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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그너스 대륙전기-171화 (171/522)

# 171

리그너스 대륙전기 171

“엘프들이 림드 산맥을 노린다고?”

공기 중으로 말라붙은 금속 냄새가 섞인 천막 내부의 가장 높은 장소에서 여성 묘인 하나가 황금색의 눈동자를 번뜩였다. 바리안스 대지의 패자이자 수인족의 상급대장인 S등급 영웅 리셴르나였다.

“네, 그렇습니다. 다시 전쟁이 터진 것 같습니다.”

“마족들은? 엘프들이 커티삭을 점령했다는 소식은 들었지만 볼 붸르니체스가 그리 쉽게 물러날 위인은 아닐 텐데?”

“마장기전에서의 패배가 굉장히 컸던 모양입니다.”

부하의 보고에 리셴르나가 킥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심연의 미노타우르스도 이제 한 물 간 모양이군.”

“나이도 제법 되지 않습니까? 심연의 미노타우르스가 명성을 떨치던 시절에 저는 태어나지도 않았습니다.”

“벌써 그렇게 되었나? 그래서 전쟁의 경과는?”

리셴르나가 가볍게 대꾸하고는 되물었다. 그녀가 원하는 것은 전투의 향방이었다.

바로 자신이 끼어들 수 있는 타이밍을 노리는 것이다. 그리고 마족과 엘프의 군대가 부딪치는 동안 그녀는 조용히 군사들을 지크 로리에 결집시켰다. 상황을 추이를 보고 단숨에 전쟁에 난입하려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팽팽하리라 생각했던 예상과는 달리 엘프의 장로라는 엘 로즐린이 상급 마족인 볼 붸르니체스를 상대로 승리를 거뒀다. 부하의 보고대로 마장기전에서의 압도적인 패배가 결정적으로 작용했다.

“첩보에 따르면 선제공격은 림드 산맥의 소환자들이 먼저 시작한 모양입니다.”

“뭐, 그들로서는 어찌할 방도가 없었겠지.”

사막의 꾀주머니란 별명에 걸맞게 리셴르나의 머릿속으로 사건의 경과가 순차적으로 그리고 있었다. 커티삭을 점령한 엘프 군대가 코르다에 모여 킬리드를 압박하면, 그 압박에 못이긴 소환자들이 먼저 움직인다.

그리고 명분을 얻은 엘 로즐린은 그대로 군사를 일으켜 킬리드를 공격한다. 전형적인 패턴이었다. 하지만 소환자들은 만만치 않은 녀석들이었다. 특히나 림드 산맥의 녀석들은 더더욱 그랬다. 그들은 도시 하나를 송두리째 날리며 자신이 보낸 선봉대를 모조리 전멸시킨 과감함과 잔인함을 보이는 녀석들이었다.

“그래서 결과는?”

리셴르나가 물었다.

“소환자들의 능력이 제법 뛰어난 모양인지 엘프들의 마정석 수송대 여섯 부대가 전멸했다고 합니다. 덕분에 그들의 마장기 군단이 코르다에 발이 묶인 모양입니다.”

“하?”

부하의 보고에 리셴르나가 짐짓 놀란 표정을 지었다. 아니, 그녀는 정말로 놀랐다. 마장기의 동력원인 마정석은 전쟁 시에는 1급 전략물자로 간주, 철통같은 호위를 받게 마련이었다. 그런데 한 부대도 아닌 무려 여섯 부대가 전멸했다는 보고였다.

“제법이잖아? 소환자들.”

리셴르나가 감탄섞인 목소리로 외치듯 말했다. 정말 전쟁을 치르는 능력만큼은 발군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해 보니 그들은 원인들을 상대로도 연승을 거뒀고, 쿠퍼쏘우를 박살내는 데 일등공신 역할을 했었던 브로리를 상대로도 승리를 거뒀었다.

“그렇게 마정석을 탈취 및 파괴해 엘프의 마장기 군단을 무력화시킨 소환자들은 한시진이라는 여인을 대장으로 삼아 코르다를 공격, 상당한 피해를 주었다고 합니다. 첩자의 보고에 의하면 코르다에 주둔하고 있던 마장기 중 여섯 기 이상이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파괴되었다고 합니다.”

“캬앙. 그렇단 말이지?”

리셴르나는 자신이 직접 전투를 치르는 것도 아닌데 맥박이 빠르게 뛰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와 함께 불현 듯 어떤 생각이 그녀를 스치고 지나갔다.

“제법 엘프들의 성질을 건드리긴 했는데 그 녀석들이 엘 로즐린을 막을 수 있을까? 아마 못 막겠지? 흐음. 못 막을 거야. 아무래도 전력의 차이라는 건 무시할 수 없으니까.”

그렇게 혼잣말을 하는 리셴르나의 목소리에는 친근감과 부드러운 기색이 담겨 있었다.

