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그너스 대륙전기-123화 (123/522)

# 123

리그너스 대륙전기 123

콰아앙! 콰쾅!

“어휴. 미친 소처럼 날뛰네. 이거 잘못 걸리면 뼈도 못 추리겠는데?”

멀리서 들려오는 굉음과 진동을 느끼며 호가 중얼거렸다. 거대한 물체와 동굴의 벽과 부딪치는 소리. 거기에 간간히 들려오는 몬스터들의 비명소리는 그 자리에서 무슨 일이 벌어나고 있는지 굳이 눈으로 확인하지 않아도 쉽사리 예상할 수 있는 일이었다.

메이즈 케이지. 미로의 동굴이라는 D등급 던전으로 브로리를 유인한다는 작전은 성공이었다. 그리고 호는 동굴의 어두움을 틈타 브로리의 마장기와도 거리를 벌릴 수 있었다.

‘좀 더 던전의 깊은 곳까지 브로리를 유인해야 돼.’

눈앞으로 리그너스 대륙전기의 공략본을 띄어놓은 호는 빠르게 손을 놀려 메이즈 케이지의 내부 지리가 나와 있는 항목을 찾기 시작했다. 던전의 미로로 브로리를 유인하는 것 까지는 성공했지만, 아직 마음을 놓을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

만약 브로리가 자신을 추적하는 것을 포기하고, 동굴 밖으로 나가게 된다면 작전은 실패였다.

“조금 위험하기는 해도……. 술래잡기 좀 해야겠네.”

공략본에서 메이즈 케이지의 내부 지리를 찾은 호는 손가락을 움직여 지도를 자신의 시야 한 쪽으로 밀어 넣었다. 그러고는 자신의 마장기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구우웅! 쿵!

사방팔방 단단한 암석으로 되어 있는 동굴에서 마장기가 가동하는 소리가 커다랗게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브로리는 이 소리를 놓치지 않았다.

“[email protected]#[email protected]%!#”

뭐라고 말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단단히 화가 난 것으로 추정되는 브로리의 고함이 동굴에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잠시 후, 호가 있던 자리에 황금색의 웨어 타이거가 모습을 드러냈다. 하지만 호의 키마라이는 어느새 동글 안쪽으로 들어선 뒤였다.

“가만두지 않겠어!”

그리고 브로리 역시 호를 따라 던전의 안쪽으로 마장기를 움직였다. 잔챙이나 다름없는 몬스터들이 등장하는 던전은 SS등급의 영웅인 그녀에게 아무런 위협도 되지 못했다.

* * *

서걱!

고깃덩어리를 가르는 느낌이 검에서부터 시작되어 고스란히 손바닥의 감각을 타고 올라왔다. +4 소드 테이커. 호가 현재 사용하고 있는 이 무기는 한시진의 B등급 무기인 우스바 에스테리온과 동급인 장검이었다.

실력 있는 영주는 무기 또한 좋아야 한다는 로우덴의 조언에 무기류를 취급하는 아르테미스 상단에게 의뢰를 넣어 구입한 아이템으로 디르시나의 특산품인 해양석을 사용해 총 +4까지 강화를 끝낸 아이템이었다.

+6강까지 강화가 되어 있는 한시진의 우스바 에스테리온에 비하면 무력 포인트의 상승폭이 적었지만, 그래도 호가 보유한 무기 중에서는 수위에 꼽히는 아이템이었다.

“가상현실게임이었다면 B등급 따위. 창고에다 버렸을 텐데…….”

가상현실게임 리그너스 대륙전기 내에서 호 제국의 황제였던 자신을 떠올리며 호는 씁쓸한 표정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렇다 해도 소드 테이커는 던전의 몬스터인 고블린이나 코볼트의 피부 따위는 쉽게 베어낼 버릴 수 있는 날카로움을 지니고 있었다.

“키……!”

