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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그너스 대륙전기-146화 (146/522)

# 146

리그너스 대륙전기 146

“저, 저희들의 힘만으로는 엘프들의 영지를 차지하는 게 힘듭니다.”

칼타스가 힘겹게 말을 꺼냈다. 마장기가 없어도 일곱 종족이 차지하는 영토에는 그들의 병사들이 주둔하고 있었다. 그 수는 몇 안 되는 오우거들이 당해낼 수 있을 정도가 아니었다.

“그런가? 이거 아쉽군.”

칼타스의 말에 상대는 살짝 미간을 찡그러고는 말을 이었다.

“말했듯이 난 능력이 있는 녀석을 굉장히 좋아해. 왜 자네 같은 오우거가 이 조그마한 산맥에 만족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도와주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군.”

“다, 당신이요? 조, 죄송합니다!”

말을 하던 칼타스는 재빠르게 고개를 숙였다. 상대는 자신이 함부로 말을 할 수 없는 존재였다.

“여기가 새크라손도 아닌 만큼 과하게 행동할 필요는 없다.”

오우거보다 더 큰 덩치를 자랑하는 뿔을 지닌 존재가 이빨을 드러내었다. 그 모습을 보며 칼타스는 터져 나오려는 기쁨을 간신히 억눌렀다.

“내가 직접 병사를 지원할 수는 없다. 하지만 림드 산맥의 몬스터들이 자네의 말을 들을 수 있도록 직접 힘을 써주겠다.”

“쿠, 쿠흐흐!”

“그들을 데리고 엘프 왕국과 마족의 영토를 공격해 너의 영지를 만들도록 해라.”

상대의 말을 들으며 자신의 야망을 이룰 수 있다는 생각에 기뻐하던 칼타스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상대의 입가에 걸려 있는 잔혹스러운 미소에 칼타스는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자신을 찾아온 존재가 떠난 지 이틀 뒤, 칼타스는 자신의 말을 듣는 림드 산맥의 몬스터들을 이끌고 엘프들의 영지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엘프 왕국의 영지에 몬스터들의 난동이 벌어지기 일주일 전에 일어난 일이었다.

* * *

“우, 우와아악?!”

검은색의 피부를 지닌 다크엘프, 진 카라얀의 입에서 놀란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어둠이 내리듯 검은 기운이 회오리처럼 카라얀을 몸을 타고 흐르는 모습을 보며 브로리가 말했다.

“신기한 광경이로군.”

말을 마친 브로리는 호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베코바에 도착하자마자 진 카라얀을 만난 그는 엘븐 템플러를 통해 진 카라얀이 좋아할 거라는 아이템들을 가져오기 시작했다.

‘이게 다 어디에 쓰는 물건들이지?’

그런 아이템들을 보며 브로리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었다. 그중에는 다크엘프인 진 카라얀이 좋아하기에는 의외인 물품들도 몇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브로리의 생각과는 달리 의외로 진 카라얀은 호가 건네준 아이템을 보며 뛸 듯이 기뻐했다. 그리고 기뻐하던 진 카라얀에게 갑자기 어둠의 내리기 시작한 것이다.

잠시 후, 검은 기운이 사라진 진 카라얀의 모습은 아까 전과는 조금 달라져 있었다. 광택제라도 바른 듯 피부가 좀 더 매끈해졌고, 키도 살짝 커졌다. 전신에서 풍기는 분위기도 조금 달라졌다.

“호오.”

브로리의 입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아까 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존재감이 느껴지는 것이 브로리는 진 카라얀이라는 다크엘프가 성장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어?!”

순간 브로리의 머릿속으로 설마라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방금 전 다크엘프 진 카라얀이 겪은 것이 창조신의 권능 중 하나라는 어둠의 축복과 흡사하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직접 본 적은 없었지만 방금 전 어둠이 진 카라얀을 휘감았던 모습은 브로리가 전설로만 듣던 이야기와 똑같았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전설에 의하면 어둠의 축복을 받은 존재는 자신의 격이 상승했다고도 했다.

‘소환자는 어둠의 축복을 사용할 수 있는 건가?’

호를 보며 브로리는 짐짓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호에게 이런 능력을 있을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던 그녀였다.

만약 소환자가 자유자재로 창조신의 권능을 사용할 수 있다면 리그너스 대륙은 큰 혼란에 빠질 터였다.

“……어둠의 축복?”

“그렇다. 방금 전 진 카라얀에게 행해진 것이 어둠의 축복이다. 창조신만의 권능이지. 다른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했지만 분명 어둠의 축복이 틀림없어. 그 결과로 저 다크엘프는 상당한 성장을 했다.”

