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8
리그너스 대륙전기 148
KOREA사에서 개발한 가상현실게임인 리그너스 대륙전기를 대표하는 전쟁 병기는 역시나 마장기다. 그리고 마장기는 기본적인 외형은 로봇과 비슷한 생김새를 지닌 인간 형태의 강철 거인이 주를 이루지만 동물형, 전차형 등 현대 병기와 비슷한 모습을 지닌 녀석들도 존재했다.
그런 마장기들은 리그너스 대륙전기를 사랑하는 유저들이 얻고 싶어 하는 1순위 병기였다. 게다가 멋진 외형을 지닌 마장기들도 많아서 많은 유저들의 수집 욕구를 자극하기도 했다. 이렇게 마장기들이 리그너스 대륙전기를 대표하는 마스코트로 게이머들에게 사랑받는 이유는 역시나 로봇이라는 게 인간의 로망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리그너스 대륙전기에는 마장기를 제외한 전쟁 병기들도 적잖게 있었다. 공성병 계통의 병과나 대마장병이라 불리는 병사들이 그런 무기를 다루는 병사들이었다. 물론, 그 효율이 크게 뛰어난 편도 아니고 특수 상황에서만 위력을 발휘하는 터라 호는 게임을 플이하던 시절에 공성병의 개발에는 크게 아니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았었다. 차라리 공성병을 양성하는 것보다 마장기 한 기를 보유하는 게 훨씬 유용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유저들의 앞을 가로막는 NPC 들은 달랐다. 게임을 즐기는 대다수의 유저들이 마장기라는 최종 병기를 빠르게 얻기 위한 테크를 타는 반면 유저를 제외한 세력들은 마장기 뿐 아니라 다양한 병기들을 사용해 유저를 공격하곤 했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바로 공성병기였다.
그리고 그런 공성병기들에는 캐터펄트, 충차, 발리스타, 대포 등 다양한 병기들이 존재했고, 그중에는 상황에 따라 마장기 이상의 위력을 발휘하는 것들도 있었다.
‘게임을 플레이하면서 마장기 없을 경우 ‘이 대신 잇몸이다’라는 생각으로 사용해 보기는 했지만…….’
호는 바닥에 난 공성병기의 자국을 노려보았다. 유저였던 시절의 경험을 통해 호는 저 자국이 공성병기 자국, 그것도 투석기라 불리는 캐터펄트의 자국이라는 것을 어렵지 않게 알아낼 수 있었다.
그리고 저 캐터펄트 자국은 분명 마족의 캐터펄트였다. 마장기처럼 공성 병기 역시 각 종족마다 다양한 형태의 병기들을 사용했는데, 이동을 할 때 땅 바닥에 세 개의 줄을 만들어내는 캐터펄트는 마족의 캐터펄트 밖에 없었다.
“마족의 캐터펄트라니? 어떻게 된 일이지?”
“내가 그 답을 내려줄 수는 없겠군. 나는 마족이 아니니까.”
브로리가 어깨를 으쓱였다. 하지만 잠시 후, 호를 바라보는 그녀의 얼굴에는 걱정스러움이 묻어나고 있었다. 자신의 상황에 호의 모습이 투영된 것이다.
“그래도 한 가지는 확실하게 알 수 있을 것 같다.”
“뭐지?”
“해머스가 우리의 예상 이상으로 위험하다는 것이지.”
“크윽!”
브로리의 대답에 호는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그러다가 문득 한 생각이 들며 가슴을 쓸어내릴 수 있었다. 현재 해머스에는 엘븐 템플러 삼천이 주둔하고 있었다. 몬스터들이 엘프들의 영지를 공격했다는 보고를 받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디르시나에서 엘븐 템플러를 이동시켰기 때문이었다.
호는 재빠르게 주위를 둘러보았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공성 병기의 바퀴자국은 하나밖에 보이지 않았다.
“쉽게 무너지지는 않을 거야. 안 그래도 몬스터들이 난동을 부린다는 소식 때문에 해머스에 엘븐 템플러 삼천을 주둔시켰어.”
“선견지명이로군. 다행이야.”
브로리는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엘븐 템플러 삼천이면 상당히 강력한 전력이었다. 하지만 마음을 놓을 수는 없었다. 해머스로 향하는 몬스터들의 수가 얼마나 되는지 알 수 없는 상황이었다.
공성병기까지 포함되어 있는 것을 보면 아무 생각 없이 영지를 공격한 것은 아닌 것 같았다. 게다가 호가 보유하고 있는 병사 또한 정예 실리스들을 포함해 이천 가량에 불과했다. 합쳐서 총 오천. 적은 숫자는 아니었지만, 해머스를 공격하는 몬스터들의 수가 얼마나 되는지를 알 수가 없었다.
“어쨌든 빨리 이동해야겠어.”
호가 말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자신들의 전력에 B등급 마장기 두 대가 포함되어 있다는 점이었다. 게다가 그런 마장기의 오너 중 한 명은 무력 능력 964의 SS등급의 영웅 브로리였다.
“목적지는 해머스! 이동한다!”
