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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그너스 대륙전기-143화 (143/522)

# 143

리그너스 대륙전기 143

“그러니까…….”

디아린의 보고는 계속해서 이어졌고, 호는 간간히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의 말을 듣기 시작했다.

그녀의 말에 따르면 토갈론 요새의 북쪽, 그러니까 림드 산맥 서쪽에 위치한 엘프 영지들이 오우거의 지시를 받는 몬스터들의 공격에 신음하고 있다고 했다.

벌써 두 개 이상의 군소영지들이 불타올랐고, 그 피해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고 했다. 엘프 왕국의 C등급 마장기인 세비트리와 B등급 마장기 윈드라이더까지 몬스터를 토벌하기 위해 출진했다고 하니 상황이 꽤나 심각한 모양이었다.

“무서운 녀석들일세.”

몬스터들의 준동은 리그너스 대륙전기를 플레이하는 유저라면 종종 보는 이벤트였다.

영토 내의 던전을 토벌하지 않을 경우 생겨나는 이벤트로 대부분 영웅들의 성장과 유저들에게 다양한 자원 및 아이템을 안겨다주는 레벨 업 이벤트였다. 하지만 지금 엘프 왕국이 겪는 고난처럼 조직적으로 무섭게 공격할 때도 있었다.

‘이거 하마터면 큰일 날 뻔했는데? 그 녀석들이 림드 산맥의 서쪽인 엘프 왕국이 아닌 우리 쪽을 공격했다면…….’

한편으로는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자신의 영지는 서쪽의 림드 산맥과 남쪽으로는 바리안스의 대지에 있는 수인들과 경계를 만들어주는 험준한 산맥인 카릴프트 산맥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만약 림드 산맥의 몬스터들이 엘프들의 영지가 있는 서쪽이 아닌 자신의 영지가 있는 동쪽으로 공격 방향을 잡았다면 정말 큰일이었을 게 분명했다.

하물며 림드 산맥 가까이 있는 도시들인 킬리드나 해머스는 아직 제대로 된 방비체계를 갖추지 못한 도시들이었다.

“엘븐 템플러 삼천씩을 킬리드와 해머스에 배치한다.”

“힘들겠지만 시진이는 병영의 엘븐 템플러 양성에도 신경을 써줬으면 해.”

“알겠어요, 오빠.”

갑작스러운 몬스터들의 준동은 호에게도 경각심을 안겨다주었다.

곧 병력들이 킬리드와 해머스에 배치되었고, 두 도시에서는 방어 건물들이 최우선적으로 건설되기 시작했다. 그와 함께 호 또한 한 가지 준비에 들어갔다. 바로 영토 순찰이었다.

사실 호가 자신의 영토 순찰에 대해서 갑작스럽게 생각하고 결정을 내린 것은 아니었다. 여유가 있을 때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은 하고 있었었다.

‘다른 도시에 있는 영웅들의 충성심도 관리해야지.’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지는 법.

킬리드의 영주인 엘 아르윈 같은 경우는 오너 시스템으로 인해 영혼에 자신의 이름이 새겨진 탓에 특수한 이벤트가 벌어지지 않는 한 충성을 맹세하겠지만, 다른 영웅들은 그렇지 않았다.

당장 타 세력으로 붙을 만한 녀석이나 자신을 배신할 만한 인물은 없겠지만 그래도 꽃에 물을 주듯 관리를 해줘야 했다.

게다가 컹컹이와 같은 경우를 통해 호는 주점을 이용하지 않고도 자신이 직접 도시를 돌아다니며 새로운 영웅들을 찾아 등용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렇다면 분명 디르시나가 아닌 다른 도시에도 괜찮은 인재들이 있을 테고, 그렇게 호는 그들을 자신의 품으로 끌어안을 생각이었다.

자신이 명령을 내릴 수 있는 인재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았다.

“멍멍. 이틀 후에는 준비가 끝날 것 같습니다.”

“내가 없는 동안에는 시진이가 디르시나를 관리해줘. 그리고 벨이 보좌해주고. 영웅들이 부족한 만큼 사고는 종종 일어나겠지만 큰 문제는 없을 거야.”

“알겠어요.”

“알았어요, 오빠.”

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한시진이 불안해하는 목소리로 물었다.

“그런데 영토 순찰이라니. 꼭 지금 가셔야 해요? 그것도 혼자서…….”

이번 순찰에 호의 마장기인 키마라이와 함께 엘븐 템플러들로 이루어진 호위 병력들이 배치되기는 하지만 영 못미더운 모양이었다.

더군다나 디아린 상단을 통해 림드 산맥에서 몬스터들이 쏟아져 나온다는 보고도 있었으니 그럴 만도 했다.

