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9
리그너스 대륙전기 139
쿵! 쿵!
커다란 망치소리와 못질, 그리고 인부들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끄응 거리는 소리가 묘한 하모니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디르시나에서 본격적으로 대공사가 시작된 지 보름이 지났다. 도시는 마치 전쟁이 휩쓸고 간 것처럼 폐허가 되었고, 여기저기서 벌어지는 공사는 특성화 때문에 벌어진 공사가 아닌 복구공사로 보일 정도였다.
그리고 그런 공사를 직접 지휘하는 호의 표정은 꽤나 굳어 있었다. 심기가 좋지 않다는 게 멀리서도 느껴질 정도였다. 그때 멀리서 요란한 소리와 함께 먼지 구름이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띵동.
-사고가 벌어졌습니다.
-인부들의 피해가 발생했습니다. 다섯 시간 내에 사고를 수습하지 못하면 건설의 효율이 30%감소합니다.
“젠장! 사고다!”
눈앞에 나타나는 메시지를 구겨서 던져 버리고 싶은 욕구를 눌러 참은 호가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그러고는 전속력으로 사고가 일어났던 장소로 달리기 시작했다.
오늘만 벌써 세 번째 사고였다. 사고 현장에 도착하자 여기저기서 신음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제법 커다란 사고였는지 멀쩡하게 남은 건물이 거의 없어 보였다. 그나마 자신이 도착하기 전 누군가가 조치를 취했는지 피투성이가 된 십 여 명의 사람들이 누워서 치료를 받고 있었다.
호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주변은 난장판에 가까웠다. 미노타우르스들이 무너진 돌덩이들을 치우고 있었고, 오크들이 숨이 끊어진 노예들을 옮기고 있었다.
“빌어먹을!”
호의 입에서 욕설이 터져 나왔다. 도시 전체를 아우르는 대공사를 자신과 림드 산맥의 인원으로 진행한다는 것이 잘못된 생각이라는 것을 깨달은 것은 불과 며칠 전이었다.
“계속해서 일을 진행했다가는 건물이 늘어나는 것보다 묘비의 비석이 더 많이 늘어나겠어.”
영주성으로 돌아온 호가 짜증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오늘 하루 동안 디르시나에서 벌어진 사건 사고는 무려 여섯 건. 그중 영지민의 피해가 일어난 사고만 네 건이었다. 사망자만 무려 19 명. 결코 적지 않은 숫자였다. 나머지 두 건 역시 사망자만 생기지 않았을 뿐이지, 공사 현장에서 일어난 일이었다.
“인부들을 관리할 수 있는 관리자가 너무나 부족해요. 저와 다른 사람들이 신경을 쓴다 해도 그 한계가 있고요.”
몇 발짝 뒤에서 서 있던 아스트리드 벨이 지친 목소리로 고개를 저으며 말을 이었다.
“다들 안전 수칙에 맞춰서 공사를 알아서 진행하면 좋겠다만 관리가 쉽지 않아요. 여러 종족들이 함께 모여 있는 터라 트러블도 끊이지 않고요.”
“끄응…….”
호가 손으로 자신의 얼굴을 가렸다. 디르시나를 최고의 상업도시로 발전시켜 나가겠다는 포부는 어디론가 가고 없었다. 공사가 시작된 지 보름 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지금 디르시나의 분위기는 그야말로 최악을 달리고 있었다.
계속된 사건 사고에 주민들의 불안감이 빠르게 치솟고 있었고, 불평불만도 끊이지 않았다. 그뿐인가? 영지의 업무를 해결해야 할 호와 아스트리드 벨이 공사 현장에 투입된 까닭에 업무 처리도 제대로 되지 않고 있었다.
로우덴이 있기는 했지만 영지의 상황이 워낙 불안정한 까닭에 그가 일을 처리하는 속도보다 오히려 문제들이 더욱 빠르게 쏟아지는 판국이었다.
“후…….”
당연히 공사가 원활하게 돌아갈 리 없었다. 워낙 여기저기서 대공사가 벌어지는 터라 구역을 책임지고, 인부들에게 명령을 내리며 공사를 진행시켜야 할 관리자가 너무나도 부족했다.
한시진이라도 있으면 조금 상황이 나아졌겠지만 그녀는 군대를 이끌고 림드 산맥의 던전을 토벌 중이었다. 오히려 시현이 정예 실리스들과 함께 도시의 치안을 책임져야 했고, 리아 캬베데와 존스 홉킨스는 영지 기술 개발에 힘을 쏟아야 했다.
자신과 아스트리드 벨 이렇게 둘이서 현재 벌어지고 있는 대공사의 모든 것을 이끌어 나간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내정과 관련된 수치가 높은 것도 아니었고 그에 특화된 직업을 가진 건 더더욱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설령 내정이나 건설 쪽에 특기가 있는 직업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단 둘이서 영지의 공사를 진행하는 것은 무리였을 터였다. 그렇다고 다른 도시에 있는 영웅들을 부를 수도 없었다. 그 쪽의 상황도 디르시나와 크게 다르지 않을 테니까.
