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0
리그너스 대륙전기 140
‘놀이라…….’
다양한 종족들이 디르시나에 거주하고 있었지만, 놀은 그중에서도 수가 적은 종족 중 하나였다.
주위를 둘러보자 많은 수의 몬스터들이 눈에 들어왔다. 아마 이 지역은 마족 영지민들에게 건설 임무를 맡은 지역인 것 같았다.
“목숨을 구해줘서 고맙다.”
호가 조용히 말하자, 자리에서 일어난 놀이 손사래를 치고는 코를 슥 훑었다.
“컹컹. 아닙니다. 다른 영지민들도 저와 똑같은 행동을 보였을 겁니다. 영주님은 우리들에게 알르드를 만들어 주신 분이니까요.”
“알르드? 아아…….”
호는 탄성과 함께 고개를 두어 번 끄덕였다. 알르드. 쉽게 설명하자면 유토피아를 가리키는 리그너스 대륙의 말이었다. 디르시나 아니 림드 산맥에는 다른 세력의 땅에서는 결코 어울릴 수 없는 다양한 종족들이 함께 살고 있었다. 그리고 눈앞의 놀은 이를 말하는 것 같았다.
“음음.”
호는 고맙다는 의미로 다시 한 번 고개를 끄덕어 보였다. 그러고는 눈앞의 놀을 바라보았다. 평범한 놀 치고는 분위기가 조금은 다르게 느껴졌다. 뭐랄까, 산전수전 다 겪은 인물 같았다.
“이름이 뭐지?”
호는 말을 내뱉고는 곧 이마를 찌푸렸다. 생각해 보니 굳이 묻지 않아도 정보창을 통해서 알아낼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호의 손이 천천히 허공을 그리기 시작했다.
“컹. 영주님께 제 이름을 알려드릴 수 있어서 영광입니다. 제 이름은 컹컹이입니다.”
놀이 영광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하지만 놀의 대답을 들은 호는 대답에 어울리지 않는 심각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영웅 정보(Status)>
1. 이름 : 컹컹이
2. 성별 : 남(11)
3. 종족 : 놀
4. 소속 : 없음
5. 레벨 : 272
6. 직업 : 오우거 슬레이어(A)
7. 세부능력
통솔 : 242 / 300(A)
무력 : 271 / 300(A)
지력 : 126 / 200(B)
정치 : 131 / 200(B)
매력 : 57 / 100(C)
8. 특성 : 끈질긴 생명, 침착함, 기회를 보는 눈
9. 스킬
<강하게 한 방> A랭크.
빛나는 황금 도끼를 든 놀은 전투 중 언제나 기회를 노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기회를 잡는 순간 놀은 상상할 수 없는 위력으로 상대를 공격합니다.
-효과 : 상대방의 약점을 포착하고 기회를 잡는 순간 순간적으로 자신의 무력 수치를 100%상승시켜서 강력한 공격을 가합니다.
효과(2) : 보병을 지휘할 경우 휘하 부대의 공격력 수치가 5%상승합니다.
“…….”
눈앞에 나타난 능력치 창. 컹컹이라는 유치한 이름을 가진 눈앞의 영웅은 자신의 생각보다도 훨씬 대단한 녀석이었다.
“컹컹. 영주님?”
“아, 그래. 컹컹이. 좋은 이름이군.”
상태창에 정신이 팔려 있던 호는 퍼뜩 정신을 차리고는 의아한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컹컹이를 향해 대답했다. 그런 호의 대답에 컹컹이는 이빨을 드러내보이고는 자리에서 물러났다.
그런 컹컹이의 뒷모습을 보며 호는 고개를 갸웃했다. 딱히 놀을 무시하는 것은 아니지만 주인공의 영원한 밥이라던가 병사들에게도 죽어나가는 하급 몬스터가 놀이 아니던가? 그런 주제에 오우거 슬레이어라니. 거기에 A등급 영웅이었다.
전체적인 능력치는 조금 떨어질지 몰라도 현재의 등급만 놓고 보면 자신과 한시진보다 높았다.
‘아니, 잠깐만.’
호의 눈이 파르르 떨렸다. 생각해 보면 저 놀은 마족의 B등급 마장기인 키마라이를 조종할 수 있는 자격도 갖춘 것이다.
“괜찮으십니까?”
엘븐 템플러들이 다가와 물었다. 호는 괜찮다는 의미로 손을 든 후 사고 처리를 하는 인부들을 바라보았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한 마리의 놀, 컹컹이를 주시하고 있었다.
A등급 영웅. 자신의 영지에 저런 영웅이 말없이 생활하고 있다는 것에 대해서는 상상조차도 하지 못했다.
리그너스 대륙전기를 플레이했던 경험 때문일까?
영지를 찾아오는 영웅은 대부분 대형 주점에 모습을 드러내었고, 그쪽을 통해서 영웅을 고용한다는 게 기본적으로 호가 생각하고 있던 이 세계의 영웅 발견 및 등용 방법이었다.
