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7
리그너스 대륙전기 177
“전황은 우리에게 굉장히 불리한 상황이다.”
엑스칼리버의 마력 통신을 통해 호의 목소리가 이번 전쟁에 출전한 다른 마장기사들에게 전달되었다. 한시진, 브로리, 컹컹이를 비롯한 림드 산맥의 정예들이 모두 나선 요격이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아벨리우스와 켄타우로스 전사에서 승급한 호표기들 그리고 정예 실리스까지. 다들 호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아시다시피 엘프들의 군단이 점점 가까워지고 있다. 전투는 피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지.”
모두의 고개가 끄덕여졌다. 이미 엘 코숏이 이끄는 엘프 군단을 성공적으로 막아낸 터라 병사들의 사기는 하늘 높이 치솟아 있었다. 다만, 이번에는 엘프들의 장로 엘 로즐린이 직접 출격했다.
엘 코숏과의 전투 때보다도 훨씬 힘든 시간이 자신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세 개 군단으로 이루어진 엘 로즐린의 군대는 킬리드에 가까워질수록 군단끼리의 거리가 점점 벌어지고 있었다. 그 이유는 선봉을 맡은 로열 센티널 엘 라스엘 때문이었다.
그녀는 킬리드의 성문을 열고 병사들과 함께 출진했다는 호를 상대로 승리를 거두고 전공을 독차지하기를 원했다.
하지만 그 이유를 모르는 호는 엘프의 선봉대가 다른 부대들과 점점 거리를 벌리고 있다는 사실에 쾌재를 부르고는 병사들에게 출진 명령을 내렸다.
“현재 엘 라스엘의 군단이 하루 나절까지 접근해 있다고 한다. 뭐가 그리 급한지 빠르게 킬리드를 향해 오고 있다고 하더군. 우리에게 기회가 생긴 거지. 다들 엘프 왕국의 로열 센티널 엘 코숏와의 전투를 떠올려라.”
전력의 열세가 컸음에도 불구하고 승리한 전투였다. 더군다나 그 전투에서 아군은 전투에 나선 상대 마장기를 한 대를 제외하곤 모조리 파괴하는 대승을 거뒀었다.
“그때와 마찬가지로 우리는 이번에도 승리할 것이다!”
호는 자신의 목소리에 힘을 넣어 말했다. 그리고 호의 말이 끝나는 순간 모두의 눈이 번뜩였다. 다들 전장의 분위기에 흠뻑 취하고 있었다. 잠시 후, 데스 사이더를 시작으로 삼 만의 병사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어떤 식으로 공격할 생각이지?”
“정석대로 갈 생각이다.”
“정석대로?”
마력 통신에서 들려오는 브로리의 목소리에 호는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이 가상현실게임 리그너스 대륙전기에서 사용하던 전술을 떠올렸다. 전체적으로 능력치가 뛰어난 마장기사들과 병사들을 전면에 배치 적들의 중앙을 공격하며 좌우 측면으로 기병을 투입하는 방법이었다.
‘호표기를 이용해 십만에 해당하는 병사를 반으로 갈라버린 후 격파한다.’
켄타우로스 전사에서 한 단계 랭크 업을 한 호표기의 돌파력이라면 충분히 가능했다.
“정석적인 방법이라면……. 중앙 공격 후 좌우 측면으로 적들을 분리시키려는 생각이세요?”
이어서 한시진의 목소리가 호의 귀로 들려왔다. 군사 훈련을 받은 인재답게 그녀는 어렵지 않게 호의 의도를 알아차렸다.
“맞아.”
“……아군이 버틸 수 있을까요?”
물론, 이 전술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조건을 만족시켜야 했다. 그녀의 말대로 먼저 압도적인 전력을 지닌 엘프들의 중앙을 상대로 아군이 버틸 수 있어야만 했다.
“시진이 너와 브로리, 컹컹이, 리아 캬베데를 포함해 정예 전력은 모두 중앙으로 투입시킬 거야.”
“그러면 측면 쪽 마장기는 어떻게 하실 생각이에요?”
“측면 공격은 돌파력이 생명이니 굳이 마장기를 투입시키지 않을 거야. 적들의 방어를 뚫는 데는 유용하겠지만, 마장기의 투입은 오히려 호표기의 돌파력을 죽이는 수가 있어.”
드워르기니와 같이 스피드가 월등한 마장기라면 모를까 현재 아군의 마장기는 다들 그렇게까지 빠른 녀석들이 아니었다. 설령 있다 해도 측면으로 투입시키기에는 아군 마장기의 전력이 부족했다.
“다만, 엑스칼리버와 골드이글을 따로 빼내 원거리 포격으로 호표기의 돌파를 지원할 생각이야.”
