국의 동부를 방비해야 하는 엘 로즐린의 군대가 큰 타격을 입었다.

그 전후 상황이야 어쨌든 당장 중요한 것은 엘프들의 영토를 지키는 일이었다. 그리고 그 적임자는 엘 로즐린 밖에 없었다. 그게 그의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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