“아아.”

브로리의 말에 호는 나지막한 탄성을 내뱉었다. 브로리가 말한 어둠의 축복이라는 건 아마 승급을 말하는 게 분명했다. 그러고 보니 에스트라다에서 리젤 칼리노를 승급시켰을 때는 브로리가 옆에 없었다.

엘 아르윈을 승급시켰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 모습을 본 것은 아스트리드 벨 뿐이었다.

브로리를 바라보던 호의 머리가 살짝 기울어졌다. 승급에 대해 관심을 가진 이는 브로리가 처음이었다. 영웅을 승급시킨 게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지만, 당사자들은 그런 사실에 대해 딱히 의문을 가지거나 이상함을 제기하지는 않았었다.

오히려 자신이 성장했다는 사실에 감사하다는 표현만 했었다.

“고맙습니다. 영주님. 좀 더 영주님의 힘이 될 수 있겠군요.”

눈앞에서 C등급의 영웅이 된 청년 다크엘프인 진 카라얀처럼 말이다. 그리고 진 카라얀에게 고개를 끄덕여준 호는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방금 전의 상황이 내 지식에서 나온 것은 맞지만 어둠이 축복이라는 창조신의 권능은 아니야. 일단 신의 권능을 사용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말이 될 수가 없잖아? 그랬다면 이제껏 이 세계에 소환된 소환자들이 가만히 있을 리가 없겠지.”

“흐음. 그거야 그렇다만. 생각해 보니 소환자가 이 세상에 등장한 지 제법 시간이 흘렀음에도 자네와 같은 능력을 보였다는 소환자는 들어본 적이 없군.”

호의 말에 브로리가 고개를 주억였다.

“그리고 방금 전과 같은 상황을 만들기 위해서는 나도 엄청난 대가를 치러야 한다고.”

“그런가?”

여전히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는 브로리의 모습을 보던 호는 고개를 돌리고는 깊게 숨을 내뱉었다. 웃음을 참기 위해서였다. 굉장히 심각한 고민을 하는 것 같은 브로리의 모양새가 꼬마아이가 어른 흉내를 내고 있는 모습과 흡사했기 때문이었다. 그 모습이 귀여워도 너무 귀여웠다.

“혹시 짐승신의 축복도 내릴 수 있는 건가?”

“힉?!”

갑자기 고개를 홱 돌려 자신을 바라보는 브로리의 모습에 그녀를 향해 아빠 미소를 짓고 있던 호가 짤막한 비명을 내질렀다. 다행이도 그녀는 아무 것도 눈치 채지 못한 것 같았다.

“아? 짐승신의 축복?”

고개를 갸웃하던 호가 짝하고 박수를 쳤다.

브로리가 말한 짐승신의 축복이 무엇인지 쉽게 짐작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마 브로리는 방금 전 진 카라얀의 경우처럼 자신과 같은 수인 영웅도 승급시킬 수 있는 지 궁금해하는 게 분명했다.

“물론이지. 이미 에스트라다에 그 결과가 있을 텐데?”

“리젤 말이로군!”

호의 말을 들은 브로리의 눈동자에는 놀랐다는 기색이 역력했다.

“갑자기 크게 성장했기에 내가 일을 많이 시킨 까닭에 각성했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군.”

“…….”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브로리의 행동에 호는 에스트라다에 있는 두 여인을 떠올렸다. 아마 지금쯤이면 그들은 축배를 들며 자신의 자유를 즐기고 있을 터였다.

신윤아도 그렇고 리젤도 에스트라다에서 홀로 꽤나 고생을 한 모양이었다.

거기에 큼지막한 눈망울로 자신을 바라보던 웃소의 모습도 떠올랐다. 생각해 보니 F등급에 불과한 웃소를 승급시키지 않고 그냥 베코바로 와버렸다.

“그렇다면 나에게도 짐승신의 축복을 내려줄 수 있는가?”

브로리가 호의 눈치를 보며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전설로만 전해져 내려오는 창조신의 축복은 리그너스 대륙에 사는 존재라면 누구나 꿈꾸고 원하는 축복이었다. 자신의 격이 한 단계 상승하기 때문이었다.

그것을 원하는 것은 브로리도 마찬가지였다. 호를 바라보는 그녀의 심장이 크게 뛰기 시작했다.

“불가능하지는 않아.”

“저, 정말인가?!”

그리고 이어진 호의 대답에 브로리가 번개 같이 호의 옷자락을 잡았다. 흥분으로 인해 브로리가 몸을 떠는 모습이 호의 눈에 들어올 정도였다.

