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6
리그너스 대륙전기 136
“빨리 가자!”
“이럇! 이럇!”
마부가 채찍을 내리쳤고, 그럴 때마다 마차가 점점 더 빠른 속도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스치는 바람과 함께 마차 안에서 밖을 바라보고 있는 여인의 붉은색 눈썹이 휘날렸다. 아르테미스 상단의 지점장 레드 벨벳이었다.
지금 그녀가 향하는 장소는 디르시나로 최근 디르시나에서는 거대한 공사가 시작되고 있다는 소문이 돌고 있엇다.
‘노예가 필요하다는 말에, 어느 정도 예상은 했었는데…….’
레드 벨벳은 자신의 손톱을 조금씩 깨물었다. 전에 디르시나에 방문했을 때 뭔가 심상치 않은 느낌을 받곤 했었다. 하지만 그 느낌을 제대로 알아보지 못한 게 실수였다. 그리고 이미 많은 상단이 디르시나를 방문했다고 했다.
아르테미스 상단은 디르시나에서 공사가 시작되고 나서야 디르시나에 대한 자세한 정보를 입수할 수 있었다.
림드 산맥의 지점장이었던 그녀가 모종의 일로 인해 림드 산맥을 비운 찰나에 일어난 일이었다.
“이대로 물러설 수는 없어.”
늦은 감이 없잖아 있지만 디르시나의 공사건은 아르테미스 상단으로서는 절대 놓칠 수 없는 건 수였다. 지금이나마 지점장인 그녀가 디르시나를 방문하려는 것도 그에 대한 콩고물이라도 얻기 위해서였다. 아니, 얻어야만 했다.
거대한 공사가 이루어진다는 것은 곧 많은 물자들이 오간다는 것과 동일했고, 이런 물자들을 공급할 수 있는 세력은 상단밖에 없었다.
소문에 의하면 몇 억 리스에 해당하는 자금이 영지의 개발에만 투입이 되고 있다고 했다.
“지점장님! 곧 디르시나입니다!”
그리고 디르시나에 도착했을 때 레드 벨벳은 예전과는 다른 도시의 짙은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이건 돈의 냄새였다.
‘엄청난 양인걸? 개발의 소문이 뜬소문은 아니었던 모양이야.’
벌써 여러 상단들이 디르시나를 방문했고, 많은 자재들을 판매한 모양이었다. 도시의 곳곳에서 건축물의 재료로 사용되려는 자재들이 여기저기에 쌓여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오고 있었다.
“어이 거기! 좀 비키라고!”
“취익! 취익!”
“음무워어어! 나무 나가신다!”
마차를 타고 대로를 달리던 레드 벨벳의 고개가 돌아갔다. 그녀의 시선이 멀찌감치 떨어져 있는 공사현장으로 향했다.
소환자의 지배하에 있는 도시라서 그런 것일까? 엘프와 다크엘프, 오크, 인간등 각 종족들이 섞여서 함께 공사를 하고 있었다. 대륙 전체를 통틀어서도 쉽사리 볼 수 없는 광경이었다.
그리고 다행히 그녀는 림드 산맥의 패자이자 디르시나의 영주인 윤호를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었다.
“몇 년 되지 않았지만 아르테미스 상단은 안테 로리에 있을 때부터 우리와 돈독한 관계였던 상단이지. 아, 정확히 말하자면 아르테미스 상단이 아니라 그대라고 해야겠군.”
“영광입니다. 영주님.”
레드 벨벳이 자신의 무릎을 살짝 굽혔고, 호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레드 벨벳과 그의 인연은 던전 공략에서 얻은 아이템의 판매로부터 시작되었다. 그리고 그 거래는 지금까지 꾸준히 이어져 오고 있었고, 그동안 레드 벨벳은 림드 산맥의 거래에 관한 전권을 위임받은 아르테미스 상단의 지점장으로 승진했다.
[상단–아르테미스 상단(호의)[216 / 20000]-직물과 섬유, 무기]
그리고 아르테미스 상단과의 관계를 살펴본 호는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계속된 거래로 인해 조금씩 올라가던 평판은 어느덧 관심에서 호의로 변해 있었다.
“저희 아르테미스 상단은 이번 디르시나에서 벌어지는 공사에 대해 림드 산맥의 패자에게 도움이 되고 싶어 합니다.”
