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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그너스 대륙전기-163화 (163/522)

# 163

리그너스 대륙전기 163

“크아아아아!”

요란한 소리가 집무실에서 울려 퍼졌다. 소리의 주인공은 볼 붸르니체스였다. 그는 답답함에 울화통이 터져 죽을 지경이었다. 불과 며칠 전, 소환자 윤호를 커티삭에 불러들였을 때까지만 하더라도 모든 것이 잘 맞아떨어지는 것처럼 보였다.

호라는 녀석의 실력은 인정하지만 그는 쉐르난비체 폐하에게 완벽하게 충성을 바치는 온전한 마족이 아니었다. 그렇기에 붸르니체스는 이번 기회에 소환자의 힘을 줄이고 자신의 부하를 림드산맥으로 보내 충성스러운 마족의 세력을 넓히려고 계획하고 있었다.

“고블린보다 못한 노옴!”

하지만 하루도 채 지나지 않아 호의 배신이 이어졌고, 그에 따른 마장기의 난동으로 커티삭은 큰 타격을 입었다.

주둔하고 있던 병사들도 희생도 엄청났다. A, B랭크에 해당하는 고랭크 병사들이었지만, 직접 마장기를 당해내기에는 무리였다.

그뿐이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이 정도였으면 볼 붸르니체스가 크게 분노할 필요도 없었다. 하지만 마장기의 난동으로 인해 보관고에 있던 아군의 마장기들이 대부분 파괴되었고, 심지어 그의 애기이자 A등급 마장기인 데스 사이더를 소환자 녀석에게 탈취 당하기까지 했다.

그렇다고 배신자를 잡아들인 것도 아니었다. 현재 추격에 나선 자신의 군대는 아멘드마의 경계에서 엘프 군대의 완강한 저항에 막혀 진군조차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에 반해 호와 그 녀석의 부하는 이미 아멘드마를 지나쳤다고 했다.

“빌어먹을 엘프놈들!”

나자르 T 스테르와 쿠드릭이 이끄는 병사들이 림드 산맥으로 향하는 길을 뚫기 위해 아멘드마를 공격했지만 엘 아스린이 이끄는 엘프 군단은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하물며 방어전 및 수성에서는 탁월한 능력을 보이는 게 엘프 왕국의 병사들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커티삭에는 마족의 세 개 군단이 주둔하고 있었다. 거기에 커티삭에 보관되어 있던 마장기 전력이라면 엘 아스린의 군단과 그녀의 엘프들 쯤은 단숨에 쓸어버릴 수 있었다.

원래대로라면 그랬을 터였다. 하지만 호라는 녀석이 데스 사이더를 탈취한 이후 저질러 놓은 피해가 막대했다.

보관되어 있던 B등급 마장기 대부분이 완전히 파괴되었고, C등급 마장기들 역시 대다수가 고철이 되거나 오랜 시간 수리를 해야 했다. 그로 인해 현재 가동이 가능한 마장기는 기즈린 세 대와 쿠슬뱅 한 대 그리고 키마라이 한 대 밖에 없었다.

“빠르게 엘프 녀석들을 짓밟고 림드 산맥으로 진군한다!”

그렇기 때문에 볼 붸르니체스는 모든 전력을 동원해 속도전으로 아멘드마와 코르다를 점령. 그대로 림드 산맥으로 쳐들어가려는 계획을 세웠었다.

하지만 엘 아스린은 호락호락한 군단장이 아니었다. 그런 볼 붸르니체스의 의도를 알아챈 그녀는 곧바로 토갈론 요새에 전령을 보냈다. 그리고 그녀의 요청에 따라 토갈론 요새에 주둔하고 있던 엘프 왕국의 마장기 편대가 아멘드마로 전진 배치되었다.

그와 더불어 엘프 왕국의 남동쪽 방어를 책임지고 있는 장로 엘 로즐린이 명령 하에 사단 급의 군대와 마장기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크윽!”

이대로라면 엘프 왕국의 영토를 점령하고 림드 산맥에 진입하는 순간 전면전이 벌어질 것이라는 건 불을 보듯 뻔 했다. 거기에 수인 왕국의 리셴르나 또한 지금의 상황에서 어떻게든 이득을 취하려는 듯 지크 로리에 마장기가 하나둘씩 배치되고 있다는 보고도 볼 붸르니체스에게 들어오고 있었다.

“네 이놈. 윤호!”

뿌득뿌득 이빨을 가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미노타우르스의 탄탄한 근육에서 솟아나온 실핏줄이 터질 듯 부풀기 시작했다. 볼 붸르니체스는 당장이라도 윤호라는 소환자의 목을 부러뜨리고 싶었다. 하지만 그러기에 너무나도 많은 대가를 치러야만 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그 녀석이 커티삭에 도착하는 순간 죽여 버리는 건데.”