호는 그렇게 대답하며 생각에 잠겼다.
‘생각보다 우리의 마장기 전력이 괜찮단 말이야…….’
엘프 왕국의 장로 엘 로즐린의 휘하 군단장 중 하나인 엘 라스엘이 보유한 마장기는 두 개 편대. 총 여덟 기였다. 그에 반해 이번 전투에서 호가 출진시킨 마장기는 A등급 마장기인 데스 사이더를 포함해 B등급 마장기가 여섯 기, C등급 마장기 네 기로 총 열한 기나 되었다.
상대보다 무려 세 기가 더 많을 뿐 아니라 마장기사의 실력도 비교가 되지 않았다. 일단 아군에게는 한시진과 브로리라는 걸출한 실력자가 있었다.
“게다가 상대의 정면으로 마장기 전력을 모조리 배치하는 이유는 선봉인 엘 라스엘의 마장기 전력이 생각보다 형편없어 보이거든. 그들의 마장기 전력은 총 두 개 편대에 불과해. 그리고 우리들을 그 마장기들을 정면에서 모조리 부숴버릴 거야.”
“하하하. 언제부터 우리가 마장기 편대의 전력을 형편없다고 말 할 정도였지?”
장난기가 담긴 브로리의 말에 마력 통신에서 다양한 웃음들이 터져 나왔다. 그만큼 자신들의 마장기 전력이 크게 상승했다는 것에 대한 감탄이었다.
“바로 지금부터지. 그리고 앞으로는 더더욱 그럴 거야.”
호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래야만 했다. 이번 전투 아니, 앞으로 있을 전쟁에서 계속해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전장에서 절대적으로 승리를 안겨다 줄 수 있는 자신만의 마장기 전력이 필요했다.
* * *
호의 병사들이 출진했다는 소식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엘 라스엘의 군대는 킬리드를 향한 진군을 늦추지 않았다. 이는 군단장 엘 라스엘의 자신감 때문이었다.
“한 영토의 패자라고는 하지만 군대를 이끄는 자는 소환자에 불과하다!”
소환자가 누구인가? 오크조차도 제대로 상대하지 못하는 약한 정신력과 육체의 소유자들이었다. 심지어 그들은 어린 엘프보다도 못한 의지를 지니고 있었다. 엘프들의 도움이 없으면 거친 이 세계에서 조금이라도 살아갈 수 없는 존재였다.
그런 소환자가 군대를 이끌다니? 아무리 한 지역의 패자라고는 하지만 우습게 보이는 게 당연했다. 그러나 소문에 의하면 호는 이제까지 단 한 번도 전쟁에서 패배한 적이 없는 전략, 전술의 천재라는 이야기도 있었다.
‘허풍이겠지.’
하지만 산전수전을 다 겪은 베테랑 군인인 엘 라스엘은 당연히 호에 대한 그런 소문을 믿지 않았다.
심지어 그녀는 그런 소환자에게 패배한 엘 코숏을 한심스럽게 생각하고 있었다. 다만, 조심해야 할 인물들은 있었다. 마족과의 전쟁에서 함께했던 두 마장기사였다. 인간 여성과 수인 영웅이었는데 그 실력이 범상치 않았다.
‘호라는 녀석이 이제까지 전쟁에서 승리를 거둔 이유는 그 둘의 활약 때문일 거다.’
그만큼 그 둘이 마장기를 다루는 실력은 엘 라스엘이 감탄할 정도로 뛰어났다. 하지만 전쟁은 그 둘만으로만 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의외인 것은 호라는 인물이 보유한 마장기가 제법 많다는 점이었다. 그중 반수가 인간족의 마장기인 것을 생각하면 아마 인간들이 이번 전쟁에 끼어든 것으로 보였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빠르게 림드 산맥을 손에 넣어야 한다.”
만약 정말로 인간 왕국이 이번 전쟁에 뛰어들었다면 자신들은 사면초가에 빠지는 상황이었다. 마족과 수인 그리고 인간까지 무려 세 종족을 동시에 상대해야만 했다. 그것을 피하기 위해서는 하루라도 빨리 림드 산맥을 점령하고 전쟁을 종식시켜야만 했다.
“진군이 너무 빠른 것 같습니다. 반나절 정도면 소환자의 군대가 만날 수 있을 것 같습니다만…….”
엘 라스엘의 부관이자 B등급의 엘프 영웅이 말했다. 속전속결로 상대를 제압하려는 것은 좋았지만, 중군과 후군과의 거리가 점점 멀어지고 있었다.
“저희들끼리 단독으로 호의 군대와 부딪치는 것은 좋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적어도 중군의 장로님과 함께해 전력을 높인 후 소환자를 처리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아니, 그럴 필요까지는 없다.”