“공사 물자들을 납품하고 싶다는 건가?”
“그렇습니다.”
레드 벨벳의 말에 호의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많은 돈이 소모되는 대규모 공사라 그런지 많은 상단이 자신을 찾았고, 공사에 필요한 자재들을 납품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중에는 자신에게 돈을 찔러 넣는 상단도 있었고, 자재비를 싸게 해주겠다고 말하던 상단도 있었다. 이게 바로 갑과 을의 관계.
호가 현실 세계에서 일을 할 때 느꼈던 이 관계는 이 세계도 크게 다를 바 없었다.
그렇게 호를 찾아온 상단 중에는 아르테미스 상단 이상으로 큰 규모를 가진 어느 정도 제법 이름이 알려진 상단들도 끼어 있었다.
‘뭐, 다른 상단과 관계를 맺는 것보다는 아르테미스 상단과의 관계를 더욱 돈독하게 하는 게 더 좋겠지.’
하지만 호는 굳이 아르테미스 상단을 제외하고 새로운 상단과 관계를 맺을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바로 평판 때문이었다. 현재 자신을 향한 아르테미스 상단의 평판은 호의를 나타내고 있었다. 평상 > 관심 > 호의 > 친애 > 신뢰로 이루어진 5단계의 관계 중 3단계가 진행 중인 것이다.
그리고 리그너스 대륙전기를 플레이 해 본 경험상 호의 정도의 관계라면 아르테미스 상단은 자신들의 능력이 되는 한 자신이 원하는 물건의 대부분을 구해주기 위해 노력할 터였다.
실제로 영웅들의 전직에 필요한 아이템들을 구하기 위해 호는 몇 번이나 아르테미스 상단에게 도움을 받았었다. 그리고 이번 거래를 통해 평판이 좀 더 올라간다면 더욱 얻기 힘든 아이템들도 구해다 줄 수 있을지 몰랐다.
물론, 그에 걸맞는 가치의 돈을 지불해야겠지만.
“음.”
그런 생각을 하던 호의 시선이 레드 벨벳에게로 향했다. 자신이 아르테미스 상단을 모른 척 할리 없다고 생각한 걸까? 그녀는 제법 자신만만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아니면 뭔가 믿는 구석이 있거나 말이다.
순간, 아르테미스 상단과의 거래는 여기까지다 라는 말로 그녀를 놀려 볼까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그러기에는 이제까지 아르테미스 상단과 쌓아온 평판 작업이 아쉬웠다.
만약 디르시나를 찾은 상단 중 대륙의 십대 상단이 끼어 있었다면 얘기는 달라졌을지도 몰랐다. 그만큼 가상현실게임인 리그너스 대륙전기에서도 십대 상단과 연을 맺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십대 상단이라는 명성에 걸맞게 그들은 많은 자금이 투입되는 디르시나의 공사에도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었다.
상단이라면 누구나 함께 하고 싶어 할 정도의 큰 공사였지만 대륙 전체에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그들에게는 그다지 큰 흥미를 끌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혹시 공사 물품을 납품할 상단이 따로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닌지……?”
레드 벨벳의 목소리에 호는 눈을 깜빡이고는 그녀를 바라보았다. 약간의 긴장감이 섞인 목소리였다.
방금 전에 보였던 자신만만한 표정도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었다. 그 모습에 호는 속으로 미소를 지었다. 잠시 다른 생각을 하느라 아무 행동도 보이지 않았던 것이 그녀에게 불안함을 가져다 준 모양이었다.
‘의외의 모습인데?’
그런 생각과 함께 호는 손가락을 내밀어 자신이 앉아 있는 곳에서 조금 떨어진 탁자 위에 놓인 책을 가리켰다. 그러자 엘븐 템플러 한 명이 호에게 공손하게 책을 가져다주었다.
엘븐 템플러의 손에서 호의 손으로 건네지는 책이 무엇인지 눈치챈 탓일까?
레드 벨벳의 눈동자가 책자를 따라 이동하고 있었다.
“큿.”
그 모습을 보며 호는 웃음을 터뜨렸다. 상인이라면 자신의 마음과 의도를 숨길 줄도 알아야 하건만 레드 벨벳은 상인으로서는 실격인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이상하게 그녀답지 않은 모습이었다. 그만큼 이번 일에 대해 아르테미스 상단 역시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모양이었다.