볼 붸르니체스가 씁쓸하게 말했다. 하지만 후회하기에는 이미 늦은 일이었다.

* * *

마족의 추격을 피해 아멘드마를 통과한 호는 코르다에서 만난 엘 샤난의 도움을 받아 어렵지 않게 자신의 영토인 킬리드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리고 킬리드에서 이틀 가량 휴식을 취한 호는 킬리드의 영주 엘 아르윈에게 성벽의 보강 및 대마장병 양성 명령을 내리고는 브로리와 케이든 크로스 그리고 벨을 데리고 디르시나로 향했다.

아쉽게도 부상으로 신음하는 컹컹이는 어쩔 수 없이 킬리드에서 치료를 받아야 했다.

“오빠!”

“호니임! 멍멍!”그렇게 해머스를 통과하고 디르시나가 가까워질 무렵 호는 멀리서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한시진과 로우덴이었다. 곧 자신이 도착한다는 말에 때맞춰 마중을 나온 것 같았다. 커티삭에서 벌어졌던 사건이 이미 퍼진 것일까? 꽤나 많은 영지민들이 성 밖으로 나와 있었다.

“다친 곳은 없어요?!”

“나는 괜찮아. 하지만 컹컹이가 중상을 입어서 킬리드에서 요양을 하고 있어.”

“멍멍. 무사하셔서 정말로 다행입니다. 멍. 혹시나 했는데 정말로 볼 붸르니체스가 그런 결심을 했을 줄이야. 그런데…….”

로우덴이 말을 채 마치지 못하고 호가 탑승한 거대한 마장기를 위아래로 쳐다보았다.

“그 마장기는?”

“알다시피 마족의 A등급 마장기인 데스 사이더다. 커티삭에서 주워 왔지.”

로우덴을 향해 호는 자랑스럽게 말했다. 정말 비싼 전리품이었다. 자신이 목숨을 걸었던 대가로는 충분할 정도였다. 그렇게 호가 탑승한 데스 사이더를 비롯해 세 마장기가 디르시나의 성 내부로 들어섰다.

대로를 따라 마장기들이 움직일 때마다 모세의 기적이 재림한 것처럼, 영지민들이 좌우로 갈라지기 시작했다. 요 몇 주 사이 디르시나의 모습은 제법 달라져 있었다.

“많이 발전 했는데?”

마장기에서 내린 호가 한시진을 향해 말했다. 자신이 없는 동안은 그녀가 디르시나의 영주 대리를 맡았었다.

“라홀로프 상단이 두 번이나 방문했어요. 그리고 타임리스 상단도 대금을 보내왔고요. 그런데 오빠. 정말 다친 곳 없어요?”

진지한 표정으로 묻는 한시진의 모습에 호는 그녀의 머리를 살짝 매만졌다. 자신의 건강을 걱정해주는 그녀의 마음씀씀이가 고마웠다.

“걱정 마. 컹컹이를 제외하고는 아무도 다친 곳이 없으니까. 아, 브로리가 조금 다쳤었지.”

“멍멍. 최강 로리 브로리 님이 다치시다니. 볼 붸르니체스라는 군단장도 무시할 수 없는 녀석이로군요.”

“아, 그런 건 아니지만. 쪽수에는 장사 없더라.”

자신의 말에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는 로우덴을 향해 호는 어깨를 으쓱였다. 로우덴의 말대로 브로리는 정말로 최강 로리라는 별명이 걸맞게 대단한 녀석이었다. 컹컹이가 있기는 했지만 홀로 마족의 영웅급 인재를 수십 명이나 패버렸으니까.

그렇게 디르시나에 무사히 도착한 호는 자신의 건재함을 알리고 재빠르게 영지민들을 안정시키기 시작했다. 이번 사태로 인해 디르시나의 영지민 특히 마족 영지민들의 불안감은 극에 달해 있었다. 커티삭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는 이미 도시에 파다하게 퍼져 있던 탓이었다.

“볼 붸르니체스 각하가 호 님을 죽이려고 했다면서?”

“호 님이 소환자라는 이유로 배신자라고 낙인찍고 림드 산맥을 점령하려고 하셨대.”

“취익? 췩?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되는 거지?”

“모조리 죽는 게 아닐까? 감히 호 님을 해하려고 했으니…….”

많은 수의 마족 영지민들은 자신을 죽이려고 했던 볼 붸르니체스로 인한 일들을 트집삼아 호가 자신들을 탄압하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호는 로우덴을 통해 마족 영지민들의 불안감을 해소시키라는 명령을 내리며 그들을 안심시켰다. 당연히 마족 영지민들에 대한 처벌도 없었다.

