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1
리그너스 대륙전기 131
“후우! 영주님. 머리가 좋은 녀석 없습니까? 이러다가 말라 죽겠습니다.”
존스 홉킨스가 호에게 푸념을 늘어놓았다.
현재 디르시나에서 전적으로 연구에 몰두하고 있는 이는 존스 홉킨스 혼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호의 휘하에는 여러 영웅들이 있었지만, 림드 산맥의 도시들의 발전도가 워낙 떨어지는 탓에 현재는 뿔뿔이 흩어져 영지 발전에 매진하고 있었다.
로우덴 또한 점점 커나가는 디르시나의 다양한 문제점을 해결하느라 연구 기술 개발에 전력을 쏟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영지의 전력을 상승시키기 위해서라면 하루라도 빨리 이 세계의 상급 기술을 연구해야 했다.
그 중에는 마장기와 관련된 기술도 있었으며, 골든 크로우의 재상 그나이 칼츠만과 약속했던 전장의 지배자 훗사르가 포함된 기병관련 기술도 있었다.
하지만 존스 홉킨스 혼자서는 셀 수도 없을 정도로 많은 상급 기술의 연구를 마칠 수 없었다. 불가능한 일이었다. 마장기와 관련된 기술은 이백여 가지에 달했고, 수인족의 S랭크 기병인 훗사르 또한 완벽하게 양성을 하려면 칠십 여 가지에 다다르는 연구를 끝내야만 했다.
“로우덴 같은 녀석이 한 명 더 있었으면 후우…….”
어디서 머리가 좋은 영웅들이 하늘에서 뚝 떨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런 일이 일어날 리 없었다.
“결국 지푸라기라도 잡아야지.”
리아 캬베데의 지력 수치는 266.
높은 편은 아니었지만, 없는 것보다는 도움이 될 터였다. 그렇게 리아 캬베데가 울상을 지으며 연구소로 끌려가는 모습을 보며 호는 하루라도 빨리 인재를 등용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엇다.
현재 자신의 휘하에는 소환자인 한씨 자매와 벨 그리고 신윤아를 포함해 총 13 명의 영웅이 함께하고 있었다. 그중에는 로우덴이나 리아 캬베데, 브로리 발란스와 같이 자신의 존재감을 자랑하는 이도 있었지만, D등급의 인간 영웅인 케반스나 동급의 다크엘프 영웅인 진 카랴안과 같이 별다른 존재감을 보이지 못하는 영웅들도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호의 명령에 따라 발전도가 떨어지는 마을에서 영지 발전에 대해 힘쓰고 있었다.
하지만 없는 것보다 조금 나은 효율을 보일 뿐 그렇게 눈에 띄는 활약은 보여주지 못하고 있었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들의 능력은 한계 수치가 고작 50인 D등급에 불과했다.
‘B등급 까지만 올릴 수 있으면 참 좋겠는데.’
공략본이 있으니 승급에 필요한 아이템이 무엇인지는 쉽게 찾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들을 승급시킬 수 있는 아이템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 하더라도 구할 수 있는 방법이 마땅치 않았다.
림드 산맥에서 얻을 수 있는 물품도 한정되어 있을뿐더러 자신이 있는 곳에서 굉장히 멀리 떨어진 장소에서만 얻을 수 있는 아이템들도 존재했다.
하지만 승급 아이템들을 구할 수 있는 방법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다.
“멍멍. 호 님. 타임리스 상단이 도착했습니다.”
“아, 드디어 왔군. 생각보다 늦었는데?”
타임리스 상단. 시간은 금이다라는 모토를 가지고 있는 드워프 상단으로 밴더빌트가 상단주로 있는 상단이었다. 그리고 호는 밴더빌트에게 마족의 B등급 마장기 키마라이를 얻는 구입하는 조건으로 그에게 여섯 기의 마장기 잔해를 넘겨주기로 약속했었다.
물론, 공짜가 아닌 어느 정도 판매 대금을 받고 넘겨주는 조건이었다.
타임리스 상단으로서도 손해는 아니었다. 각 종족 특유의 기술로만 만들 수 있는 금속이 섞여 있는 마장기는 아무리 잔해라도 쉽게 구입할 수 있는 게 아니었고, 설령 판매하는 곳이 있으면 많은 수의 상단이 몰려들어 엄청난 경쟁을 만들어내곤 했다.
호가 로우덴과 함께 마장기의 잔해를 보관해 놓은 공터로 향하자 벌써 많은 수의 드워프들이 잔해를 살펴보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으하하하! 자네의 활약은 들었네. 수인들에게 또 한 번 엿을 먹였다지?”
