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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그너스 대륙전기-125화 (125/522)

# 125

리그너스 대륙전기 125

“이상한 생각은 하지 말자. 일단 키마라이에 안전하게 탑승하면 그대로 튀는 거야.”

그렇게 중얼거리며 호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마장기가 있으나 없으나 브로리를 만나면 곤란해지는 것은 매한가지였다. 차라리 이 동굴에서 빠르게 벗어나 후 브로리가 없는 수인들의 군대를 박살내고 그 후 동굴 속에서 헤매고 있을 브로리를 포로로 잡는 게 좋은 생각인 것 같았다.

그런 생각과 함게 호는 조심스럽게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중간 중간 멈춰 멀리서 들려오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한 편, 혹시나 모를 위험을 위해 기침 소리와 거친 숨소리 하나 내지 않으며 움직였다.

‘이런, 젠장!’

그리고 몇 시간 뒤, 키마라이가 숨겨진 장소에 도착한 호는 자신의 얼굴을 일그러뜨려야만 했다. 키마라이의 옆에 불청객이 하나 있었기 때문이었다. 바로 브로리의 마장기인 황금색의 웨어 타이거였다.

‘빌어먹을, 어떻게 찾았지? 아! 이런 멍청이……!’

호는 머리를 긁적였다. 그러고는 자신의 어리석음을 탓하고는 눈을 질끈 감으며 고개를 숙였다. 생각해 보면 숨겨진 마장기를 찾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메이즈 케이지의 구조가 미로라고는 하지만 개미굴처럼 생긴 탓에 방 하나하나에 구조물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한 눈에 들어올 정도로 크기도 큰 편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더군다나 마장기의 크기와 생김새는 동굴안의 공동에 딱 들어서는 순간 눈에 들어올 정도로 띄게 마련이었다.

메이즈 케이지의 미로가 복잡하고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방이 있다고 해서 브로리가 자신이 마장기를 숨긴 공동을 찾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던 게 바보 같은 일이었다.

“후…….”

어쨌든 들킨 것은 어쩔 수 없는 일. 몸을 숨긴 호의 시선이 빠르게 웨어 타이거를 훑기 시작했다.

그렇게 얼마나 웨어 타이거를 지켜봤을까? 꽤 시간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웨어 타이거는 미동조차도 보이지 않았다.

조그마한 빛도 내뿜지 않는 것을 보면 가동을 중지한 것 같았다. 아니면 가동하고 싶어도 마정석의 마나가 없어서 멈춘 것일 수도 있고 말이다. 혹은 브로리가 이 장소에 없을 수도 있었다.

순간 여러 가지 생각과 가정들이 머릿속에 생겨났다가 사라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호는 불안함이 가득 담긴 눈으로 공동 여기저기를 훑기 시작했다. 어찌되었든 웨어 타이거가 이곳에 있다는 것은 브로리 또한 이 장소에 있을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차라리 키마라이를 포기하고 그냥 걸어가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는데?’

리그너스 대륙전기의 공략본이 있는 이상 키마라이가 없더라도 메이즈 케이브는 충분히 벗어날 수 있었다. 단지 시간이 좀 더 많이 걸릴 뿐이었다.

그리고 잠시 후, 생각을 굳힌 호는 조심스럽게 조금씩 몸을 뒤로 빼기 시작했다. 괜히 조금의 불안함과 위험을 무릅쓰고 키마라이에 탑승하느니 차라리 걸어서 메이즈 케이지를 벗어나는 게 나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버려진 듯 덩그러니 놓여 있는 키마라이가 아깝기는 했다. 하지만 메이즈 케이지는 자신의 영토에 있는 던전. 마장기는 지금이 아니더라도 언제든지 챙길 수 있었다.

‘최대한 조심조심해서 움직여야 돼.’

호는 느리지만 굉장히 신중하게 몸을 움직였다. 웨어 타이거가 있는 이상 브로리 또한 이 주위에 있을 거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행여나 브로리가 몰래 자신의 뒤를 미행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호는 메이즈 케이지의 출구를 향해 가장 빠른 루트로 가지 않고 이리저리 동선을 꼬면서 이동하기까지 했다.

“후…….”

그렇게 긴장된 시간이 서너 시간 정도가 흐르고 나서야 호의 시선 끝에 자연의 빛이 들어오고 시작했다.

메이즈 케이지의 출구였다. 다행히도 메이즈 케이지의 밖으로 나올 때까지 호는 브로리의 털끝 하나 볼 수 없었다. 아마 그녀는 지금도 메이즈 케이지 내를 헤매고 있을 게 분명해 보였다.

그리고 호가 던전 밖으로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 세 개의 그림자가 호의 앞으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익숙한 장비를 착용하고 있는 다크엘프들. 정예 실리스였다.

“무사히 나오셨군요.”

“로우덴 님의 명령에 따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음!”

마치 무협물에 등장하는 캐릭터들처럼 무릎을 굽히며 인사를 세 다크엘프의 모습을 보며 호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어두컴컴한 던전의 입구를 바라봤다.