이런 호의 결정은 당연했다. 디르시나만 하더라도 수만 명에 다다르는 마족 영지민들이 살고 있는데다가 자신을 적대한 것은 볼 붸르니체스지 그들이 아니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멍멍! 영주님의 자비로운 마음씨에 모든 영지민들이 칭송을 보낼 것입니다.”

그렇지만 호의 당연해 보이는 이 결정이 이 세계에서는 조금 다르게 받아들여지는 모양이었다.

띵동.

-디르시나에 거주하고 있는 마족들에게 큰 감동을 주었습니다.

-윤호의 자비로움에 디르시나에 거주하고 있는 모든 종족들이 윤호를 칭송합니다.

-영지민들의 사기가 크게 상승했습니다. 앞으로 한 달 동안 디르시나의 모든 공사 효과가 50% 상승합니다.

“어라?”

그리고 나타난 메시지의 내용은 한 순간 호의 머리를 멍해지게 만들 정도였다. A등급 마장기에 가뜩이나 특성화 공사로 허덕이는 디르시나에 이런 엄청난 효과까지. 이 쯤 되니 사실은 볼 붸르니체스가 자신을 압박하는 척 도와주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들 정도였다.

“물론, 그럴 리는 없겠지만.”

볼 붸르니체스가 이끄는 마족의 군단은 아멘드마에서 격전을 벌이고 있었다. 결국 그는 자신과 림드 산맥을 포기할 수 없었던 모양이었다.

킬리드의 영주 엘 아르윈의 보고에 따르면 마족과 엘프의 전장이 점점 더 확산되고 있다는 보고가 들어오고 있었다.

현재는 엘프들이 차지하고 있지만, 아멘드마를 둘러싸고 공방전이 몇 번이나 벌어진 모양이었다.

그리고 이틀 전, 엘프 왕국의 장로 엘 로즐린이 이끄는 엘프 군단이 토갈론의 요새에 도착했다는 보고에 볼 붸르니체스가 일단 한 발짝 물러난 상황이라고 했다.

“어떻게 보면 나 때문에 벌어진 일이니…….”

집무실에서 지도를 보는 호의 표정이 한없이 진지해지기 시작했다. 마족과 엘프 왕국의 전쟁은 따지고 보면 자신 때문에 벌어진 일이었다.

사실 노리고 이런 상황을 만든 것도 없잖아 있었다. 애당초 자신을 압박하는 마족이 생겨날 지도 모른다는 가정 하에 근거지를 다른 종족이 방어막이 되어줄 림드 산맥으로 정했었으니 말이다.

“가만히 있을 수는 없지.”

엘프 왕국의 장로 엘 로즐린도 지금의 이 상황이 어떤 연유로 인해 일어났는지 알고 있을 터였다. 이런 와중에 자신이 엘프를 돕지 않는다면 그것도 좋지 않은 결과를 초래할 수 있었다.

커티삭에서 일어난 사건으로 인해 희생을 당하는 것은 엘프들이었다.

“이번에는 오빠가 디르시나에 계세요. 오빠가 전장에 나타나면 볼 붸르니체스 라는 녀석은 분명 오빠만 노릴 거라고요. 그건 위험해요. 무슨 말을 해도 이번엔 제가 출진할 거예요.”

“나는 무조건 갈 거다. 마족의 긍지도 모르는 그 자식에게 무슨 일이 있어도 한 방 먹이고야 말 테다.”

엘프들을 도와야겠다는 호의 말에 두 손, 두 발 들고 나선 것은 한시진과 브로리였다. 시진은 자신의 애인인 호를 위험에 빠뜨렸다는 이유로, 브로리는 비겁한 행동을 한 붸르니체스를 상대로 이를 갈고 있었다.

‘이 둘이라면…….’

그리고 호는 두 여인을 보며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이 둘은 자신이 지닌 최고의 전력이라 할 수 있는 영웅들이었다.

A등급과 SS등급의 클래스를 보유하고 있는데다가 둘 다 마장기 운용 능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하물며 한시진은 과거 제국의 기사단장으로 군대의 운영 및 전략과 전술에도 뛰어났다.

“좋아. 엘븐 템플러와 대마장병. 그리고 데스 사이더를 지원군으로 보내겠어.”

곧바로 대규모의 모병이 이어졌다. 엘븐 템플러를 포함해 최근 연구가 끝난 수인족의 A랭크 기병인 호표기들이 디르시나에서 주력으로 양성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자신들을 돕겠다는 호의 제안에 엘프들은 쌍수를 들고 환영했다. 가뜩이나 마족의 병사들이 점점 더 늘어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이주 뒤, 오천의 엘븐 템플러와 삼천의 호표기 그리고 한시진의 데스 사이더와 브로리의 전용기 골든 스테이트가 아멘드마로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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