호를 발견한 밴더빌트가 자신의 팔뚝을 훅 내밀었다. 그 모습에 호는 자신의 볼을 살짝 긁었다.
자신에게 한 행동은 아니겠지만, 단 두 번 봤음에도 불구하고 참 격의 없이 행동하는 드워프들의 모습이 적응이 되지를 않았다.
왠지 눈앞에 보이는 수인 마장기들의 잔해에 흥분한 것 같기도. 하기야 잔해 중에는 조종석을 제외하면 멀쩡한 수인족의 B등급 마장기인 웨어 타이거도 있었다.
“A 급? 아니 이정도면 S급은 되겠는데?”
“조종석만 깔끔하게 박살 냈어. 마치 가만히 서 있는 모형을 상대했다고 생각될 정도라고!”
“이거 값 좀 나가겠어.”
역시나 드워프들은 한시진이 제압한 웨어 타이거급 마장기에 가장 큰 관심을 보이고 있었다.
워낙 상태가 좋았기 때문이었다. 다들 얼굴이 붉어져 있었다. 저번에 구입했던 릴라릴라의 상태도 나쁘지 않았지만 지금의 웨어 타이거에 비한다면 그때의 릴라릴라는 고철이나 다름없었다.
“피격 부위가 이 정도라면 조금만 수리해도 움직일 수 있을 것 같아 보이는 걸?”
“어이! 누구 마장기 콕핏 가져온 거 있어?! 마정석 여유분도 준비 좀 해 줘!”
성질 급한 몇몇 드워프들은 이미 자신들의 공구를 들고 마장기의 동체에 올라간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며 호는 역시 드워프들이 마장기에 대한 사랑이 남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장기의 잔해가 있는 곳이라면 드워르기니를 타고 대륙의 끝에서 끝까지 간다는 종족다운 모습이었다.
카니앗산의 잔해에 관심을 보이는 드워프들도 더러 있긴 했다. 웨어 타이거 만큼은 아니지만 카니앗산도 상태가 그리 나쁜 편은 아니었다. 그러나 대다수는 웨어 타이거의 앞에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둘 다 똑같은 마장기긴 하지만 똑같은 게 아니었다. 웨어 타이거와 카니앗산은 그 등급이 달랐다. 그리고 마장기의 등급 차이는 인식이 달라질 정도로 제법 큰 차이였다.
“드워프분들의 관심이 엄청나군요.”
“하하하! 그렇지. 이렇게 완벽한 녀석을 보는 것은 나도 근 십년만이라고! 조종석이 부서진 게 아니었다면 수인 녀석들의 손에서 훔쳐왔다고 생각했을 정도야!”
호의 말에 밴더빌트가 호탕하게 웃음을 터뜨렸다.
“쿠퍼 쏘우를 엿 먹인 엄청난 녀석을 상대했다던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승리한 걸 보면 이거 정말 소환자들의 실력도 무시할 수 없겠는 걸?”
“운이 좋았습니다.”
“운도 실력이라고. 하하하!”
밴더빌트가 자신의 머리를 흔들었다. 그러면서도 그의 눈동자는 광장의 주인공인 웨어 타이거에 향해 있었다. 밴더빌트는 오늘 무슨 대가를 치러서라도 저 웨어 타이거를 구입할 생각이었다.
그렇게 되면 릴라릴라와 함께 웨어 타이거까지 수인족이 자랑하는 B등급 마장기 두 대를 자신의 컬렉션에 추가할 수 있었다.
자신을 대륙 최고의 마장기 컬렉터라고 자부하는 밴더빌트에게 저 웨어 타이거는 꼭 얻어야만 하는 보물이었다.
‘으어! 저건 무슨 일이 있어도 구입해야 돼!’
적대적인 종족의 마장기는 천금을 들인다고 해도 쉽게 구할 수 없는 물품이었다. 등급이 높은 마장기들은 더더욱 그랬다. 아무리 ‘타임리스’ 상단이 드워프 종족을 대표하는 상단중 하나라고 해도 말이다.
그런 탓에 밴더빌트는 자신의 눈앞에 보이는 신품에 가까운 마장기 특히 웨어 타이거급 마장기는 결코 놓칠 생각이 없었다.
“자, 얼마쯤 부를 생각인가?”
밴더빌트가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마치 아랍의 부호처럼 그는 호가 어떤 금액을 불러도 모조리 거래에 응할 것처럼 보였다.