던전의 입구는 지금 당장이라도 브로리가 튀어나올 것 같은 불길한 느낌을 주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 홀로 메이즈 케이지를 빠져나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라비린토스의 미궁과도 같은 곳이니까. 빠져나오기가 쉽지는 않을 거다.”

정말로 아주 정말로 운이 좋지 않다면 말이다.

“저희가 호위하겠습니다.”

“알았다.”

세 명의 다크 엘프 중 한 명은 메이즈 케이지의 입구에 남았다. 혹시라도 브로리가 메이즈 케이지를 빠져나오는 일이 생길 경우 아군에게 알려야만 하기 때문이었다.

“아, 그래. 전투는 어떻게 됐지?”

정예 실리스들과 나란히 걸으며 발걸음을 옮기던 호가 그들에게 물었다.

작전대로라면 자신이 브로리를 유인해 메이즈 케이지에 들어서는 순간 로우덴이 수인 왕국의 군대를 공격했어야 했다. 그리고 그런 호의 질문에 정예 실리스들이 근질거리는 입을 참았다는 듯 폭풍같이 말을 이어나갔다.

“대승을 거뒀습니다! 상대의 마장기를 네 기나 파괴했을 뿐 아니라, 전투에서도 승리를 했습니다!”

“수인들은 오합지졸이었습니다. 명령이 통일되지 않아 전투 중 자기들끼리 부딪치는 모습도 나왔었습니다.”

“그렇게 대단한 전투는 제 생에서 처음 봤습니다!”

“한시진 님의 활약도 대단했습니다. 홀로 무려 네 기의 카니앗산을 파괴시켰을 뿐만 아니라 웨어 타이거 급 마장기를 상대로도 한 치의 물러섬도 없었습니다.”

정예 실리스들의 호들갑스러운 이야기를 들으며 호는 속으로 역시라고 생각했다. 로우덴의 말 대로였다. 브로리라는 군대를 장악할 수 있는 영웅이 사라진 순간 삼 만이라는 숫자에 마장기까지 보유한 군대가 오합지졸이 되어 버렸다.

‘신윤아가 이끄는 군대와 비슷한 상황이 되어버린 거로군.’

브로리가 없다 해도 수인 군대가 보유한 마장기가 워낙 다수라 걱정이 되기는 했었다. 하지만 한시진과 리아 캬베데가 어떻게 전투를 잘 치른 모양이었다.

‘아무리 시진이의 실력이 좋다고는 하지만…….’

브로리의 휘하에 있던 영웅들의 실력 또한 형편없던 모양이었다. 어쨌든 다크엘프들과 함께 본진이 있는 주둔지로 향하는 호의 발걸음은 굉장히 가벼웠다.

메이즈 케이지 내에서 고생을 좀 하기는 했지만, 자신의 세력을 파멸시킬 수도 있었던 브로리와 그녀가 이끌고 있던 수인족의 기세를 한 풀 꺾었기 때문이었다.

* * *

“좀 더 안 쉬어도 되겠어요? 동굴에서 고생 했었을 텐데…….”

“아니, 괜찮아. 나 하나 편하자고 이 기회를 놓칠 수 없지.”

걱정 가득한 시진을 뒤로 한 채 자리에서 일어난 호는 자신의 장비를 챙기기 시작했다.

보고받은 대로 작전은 대성공이었다. 하지만 전쟁이 끝난 것은 아니었다. 수인 군대는 아직도 자신의 영토에 주둔해 있었고, 수가 었다고 해도 충분히 림드 산맥 전체를 점령할 수 있는 병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게다가 고생이라고 해봤자 고블린과 코볼트가 있던 공간에서 하루 남짓 시간을 보냈을 뿐이었다. 고작 그런 것 때문에 황금과도 같은 이 기회를 놓칠 수는 없었다.

“로우덴! 전술은? 아니 수인들의 상태는 어떻지?”

“멍멍. 회의실로 모시겠습니다.”

따르는 부하가 없다기에 허수아비와도 같은 총사령관인 줄 알았는데 의외로 브로리의 존재는 수인 군대의 명령 체계에서 꽤 큰 영향을 차지하고 있던 모양이었다.

정찰을 다녀온 정예 실리스들의 말에 따르면 어제 있었던 전투에서 살아남은 두 명의 마장기사가 대립했고, 일반 병사들이 그에 동조하며 병사들이 반으로 갈라졌다고 했다.

“그런 일이 일어날 수도 있나?”

호가 고개를 갸웃했다. 자신이 플레이했던 가상현실게임 리그너스 대륙전기에서는 일어나지 않았던 일이었다. 실제로 이와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는 유저의 경험담도 본 적이 없던 것 같았다.

“냐앙. 네. 충분히 가능한 일이에요. 어제 전투 이후 살아남은 수인의 마장기사는 웨어 타이거를 조종하는 오모스와 카니앗산을 조종하는 호닌. 이 둘은 각각 원인과 견인으로 아시다시피 수인왕국의 부족들 중 가장 사이가 나쁜 종족의 영웅들이에요.”

“아무리 똑같은 마장기사라고 해도 B등급과 C등급의 차이가 있을 텐데? 보통 전쟁 중 대장에게 무슨 일이 있으면 부대장에게 작전권이 넘어가는 것처럼 말이야.”