부관의 조언에 엘 라스엘은 피식 비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녀는 자신이 지휘하는 군단만으로도 소환자의 병력쯤은 가볍게 물리칠 자신이 있었다.
“이대로 진군한다. 적이 나타나면 그 적을 분쇄하고 킬리드를 점령한다. 다만, 적들의 마장기 전력이 제법 된다고 하더군. 칼니컬로 하여금 대마장병의 운용을 맡긴다.”
“알겠습니다.”
군단장 엘 라스엘의 지엄한 명령에 부관은 고개를 숙였다. 그녀는 수많은 전쟁과 전투를 누볐던 로열 센티널이었다. 조금 걱정스럽기는 했지만 이 군단에서 엘 라스엘의 판단은 절대적이었다.
그렇게 반나절, 양군의 모습이 서로의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서로가 적이라는 것을 인식하고 있는 상황에서 인사치레 따위는 필요 없었다. 그리고 선제공격은 호가 탑승한 엑스칼리버의 MLC 였다.
콰아아앙!
푸른색의 마나가 요동치며 거대한 크레이터를 만들어내었다. 십만이라는 병사들이 워낙 콩나물시루처럼 모여 있던 터라 단 한 번의 포격으로 대략 일, 이백의 엘프가 먼지로 변해 사라졌다.
“이놈들! 가만두지 않겠다!”
멀리서 분노에 찬 엘프가 거칠게 포효했다. 마장기 엘 스카우터의 마력 통신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였다.
“바본가? 어차피 싸울 거 왜 화를 내고 그래? 공격을 안 하면 가만 둘 생각은 있고?”
투덜거림과 함께 호는 상대 마장기사의 정보를 살펴보았다. 마장기사의 이름은 엘 라스엘. 제법 능력치가 괜찮은 A등급 영웅이었다. 게다가 이 군대를 이끄는 군단장이기도 했다.
10만이나 되는 군단을 이끌기에는 능력이 조금 부족하지 않은가 싶은 생각도 들었지만, 전체적으로는 떨어지는 게 하나도 없는 만능 영웅이었다. 가능하다면 손에 넣고 싶은 영웅이었다.
“적들이 움직이고 있어요!”
“우리도 가자.”
통신구를 통해 한시진의 목소리가 들려왔고, 곧바로 호 역시 명령을 내렸다. 적장의 처우는 나중에 생각할 일이었다. 지금 당장 중요한 것은 앞으로 벌어진 이 전투를 승리로 장식하는 일이었다.
“데스 사이더! 출진합니다!”
A등급 마장기 데스 사이더가 자신의 낫을 크게 휘두르며 앞으로 달려 나가기 시작했다. 그 뒤를 바짝 황금색의 웨어 타이거와 키마라이 그리고 리아 캬베데의 릴라릴라가 따르기 시작했다.
“출진해라!”
엘 라스엘의 명령에 따라 엘프들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한 눈에 다 들어오지 않을 정도의 많은 수의 엘븐 템플러들이 자신들의 방패를 앞으로 세우며 천천히 진군하기 시작했다. 그 압박감은 직접 느끼지 않는 이상은 말로 설명되지 않을 정도로 무거웠다.
투웅! 퉁!
그런 엘븐 템플러들을 향해 호의 뒤쪽에서 대기하고 있던 골드 이글들이 자신들의 마력 화살을 발사했다. 하지만 뒤쪽에 대기하고 있던 엘프의 마법사들이 방어마법을 시전하기 시작했고, 반구형의 보호막과 부딪친 골드이글의 공격은 엘븐 템플러들에게 별다른 피해를 주지 못하고 무력화되었다.
“칫!”
그 모습을 보며 호는 혀를 찼다. 높은 랭크의 마법병이 마장기의 마력포 공격을 막아내는데 도움이 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 정석적인 광경이었다. 그러한 이유 때문에 현재 디르시나에서도 빗치 위치의 개발이 한창 진행 중이었다.
‘빨리 개발이 되었으면 좋겠다만!’
지금 상황에서는 디르시나에 있는 연구원들이 열심히 분발해주는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이번 전쟁에서 빗치 위치를 전장에 투입시키는 것은 불가능했다. 시간이 부족했다.
어쨌든 골드 이글의 공격이 엘프 마법사들의 주문에 의해 무산되기는 했지만 호는 딱히 그 모습에 대해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다. 골드 이글이 C등급 마장기이기 때문이었다. 병사들의 랭크에 비해 마장기는 등급 하나하나의 차이가 굉장히 컸다. 골드 이글의 공격은 막아냈어도, 완벽하게 막아낸 것이 아닌 이상 엑스칼리버의 MLC 는 확실하게 막아내지 못할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