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6
리그너스 대륙전기 156
림드 산맥의 패자 호.
그는 강력한 육상 전력을 보유하고 있는 수인 왕국의 공격을 계속해서 막아내었고, 그 전리품을 바탕으로 디르시나에서 대공사가 벌이고 있었다. 그리고 계속해서 들어오는 호의 정보를 바탕으로 스퀴드 수운다는 좀 더 현명하게 그리고 객관적으로 자신들과 림드 산맥의 패자인 호의 관계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마족이 아닌 우리나라의 소환자면 더할 나위 없겠는데.”
능력만 보면 정말로 탐이 나는 인재였다. 게다가 림드 산맥의 패자는 신기하게도 다양한 종족의 병사들을 아무런 트러블 없이 동시에 양성하고 운용할 수 있었다. 그리고 스퀴드 수운다는 호의 능력 중 가장 높이 평가하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림드 산맥에서 양성된 엘프 병사들이 매달 우리 군항을 통해 골든 크로우로 향했지.”
“그나이 칼츠만 재상과 모종의 거래를 맺었다고 합니다. 우리 블루 스케일 내에서도 이 거래 내용에 대해 알고 있는 자는 꽤 드물지요.”
자신의 참모 똘레오의 말에 스퀴드 수운다는 자신의 수염을 쓸어내리며 말했다.
“후후후. 그 거래가 라헬교에 미친 아이리스 성국 때문이라는 건 그대나 나나 알고 있는 사실 아닌가?”
“애당초 스퀴드 수운다님의 허락이 없으면 림드 산맥의 병사들이 우리 왕국으로 들어올 수 없지 않습니까?”
그리고 림드 산맥의 패자인 호는 블루 스케일과 혈연관계인 골든 크로우와 서로 이익을 안겨다 줄 모종의 관계를 맺고 있었다. 결국 스퀴드 수운다는 자신들이 림드 산맥의 패자와 친해져서 나쁠 건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만약 상대가 마족이었다면 분명 껄끄러웠을 터였다. 하지만 림드 산맥의 패자는 소환자였다.
정말로 마왕 쉐르난비체에 충성하는 인물이 아니란 점이었다. 게다가 호를 조사하면서 새롭게 들어오는 정보가 스퀴드 수운다의 묘한 감을 건드리고 있었다.
“흐음.”
림드 산맥에서 두 개 영지 정도 밖에 떨어지지 않은 조그마한 마족의 영지인 커티삭. 상급 마족인 볼 붸르니체스의 영향을 받는 그 커티삭에 제법 많은 수의 병사들이 모여들고 있다는 정보가 스퀴드 수운다의 귀로 들어왔다. 지크 로리의 수인과 코르다에 주둔하고 있는 엘프 군단을 견제하기에도 제법 많은 수였다.
그리고 십오 년 넘게 카틀라스 군항을 지키며 수많은 해적들과 타 세력의 도발을 이겨내며 얻은 그의 직감은 이 사실을 그냥 넘기지 말라고 말하고 있었다.
“림드 산맥과 커티삭에 첩자를 좀 보내야겠어.”
잠시 생각에 잠겨 있던 스퀴드 수운다가 눈을 들어 지도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파보면 제법 재미있는 것들이 나올 것 같은 예감이었다.
* * *
“돈 쓰는 거 정말 쉽네.”
절로 한숨이 흘러 나왔다. 여유 자금이 물 새듯 줄어들고 있었다. 공사를 시작하기 전부터 예상은 했었지만, 그 속도가 상상 이상이었다.
“그래도 타임리스 상단이 제 때 대금을 지불해 줘서 다행이에요.”
“안 그랬으면 파산이 나도 진작 낫겠지. 영지 정보가 적혀 있는 서류가 있으면 좀 줄래?”