호의 웃음에 레드 벨벳도 자신의 실수를 깨달았는지 고개를 푸욱 숙였다. 그 모습을 보며 호는 엘븐 템플러가 건네준 책을 레드 벨벳에게 내밀었다.
어차피 아르테미스 상단에게 맡길 자재의 납품 건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아르테미스 상단에서는 디르시나 북쪽 지역의 공사에 대한 자제 납품을 맡기고 싶군.”
디르시나에서 벌어지는 공사 전체의 납품을 아르테미스 상단에게만 맡길 생각은 없었다.
그래도 다른 상단들에 비해 자신이 아르테미스 상단에게 신경을 쓰고 있다는 것쯤은 알려줄 필요성은 있었다. 어차피 그들에게 부탁해야 할 일도 있었으니 말이다.
“화, 확인해 봐도 되겠습니까?”
“마음대로.”
호의 허락이 떨어지자 조심스럽게 책을 받아든 레드 벨벳은 눈으로 그 내용을 빠르게 읽기 시작했다.
19만의 인구가 살고 있는 A등급 도시인 디르시나의 도시의 구조 전체를 뜯어 고치는 대공사였다.
거기에 수십만 이상의 노예도 투입될 예정이었다. 건설에 들어가는 자재는 제외하더라도 그들이 먹고, 자고 사용되는 물건의 양만해도 엄청났다.
“굉장한 양이로군요! 이 정도의 거래라면…….”
책의 내용을 확인한 레드 벨벳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책에는 디르시나에서 예정된 공사의 내용들이 간략하게 적혀 있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그녀는 얼마만큼의 자재가 필요한지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다.
하기야 무려 억 단위의 리스가 들어가는 공사였다. 그리고 책에 나와 있는 바에 의하면 도시 북쪽의 공사는 디르시나 내에서도 가장 많은 공사가 진행되는 곳이었다.
그런 탓에 공사에 필요한 자재의 양도 장난이 아니었다. 이런 자재들을 기일에 맞춰 완벽하게 납품하기 위해서는 림드 산맥에 있는 아니 아르테미스 상단의 모든 전력이 집중 되어야 했다. 그리고 이 거래가 만족스럽게 진행된다면…….
‘승진도 꿈이 아니야!’
레드 벨벳의 눈이 빛나기 시작했다. 이미 해양석의 거래로 인해 상단에게 큰 이익을 안겨준 성과를 인정받아 림드 산맥의 지점장이 된 그녀였다.
그러나 이번 거래는 스케일이 달랐다. 자신의 예상보다도 훨씬 큰 건수였다.
“납품할 수 있겠나?”
레드 벨벳의 눈동자가 떨리는 것을 확인한 호가 은근한 목소리로 물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실망시키지 않겠습니다!”
갑작스럽게 울려 퍼지는 여인의 큰 목소리에 호를 호위하기 위해 주위에 서 있던 엘븐 템플러들이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개 중에는 레드 벨벳의 이런 행동이 자신들의 영주에 대한 무례함이라고 생각했는지 그녀에게 살기를 내뿜는 이도 있었다.
“흣!”
그런 엘븐 템플러들의 시선에 레드 벨벳도 자신이 흥분했다는 것을 깨달았는지 쭈뼛쭈뼛 호의 눈치를 슬쩍 보기 시작했다. 하지만 호는 그런 레드 벨벳의 모습에 신경을 쓰지 않고 있었다. 아니, 쓸 수 없었다.
자신의 눈앞에 생각지도 못한 메시지가 떠오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띵동.
-‘디아린의 마음’ 퀘스트가 발생합니다.
[디아린은 레드 벨벳의 이름입니다. 대륙의 남동부에 위치한 사막 지대 출신인 그녀는 벨벳 같은 느낌을 주는 붉은 머리색으로 인해 레드 벨벳이라는 별명을 얻었습니다. 어릴 때부터 상재에 재능을 보였던 그녀는 한때 조그마한 상단을 운영했으나 거대 상단에 밀려 파산했고, 현재는 아르테미스 상단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그런 그녀의 꿈은 언젠가는 대륙의 십대 상단과도 같은 커다란 상단의 주인이 되는 것입니다. 만약 그녀의 꿈을 이루는 데 도움을 줄 수만 있다면? 그녀의 마음을 가질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