이벤트를 통해 혹은 전쟁에서 포로로 잡아 혹은 오너 시스템이나 호감도 퀘스트를 통해 동료로 만드는 방법도 있기는 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특수한 경우에서만 벌어지는 일이었다.
“허억! 허억! 어라? 황금 놀 족이로군요.”
그런 생각을 하던 도중 옆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 왔다. 호가 고개를 돌려 보니 땅딸막한 난쟁이 한 마리가 자신의 수염을 쓰다듬고 있었다.
존스 홉킨스였다.
거친 숨을 내쉬며 숨을 가다듬는 것을 보니 사고가 일어났다는 소식에 재빠르게 달려온 것 같았다.
“황금 놀 족?”
“네, 그렇습니다. 리그너스 대륙의 남서쪽에 위치한 워레인지 산맥에 살고 있는 놀 족이지요. 세상에는 그리 잘 알려지지 않은 종족이죠.”
존스 홉킨스가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황금 놀이라는 희귀한 종족을 단숨에 알아차린 자신이 대단하지 않느냐고 말하는 것 같았다.
“놀 족의 기원에 의하면 황금 놀 족은 파신 그라엘의 피를 이어 받은 녀석들이라고 합니다. 뭐, 그럴 리는 없겠지만요.”
존스 홉킨스는 어깨를 으쓱이며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그래도 어느 정도 영향은 있는지 황금 놀 족은 놀 중에서도 가장 강력한 힘을 지니고 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게다가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황금 놀들은 성인식을 치를 때면 오우거의 뿔을 뽑아 와야 한다고도 알려져 있습니다.”
“오우거의 뿔을?”
“그렇습니다. 말 도 안 되는 얘기지요.”
말과 함께 존스 홉킨스가 용맹한 우리 드워프도 하지 못하는 걸 놀 주제에 라고 덧붙이는 소리가 호의 귀에 들려왔다.
하지만 호는 그 말에 신경을 쓸 수가 없었다. 아까 전, 자신이 컹컹이에 대한 정보를 살펴봤을 때 본 문구가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오우거 슬레이어.’
A등급 영웅인 컹컹이의 직업은 오우거 슬레이어였다.
* * *
“컹컹. 감사합니다. 영주님. 정말로 감사합니다. 최선을 다해 영주님의 일을 돕겠습니다. 컹.”
컹컹이의 등용은 어렵지 않았다.
다행이도 호에게 호의를 가지고 있었는지 컹컹이는 호의 등용 권유를 냉큼 받아들였다. 얼굴 가득 기쁨을 표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 조금이라도 더 일찍 그에게 함께 하자고 말을 하지 못한 게 미안하다고 생각될 정도였다.
“나는 자네의 능력을 높이 평가하고 있어. 자네에게는 서쪽의 마족 주거지구의 공사를 맡기겠네.”
“아, 알겠습니다! 영주님. 컹컹.”
“특히나 여기저기서 벌어지는 커다란 공사들로 인해 인부들의 사고가 많이 일어나고 있으니 거기에도 신경을 써주길 바란다.”
“컹컹. 영주님에게 걱정을 끼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얼굴 가득 환하게 웃고 있던 컹컹이가 곧 호가 내린 명령을 수행하기 위해 자리를 떠났다. 그런 컹컹이를 보며 호 역시 천천히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가 향하는 곳은 영지의 집무실이었다.
‘컹컹이의 경우처럼 내가 모르는 영웅들이 이 도시에 있을지도 모른다.’
우연스러웠던 컹컹이와의 만남은 호에게 있어서 정말로 행운이나 다름없었다.
요 며칠 디르시나의 문제로 인해 며칠 동안 제대로 잠도 자지 못하며 고심과 고심을 거듭했지만, 뾰족한 수가 없었었다. 하지만 이제야 그 방법을 찾은 것 같았다.
“디르시나에 거주하고 있는 숨겨진 영웅들을 직접 찾아봐야겠어. 라홀로프 상단에서 들여오는 노예들의 정보도 알아봐야겠군. 할 일이 많아지겠어.”
아스트리드 벨과 존스 홉킨스, 리아 캬베데와 로우덴은 이런 호의 계획에 다들 수긍했다. 특히 단 하루뿐이지만 꽤나 고생을 했다는 게 얼굴에 드러나 있는 리아 캬베데는 반색을 할 정도였다.
“컹컹. 마족 주거지에 있는 녀석들에게는 제가 말을 해 보겠습니다. 다들 영주님을 존경하고 있으니 실력에 자신이 있는 녀석들이라면 영주님을 찾아갈 겁니다.”
“멍멍. 라홀로프 상단의 노예들은 제가 살펴보겠습니다. 노예 중에서도 특출한 인물들이 있을지 모릅니다.”
그렇게 영지에서 일을 할 영웅을 뽑는 면접이 시작되었다. 한창 공사가 이뤄지는 와중에도 디르시나 여기저기에 벽보가 붙자, 많은 영지민들이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호 님께서 자신을 도와주실 친구를 찾으신대.”