‘승급이라는 게 이 세계의 존재들에게 이렇게나 간절한 거였던가?’

호는 이런 브로리의 반응이 새삼스러웠다. 게임 속에서는 알 수 없었던 사실이었기 때문이었다.

가상현실게임인 리그너스 대륙전기에서는 유저가 승급을 시킨다고 해서 딱히 반응을 보이는 영웅은 없었다. 하물며 이 세계에 와서도 딱히 승급에 대해 관심을 보이는 이도 보지 못했었다.

물론, 자신이 아이템을 통해 이 세계의 영웅들을 승급시킬 수 있다는 사실을 아는 인물도 몇 되지 않았다. 그리고 호는 이를 잘만 이용한다면 언젠가는 도움이 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찌되었던 지금은 이렇게 큰 기대감을 보이는 브로리를 실망시켜야만 했다. 아쉽게도 말이다.

“나, 나! 나도! 나도 짐승신의 축복을 받고 싶다!”

“우쭈쭈. 자, 심호흡. 후-하. 후-하. 이렇게 따라해 봐.”

흥분으로 인해 얼굴이 붉어지다 못해 새빨개진 브로리를 향해 호는 보란 듯 자신의 양팔을 올렸다 내리며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내쉬기를 반복했다.

“후우. 하아. 후우. 하아.”

말 잘 듣는 어린아이처럼 자신이 시키는 행동을 그대로 따라하는 브로리의 모습을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지켜보던 호는 짐짓 안타까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니까 짐승신의 축복을 받고 싶다고?”

“그렇다!”

“뭐, 마음 같아서는 나도 해주고 싶은데 어쩌지? 지금 당장은 불가능해.”

호의 말에 브로리의 표정이 급속도로 시무룩해졌다. 오늘따라 그녀의 얼굴에서 꽤나 다양한 모습이 보여 지고 있었다. 뭐, 어쨌든 브로리에게 지금 당장 승급이 불가능한지에 대한 이유를 알려줘야 했다.

“너도 진 카라얀의 경우를 봐서 알겠지만 내 지식에 의하면 그러니까 니가 말하는 축복이라는 것을 내려주기 위해서는 몇 가지 아이템이 필요해.”

“구, 구해 오면 되지 않느냐?”

“그 필요한 아이템이라는 게 내가 원한다고 해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아이템은 아니라서 말이지.”

브로리의 승급 난이도는 D급 영웅인 진 카라얀의 승급과는 차원이 달랐다. 그녀는 호의 동료 중 가장 등급이 높은 영웅으로 무려 SS등급의 영웅이었다.

잠시 ‘관우는 내 여자’의 공략본을 열어 브로리의 승급에 필요한 아이템을 확인한 호는 역시라는 생각과 함께 실망감이 얼굴에서 뚝뚝 흐르고 있는 브로리를 바라보았다.

“그래도 최대한 구할 수 있도록 노력해 볼게. 그리고 아이템이 구해지면 꼭 짐승신의 축복을 너에게 사용해줄게.”

“알았다. 꼭 그래줬으면 좋겠군.”

고개를 끄덕이는 브로리의 모습을 보며 호는 미소를 지었다. 이제는 세상에는 공짜란 없다는 것을 알려줄 차례였다.

“대신 조건이 있어.”

호의 말에 브로리의 귀가 쫑긋 움직였다.

“뭐지?”

“절대로 나를 배신하지 않을 것.”

먼 나중이라면 모르겠지만 지금 당장 호에게 있어 브로리는 로우덴과 함께 꼭 필요한 영웅 중 한 명이었다. SS라는 높은 등급과 함께 영지 제일의 무력 수치를 보유했고, 개인용 마장기까지 보유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탓에 호는 그녀가 자신의 곁에서 떠나는 일 만큼은 막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녀의 마음에 자신의 이름을 새기는 오너 시스템을 사용하거나 호감도 퀘스트를 클리어 해야 했다. 하지만 당장으로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리고 그런 호의 말에 브로리가 낄낄 웃으며 말했다.

“그건 어렵지 않지.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난 너를 떠날 생각이 없다. 어찌되었든 내 힘이 필요한 일이라면 최선을 다해 도와주겠다.”

그 대답에 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한 마디를 덧붙였다.

“하나 추가할게. 나를 위해 최선을 다해 줄 것. 내가 시키는 것은 뭐든지 하는 거다?”

“……알았다.”

호의 얼굴에 만족스러운 미소가 지어졌다. 그 정도면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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