“일단 마장기가 있으니까 큰 일이 있더라도 한 몸 빼는 것은 어렵지 않을 거야. 게다가 어디 멀리 나가는 것도 아니고 우리 영토를 순찰하는 거라고.”

“그래도, 꺅!”

마치 강가에 내놓은 아이처럼 불안한 표정으로 자신을 쳐다보는 한시진의 시선을 느낀 호는 그녀의 머리를 세차게 헝클었다.

“내가 애도 아니고. 그런 표정은 건방진데?”

“우우. 그래도 불안하잖아요. 오빠의 존재가 우리에게는 얼마나 중요한데요. 차라리 오빠. 제가 같이 갈까요? 디르시나 관리는 벨한테 준비시켜도 되잖아요.”

같이 가자고 한마디를 건네면 당장이라도 마장기를 준비할 것 같았다.

“아, 그건 안 돼. 디르시나는 지금도 인력이 부족하다고. 게다가 내가 영지 순찰을 떠나는 것은 타 영지에 있는 동료들을 관리하는 편은 우리 영토의 발전에 필요한 동료들을 찾기 위해서라고. 몬스터들을 토벌하고 누군가와 싸우려는 게 아니야.”

“……그런가.”

실망스럽게 고개를 숙이는 한시진의 모습에 호는 어색한 표정을 지었다.

이틀 후, 로우덴이 말했던 대로 영토 순찰 준비가 끝이 났다. 마장기 키마라이를 비롯해 A랭크 보병인 엘븐 템플러 이천이 함께했다.

단순한 영토 순찰에 비하면 과한 무장이었다. 하지만 몬스터들이 준동이 계속되고 있는 만큼 혹시나 하는 위험은 대비해야만 했다.

뿌우우! 뿌우우!

디르시나의 성벽에서 나팔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출발을 알리는 나팔소리였다. 그와 함께 여기저기서 다양한 소리가 들려왔다.

“다크 엘프의 휘파람 소리로군요. 소중한 이를 배웅할 때 내는 소리라고 들었습니다.”

“인간들의 행운의 나팔이라는 노래입니다. 여행자의 안전을 기원하는 노래지요.”

이번 일행에서 가장 가까이에서 호를 경호하는 역할을 맡은 엘븐 템플러 둘이 번갈아가며 말했다.

긴장된 모습, 흥분한 모습, 호기심이 가득한 모습 등 디르시나를 떠나는 엘븐 템플러들은 각자 다양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목적지는 에스트라다다.”

호는 가장 먼저 브로리 발란스를 만날 생각이었다. 자신의 휘하에 있는 영웅 중 가장 클래스 등급이 높은 영웅이 바로 브로리였다. 그만큼 신경도 많이 써줘야 했지만 상황이 상황이었던 데다가 쓸 만한 인재도 부족한지라 호는 그녀를 등용하자마자 에스트라다로 보내야만 했다.

그리고 현재 그녀는 지금 에스트라다의 성주로 수인족의 도발을 막아내고 있었다. 어쨌든 리그너스 대륙전기를 알고 있는 자신과 같은 세계에서 온 소환자인 윤아를 붙여 놓기는 했지만 딱히 마음이 놓인다거나 그러지는 않았다.

호가 보기에는 신윤아 또한 아무것도 모르는 애송이에 불과했다. 흘깃 호의 시선이 뒤쪽에 있는 수레에게 향했다.

크지 않은 수레에는 다양한 약초와 엘븐 템플러들과는 어울리지 않는 조그마한 장비 아이템이 실려 있었다. 자신의 명령에 따라 디아린 상단이 구해온 D등급 영웅인 리젤의 승급에 필요한 아이템이었다.

* * *

“에스트라다에 오신 것을 환영해오, 호 님. 마는 사람들이 조아하고 이써요. 리젤도 조아오.”

에스트라다에 도착한 호를 반긴 것은 바로 리젤이었다. 브로리가 아닌 리젤이 영주성의 집무실에 있다는 것에 호는 조금 당황스럽긴 했지만 그래도 바로 리젤을 바라보며 말했다.

“혼자서 영주성을 지키고 있는 거야?”

호의 물음에 리젤의 얼굴이 새카맣게 변했다. 그 모습에 호는 자신의 질문이 뭔가 잘못되었던가 라고 다시 생각해 볼 정도였다.

“네. 무서운 노란색 꼬리 원숭이 싸우러 가써오. 무시무시해오. 리젤보다 야칸 인간 여자 맨날 가티 가오.”

“…….”

“리, 리젤도 간 적 이써오.”