호의 말에 아스트리드 벨이 서류를 건네주었다. 사실 영지 정보 창을 열어서 확인하면 훨씬 쉽고 빠르게 볼 수 있었다. 하지만 벨이 예쁜 글씨로 정리를 해 놓은 서류를 보는 것도 나름대로의 맛이 있었다.
<영지 정보(Status)>
디르시나(대도시[A등급])-‘림드 산맥’
인구-274331
보유 리스-162234121
보유 식량-2336434
병사–엘븐 템플러 8200(A), 정예 실리스 1500(C), 켄타우로스 전사 1000(B), 스파크 마장병 500(E)
내정 건물-대형 식량 저장고 100, 대형 주점 3, 대 시장 100, 초대형 시장 30, 세무서 3, 화폐 공장 10, 대형 어장 100, 해양석 어장 50, 경매소 2, 특산품 거래소 10…….
군사 건물–병영 10, 대장간 19, 마법 연구소 1, 강력한 마나 보호막이 걸린 튼튼한 성벽 1, 굉장히 견고한 망루 40.
리스 수입-266123 / 월
식량 수입-372133 / 월
특산품–해양석
몇 달 전과 비교해 가장 크게 달라진 점이라면 인구가 크게 늘어 있었다. 전부 노예들 때문이었다.
보유 리스양은 굉장히 많았지만 별 생각은 들지 않았다. 한 달을 채 버티지 못하고 순식간에 사라질 양이기 때문이었다.
“역시 리스 수입은 줄었네.”
생산 시설들이 있긴 했지만, 아직 제대로 돌아가지 못한 까닭이었다. 하지만 곧 교육을 받은 영지민들이 일을 하고 내정 건물들의 효율이 높아지면 리스 수입은 크게 뛰어오를 터였다. 물론 대다수의 영지민들이 아직도 공사에 투입되고 있는 터라 그게 언제가 될지는 아직 알 수 없었다.
“여기 한 장 더 있어요.”
호가 한숨을 푹 내쉬자 벨이 또 한 장의 서류를 건넸다. 서류에는 특산품들의 이름과 함께 휘갈겨 쓴 숫자가 나열되어 있었다.
“이번 달에 디아린 상단이 거래한 특산품들과 그에 따른 이익 그리고 호 님에게 납입한 돈이에요.”
말을 꺼내는 벨의 무표정한 얼굴에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었지만 호는 곧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는 서류의 내용을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림드 산맥을 비롯해 엘프, 인간들의 영지를 돌아다니며 특산품을 구입했고 디르시나에 약간의 이득을 붙여 판매한 모양이었다.
‘제법…….’
현재 디르시나가 쓰고 있는 돈에 비한다면 티끌도 안 될 정도의 이익이었지만 아직 상단을 창설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는 것을 감안하면 큰 이익이었다. 그녀가 납입한 돈만 해도 100만 리스가 조금 넘었다.
“아, 그리고 디아린이 당신을 만나야 한다고 말하더군요.”
“디아린이? 갑자기 왜?”
“림드 산맥을 통과하는 상단로를 개척하자고 하더군요. 그와 함께 상단을 호위할 수 있는 용병단과의 장기 계약 건에 대해서도 상담하고 싶다고 하던데요?”
“…….”
“제 생각에는 굉장히 많은 돈이 들어갈 것 같은데요.”
아스트리드 벨의 말에 호는 물끄러미 디아린이 납입했다는 100만 리스가 적혀 있는 서류를 바라보았다. 아무래도 좀 더 상단을 키울 생각인 걸로 보였다.
“이야기를 해봐야겠군.”
“지금 상황에서 돈이 빠져나갈 일을 또 만들자고요?”
“돈이 들어올지도 모르잖아?”
“하아…….”
호의 대답에 아스트리드 벨이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적지 않은 돈이 소모되기는 하겠지만 그래도 림드 산맥을 통과하는 상단로가 개척될 경우 자신에게 어떤 이익이 들어오는지는 알아봐야 했다.
