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0
리그너스 대륙전기 150
S랭크는 아니지만 엘븐 템플러는 엘프 왕국의 A랭크 보병 병과로 리그너스 대륙전기에 등장하는 각 종족의 보병 중 동급에서는 최강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보병이었다. 괜히 유저들 사이에서 엘보라는 말이 있는 게 아니었다.
커다란 방패를 내세운 철벽과도 같은 방어 능력. 부상을 입어도 자가 치료를 할 수 있는 회복 마법의 사용이 가능했고, 검술의 실력도 상당히 뛰어났다.
곧 여기저기서 피분수가 흩뿌려졌다. 전쟁 병기인 마장기와 함께한 그들을 당해내기란 해머스를 침공한 몬스터들로는 무리였다.
“키킷! 킥?!”
“췩! 취에엑! 쿠륵! 췩!”
마장기와 엘프들의 합공에 동료들이 학살당하는 모습을 보던 소형 몬스터들이 커다란 눈동자로 서로를 돌아보았다. 상대는 괴물이나 다름없었다.
이들을 막아내려면 자신들에게 명령을 내려주는 오우거들이 나서야만 했다. 어떻게든 빨리 그들이 황금색의 마장기를 고철로 만들어 버리고 전장에 참여해주기를 바랐다. 그 때였다.
콰아앙!
폭탄이 터진 것 같은 소리가 해머스 평원을 울리자 호를 포함해 엘븐 템플러 그리고 몬스터들까지 모두의 고개가 그 쪽으로 향했다.
비록 튼튼한 성벽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5m나 되는 해머스의 성벽이 도미노라도 된 듯 우르르 무너지고 있었다.
“……헐.”
그리고 잠시 후 상황을 파악한 호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오늘의 브로리는 해머스의 성벽을 죄다 무너뜨릴 생각인 모양이었다.
* * *
오우거는 자신의 큼지막한 눈을 뒤룩뒤룩 굴렸다. 황금색의 마장기. 자신에게 불안함을 느끼게 만든 색을 지닌 마장기에게 동료가 당한 것이다. 성벽에 파묻힌 녀석이 움찔움찔 몸을 떠는 게 눈에 들어오기는 했지만 오우거는 자신의 동료이자 친구였던 저 녀석이 살아나리라는 생각은 할 수 없었다.
얼마나 강한 힘으로 후려쳤는지는 모르겠지만 성벽과 부딪친 오우거는 몸체와 목이 분리되어 있었다.
“쿠워어어어!”
동료의 죽음을 본 오우거가 목이 찢어져라 소리치기 시작했다. 곧 오우거의 폐부에서 나온 포효가 대기를 흔들었다.
하지만 상대에게 압박과 공포를 주려는 오우거의 피어가 아니었다. 자신을 향해 눈을 빛내는 황금색의 마장기에 대한 두려움의 목소리였다.
“도망가자!”
자신만만하게 성벽 아래로 뛰어내렸다가 동료 둘이 불귀의 객이 된 모습을 본 오우거가 말했다.
함께 떨어져 내린 녀석 역시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저 자신들은 저 마장기의 상대가 아니었다. 상대는 자신들보다 더한 괴물이었다.
‘세비트리’라 불리던 엘프 왕국의 마장기와는 그 강함이 다르다는 게 피부로 느껴지고 있었다. 자신들의 대장이 나선다 해도 저 마장기를 상대로 승리를 거두리라는 생각은 추호도 들지 않았다. 하지만 황금색 웨어 타이거의 속도와 순발력은 자신들에 비해 너무나도 우월했다.
“쿠워어어억! 우워웍!”
순식간에 눈앞에서 마장기가 모습을 드러내자 도망을 갈 생각이었던 오우거 한 마리가 발광하듯 자신의 몽둥이를 휘두르기 시작했다. 그로 인해 주위에 있던 소형 몬스터 몇몇이 피떡이 되어 튕겨져 나갔다.
그런 무차별적인 공격을 너무나도 쉽게 피한 웨어 타이거의 발톱이 오우거의 피부를 길게 찢어 발겼다.
그렇게 한 번, 두 번. 온몸이 상처투성이가 되자 오우거는 상대가 단번에 자신들의 목을 잘라낼 수 있지만 가지고 놀고 있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깨달을 수 있었다.
오우거의 눈동자가 공포심에 물들었다. 도망도 소용없었다. 방금 전 성벽에 부딪쳐 목숨을 잃은 두 녀석이 어떻게 죽었는지 모를 정도로 웨어 타이거는 빨랐다.
“흐응.”
자신을 향해 공포심을 드러내는 오우거의 모습을 보며 브로리는 날름 혀로 입술을 핥았다. 자신을 두려워하는 저 모습을 더욱더 눈에 담고 싶었다.
브로리는 자신의 고개를 들어 올렸다. 아직 성벽 위에 자리를 잡고 있는 오우거 한 마리가 눈앞에 보이는 이 상황에 어찌할 바를 모르는 모습이 보였다.
