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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그너스 대륙전기-135화 (135/522)

# 135

리그너스 대륙전기 135

“상관없어요. 그러면 몇 명이나 구입할 예정이신가요? 림드 산맥의 패자이신 호 님께서 설마 수십 명 수준의 노예를 구입하시려고 절 부르신 것은 아니실 테고?”

페이샬은 혀를 날름이며 호를 바라보았다. 붉은색에 가까운 그녀의 눈동자가 호에게 고정되기 시작했다.

자신의 눈앞에 있는 이는 이 세계의 소환자였다. 그리고 페이샬은 소환자를 노예로 팔아넘겨본 기억이 있었다.

‘20대의 인간 여자였지?’

드워프의 소환자였던 그녀는 꽤나 예쁘장한 미모를 지니고 있던 여인이었다. 1회 차 소환자라고 했던 그녀는 드워프와 수인과의 전쟁에서 패배한 이후 노예 상인에게 붙잡혔고, 여러 상단을 거쳐 페이샬의 라홀로프 상단에게까지 넘어 왔었다.

그리고 페이샬은 그녀를 마인(馬人)족의 갑부에게 비싼 값에 팔아버렸다. 소환자라는 쉽게 구할 수 없는 여자를 가지고 싶다는 고객의 욕구를 백 프로 만족시켜 준 좋은 거래였다.

그에 반해 눈앞의 소환자는 같은 소환자면서 자신이 팔아넘겼던 소환자와는 판이하게 다른 행보를 보이고 있었다.

그는 림드 산맥의 패자로 이 주위에는 제법 명성을 떨치고 있던 데다가 다섯 개의 영지의 주인이면서 마장기도 네 기나 보유하고 있는 인물 아니, 영웅이었다.

하물며 아웃사이더이긴 했지만 타고난 무용만큼은 수인 왕국의 왕 아쉬토와 엇비슷하다는 평가를 받는 브로리 발란스를 제압한 인물이기도 했다.

“얼마일까?”

최소 10억 리스. 아니 자신의 능력을 발휘한다면 그 이상의 가격도 충분히 받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마 노예 한 명의 가격으로는 리그너스 대륙에서 가장 비싸게 팔릴 것 같았다. 그리고 거기까지 생각을 하고 나서야 페이샬은 의아한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호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뭐가 얼마란 말이지?”

“죄송합니다. 잠시 딴 생각을…….”

실수였다. 하지만 호를 바라보자 묘한 쾌감이 페이샬의 온몸을 잠식하고 있었다. 지금이라도 그를 붙잡아서 가격을 매기고 판매하고 싶었다.

“공사에 필요한 노예라면 건강한 녀석들이 필요하겠군요. 건강한 노예는 제법 값이 나가는데?”

“평균적으로 노예 한 명의 가격이 500리스라고 들었다. 가정이 있다면 2000리스 정도고.”

“나이와 성별, 건강 상태에 따라서 가격은 천차만별이지만 평균적으로는 그렇지요.”

“첫 거래로 이십만 명의 노예를 구입하고 싶다. 남, 여 가리지 않고 건강한 노예들로 말이지.”

“이십만?”

페이샬의 눈에 이채가 감돌았다. 20만 명. 결코 작은 건이 아니었다. 게다가 상대는 첫 거래라는 말을 사용했다. 역시 다른 세계에서 왔다던 이 소환자는 평범한 이가 아니었다.

‘어떤 존재였을까?’

거래에서 딴 생각을 하면 안 되는 것을 알면서도 자꾸 호라는 인물에 대한 욕심이 페이샬의 욕망을 자극하고 있었다. 그리고 가까스로 욕망을 누른 페이샬은 호의 얼굴을 바라보며 의아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첫 거래라면?”

“대략적으로 7억 리스 가량을 전부 노예 구입으로 쓸 생각이다.”