“음…….”
호가 눈을 지그시 감았다. 싼 값에 웨어 타이거를 넘길 생각은 없었다. 게다가 앞으로 생각하는 바가 있는 만큼 최대한 많은 돈을 받을 생각이었다.
보통 B등급 마장기의 가격은 10–15억 리스.
동급을 기준으로 했을 때 성능이 뛰어난 축에 들어가는 드워프들과 마족의 마장기가 좀 더 비싼 가격을 형성하고 있었고, 다양한 용도로 사용되지만 전투 능력은 조금 떨어지는 정령족의 마장기가 가장 가격이 저렴했다.
수인 왕국의 마장기의 가격인 인간들의 마장기와 함께 평균 시세에 속했다. 물론, 시세가 그렇다는 것이지 마장기는 거래 자체가 거의 되지 않는 물품이라는 점도 감안해야 했다.
가능하다면 웨어 타이거를 팔지 않고 수리를 한 후 리아 캬베데에게 주고 싶었다.
A등급 영웅인 그녀라면 충분히 웨어 타이거급 마장기를 조종할 수 있었고, 그렇게만 할 수 있으면 자신은 총 4기의 B등급 마장기를 보유할 수 있었다.
‘하지만 힘들겠지.’
호는 흘낏 밴더빌트를 바라봤다. 웨어 타이거를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는 그의 눈에는 소유욕이 가득했다. 또한 밴더빌트에게 키마라이를 구입하면서 약속한 것도 있는만큼 마장기의 판매는 정해진 일이나 다름없었다. 앞으로 상황이 어떻게 벌어질지는 모르는 법. 호는 최대한 밴더빌트와 좋은 관계로 남고 싶었다.
마장기에 대한 지식이 해박한 드워프들이라면 분명 어떤 식으로든 자신에게 도움이 될 터였다.
“10억 리스는 어떤가?”
호가 입을 열지 않자 몸이 제법 달았는지 밴더빌트가 은근한 목소리로 말했다. 마치 사탕 줄 테니 따라올래? 라는 뉘앙스였다.
‘10억!’
호가 눈을 부릅떴다. 지금의 자신으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엄청난 거금이었다. 게다가 자신에게는 웨어 타이거 뿐 아니라 카니앗산의 잔해도 남아 있었다.
“음…….”
하지만 호는 밴더빌트의 제안에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지금 이 상황을 해결해 줄 수 있는 인물 아니 동물을 불렀다.
“로우덴.”
“네, 멍멍.”
호의 부름에 뒤에 서 있던 로우덴이 앞으로 나섰다. 갑자기 수인 영웅을 부르는 호의 행동에 밴더빌트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저번에 약속했던 대로 마장기는 밴더빌트 님에게 판매할 생각입니다. 하지만 저는 소환자인 까닭에 이 세계의 거래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합니다.”
거짓말이었다. 물건을 주고 돈을 받는다. 그게 거래였다. 하지만 그런 거래에 있어서 자신보다 일을 더욱 잘하는 부하가 있는데 직접 나설 이유도 없었다. 현명한 군주란 유능한 부하를 이용하는 법이었다.
그리고 호는 손가락을 들어 로우덴을 가리켰다.
“제가 신뢰하는 인물입니다. 이미 제가 원하는 조건은 로우덴에게 말해놨습니다.”
“어, 어어?”
밴더빌트가 흠칫 뒤로 물러섰다. 견인 영웅 한 마리가 경망스럽게 계속해서 자신의 혀를 내밀고 있었다. 그리고 밴더빌트는 생긴 것은 얼빵 해도 저 견인 영웅이 머리가 제법 돌아가는 녀석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전에도 뵈었죠? 로우덴 셰필드입니다. 멍멍. 자, 어디 조용한 곳에 들어가서 이야기를 나누지요. 중요한 거래를 하는 데 여기는 너무 시끄럽지 않습니까? 멍.”
로우덴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밴더빌트의 귀에 깡깡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성질 급한 드워프들이 벌써 일을 저지르고 있었다.
“저 바보 같은 녀석들이!”
“역시 드워프분들은 마장기에 대한 사랑이 대단하십니다. 아직 구입하시지도 않은 물품인데 벌써 손을 대시다니요. 멍멍.”
“빌어먹을. 이 멍멍거리는 녀석은 까다로운데…….”
밴더빌트의 얼굴이 흙빛으로 변했다. 어느새 호는 자리를 벗어나고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