“다들 한꺼번에 덤볐으면 좋겠는데? 그리고.”
브로리의 눈동자가 붉게 물들었다. 이들을 이끄는 대장이 있을 터였다. 브로리는 그 녀석을 잡을 생각이었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전투에 최대한 많은 공을 쌓아야만 했다. 그래야만 나중에 호가 자신에게 짐승신의 축복을 내려줄 터였다.
“그러려면…….”
웨어 타이거의 동체가 살짝 움직이는 모습에 오우거들이 몸을 움찔했다. 그 모습에 브로리는 미소를 지었다. 먼저 오우거들을 죄다 죽인다.
그리고 성벽을 넘어가 해머스 내부에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몬스터들의 대장을 찾아 또 죽인다. 그게 브로리가 떠올린 계획이었다.
그 때였다. 성벽 위에 서 있던 오우거의 옆으로 온몸을 붉은색으로 문신을 한 오우거가 성벽 위에 모습을 드러내었다. 칼타스였다.
“감히!”
가장 먼저 부하의 시체를 확인한 칼타스가 소리를 질렀다. 끔찍하게 죽은 시체의 모습에 절로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오랜 시간 동안 림드 산맥에서 동고동락을 해왔던 녀석이었다. 그리고 칼타스는 부하를 해친 녀석을 찾기 위해 고개를 돌렸다.
“꿀꺽.”
황금색의 괴물이 자신을 향해 으르렁거리고 있었다.
“마, 마장기? 마장기가 어떻게 여기에?!”
당황스러운 목소리가 칼타스의 입에서 흘러 나왔다. 그가 알기론 해머스라 불리는 이 도시에는 엘븐 템플러들만이 주둔하고 있을 뿐 자신들에게 위협이 될 만한 공성병기나 마장기가 없었다.
아니, 없다고 했다. 이곳으로 자신을 인도한 분께서 말씀해주신 정보였다.
물론 엘븐 템플러도 위협적이긴 했지만 칼타스는 캐터펄트라는 공성병기와 몬스터들의 수로 그들을 밀어붙였고, 곧 해머스의 함락을 목전에 두고 있었다. 도시 내부는 이미 약탈이 벌어졌고, 사방에서 불길이 솟아오르고 있었다. 살아남은 병사들은 영주성을 최종 방어막으로 삼아 항전을 벌이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 성만 함락시킨다면…….
‘나의 영지를!’
얻을 수 있었다. 함락만 시킬 수 있다면 말이다. 지키는 것은 문제가 없었다. 자신을 이곳으로 인도한 분께서 자신을 도와줄 병력을 병사들을 보내기로 약속하셨기 때문이었다.
쿵! 쿵! 콰아앙!
와아아아!
하지만 눈앞에 보이는 전장의 모습에 칼타스는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성벽 아래에 있는 황금색 마장기는 둘째 치더라도 붉은색의 마장기가 자신의 부하들을 학살하고 있었다. 그뿐인가? 어디선가 등장한 엘븐 템플러들이 몬스터들을 밀어내고 있었다.
“아, 안 돼!”
칼타스가 고함을 질렀다.
“영주성만 함락하면 이 성은 나의 것이 되는데!”
자신의 꿈이, 야망이 무너지고 있었다. 그 순간이었다.
퍼억! 퍽! 퍽!
세 번의 격타음과 함께 커다란 덩치들이 허물어지듯 무너져 내렸다. 곧 주변이 쥐 죽은 듯 조용해졌다.
칼타스도 방금 전까지 시끄럽게 떠들던 고블린과 놀 그리고 오크들까지도 조심스레 입을 다물고 있었다. 성벽의 위아래를 가리지 않고 단숨에 오우거들을 하늘나라로 보내버린 황금색의 웨어 타이거가 가볍게 운동이라도 했다는 듯 자신의 손을 털고 있었다.
“너. 대장이지?”
황금색 웨어 타이거에서 들려오는 여자의 목소리에 칼타스의 눈이 웨어 타이거에 고정되었다. 칼타스는 자신이 마장기의 상대가 아니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깨달을 수 있었다. 저 마장기에게선 림드 산맥을 찾아왔던 존재 이상의 강함이 느껴지고 있었다.
‘어, 어째서?! 저런 존재가? 림드 산맥에는 허약한 소환자들만 있다고 들었는데?! 서, 설마 함정!’
칼타스의 머리가 빠르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갑작스레 림드 산맥을 찾아온 마족의 존재가 이제야 수상하게 느껴지고 있었다.
‘어쩐지 마족이 마족의 영토를 공격하라는 말도 되지 않는 이야기를 꺼내더니만!’
함정. 함정이 틀림없었다. 칼타스는 그렇게 확신했다. 이건 자신을 포함한 림드 산맥의 몬스터들을 손쉽게 토벌하려는 함정이 분명했다.
그 결과로 자신의 부하들인 오우거들은 죄다 불귀의 객이 되었고, 어떻게든 모조리 끌어 모았던 림드 산맥의 소형 몬스터들도 죽어 나자빠지고 있었다.