현재 림드 산맥의 인구는 30만 명이 채 되지 않았다. 하지만 호는 특성화 개발과 함께 영지의 힘을 기르기 위해 노예로 영지민들을 채울 생각이었다.

실제로 이런 플레이가 리그너스 대륙전기에서는 가장 빠르게 힘을 기를 수 있는 방법이었다. 돈만 있다면 말이다.

그리고 호의 말을 들은 페이샬은 잠시 어떤 생각을 하더니 곧 고개를 끄덕였다.

“시간이 조금 필요하겠군요. 대륙에 퍼져 있는 노예를 모으는 일은 금방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니까요.”

하지만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다. 전 대륙에서 활동하는 라홀로프 상단은 20만 명 아니 그 이상의 노예를 취급하고 있었다. 호는 영지 공사에 사용할 노예가 필요했고, 라홀로프 상단은 노예를 판매해서 이익을 벌어들이는 상단이었다. 그런 탓에 호와 페이샬, 이 둘의 거래는 빠른 속도로 구체적인 내용들이 조율되기 시작했다.

“안전하게 노예를 수송하기 위해서는 꽤나 많은 자금이 필요합니다.”

“그 정도는 라홀로프 상단이 감수해도 될 것 같은데?”

세부적인 거래 내용을 작성하면서 치열한 논쟁이 벌어지긴 했지만, 거래를 뒤엎을 정도는 아니었다. 결국 건강한 노예 한 명당 530리스의 가격으로 계약서가 작성되었다. 가정이 있는 노예는 1950리스였다.

“그러면 다음에는 노예들과 함께 뵙도록 하지요.”

계약서 작성이 끝난 페이샬의 표정은 밝아 보였다. 페이샬은 림드 산맥의 패자인 호가 원하는 노예의 수가 결코 적은 수가 아닌 만큼 라홀로프 상단으로써도 꽤나 신경을 써주겠다고 말했다. 근 오년 내에 가장 큰 건이라는 말과 함께 말이다.

“멍멍! 저 악마 같은 고양이와 시간을 보내시다니 정말, 정말! 고생하셨습니다. 멍.”

페이샬과 라홀로프 상단의 일행들이 디르시나의 동문을 통해 떠났다는 보고가 올라오자마자 로우덴이 부리나케 호에게 달려왔다.

“페이샬과 좋은 관계가 아니었나보지? 이런 큰 거래를 나한테 넘겨 놓고 모습을 감추다니 말이야.”

“조, 죄송합니다. 멍멍.”

호가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물었다. 딱히 그를 탓할 생각을 없었다. 조금 당황하기는 했지만, 충분히 자신이 해결할 수 있는 일이었다.

어쨌든 로우덴은 라홀로프 상단의 페이샬이 디르시나를 방문했다는 이야기가 나오자마자 모습을 숨겼고, 호는 그 이유가 궁금했다. 그리고 로우덴은 한기라도 느낀 듯 자신의 몸을 부르르 떨며 말했다.

“멍멍. 그 년은 정말 악독한 년입니다.”

“라홀로프 상단은 노예상. 노예들에게는 그런 소리를 듣기에 충분하겠지.”

“그렇습니다. 하지만 라홀로프 상단은 평범한 사람도 노예로 만들어 거래합니다. 악독하다는 말로는 부족할 정도입니다.”

“그럴 수도 있겠어.”

로우덴의 말에 호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들의 세계에서도 충분히 일어나고 있는 일이었다. 하물며 호가 살았던 세계에서도 신안 염전 노예라는 게 있었다. 그들에게 염전 주인은 악독하다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존재였으리라.

“멍. 그들은 셰·발 전쟁에서 살아남은 셰필드 종족을 붙잡아서 팔수만 있다면 굉장히 비싼 값을 받을 수 있을 거라며 무려 5년이나 넘게 저를 쫓아다녔습니다. 멍멍.”

“…….”

“그 때문에 저는 라홀로프 상단을 피해서 전 대륙을 떠돌아다녀야 했습니다. 멍멍.”