“근본적인 해결책이 필요해.”
“인재, 인재가 부족해요.”
벨이 중얼거렸고, 호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C등급 아니, D등급이라도 좋았다. 마을의 주민들을 통솔하고 안전하게 공사를 진행시킬 수 있게끔 만들어 줄 인재들이 필요했다. 호의 시선이 응접실 벽 한 면에 크게 그려져 있는 디르시나의 지도로 향했다. 지도는 붉은색과 파란색으로 원들로 뒤덮여 있었는데, 도시 내에서 벌어지는 공사 현장을 뜻하는 표시였다.
“최소한 열 명은 더 필요할 것 같은데…….”
“아뇨, 열 한명이면 더 좋겠어요. 무조건 한 명이라도 더 많아야 해요.”
얼굴이 창백하게 질린 아스트리드 벨이 말을 덧붙였다. 영지 공사도 중요했지만, 그녀는 최근 며칠간 영지 업무에 대한 일에도 전혀 신경 쓰지 못하고 있었다. 로우덴이 있기는 했지만, 그녀가 직접 처리해야 할 일도 적지 않았다.
그런 벨의 말에 호는 엘븐 템플러가 건네주는 펜을 받아 지도에 숫자를 휘갈겨 적기 시작했다.
“이대로 있다가는 정말로 영지가 망해버릴 지도 몰라. 이미 공사가 시작된 만큼 돌이킬 수도 없지. 어떻게든 급한 불은 꺼야 해. 연구 개발은 중지하고 리아 캬베데와 존스 홉킨스씨를 영지 공사에 투입시켜야겠어.”
연구의 진척에 손해가 있을 테지만 이대로 있다가는 죽도 밥도 되지 않을 것 같았다. 벌써 어마어마한 자금이 들어갔고, 라홀로프 상단을 통한 노예는 계속해서 디르시나로 유입되고 있었다. 여기서 영지의 특성화를 포기할 수는 없었다.
“……좋은 생각인 거 같아요.”
아스트리드 벨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눈을 가늘게 뜨며 호를 바라보았다. 디르시나의 대공사가 시작된 지 보름. 든든하게 보였던 호의 뒷모습이 조금 작아진 것 같았다.
* * *
“공사? 수인족들의 관리는 저한테 맡겨도 됩니다. 냥!”
“이런 공사쯤이야. 충분히 해결할 수 있습니다! 이 존스 홉킨스. 한때 공사판에서 이름을 날리던 드워프였습니다!”
연구 기술 개발 명령으로 인해 마법 연구소에 틀어박혀 있었던 두 남녀는 새롭게 내린 호의 명령에 자신만만한 표정을 지었다. 특히나 드워프인 존스 홉킨스는 홀로 디르시나의 모든 공사를 끝내겠다며 의욕을 불태웠다.
“크흐! 이 석재냄새! 벌써부터 온몸에 힘이 도는군! 공사 현장이여! 내가 돌아왔다!”
유저라면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제작, 건설, 수리에 특화된 드워프의 특성과 그런 드워프 종족인 존스 홉킨스의 자신감 때문일까? 호는 디르시나의 영지 공사가 조금은 편해지겠다는 생각과 함께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비록 영지 기술 연구가 중단된 것은 뼈아팠지만, 새로운 동료들을 얻을 때까지 지금 당장은 이렇게 버틸 수밖에 없었다.
“일단 시현이는 다시 주점으로 보내야겠어.”
바람의 무희라는 D등급 클래스를 지닌 시현은 영지를 찾아오는 영웅을 끌어들이는 데 특화된 클래스였다. 어차피 내정에 관련된 수치도 낮은 편이었기에 그녀가 제외된다 하더라도 크게 부담도 없었다. 치안 문제야 자신이 좀 더 신경을 쓰면 될 일이었다.
하지만 아스트리드 벨은 어쩔 수 없이 계속해서 공사 현장에 투입시켜야만 했다. 현재 상황에서 그녀가 빠지면 존스 홉킨스가 투입되었다 하더라도 똑같이 문제가 생겨날 게 뻔해 보였기 때문이었다.
어쨌든 새로운 영웅들을 동료로 얻을 때까지만 더 큰 문제없이 공사를 진행할 수만 있으면 되었다. 드워프인 존스 홉킨스도 합류했으니 전처럼 하루에 대 여섯 번이나 일어나던 사건 사고는 줄어드리라 생각되었다.
하지만 호는 이런 자신의 생각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바로 다음 날 깨달을 수 있었다. 영지 전체에서 벌어지는 공사를 드워프 혼자서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 게 잘못이었다.
“사, 사고다!”