* * *

블루 스케일과 손을 잡고 스퀴드 수운다 휘하에 있던 마장기 부대를 넘겨받은 호는 오늘 새벽에야 킬리드에 도착할 수 있었다. 아벨리우스를 포함한 병력과 마장기 부대의 이동이라 그런지 속도를 냈다고는 하지만 평소보다도 이틀의 시간이 더 걸렸다.

엘프의 공격이 임박했다는 것을 알리는 것인지 킬리드는 분위기는 흉흉함 그 자체였다. 아니, 이미 엘프들의 공격이 있었던 것인지 성벽 군데군데 그을음이 생겨나 있는 게 호의 눈에 들어오고 있었다.

“와우.”

그리고 한시진의 보고를 받은 호는 그녀를 보며 경악에 가까운 표정을 지었다.

‘여섯 부대의 마정석 수송대를 상대로 기습 성공, 그리고 코르다를 공격해 여덟 기의 마장기 파괴.’

그뿐만이 아니었다. 한시진은 킬리드를 공격해 온 엘프 군단을 상대로 이미 한 번의 승리를 거두기까지 했다. 성벽의 그을음이 바로 그 흔적들이었다.

‘대단하잖아?!’

절로 감탄이 터져 나왔다. 정말로 한시진의 능력은 자신의 상상 이상이었다. A등급 클래스를 지녔지만, 그녀는 자신의 세부 능력을 뛰어넘는 활약을 이번 전투에서 보여주고 있었다. 역시 세부 능력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경험이라는 것은 결코 무시할 수 없었다.

“제대로 한 방 먹였는데?”

“엘프들이 준비를 갖추기 전 우리가 먼저 공격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고개를 끄덕거리는 호의 모습에 한시진이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단순히 우리를 경계하는 것 이상으로 많은 병력이 코르다에 모였어요. 마장기만 해도 스무 기가 넘는 것으로 파악됐고요. 만약 그들이 한 번에 들이닥친다면 우리들의 병력으로는 막아내기가 어려울 거라 생각했어요.”

“그래서 마장기를 무력화시킬 수 있는 마정석 수송대를 노린 거군. 하지만 마정석 수송대를 기습하는 것도 쉽지 않았을 텐데?”

한시진의 시선이 어느 한 쪽으로 향했다. 지금 이 자리에서 가장 어리다고 생각할 수 있는 금발의 소녀가 의자에 앉아 땅에 닫지 않는 자신의 다리를 흔들고 있었다.

“브로리 님이 도움을 주셨어요.”

“음.”

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우버다인이라는 신비로운 아이템을 지니고 있는 그녀라면 충분히 엘프들의 눈에 들키지 않고 마장기를 옮길 수 있었다.

거기에 그녀의 전투력을 생각하면 엘프들이 마정석 수송대에 한 두기의 마장기를 배치했다 하더라도 충분히 파괴할 수 있었을 터였다.

그렇다 하더라도 한두 부대가 아니라 여섯 부대의 마정석 수송대를 박살 낸 것은 대단한 성과였다. 그뿐인가? 코르다를 향한 과감한 선제공격으로 엘프들의 마장기를 파괴하기까지 했다.

‘코르다라…….’

그리고 코르다의 영주 엘 샤난을 떠올린 호는 쓰게 웃었다. 자신에 대해 호감도 퀘스트가 완료된 그녀가 지금 어떤 상황에 있으며 또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지 심히 궁금했다.

“그런데 못 보던 마장기들이 있던데…….”

“아, 카틀라스 군항의 마장기들이야.”

“카틀라스 군항?”

고개를 갸웃하던 한시진이 곧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거기는 이 세계 인간들의 국가가 지배하는 도시 아닌가요? 몇 번 그쪽으로 향하는 상단을 보기는 했는데.”

“맞아. 블루 스케일이라 불리는 인간들의 팔 왕국 중 하나에 속해 있는 국가의 도시지.”

“저희하고는 별로 접점이 없던 걸로 알고 있는데요.”

틀린 말은 아니었기에 호는 고개를 끄덕이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딴 짓을 하고 있던 브로리도 기다란 탁자에 얼굴을 눕히고 혀를 내밀던 컹컹이도 킬리드의 전 영주였던 엘 아르윈도 다들 그 영문이 궁금한지 호를 바라보고 있었다.

“블루 스케일의 제의를 받았다. 자신들과 함께 하자고 하더군. 그 제의의 대가로 여덟 대로 이루어진 마장기 편대를 받을 수 있었지. 게다가…….”

말 꼬리를 흐린 호는 잠시 시간과 날짜를 계산하고는 눈을 감았다 떴다.

“아마 지금쯤이면 블루 스케일과 골든 크로우와 경계를 맞대고 있는 엘프 영토가 인간들의 군대에 공격당하고 있을 거다.”