넓은 해머스의 평원에서는 도망갈 곳도 없었다.
설령 어떻게든 목숨을 건져 림드 산맥으로 돌아간다 하더라도 림드 산맥의 몬스터들은 더 이상 이들에게 위협의 존재가 되지 못했다.
“쿠, 쿼어어! 쿠워어어!”
자신이 속았다는 걸 안 칼타스가 머리를 부여잡고 한참 혼란스러워 할 때였다. 그 모습을 보던 브로리가 자신의 눈을 일그러뜨렸다.
“와. 저 개새끼가. 내 말을 무시하네?”
순식간에 연기처럼 퍽 꺼졌다가 칼타스의 눈에 나타난 황금색 웨어 타이거의 앞발이 칼타스의 얼굴을 내리찍어 눌렀다.
“쿠웨에에에엑?! 퀴이익!”
생명의 위협을 느낀 칼타스가 필사적으로 자신의 얼굴 표정을 이용해 아니라고 말했지만 황금색 웨어 타이거의 움직임은 너무나도 빨랐다.
해머스를 침공한 몬스터들은 빠르게 토벌되었다. 한 대도 아닌 두 대의 마장기가 전투에 참여한 만큼 당연한 결과였다. 몬스터들의 숫자가 만이 넘는다고는 하지만 그들에게는 마장기를 상대할 수 있는 수단이 없었다. 그만큼 몬스터들의 용맹이 뛰어난 것도 아니었다. 설령 있다 한들 로리, 아니 브로리의 벽을 넘지는 못했겠지만.
쿠웅하는 소리와 함께 거대한 덩치가 공터로 떨어지자 전투를 마치고 마장기에서 내리던 호의 시선이 그리로 향했다. 온몸에 문신을 한 오우거가 입가에 거품을 문 체 기절한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저 놈은…….”
해머스를 침공한 몬스터의 대장격인 오우거였다. 호에게 있어서는 산적 두목 1정도의 존재감을 자랑하는 녀석. 물론, 저 산적 두목 1때문에 호가 입은 피해는 상상을 초월했다.
해머스를 공격한 몬스터들의 수가 굉장히 많았던 터라 한 부대를 양성하는데 삼만 리스가 넘게 필요한 엘븐 템플러들이 많이 목숨을 잃었다.
특히 호와 브로리가 전투에 참여하기 전부터 농성전을 벌이고 있었던 엘븐 템플러들은 반 수 이상이 줄어 있었다. 거기에 사, 오천 가량의 해머스 주민들도 희생되었다.
그뿐인가? 이제껏 시간과 돈을 투자해서 발전시켰던 해머스의 시설들이 대부분 불에 타거나 폐허로 변했다. 마정석을 생산하던 시설이 박살난 것은 당연했다.
이를 복구하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과 자원이 필요할 터였다. 그렇다고 당장 마정석 생산 시설의 복구에 돈과 시간을 투자할 수도 없었다. 해머스의 안전을 지켜주던 성벽 역시 우르르 무너져 내렸기 때문이었다.
“아, 그건 몬스터 때문이 아닌가? 끄응…….”
어쨌든 전투는 끝났고, 이제는 전후처리를 해야 할 때였다.
“여, 영주님! 멍!”
멀리서 익숙한 목소리가 호의 귀에 들려왔다. 견인 영웅 하나가 네 발을 이용해 부리나케 달려오고 있었다. 오랜만에 얼굴을 보는 녀석인 사드나인이었다.
“호 영주니임! 멍멍멍!”
사드나인의 우렁찬 목소리가 해머스를 울렸다. 눈물을 줄줄 흘리는 것 까지는 아니지만 사드나인의 얼굴에는 감격이 가득 묻어나오고 있었다.
몬스터들의 공격에 외성이 함락당하고 영주관저가 있는 내성까지 군사를 물렸을 때만 하더라도 사드나인은 자신이 이곳에 뼈를 묻겠구나 라고 생각했었다.
몬스터들의 추격을 뿌리치고 도망칠 구석도 없었을 뿐더러 견인족의 자존심은 도망이라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다.
게다가 자신을 제외하고는 병사들을 인솔할 만한 이도 없었다.
투석 공격을 막아내기 위해 무리하게 마법을 사용하던 엘 카닐슨은 쓰러졌고, 엘 라디아는 외성의 함락과정에서 오우거와 싸움을 벌이다가 부상을 당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기적이 일어났다.
“헤엑! 헤엑! 어, 어떻게 이렇게나 빨리 오실 수 있으셨습니까?! 멍멍!”
호를 향해 전력으로 뛰어온 사드나인이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물었다.
몬스터들을 발견하자마자 급하게 지원군을 보내달라는 전령을 보내긴 했지만 크게 기대는 하지 않았었다. 그러나 자신들이 보낸 전령이 디르시나에 도착했다는 생각이 들기도 전에 지원군이 도착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