한 푼이 아쉬운 상황이기는 하지만 미래를 위한 투자를 놓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거기에 오우거 칼타스를 토벌하며 림드 산맥의 몬스터를 어느 정도 처리했던 터라 상단로 개척에 따른 몬스터 토벌에 관해서는 크게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호는 디아린과 상단로 개척 및 용병단과의 계약 건에 관해 이야기를 나눌 수 없었다. 그보다 더 큰 문제가 들이닥쳤기 때문이었다.
“가면 안 된다!”
디르시나에서 스파크 마장병을 양성하다가 소식을 듣고 재빠르게 응접실로 달려온 브로리가 호를 향해 말했다.
“갑자기 왜?”
“분명 무슨 꿍꿍이가 있을 거야!”
응접실에 모인 영웅들이 한마음으로 한 뜻으로 말했다. 그들의 시선은 모두가 호의 손에 집중이 되어 있었는데, 호의 손에는 커티삭에서 만나고 싶다는 내용이 담겨 있는 볼 붸르니체스의 초대장이 들려 있었다.
“곤란한데…….”
난감한 상황이었다. 그것도 심히 난감한 상황이었다. 다른 누구도 아닌 볼 붸르니체스의 초대장이었다. 그리고 호는 오우거 칼타스를 통해 해머스 아니 림드 산맥의 공격을 사주한 존재가 그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이건 함정이다. 계략에 대해서 잘 모르는 나도 그 정도는 쉽게 예측할 수 있다.”
초대장을 쳐다보는 브로리의 눈이 싸늘해졌다. 눈빛만으로도 초대장을 갈기갈기 찢어버릴 기세였다. 브로리 뿐만이 아니었다. 한시진도 있었다.
“절대 가면 안돼요, 오빠. 그 자식은 림드 산맥의 주인이 오빠라는 것을 잘 알고 있어요. 그렇기에 오빠를 이용하려는 거예요. 인질로 삼으려는 거죠.”
한시진은 호가 커티삭으로 간다고 말을 꺼내면 무슨 일이 있어도 막아낼 기세였다. 시현도 아스트리드 벨도 마찬가지였다.
“위험하긴 위험하겠군. 험험.”
“맞네. 이건 켈베로스의 입에 머리를 들이밀라고 얘기하는 것과 똑같아.”
드워프 패밀리인 존스 홉킨스와 레온 바티스타도 볼 붸르니체스의 초대에 대해 경계심을 드러냈다. 다들 해머스에서 있었던 일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때였다.
“멍멍. 볼 붸르니체스의 초대는 받아들여야 합니다.”
“말도 안 되는 개소리! 오빠보고 가서 죽으라는 이야기야?!”
성난 목소리를 내뱉는 한시진을 향해 로우덴이 대답했다.
“흠흠. 전 원래 개입니다만? 멍.”
그러고는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을 짓는 그녀를 뒤로 한 채 호를 향해 말했다.
“멍멍. 다른 누구도 아닌 볼 붸르니체스의 초대장입니다. 해머스를 침공했던 몬스터들로 인해 그와는 틀어지던 혹은 사이가 좋아지던 어떻게든 관계를 확장시켜 나가는 것은 이제 피할 수 없는 일입니다. 멍.”
“음…….”
“멍. 그리고 저는 호 님께서 볼 붸르니체스와 적대하리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멍멍. 그렇지 않다면 대마장병을 양성할 리가 없죠.”
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진실의 현자라는 클래스 그리고 SS등급의 지력을 가진 영웅답게 역시 똑똑한 녀석이었다.
“그래. 하지만 그렇다면 더더욱 볼 붸르니체스의 초대를 받아서는 안 되는 거 아닌가?”
“그렇지 않습니다. 멍멍. 그 이유는 볼 붸르니체스가 한 가지를 확신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멍.”
