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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그너스 대륙전기-147화 (147/522)

# 147

리그너스 대륙전기 147

띵동.

-‘베코바의 도로 정비’ 퀘스트를 완료했습니다.

-퀘스트 보상 등급은 A랭크입니다. 경험치를 8 획득했습니다.

-‘베코바에서 병사 천 명을 양성하자’ 퀘스트를 완료했습니다.

-퀘스트 보상 등급은 S랭크입니다. 경험치를 11 획득했습니다.

벨소리와 함께 메시지가 밀려오고 있었다. 미량의 경험치가 포함된 퀘스트 완료 메시지였다.

“생각보다 굉장히 열심히네?”

호는 파란 하늘 아래에서 땀을 뻘뻘 흘리고 있을 브로리를 떠올렸다. 짐승신의 축복. 언젠가는 승급을 시켜주겠다는 약속과 함께 호는 그녀에게 베코바의 일을 잔뜩 넘겼다.

그런 호의 행동에 인상을 구기기는 했지만 브로리는 군말 없이 호가 시킨 일은 차근차근 하나씩 완료해 나가고 있었다. 퀘스트의 완료 메시지가 그 증거였다.

‘베코바의 개발에는 시간이 좀 필요하겠어.’

디르시나와 에스트라다와는 다르게 베코바는 림드 산맥에서도 가장 발전이 뒤떨어지는 도시였다.

이제까지 베코바에 주둔하고 있었던 영웅은 케반스와 진 카라얀. 최근 진 카라얀이 C등급으로 승급하기는 했지만, 그 전까지는 둘 다 D등급의 영웅에 불과했다. 그것도 내정에는 별 재능도 없었다.

게다가 베코바는 인구도 굉장히 적었다. 영지 정보창을 살펴보니 채 만 명이 되지 않았다. 베코바의 주민들에게 이유를 물어보니 최근 디르시나의 대공사로 인해 그쪽 지역에 일거리가 늘어나는 바람에 많은 사람들이 그리로 빠져나갔다고 했다.

“디르시나의 대공사로 인해 이런 결과가 벌어질 줄은…….”

호는 어렸을 때 배웠던 이촌향도 현상을 떠올렸다. 이래서 균형발전이 정말로 중요한 것 같았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디르시나의 공사는 계속되어야 했고, 디르시나와 함께 베코바까지 신경 쓰기에는 호의 몸은 두 개가 아니었다.

또한 베코바를 발전시켜줄 만한 역량을 지닌 동료가 있는 것도 아니고 말이다.

“사람이 없으니 쓸 만한 녀석도 없군.”

살짝 한숨이 흘러나왔다. 에스트라다에서는 그나마 웃소라도 찾아낼 수 있었지만 베코바에서는 F등급의 영웅조차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렇게 며칠 간 베코바에서 머무르면서 영지 상태에 신경을 쓴 호는 해머스로 떠날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영주님의 명령에 따라 최선을 다해 영지를 발전시키겠습니다.”

“영주님의 길에 어둠이 함께하기를.”

D등급과 C등급. 믿음직스럽지는 않지만 지금 당장은 지푸라기라도 붙잡아야 되는 상황이었다. 어차피 당장 신경을 써야 할 영지도 아닌 만큼 지금은 케반스와 진 카라얀 저 둘에게 맡길 수밖에 없었다.

“이제는 어디로 가는 거지?”

호와 함께 베코바를 떠나는 브로리의 얼굴에는 약간의 아쉬움이 담겨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며 호는 미소를 지었다. 자신의 명령에 따라 몸을 사리지 않고 일을 하는 모습에 베코바 주민들의 신임을 제법 얻은 모양이었다.

아까 전, 조심해서 가라는 베코바 영지민들의 인사에 당황하기라도 한 듯 목각인형처럼 손을 움직이던 게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 모습을 떠올리니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대, 대답도 하지 않고 무슨 생각을 하느냐?! 고개 끄덕이지 마라!”

브로리가 붉어진 얼굴로 버럭 화를 냈다. 하지만 호에게 그 모습은 귀여운 앙탈로만 비춰질 뿐이었다.

“다음은 해머스로 갈 거야.”

해머스. 호의 지배하에 있는 림드 산맥의 도시 중 가장 중요한 특산품인 마정석이 생산되는 도시였다.

그런 탓에 현재 해머스에는 리아 캬베데의 영원한 라이벌이자 시현의 제 1호 애완동물이었던 견인 영웅 사드나인과 엘 카닐슨 그리고 베코바에서 해머스로 이동한 엘프 영웅인 엘 라디아가 있었다. 그래봤자 전부 D등급 영웅들에 불과했지만.

“해머스…….”