호와 브로리를 시작으로 엘븐 템플러들이 빠른 속도로 해머스를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가장 선두에서 이동하던 호는 이마를 찌푸리며 생각에 잠기기 시작했다.
갑작스러운 몬스터들의 공격. 이건 리그너스 대륙전기를 플레이하다 보면 으레 있는 이벤트였다. 하물며 림드 산맥과 같은 산맥 지형에는 99%이상의 확률로 대형 몬스터들이 서식하고 있었다. 재수 없는 경우에는 드래곤을 만나서 이제껏 모아 놓은 금은보화를 뜯겼다고 하소연 하는 유저들도 있었다.
그런 탓에 몬스터들이 자신의 영지를 공격한 것에 대해 딱히 이상하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었다. 자신이 병사들을 이끌고 림드 산맥의 몬스터들을 토벌한 것도 아니고 말이다. 하지만…….
‘공성병기라니?’
몬스터들이 공성 병기를 지니고 있다는 사실은 아무리 생각해도 수상스러웠다. 검, 칼, 창과 같은 병기가 아닌 공성병기였다. 마장기 만큼 다양한 부분에서 연구를 마쳐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공성병기 또한 연구를 완료해야지만 제작할 수 있는 병기였다.
하물며 공성병이라는 공성병기를 다룰 수 있는 병과도 필요했다. 산적이나 다름없는 몬스터들이 보유할 수 있는 무기가 결코 아닌 것이다.
만약 엘프들의 공성병기였다면 어떻게든 납득이 되었을 터였다. 엘프들의 영지를 공격한 몬스터들이 캐터펄트를 약탈했을 수도 있을 테니까. 하지만 마족의 캐터펄트였다.
“커티삭이나 킬리드는 아니다.”
페릴 예노스가 지배하는 커티삭이 공성 병기를 제작했을 리는 없었다. 하물며 림드 산맥의 몬스터들이 엘프 군단이 주둔하고 있는 코르다와 아멘드마를 지나 커티삭을 공격한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킬리드는 더더욱 아니었다. 호는 킬리드의 영주인 엘 아르윈에게 내정과 방어시설 건축에 집중하라는 명령을 내렸었다. 하물며 오너 시스템으로 인해 영혼에 자신의 이름이 새겨진 엘 아르윈이 자신의 명령을 어길 리 없었다. 더군다나 호는 캐터펄트와 관련된 연구는 개발조차 않은 터라 생산을 할 수 있을 리도 없었다.
“빌어먹을…….”
그런 생각을 하다 보니 어떻게 몬스터들이 마족의 캐터펄트를 손에 넣었는지 점점 더 짐작이 가지 않았다.
‘혹시 사이가 안 좋은 마족이라도 있는 건가?’
호는 조금 전 브로리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그녀의 말대로 세상에는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만큼 자신을 싫어하는 마족이 있을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군다나 자신은 림드 산맥이라는 작지 않은 땅덩어리를 지닌 마족의 영주이며 패자였다.
이 리그너스 대륙의 존재 아닌 소환자라는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이 대륙의 모든 인물들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지는 않겠지만, 볼 붸르니체스도 그렇고 수인들의 경우를 봐도 그랬듯 소환자라는 존재를 벌레처럼 여기며 적대심이나 경계심을 드러내는 존재들은 적지 않았다.
“벌레가 한 지역의 패자가 되었다는 사실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모양이지?”
호가 히죽 웃었다. 늪지대에 몸을 담근 듯 온몸이 끈적거리는 불쾌한 느낌이 들었지만 웃음이 멈춰지지 않았다. 확신할 수는 없지만 지금 이 몬스터들의 준동에 자신이 모르는 무언가가 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속도를 올려라!”
선두의 엘븐 템플러가 외쳤다. 언제 숲을 벗어났는지 일행들의 앞에 넓은 평원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 * *
“커엉. 어떻게 이런 일이……!”
견인족의 D등급 영웅인 사드나인은 엘븐 템플러들과 함께 4, 5m 정도의 높이로 목재와 돌이 뒤섞인 성벽 위에 서서 정면에 보이는 몬스터들을 지켜보았다.
고블린, 오크, 코볼트, 놀 등 림드 산맥의 몬스터란 몬스터를 죄다 모인 모양이었다. 그리고 그중에는 거대한 덩치를 지닌 녀석들도 있었다.
“오우거.”
사드나인은 침음을 내뱉었다. 오우거가 한 마리도 아니고 무려 다섯 마리나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개중에는 머리에 큰 뿔이 난 녀석이 있었는데 온몸에 새겨진 붉은색의 괴상한 문신이 위압감을 느끼게 만들어주고 있었다. 사드나인이 보기에도 심상치 않아 보이는 녀석이었다.
“수가 상당히 많군요.”
“멍멍. 엘 카닐슨.”
옆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사드나인은 반색을 하며 목소리의 주인공을 바라보았다. 호의 명령을 받아 해머스를 책임지고 있는 인물인 엘 카닐슨이었다. 그리고 그는 마법을 사용할 수 있는 엘븐 메이지였다.
“마법으로 어떻게 할 수는 없습니까? 멍?”