어디선가 들려오는 우르릉거리는 소리와 함께 호는 헉하고 숨을 들이쉬었다. 발밑의 바닥이 미세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지진은 아니었다. 디르시나의 공사를 진행하면서 몇 번이나 느껴봤었던 느낌. 커다란 충격에 땅이 흔들리는 것을 알려주는 감각이었다.
“빌어먹을!”
존스 홉킨스와 리아 캬베데가 투입되었지만 벌써 네 번째 일어나는 사고였다. 드워프도 공사에 합류했는데 어째서?! 얼마나 큰 피해의 사고인거지?! 몇 명이나 다친 거야?! 여러 가지 생각이 동시에 치미는 와중에도 호는 반사적으로 앞으로 튀어나가고 있었다.
‘대체 얼마나 멍청한 거야?! 안전! 안전 모르냐고! 그렇게 사고가 많이 일어났는데 느낀 게 전혀 없냐고!’
비록 감독을 하는 인원이 없다 해도 하루가 멀다 하고 사고를 일으키는 영지민과 노예들이 원망스러웠다. 하지만 속으로 욕지거리를 내뱉는 것과는 달리 사고 현장으로 달려가는 호의 속도는 전혀 늦춰짐이 없었다. 자신에게는 디르시나의 영주로써 영지의 사고를 감독, 관리해야 할 책임이 있었다.
“부상자를 구해!”
“잔해부터 치워야 해! 조심해!”
역시나 사고 현장은 난장판이었다. 이번에도 꽤나 큰 사고였는지 상당수의 인부가 죽어나간 모습이었다. 시신들을 수습하는 영지민들의 표정에는 좌절이 가득 담겨 있었다. 그 모습에 호는 입술을 깨물었다.
“상황은 어떻지?”
대답을 듣기도 전에 호의 몸은 앞으로 향하고 있었다. 멍하니 사고 현장을 보고 있기에는 상황이 심각했다.
“먼저 잔해를 치우고 매몰된 영지민들과 노예들을 구조한다!”
“영주님 위험합니다!”
팔을 걷고 사고 현장으로 다가가려던 호를 향해 엘븐 템플러가 이상한 낌새를 눈치 채고는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 그런 엘븐 템플러의 경고는 곧 현실이 되었다. 우르릉하는 소리와 함께 2 차 붕괴가 시작되었던 것이다.
“읏!”
사고가 일어나려는 찰나 호는 자신의 어깨를 누군가가 깔아뭉개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차가운 금속의 느낌이었다. 고개를 힐끗 들어보니 마족의 몬스터로 추정되는 존재가 짧은 비명을 지르며 숨을 내뱉고 있었다.
“컹. 괜찮으십니까?”
“어?”
2 차 붕괴가 완전히 진정되고 나서야 호는 몸을 뒤로 젖힐 수 있었다. 그러고는 자신의 위험을 구해준 몬스터를 바라보았다. 얼굴을 고통으로 찡그린 모습이었지만, 그래도 다친 데는 없어 보였다.
‘놀?’
인간의 몸에 개의 머리를 가진 종족으로, 견인과 상당히 흡사한 외모를 지니고 있는 종족이었다. 두 종족의 차이점이라면 울음소리 정도? 리그너스 대륙의 견인들은 멍멍 거리지만 이들은 컹컹 하고 울었다.
뭐, 가끔 견인족도 컹컹거리는 것을 감안하면 솔직히 놀과 견인을 완벽하게 구별할 수 있는 방법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다만 두 종족은 풍기는 분위기가 크게 달랐다. 견인이 인간을 잘 따르는 애완견 느낌이라면 놀은 산과 들에서 생활하는 야생견 느낌이 강했다.
“영주님!”
엘븐 템플러들이 달려오는 모습을 보며 호는 자리에서 몸을 벌떡 일으켰다. 그런 호를 향해 놀이 충고하듯 말했다.
“컹컹. 건물이 붕괴하는 큰 사고가 일어났을 때는 가까이 다가가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알겠다.”
놀의 말에 호는 움찔하며 그를 바라보았다. 몬스터에게 충고를 듣다니. 기분이 이상했다. 조그마한 금속으로 덧댄 누더기를 걸쳤는데, 방어용보다는 장식용이 어울릴 정도로 별 볼 일 없어 보였다. 뭐, 대다수의 놀이 저렇게 금속이 붙은 누더기나 갑주를 걸쳤으니 딱히 이상한 모습은 아니었다.
게다가 소환자인 자신이 지배하고 있는 영지인 디르시나에는 다양한 종족이 함께 살고 있었다. 인간은 물론이고, 엘프와 다양한 수인족 그리고 오크, 다크엘프, 놀, 고블린과 같은 마족들도 함께했다.
서로 간에 쉽게 어울리지는 않지만 그래도 그들은 각자의 주거지에서 각자의 생활을 영유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