“멍멍. 인간이라면 그렇겠지만, 수인 왕국은 다릅니다. 만약 오모스와 호닌 중 한 명이 종족의 상급 대장이나 장로격인 인물이었다면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 겁니다.”

“수인들의 마장기사는 단지 마장기를 조종할 수 있는 자격이 있는 인물일 뿐이에요. 냥냥. 원인족의 오모스가 B등급 마장기인 웨어 타이거를 조종하는 것은 그가 호닌보다 실력이 뛰어나서가 아니라 브로리가 원인족의 영토에 세력을 두고 있었기 때문일 가능성이 아주 높아요.”

로우덴과 리아 캬베데가 계속해서 대답을 이어나갔다. 그리고 호는 더 이상 질문을 하지 않았다. 수인들이 왜 그런 행동을 하는지 의문이 들기는 했지만, 그들의 습관과 생활방식을 자신의 기준으로 이해할 필요는 없었다. 오히려 기회를 잘 이용해 상대를 림드 산맥에서 몰아내야 했다.

* * *

와아아아!

“세계수의 분노로 적들을 불태우리라!”

“적들에게 어둠을!”

로우덴과 함께 수인들을 상대할 전술 수립을 끝내는 호는 그날 오후부터 바로 수인들을 몰아붙이기 시작했다. 행여나 브로리가 운 좋게 메이즈 케이지의 미로에서 탈출해 자신의 군대로 합류하는 일이 일어난다 해도 아무것도 할 수 없도록 손 발을 전부 잘라내야 했다.

“첫 출전일 수도 있었는데, 조금은 아쉽네.”

치열하게 전투를 벌이는 병사들의 모습을 보던 호의 시선이 멀리서 요란한 소리와 부딪치기 시작하는 강철 거인들에게로 향했다. 그 곳에는 한시진과 리아 캬베데의 마장기가 수인 영웅들의 마장기를 상대로 거칠게 몰아붙이고 있었다.

무려 여섯 기의 마장기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둘을 막아내지 못했던 수인들이었다.

하물며 오늘 전투에 나설 수 있는 수인족의 마장기는 단 두 기뿐이었다. 더군다나 웨어 타이거와 카니앗산은 호가 보기에도 손발이 전혀 받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마치 물과 기름처럼 따로 노는 느낌이었다.

“곧 끝나겠군요. 멍멍.”

어느새 로우덴이 옆으로 다가와 말했고, 호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마장기전이 아군의 승리로 돌아가는 순간 전투의 향방으로 크게 변할 터였다.

한시진의 마장기가 전장에 투입되면 전투는 그대로 끝이 날 게 틀림없었다. 상대의 전력이 아군보다 월등히 뛰어난 것도 아닌데다가 고 랭크의 병종으로 이루어진 것도 아니었다.

게다가 병사를 지휘하는 영웅들도 없는 지금의 상황에서 그들이 한시진의 키마라이를 막아낼 리 없었다.

“메이즈 케이지 내에 있는 키마라이만 있었더라면 순식간에 전투를 끝냈을 텐데.”

주먹을 쥐었다 피며 호가 아쉬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랬다면 해가 지기도 전에 상대를 박살 낼 수 있었을 터였다.

“멍멍. 하지만 그랬다면 호 님이 변을 당하실 수도 있었을 겁니다.”

“그렇긴 한데…….”

“저희들의 전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호 님이 무사하시는 겁니다. 멍.”

말을 마치며 로우덴은 호 몰래 어두운 표정을 지었다. 브로리를 상대로 한 이번 전투는 어떻게든 승리로 끝을 낼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강력한 적인 브로리를 유인하기 위해 림드 산맥의 패자이자 자신의 주군인 호가 직접 미끼가 되는 위험에 노출되고야 말았다.

‘이런 일이 일어나서는 안 되는 것을…….’

현재의 전력상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하지만 로우덴은 그것이 자신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만약 브로리를 설득했더라면 혹은 브로리의 군세를 충분히 상대할 수 있을만큼 림드 산맥을 발전시켜 나갔다면 자신의 주군이 위험에 빠질 일은 없었을 거라는 생각이 로우덴의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소중한 이를 잃는 것은 한 번이면 족하다.’

싸늘하게 변한 로우덴의 시선이 전장을 훑었다. 후회는 이걸로 충분했다.

쿠우웅!

멀리서 폭발음소리와 함께 수인족의 웨어 타이거급 마장기가 요란한 소리와 함께 땅바닥에 주저앉았다. 리아 캬베데가 탑승한 카니앗산의 주포를 직격으로 맞은 것 같았다.

“죽어어엇!”

이어서 그 기회를 놓치지 않겠다는 듯 한시진이 번개같이 움직였고, 넘어진 마장기를 향해 자신의 커다란 대검을 내리 꼽았다. 그리고 전투는 그걸로 끝이 났다.

웨어 타이거급 마장기와 함게 자신들의 마지막 남은 마장기인 카니앗산까지 키마라이의 손에 무력화되는 모습에 수인 병사들이 무기들을 버리고 그대로 도망을 치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전쟁은 승리로 끝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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