“자의로 한 여행이 아니었군.”

조그마한 목소리로 중얼거리던 호의 시선이 흘깃 로우덴의 꼬리로 향했다. 그때의 기억들이 굉장히 끔찍했는지 그의 꼬리는 힘을 잃고 추욱 늘어져 있었다. 거기에 눈가가 글썽해지는 것을 보니 툭 치면 눈물이라도 흘릴 기세였다. 조금은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멍멍. 아직도 잠이 들 때면 그 년의 목소리가 귓가에 들려오는 착각이 들 정도입니다. 라홀로프 상단에 쫓겨 어딘가에 노숙을 할 때쯤이면 귀신같이 찾아와 올가미를 던졌었거든요. 멍.”

“그래. 그래서 라홀로프 상단을 피한 것이었어. 이해가 되는 군.”

“감사합니다. 멍멍.”

“그대가 라홀로프 상단에게 붙잡히지 않아서 다행이야. 그대가 붙잡혔다면 나에게는 꽤 곤란한 일이 되었을 테니까.”

호는 로우덴을 바라보며 말했다. 만약 로우덴이 다른 존재에게 팔려나가 자신의 동료가 되지 않았더라면 지금의 상황이 어떤 상황이 되었을 지는 쉬이 예상이 되지 않았다.

그는 한시진과 브로리 만큼이나 자신의 세력에서 큰 축을 맡고 있는 인물이었기 때문이었다.

이 세계에서의 자신이 SS등급의 지력 수치를 지닌 인물을 등용할 수 있던 것은 우연과 우연히 겹친 선물이나 다름없었다.

“멍멍! 역시! 저를 생각해 주시는 것은 주군이십니다. 그런 의미로…….”

호의 칭찬에 로우덴이 자신의 혀를 반복적으로 내밀며 빤히 호의 품을 바라보았다. 그가 가장 좋아하는 장난감 볼이 있는 곳이었다. 그리고 호는 떨떠름한 표정과 함께 천천히 자신의 품에서 부드러운 가죽으로 만들어진 공을 꺼냈다.

짙은 고동색의 공이 햇볕을 받는 순간 로우덴의 눈도 돌아갔다.

그 모습에 호는 쩝 하고 입맛을 다셨다. 그와 생활하면서 자연스럽게 알게 된 사실이지만 로우덴의 볼이라 부르는 공에 대한 집착은 광기 그 자체였다. 어째서 페이샬이 공을 이용해 로우덴을 붙잡지 않았는지 의문이 들 정도였다.

“후읍!”

그리고 호는 기대가 가득 담긴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로우덴에게 살짝 눈길을 준 뒤, 힘을 발휘해 힘차게 공을 던졌다. 던진 방향은 동쪽 성문이었다.

머어엉!

비명에 가까운 울음소리와 함께 로우덴의 모습의 호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꽤나 힘껏 던졌으니 금방 찾아오지는 못할 터. 다시금 혼자가 된 호는 아까 전 자신과 이야기를 나누던 라홀로프 상단의 상단주 페이샬을 떠올렸다.

그녀는 리그너스 대륙내에서도 몇 안 되는 셰필드 종족을 붙잡아 노예로 삼으려고 했다.

로우덴의 말에 따르면 그 희귀성으로 인해 비싼 값에 판매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호는 페이샬과 대화를 나누면서 그녀가 계속해서 자신을 관찰한다는 느낌을 받았었다. 마치 물건을 품평하듯이 말이다.

생각해 보니 소환자는 셰필드 종족만큼이나 희귀한 존재들이었다. 여신 라헬로 인해 소환됐으며 그 수도 굉장히 적었고, 이 세계와는 다른 세계에서 온 존재들이었다. 충분히 노예상이 관심을 가질 수 있는 물품이었다.

“……설마.”

자신이 림드 산맥의 패자가 아닌 평범한 소환자였다면? 순간 소름이 오싹 돋았다.