말과 함께 로우덴은 가슴에서 펜을 꺼내고는 응접실에 자리 잡고 있는 전략, 전술 판에 숫자를 적어내려가기 시작했다. 커티삭에 주둔하고 있는 병사의 숫자와 마장기의 대수였다. 군사만 삼십만 명. 마장기의 숫자도 열다섯 기가 넘었다.
볼 붸르니체스라는 상급 마족의 전력이 모이기 때문일까? 어마어마한 숫자였다. 더 무시무시한 것은 이게 그가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전력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후우…….”
로우덴이 적은 숫자를 보는 호의 입에서 깊은 숨이 흘러 나왔다. 마음이 덜컹거렸다.
“멍멍. 이 숫자를 보면 알다시피 안테 로리 아니 지크 로리의 수인과 붉은 핏빛의 대지에 있는 엘프들의 영지인 아멘드마와 코르다에 주둔한 엘프 군단을 견제한다는 의도치고는 터무니없을 정도로 많은 병력이 커티삭에 주둔하고 있습니다. 멍. 어째서일까요?”
“림드 산맥을 노리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로우덴.”
로우덴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불쑥 브로리가 답했다. 그리고 브로리를 바라본 로우덴이 높낮이가 없는 어조로 말했다.
“멍멍. 그렇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브로리를 바라보던 로우덴이 호를 향해 몸을 돌렸다. 어디선가 들어본 것 같은 음성과 행동에 호는 할 말을 잃었다. 심각한 상황이 틀림없는데도 불구하고 웃음이 터져 나올 뻔했다.
“충분한 전력을 보유하고 있으면서 왜 볼 붸르니체스는 군대를 움직이지 않고 있을까요? 멍멍.”
자신을 향한 로우덴의 질문에 호는 대답을 할 수 없었다. 몰랐기 때문이었다. 그의 말대로 볼 붸르니체스의 전력이라면 충분히 엘프 군단을 물리치고 림드 산맥을 불태워 버릴 수 있었다.
만약에 자신이 볼 붸르니체스였다면 1개 군단 가량의 마족을 지크 로리에 배치, 리셴르나의 수인 군대를 견제하고 엘프들의 영지를 쑥대밭으로 만들며 킬리드로 진군했을 터였다.
호 뿐만이 아니었다. 로우덴의 질문은 지금 이 자리에 있는 모두에게 향하고 있었다. 하지만 답을 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한 명을 제외하고 말이다.
“설마…….”
손을 입게 가져다 대고 고민을 하던 한시진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볼 붸르니체스는 우리를 공격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확신하지 못하고 있는 거로군요.”
“멍멍. 그렇습니다. 그 이유는 저도 정확하게 알 수는 없습니다만 복합적인 이유가 있을 거라 생각됩니다. 최상급 마족쯤 되다보면 아무래도 함부로 움직일 수 없는 이유들이 있게 마련이거든요.”
로우덴이 활짝 웃으며 대답했다. 그 대화를 들으며 호는 침묵하며 생각에 잠겼다.
안테 로리를 점령했을 당시 수인족의 공격에 대한 지원으로 마장기가 포함된 병사까지 보내줬던 볼 붸르니체스였다. 어째서 그가 지금은 자신에게 칼을 겨누고 있을까?
‘내가 마족을 배신한다고 생각해서다.’
솔직히 호는 소환자를 도구로 생각하는 그와는 깊은 관계를 맺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더 이상의 관계도 맺을 생각이 없었다. 게다가 이미 칼타스의 난동으로 인해 볼 붸르니체스와 자신은 이미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넜다.
하지만 처음 호는 볼 붸르니체스가 그렇게까지 자신을 적대하기 전까지는 굳이 마족을 배신하려는 생각은 가지지 않고 있었다. 다만 각 종족의 병종에 대한 효율성을 따지면서 양성하다보니 마족보다 엘프족들로 구성된 병종이 많아진 터라 오해를 샀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