브로리의 얼굴이 살짝 굳어졌다. 그녀가 태어나기도 전의 오래전 일이긴 하지만 해머스는 브로리에게 있어 안 좋은 기억이 새겨진 도시였다. 해머스에서 발견된 마정석으로 인해 시작된 전쟁으로 인해 혼혈인 그녀가 생겨났으니까.

“으음.”

하지만 브로리는 짤막하게 신음성만 내뱉었을 뿐 침착한 표정으로 호를 마주 보았다. 지금의 자신은 혼자가 아니었다. 끔찍한 혼혈이라고 돌을 던지고 욕을 하며 손가락질을 하는 이도 없었다.

‘브로리 님 만세!’

‘브로리 님이 최고예요! 다음에도 베코바에 꼭 와주세요!’

브로리는 베코바에서 자신에게 고마움을 이야기했던 주민들의 모습을 떠올렷다. 인간도 엘프도 서큐버스와 오크 심지어 수인까지 자신을 향해 미소를 지어주었었다.

“……엄마.”

조그마한 목소리로 브로리가 중얼거렸다. 하지만 그게 전부였다. 눈에 눈물이 차올랐지만 브로리는 빠른 속도로 눈을 깜빡거리며 참았다. 그렇게 감정을 가다듬은 브로리가 환한 목소리로 말했다.

“예전 해머스의 모습이 기억에 떠오르는군. 마정석이 생산된다고는 하지만 그렇게까지 발전된 곳은 아니었다. 아니, 발전할 수가 없었지. 인간과 수인들이 계속해서 전쟁을 벌였으니까.”

외모와 달리 브로리의 나이는 144 세나 되었다. 그런 탓에 그녀는 과거 해머스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자세하게 알고 있었다.

“결국 원인들이 림드 산맥을 차지했지만 그들은 그 땅에 대해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았었다.”

“이유가 뭐지?”

“겁쟁이 같은 이유였다. 마정석을 개발하게 되면 분명 다른 종족들이 눈독을 들일 거라 생각했기에 화근 자체를 만들지 않기로 결정을 내린 것이지.”

“멍청한 행동이네.”

브로리의 말을 들으며 호는 어깨를 으쓱였다. 뭐, 어떻게 보면 잘 된 일이었다. 그 탓에 자신은 별로 채굴되지 않은 깨끗한 마정석 광산을 얻을 수 있었으니까. 호가 자신의 이야기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하자 브로리는 계속해서 말을 이어나갔고, 며칠 뒤 호와 브로리는 해머스의 경계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그리고 베코바와 해머스의 경계에 있는 한 마을에 들어서는 순간 호의 얼굴이 딱 굳었다. 전혀 예상치 못한 장면들이 호의 눈에 들어오고 있었다.

“시체다.”

사방에 널려 있는 시체들을 본 브로리가 재빠르게 말에서 내려 시체에게 다가갔다. 다양한 종족들이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죽어 있었다. 개 중에는 짐승에게 물어뜯긴 것 같은 끔찍한 모습으로 죽어 있는 시체도 있었다.

“……몬스터.”

“몬스터?”

호가 브로리의 중얼거림을 듣자마자 물었다. 영토 순찰을 떠나기 전 디아린에게 들었던 보고가 번개처럼 호의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설마 림드 산맥의 몬스터가?!”

호의 말을 듣던 브로리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아마도 틀림없다. 이 상처는 코볼트의 이빨에 난 상처다. 무턱대고 마을을 공격한 것은 아니다. 뜯어 먹힌 시체도 있지만, 대다수의 시체가 멀쩡한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는 게 그 증거지.”

“빌어먹을!”

디아린의 말에 의하면 오우거들의 지배를 받는 몬스터들로 인해 림드 산맥과 경계를 맞대고 있는 엘프 왕국의 영지가 고통으로 신음하고 있다고 했다. 안타깝긴 하지만 그런 몬스터들의 습격이 엘프 왕국만의 일이기만을 바랬는데, 그게 아닌 모양이었다.

그리고 몬스터들의 발자국들을 살펴보던 브로리가 심각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몬스터들이 북쪽으로 행군한 것 같다. 커다란 발자국을 보니 오우거도 끼어 있는 것 같군.”

“이러고 있을 시간이 없겠어.”

호의 입에서 다급한 목소리가 흘러 나왔다. 지도에 따르면 북쪽에는 해머스가 있었다.

“지금 당장 해머스로 이동할 준비를 한다! 정예 실리스들은 지금 당장 출발하고!”

브로리가 소리쳤다. 바로 옆에 호가 있었지만 계급을 따질 겨를이 없는 모양이었다. 그리고 호의 고개가 끄덕여지자 휙휙 거리는 소리와 함께 정예 실리스들이 마을의 시신들을 넘어서 숲 속으로 사라지기 시작했다.

뛰어난 정찰병인 정예 실리스들이라면 현재의 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해서 보고를 할 터였다. 몬스터들이 침입했다는 사실에 엘븐 템플러들의 움직임도 분주해졌다.