그렇게 라홀로프 상단과의 계약을 통해 호는 디르시나의 공사에 필요한 인부들을 얻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미래 림드 산맥의 인구가 될 터였다.

제법 큰 거래였던 모양인지 라홀로프 상단은 노예 공급에 전력을 쏟았고, 사흘마다 일이 어디까지 진행이 되는지 보고까지 하곤 했다.

디르시나의 특성화 개발에 대한 계획도도 완성이 되었다. 도시 내의 주거, 상업지역과 다양한 역할을 하는 특수 건물들의 배치와 도로의 구성도등 도시의 모든 것이 효율적으로 계산되어 나온 계획도였다.

호는 이러한 계획도의 작성을 로우덴과 아스트리드 벨 그리고 한시진에게 맡겼었다. 도시의 특성화에 대해 누구보다도 잘 이해를 아는 인물들이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세 남녀는 호의 예상보다도 훨씬 뛰어난 도시 개발 계획들을 가져다주었다.

“……역시 공돌이를 갈면 뭐라도 나온다더니만.”

호는 자신의 눈앞에 보이는 커다란 전도를 보며 고개를 주억였다. 어째서 국가와 기업이 연구원들에게 돈을 들이는지 알 것 같은 느낌이었다.

공돌이가 아닌 세 남녀를 갈았는데 눈으로 보기에도 꽤나 대단한 작품이 나왔다.

그들이 만들어낸 결과물은 행정계통의 직업을 가지거나 가상현실 도시 경영 시뮬레이션에 도가 튼 유저들이 리그너스 대륙전기를 플레이하면서 올리는 도시의 계획도보다도 훨씬 구체적이었고, 자세했다.

“수고했어. 이건……. 정말로 만족스러운데? 진짜 대단해.”

호가 진심을 가득 담아 칭찬하듯 말했다. 그만큼 눈앞에 있는 디르시나의 개발 계획은 훌륭했다.

“하아아. 끄, 끝났다.”

“죽을 것 같아…… 빨리 가서 쉬고 싶어요.”

“끄으응. 끙.”

호의 말이 끝나자마자 한시진이 책상에 머리를 박았고, 벨도 고개를 푹 숙였다.

두 여인은 얼굴에 생긴 다크 서클이 볼 터치라고 생각될 정도로 피로로 인해 얼굴이 거무죽죽해져 있었다. 호가 말한 특성화 도시에 따른 도시의 효율적인 개발을 위해 고민하고 고민한 결과였다.

하지만 이게 끝이 아니었다. 디르시나의 개발과 함께 디르시나와 인접해 있는 에스트라다, 베코바, 해머스의 개발도 진행해야만 했다. 거기에 킬리드도 있었다.

“앞으로 네 도시…….”

계획도를 보며 중얼거리는 호의 목소리를 들은 세 남녀의 몸이 전기 충격이라도 받은 듯 크게 움찔거렸다.

이어서 어디선가 낑낑거리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순간 재빠르게 도망가려는 로우덴을 한시진이 울대를 쳐서 넘어뜨린 결과물이었다.

그리고 며칠 뒤, 라홀로프 상단이 보낸 첫 노예들이 디르시나에 도착했고 본격적인 도시 개발이 시작되었다.

“도시의 개발?”

“갑자기 건물들을 전부 부수고 새로 짓는다니? 이게 무슨 일이람?”

갑작스러운 도시 개발 계획에 디르시나의 주민들이 혼란스러운 기색을 보였지만, 호에 대한 민심이 워낙 높은 터라 큰 반발은 없었다.

하지만 워낙 많은 물자와 노예들이 들어오는 터라 혼란스러운 틈을 타 소소한 범죄들의 발생률이 크게 늘어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호는 정예 실리스들로 하여금 도시의 치안의 맡겼다. 은밀하고 기동성이 뛰어난 그들에게는 천직이나 다름없는 임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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