“우리 엘프들 중에서도 한 명 나가야 되는 거 아니야?”
“누가 나가야 하지? 아! 알레인이라면 충분히 영주님도 눈 여겨 보실 거야!”
“놀 중에서 영주님의 일을 도와주시는 분이 있다며?! 우리 종족도 질 수 없다!”
알르드. 모든 종족들이 다투지 않고 서로 화합하며 살 수 있는 유토피아를 만든 영주인 호에 대한 영지민들의 관심은 상상 이상이었다.
비록 갑작스러운 영지 개발과 최근 많은 사건 사고가 일어나며 불만이 급상승하기는 했지만, 기본적으로 이제까지 쌓아놨던 신뢰가 있었다.
그리고 가장 먼저 호를 찾아온 이는 바로 40 대 후반으로 보이는 인간 남성이었다.
자신이 제법 힘깨나 쓴다며 찾아왔던 남자는 실망스럽게도 영웅이 아닌 일반인이었다. 그 후로 몇몇이 찾아오기는 했지만 다들 영웅이 아닌 일반인에 불과했다.
“이러면 곤란한데…….”
집무실에 찾아 있던 호는 인상을 찌푸렸다. 오전에만 여섯 명의 인물을 만났는데, 죄다 일반인들이었다. E등급 영웅만 되어도 어떻게든 등용하려고 했는데, 그 조차도 되지 못했다. 그래도 영지민들이 상당한 관심을 보이고 있다는 보고는 고무적이었다.
“그래도 한 명 정도는 등용할 수 있겠지?”
컹컹이와 같은 능력치는 바라지도 않았다. 호가 새로운 영웅들에게 바라는 것은 오직 하나였다. 디르시나의 대공사를 원만하게 끝내는 것 말이다.
E등급, 아니 F등급 영웅이라도 좋았다. 어차피 아이템을 이용해 승급 시키면 그만이었으니까.
승급에 필요한 아이템의 구입 역시 자신의 상단이나 다름없는 디아린 상단이 있기에 별다른 문제도 없었다. 하지만 오후가 지나 땅거미가 어둑해질 무렵까지 호는 단 한명의 영웅도 등용할 수 없었다.
“내가 너무 쉽게 생각했나? 하아, 그래. 주점에도 찾아오지 않는 영웅들이 이런다고 찾아올 리 없겠지.”
그래도 내심 어느 정도 이런 일이 있을 거라고는 예상하고 있었기에 딱히 엄청나게 실망스럽다거나 하지는 않았다. 아쉽기는 했지만 말이다.
자신이 정말 운이 좋아서 컹컹이를 등용했나 라는 생각이 호의 머릿속을 파고 들 때였다.
“큼큼.”
밖에서 익숙한 헛기침 소리가 들려왔다. 컹컹이 아니 로우덴이었다. 목이 긁히는 탁한 소리가 아닌 발랄한 목소리였다. 견인족과 놀. 굉장히 흡사하게 생기기는 했지만, 호는 충분히 그 차이를 구별할 수 있었다. 그리고 푹신한 의자에 몸을 기댄 호가 입을 열었다.
“로우덴. 들어오도록.”
“멍멍. 영주님과 함께할 인물들은 많이 만나셨습니까?”
호의 표정이 좋지 않아 보이자 로우덴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리고 호는 고개를 흔드는 것으로 답을 대신했다. 만나기는 많이 만났는데 쓸 만한 인물들이 없었다.
전부 이름과 종족밖에 정보가 보이지 않는 일반인들에 불과했다.
뭐, 그중에는 미의 여신이라는 수식어가 아깝지 않는 외모를 지닌 엘프나 가슴을 설레게 만드는 섹시함을 지닌 다크엘프도 있었다. 하지만 그들을 등용해봤자 도움이 될 건 하나도 없었다.
“노예들은 많이 살펴봤나?”
호가 물었다. 라홀로프 상단이 건네주는 노예들 중 특출한 인물을 찾아내는 것은 로우덴의 업무였다. 솔직히 어떤 대답을 기대한 것은 아니었다.
그냥 무의식적으로 생각 없이 툭 튀어나온 질문이었다.
디르시나의 영지민 중에서도 딱히 쓸 만한 인재가 없었는데 하물며 노예였다. 정말로 대단한 인재가 있었다면 애당초 노예가 되었을 리 없었다. 아니, 지금처럼 대량으로 묶여서 팔려올 리 없었다. 그리고 로우덴이 입을 열었다.
“멍멍. 영주님이 만나보셔야 할 인물이 있습니다.”
“음?”
그리고 전혀 예상하지 않은 대답에 호는 놀란 표정으로 로우덴을 바라보았다. 짙은 푸른색의 눈동자가 자신을 바라보며 깜빡이고 있었다. 무언가 일이 있었다는 생각에 호는 벌떡 몸을 일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