“블루 스케일과 경계를 맞대고 있는 곳이라면……. 그렇군! 엘 로즐린의 지배하에 있는 영토야.”

브로리가 말했다. 그리고 한시진이 굳건한 눈길로 호를 바라보며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렇다면 이 세계의 인간들과 함께해야 하는 건가요?

“아마도……. 그렇게 되겠지.”

“오빠가 선택했다면 전 따르겠어요. 하지만 이 세계의 인간들은 우리가 믿을 수 있는 사람들인가요?”

호의 입에서 나지막한 신음성이 흘러 나왔다. 그녀의 말에는 많은 의미가 내포되어 있었다. 그중 하나가 바로 저 우리라는 단어였다. 호는 저 우리라는 단어에 들어가는 사람이 단 네 명에 불과하다는 것을 충분히 알아 챌 수 있었다.

이미 자신들은 마족에게 배신당한 전적이 있었다. 그 이유야 어찌되었든 볼 붸르니체는 소환자를 제거하려 했고, 림드 산맥을 차지하려 했다. 그뿐인가? 함께 손을 잡고 마족을 상대로 전투를 벌였던 엘프들도 이제는 그 창칼을 림드 산맥으로 겨누고 있었다.

“그건 알 수 없어. 하지만 확실한 것은 지금 당장은 그들이 우리들에게 큰 도움이 된다는 거야. 그리고 나는 누구의 손을 빌려서라도 우리들의 터전인 림드 산맥을 지키고 싶어.”

한시진의 눈동자에서 시선을 떼지 않으며 호가 답했다. 이 세계는 세이브와 로드가 되지 않는 세상. 호는 무슨 일이 있어도 살아남을 생각이었다.

* * *

“영주님. 엘프들이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거대한 덩치가 호에게 말했다. 오우거 칼타스였다. C등급 마족 영웅인 그는 킬리드에서 영지 건물 공사에 관한 일을 맡고 있었다.

“그런가? 사흘 만에 재차 공격이라. 예상보다 빠르네.”

한시진의 말에 의하면 코르다의 엘프 군단은 사흘 전 킬리드를 공격했다고 했다. 마장기까지 동원된 공격이었지만 킬리드의 병사들은 그런 엘프 군단을 막아내며 승리를 거둘 수 있었고, 패배한 엘프 군단은 코르다로 후퇴했다고 했다.

“성격 급한 엘프가 지휘관으로 있는 건가? 일단은 한시진과 브로리에게 출진 준비를 하라고 말해둬.”

호는 칼타스에게 명령을 하달했고, 명령을 받은 오우거는 쿵쿵거리는 발걸음과 함께 빠르게 밖으로 향했다. 그런 오우거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호는 발코니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혹시나 하는 타 종족의 침략을 염두에 둔 덕분에 킬리드의 성벽은 제법 두터운 방어를 자랑하고 있었다. 마장기의 마력포를 막아낼 수 있는 마나 보호막은 물론이고, 투석 공격에도 버틸 수 있을 정도로 두껍게 성벽을 세웠다.

심지어 킬리드에는 수인들과 세 번이나 전쟁을 치렀던 에스트라다보다도 많은 방어시설이 건설되어 있었다.

‘숫자의 차이만 따지면 우리가 열세겠지만…….’

호는 이번 전투가 엘프들을 지휘하는 지휘관의 능력에 따라 그 힘겨움이 달라질 거라고 생각했다. 전쟁이 아니라 전투였다. 아무리 마장기의 전력이 늘었다고는 하지만 엘프 왕국의 장로인 엘 로즐린을 상대로 승리를 거두는 것을 불가능했다.

결국 블루 스케일과 골든 크로우가 어떻게 움직이느냐에 따라 자신들의 처지도 결정이 될 가능성이 컸다. 엘 로즐린의 시선과 붉은 핏빛의 대지에 모인 전력이 인간 왕국들에게로 쏠릴 때까지 버티기만 하면 자신 아니 우리들의 승리였다.

호의 눈동자가 빠르게 주변을 훑었다. S랭크 보병인 아벨리우스가 있는 만큼 병사들의 질은 비슷하거나 조금 우위였고, 마장기 전은 한시진과 브로리가 있는 이상 큰 숫자차이가 아니면 충분히 해 볼만 했다. 게다가 기습작전으로 마정석의 공급에도 피해도 줬으니 재차 보급이 이뤄지기 전까지는 엘프들도 많은 수의 마장기를 한 번에 운용할 수 없을 터였다.

어쨌든 적어도 군단장급의 영웅이라면 최소한 S등급 혹은 스킬이나 능력이 뛰어난 A등급 영웅이 이번 킬리드 공성전에서 모습을 드러낼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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