“으음. 그 정도의 실력은 되지 못합니다. 게다가 저는 방어 마법을 위주로 익힌 터라 공격 마법에는 능숙하지 못합니다.”
사드나인의 말에 카닐슨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성벽 가까이 다가온 몬스터 몇 마리 정도라면 따끔한 맛을 보여줄 줄 수 있겠지만 눈앞에 보이는 몬스터는 어림잡아도 만 마리는 넘어 보였다.
게다가 카닐슨은 본인이 항마력이 높은 몬스터인 오우거의 피부를 뚫고 들어가 피해를 줄 수 있는 마법을 사용할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결국 전투가 벌어진다 해도 마법을 사용해 성벽까지 다가온 몬스터들에게나 피해를 주는 게 그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디르시나에 전령은 보냈습니까? 멍멍?”
“몬스터들의 침입 보고가 들어오자마자 보내긴 했습니다. 하지만…….”
카닐슨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전령이 디르시나에 도착해서 지원군과 함께 오기까지에는 꽤 시간이 걸릴 터였다. 그나마 며칠 전 몬스터들의 준동으로 인해 수비 병력이 배치된 것이 불행 중 다행이었다.
“생명의 힘이라면 충분히 사악한 몬스터를 물리칠 수 있어요! 게다가 우리에게는 병력도 있다고요.”
엘 라디아가 고함치듯 외쳤다. 한 손으로 큰 활을 들고 있는 그녀는 공격적으로 몬스터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몬스터들이 접근하기라도 한다면 당장이라도 화살을 날릴 기세였다. 하지만 전투는 기세만으로 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엘븐 템플러들의 강력함은 저도 알고 있습니다. 엘 라디아. 그렇지만 몬스터의 수가 너무 많습니다. 하물며 우리에게는 마장기도 없습니다.”
“멍멍. 맞아요. 성벽이 있다고는 해도.”
몬스터들의 파상공세를 막아내기에 해머스의 성벽은 부실해도 너무 부실했다. 게다가 상대방은 성벽을 공략할 수 있는 공성병기까지 보유하고 있었다. 바로 캐터펄트였다.
뿌우우! 뿌우!
멀리서 나팔 소리가 들려오자 세 남녀의 표정이 굳기 시작했다. 몬스터들의 움직임이 분주해지고 있었다. 마치 누군가의 지휘를 받는 것 같은 일사불란한 모습이었다.
“으음.”
그 모습을 보며 카닐슨은 지금의 전투가 꽤나 힘들어지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몬스터들의 숫자는 자신들보다 훨씬 수가 많았다. 거기에 오우거들의 지휘를 받아 조직적인 움직임까지 보이고 있었다.
“멍! 전투 준비!”
덩달아 해머스의 성벽위도 분주해지기 시작했다. 해머스에는 삼만이 넘는 영지민들이 거주하고 있는 만큼 그들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어떻게든 싸워야만 했다. 그리고 지금의 상황에서 믿을 만한 디르시나에서 보내준 삼천의 엘븐 템플러들 뿐이었다.
척! 척! 척!
정예병이라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로 엘븐 템플러들이 오와 열을 갖춰 성벽위로 올라서기 시작했고, 곧 자신들의 방패를 앞으로 내밀기 시작했다. 엘븐 템플러가 사용하는 마나실드가 새겨진 방패라면 몬스터들의 원거리 공격쯤은 어렵지 않게 막아낼 수 있었다.
투웅!
그리고 공격이 시작되었다. 그 시작은 캐터펄트였다.
“온다아!”
“자리를 지켜라!”
허공으로 높이 솟아오른 바위 덩어리가 성벽 아래의 엘븐 템플러를 깔아뭉개기 위해 떨어지는 순간 엘 카닐슨이 앞으로 나서며 자신의 지팡이를 앞으로 내밀었다.
“─────.──── !”
순식간에 반투명한 막이 반구처럼 생겨났고, 바위 덩어리와 부딪쳤다. 곧바로 콰드득하는 소리와 함께 반투명한 막이 깨지는 것과 동시에 성벽에 도달하지 못한 바위가 아래로 떨어져 내렸다.
“후우.”
그 모습을 보며 사드나인은 가슴을 쓸어내렸다. 만약 캐터펄트의 바위가 성벽 위에 직격했다면 어설픈 이 성벽이 무너지는 것은 물론이고 정예병인 엘븐 템플러들의 목숨이 허무하게 날아갔을 터였다.
“괜찮으…… 음.”
하지만 멋진 방어 마법을 시전 해 바위를 막아낸 엘 카닐슨을 향해 다가간 사드나인은 낮은 신음성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바위를 막아내는 게 생각보다 쉽지 않은 일이었는지 카닐슨의 얼굴이 백지장처럼 창백해 보였다.
“후. 오랜만에 마법을 쓰는 터라 생각보다 힘이 드는군요.”
“멍멍. 괜찮으십니까?”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사드나인.”
카닐슨의 말에 사드나인은 쩝 하는 소리와 함께 입을 다물었다. 걱정하지 않으려도 해도 얼굴색을 보면 걱정을 할 수밖에 없었다. 이 전쟁 꽤나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