“수는 얼마나 될 것 같지?”

호가 브로리를 보며 물었다.

“그건 알 수 없다. 몬스터들의 수를 파악하기엔 죽어 있는 시신의 수가 너무 적어. 발자국도 너무 난잡하게 나있어서 정리를 하는 게 쉽지 않다.”

“…….”

다만 이 마을을 공격했던 몬스터들이 야생 고블린과 코볼트, 놀, 오크와 같은 소형 몬스터들이 주축이 되었다는 건 쉽게 예상할 수 있다.“

“그래? 그렇다면 단순히 마을을 공격한 게 아니라 누군가의 명령을 받고 있다는 게 확실하군.”

호는 그렇게 결론을 내렸다. 그렇지 않다면 다양한 종족들이 한데 모여 마을을 공격할 리가 없었다. 엘프들의 영지에서 난동을 부렸다던 림드 산맥의 오우거들이 틀림없었다.

“음. 그 의견에는 나도 공감한다. 하지만 이상한 점이 있다.”

외모와는 달리 전투 경험이 굉장히 많은 브로리는 몬스터들의 공격에 폐허가 되어버린 마을의 흔적을 보며 많은 정보를 알아내고 있었다.

“이상한 점?”

브로리가 손을 들어 어느 한 부분을 가리켰다. 호의 시선이 브로리의 손가락을 타고 이동했다. 브로리가 가리킨 땅바닥에는 수레가 지나간 것으로 생각되는 일자 모양의 자국이 길게 땅바닥에 패여 있었다.

“저건……?”

평소였다면 아무렇지도 않게 단순히 수레가 지나갔나? 라고 생각했을 터였다. 상단은 아니었다. 지금은 몬스터들이 침입한 상황이었으니까. 하지만 자국을 자세히 보던 호는 곧 이상함을 느낄 수 있었다.

이 세계의 수레는 호가 살던 세계의 수레와 거의 흡사한 양 옆에 바퀴가 달린 형태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브로리가 가리켰던 자국은 세 줄이 그려져 있었다. 마치 거대한 세발자전거가 지나간 것처럼 말이다. 게다가 수레라고 짐작하기에는 땅바닥이 패인 깊이가 꽤 깊었다.

“뭐지?”

호가 눈살을 찌푸렸다. 무슨 자국인지 감이 오질 않았다. 이 마을을 침입한 몬스터들이 마을에서 약탈한 물품을 수레에 실고 자신이 예상치 못한 방법으로 끌고 간 게 아닐까하는 어이없는 생각도 들긴 했다.

하지만 건물 몇 개가 불에 탄 흔적만 남아 있을 뿐 몬스터들이 금붙이들을 약탈한 흔적은 전혀 남아 있지 않았다.

그리고 브로리가 의아한 목소리로 물었다.

“너 마족의 소환자가 아니었던가? 왜 마족이? 혹시 사이가 안 좋은 마족이라도 있는 건가?”

“……응?”

브로리의 난데없는 질문에 호는 멍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마족에 적이 있다니? 질문의 의도가 무엇인지를 파악할 수 없었다.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가 없군. 갑자기 나와 사이가 안 좋은 마족이라니?”

자신과 친분이 있는 마족이라곤 페릴 예노스와 멜리아 비쉬 밖에 없었다. 사이가 아주 좋다고는 장담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나쁜 것도 아니었다.

더군다나 자신은 멜리아 비쉬의 호감도 퀘스트도 발동시킨 상황이었다.

게다가 이 세계에 온 3년 동안 호가 마주한 마족의 영웅이라곤 그 둘을 제외하고는 볼 붸르니체스와 그의 휘하에 있는 나자르 T 스테르 밖에 없었다. 만마의 지배자라 불리는 쉐르난비체도 있었지만 그녀는 선택의 신전에서 있었던 때를 제외하고는 털 끝 하나도 보지 못했다.

그런 호의 반응에 브로리는 심각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저 바퀴자국은 공성 병기의 바퀴 자국이다.”

“공성 병기? 아, 그렇군. 그런데 갑자기 왜 공성 병기가……. 어?! 어라라?!”

자국이 난 방향으로 호의 고개가 번개같이 돌아갔다. 그리고 잠시 자국을 바라보던 호는 거대한 무언가에 얻어맞은 것 같은 띵 하는 느낌이 들었다.

‘어떻게 된 거지?’

자국을 보는 호의 눈동자가 위 아래로 크게 떨리고 있었다. 숨이 턱 막혀왔다. 브로리가 왜 그런 말을 꺼냈는지 이해가 되었다. 이제야 생각이 났다.

“이제 뭐가 문제인지 알 수 있겠지?”

“마족의 공성 병기가 어째서?!”

저 자국은 자신이 가상현실 게임 리그너스 대륙전기를 플레이하면서 종종 봤던 자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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