바들바들 몸까지 떠는 리젤의 모습에 호는 머리를 긁적이며 에스트라다의 영주인 브로리 발란스를 떠올렸다.

대체 리젤에게 어떻게 행동을 했기에 리젤이 이런 모습을 보이는 지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브로리를 도와주라고 보냈던 윤아가 왜 자신에게 아무런 연락이 없었는지도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제법 성장했겠는데?’

리그너스 대륙전기에서 가장 빠르게 유저의 능력을 올릴 수 있는 방법은 전투를 통한 경험치 획득이었다. 리젤의 말대로라면 신윤아는 브로리와 함께 매번 소규모 교전을 함께했었을 테니 능력치의 상승도 꽤나 있을 게 분명했다.

“그 여자 맨날 울어오. 그, 그저께는 비명도 질러써오.”

뒤이어진 리젤의 말에 호는 윤아에 대해 조금 안쓰러운 느낌도 들었지만 그래도 얼마나 성장했는지 제법 기대가 되고 있었다.

“브로리는 언제쯤 성으로 돌아오지?”

“음.”

이마를 살짝 찡그린 리젤이 고개를 두어 번 끄덕였다. 그 모습에 제법 귀여웠기에 호는 하마터면 리젤의 얼굴에 손을 뻗을 뻔했다.

“아마 내일 모레면 올 거에오.”

“그래.”

리젤의 말에 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에스트라다를 돌아다니며 새로운 영웅들을 찾을 생각이었던 터라 이틀 후에 브로리를 만난다 해도 큰 상관은 없었다.

“그러고 보니 리젤. 필요한 게 있었지?”

“필요한 거? 리젤은 영주님에게 필요한 게 엄서오.”

고개를 갸웃거리는 리젤의 모습에 호는 웃으며 문 쪽을 바라보았다. 엘븐 템플러들이 몇 개의 아이템을 들고 오고 있었다. 그리고 아이템을 바라보던 리젤이 의아한 표정을 짓다가 눈동자가 점점 세차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눈동자뿐만이 아니었다.

그녀의 기다란 꼬리도 바닥을 쓸 기세로 움직이고 있었다.

“우, 우와아아아! 개다래나무!”

마치 다이빙을 하듯 흥분한 리젤이 개다래나무 아이템에 달려들었다.

“이것도 가지고 놀아봐.”

이어서 리젤의 전직에 필요한 아라크네의 털뭉치를 건네주던 호가 화들짝 손을 뒤로 뺐다.

개다래나무의 등장에 흥분한 리젤이 이성을 잃고는 손톱을 빼냈기 때문이었다. 결국 호는 멀찍이서 리젤을 향해 아라크네의 털뭉치를 휙 던져줘야만 했다.

결론만 말하자면 리젤은 승급에 성공했다. 뭐, 애당초 승급에 필요한 아이템만 준비되면 승급 자체는 100%성공하는 만큼 호는 리젤의 승급에 대해 딱히 걱정 자체를 하지 않았었다.

다만, C등급 클래스로 승급하면서 높은 확률의 일반 클래스냐 낮은 확률의 레어 클래스를 획득하느냐의 차이가 있을 뿐이었다. 당연히 일반 클래스보다는 레어 클래스가 능력치나 스킬에 대한 보너스가 있었다.

하지만 그 차이가 넘사벽으로 크지는 않았기에 굳이 레어 클래스의 전직에 목을 맬 필요도 없었다.

그리고 운이 좋게도 리젤은 20%의 확률로 획득할 수 있는 C등급 레어 클래스 ‘주문술사’의 전직에 성공할 수 있었다. 그리고 주문술사로의 전직에 성공한 리젤은…….

“히, 히끅! 히끅! 죄송해오. 자…… 잘못했어오. 리젤 용서해 주세오!”

호의 얼굴에 난 상처를 보며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아아. 괜찮아.”

“그, 그래도 살려주세오. 리젤 오래 살고 시퍼오. 오크들에게 끌려가기 시러오!”

“쿨럭.”

리젤의 대답에 호는 황당한 표정을 지으며 쩝 하고 입맛을 다셨다.

어쨌든 개다래나무의 효과는 고양이뿐 아니라 묘인들에게도 엄청난 영향을 미치는 모양이었다. 결국 흥분한 리젤에게 얼굴이 살짝 긁혔으니 말이다.

조금 따끔거리기는 했지만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나을 상처였다. 신경이 쓰인다면 치료 마법이 가능한 엘븐 템플러를 불러 마법을 시전하면 그만이었다. 그리고 리젤은 여전히 호를 바라보며 잘못했다는 의미로 손바닥을 비비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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