순식간에 자신의 팔 하나가 잘려 나가자 멍청한 표정을 짓고 있던 고블린이 뒤늦게 고통을 느끼고는 비명을 지르기 위해 입을 열었다. 하지만 그보다도 호의 움직임이 먼저였다.

쿠욱!

“끽!”

고블린의 입 안으로 파고들어간 장검이 목 뒤를 뚫고 나오자 고블린의 녹색 몸체가 마치 갓 잡은 생선처럼 퍼덕이다가 추욱 늘어졌다.

“동굴 안에서 소리를 지르면 위험하다고, 친구.”

그리고 호는 죽은 고블린을 향해 곤란하다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언제 브로리가 모습을 드러낼지 모르는 일. 소란을 끄는 것은 피해야만 했다.

로우덴의 계획대로 호는 성공적으로 브로리를 메이즈 케이브 유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던전의 미로 속에서 발광하는 그녀에게서 도망쳐 던전 내의 커다란 공동에 자신의 마장기를 몰래 숨겨 두고는 더욱더 깊은 동굴 안으로 도망친 상황이었다.

‘마장기를 탑승한 채로 도망친다는 것은 나 잡아달라는 말이나 다름없지.’

동력원이 가동되는 소리와 함께 거대한 덩치가 땅을 밟을 때마다 나타나는 소리는 은밀한 도주와는 거리가 멀었다. 그렇기에 호는 마장기에서 내려 던전을 배회하고 있었다. 그것이 브로리에게서 도망치기가 훨씬 효과적이기 때문이었다. 단지 걱정되는 점이라면 공동에 덩그러니 놓인 마장기의 상태를 알 수 없다는 점이었다.

마장기를 보관할 수 있는 아공간이라도 있으면 좋았을 테지만, 안타깝게도 그런 아이템은 가상현실게임 리그너스 대륙전기 내에서는 존재하지 않았다.

잠시 정신을 집중해 주위의 상황을 확인한 호는 크게 검을 휘둘러 검 날에 묻은 고블린의 피를 날려버렸다. 그러고는 빠르게 검을 갈무리하고는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브로리의 추격을 받고 있는 지금 한 장소에 계속해서 머무는 것은 좋은 선택이 아니었다.

까닥하다 재수 없게 브로리와 마주치기라도 한다면 자신은 죽은 목숨이나 다름없었다. 브로리의 무력 능력은 964. 자신과는 무려 500 이상이나 차이가 나는 수치였다. 그리고 이 차이는 무슨 짓을 해도 감당할 수 없는 차이였다.

그래도 메이즈 케이지의 미로를 이용한다면 충분히 브로리의 추격에서 벗어날 수 있을 터였다. 하지만 변수 또한 있었다. 미로 내에 있는 생명체가 자신과 브로리 만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메이즈 케이지를 토벌한 지는 얼마 안 된 것 같은데…….”

발걸음을 옮기던 호가 코로 밀려오는 악취에 인상을 찌푸렸다. 몇 번 맡아본 적이 있는 이 냄새는 코볼트들의 배설물 냄새였다.

한시진과 함께 메이즈 케이브를 토벌한 게 불과 반년도 되지 않은 시간이었다. 하지만 그 짧은 사이에 살아남은 몬스터들이 자신들의 세력을 꾸린 모양이었다. 아마 이렇게 시간이 계속해서 흐르면 준보스 혹은 보스급 몬스터들도 생겨날 터였다.

“이런 게 게임하고는 조금 다르단 말이지. 어쨌든 언제 다시 한 번 토벌해야겠네.”

어차피 경험치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았다. 그렇게 이번 전쟁이 끝나면 다시 던전을 토벌해야겠다는 생각과 함께 호는 계속해서 던전의 안 쪽으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간간히 고블린과 코볼트들이 호의 앞길을 막기는 했지만, 큰 문제는 되지 않았다.

브로리와 같은 무시무시한 괴력을 지닌 것은 아니지만 호 역시 고블린과 코볼트 쯤은 어렵지 않게 상대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커다란 덩치를 지닌 보스급 몬스터가 등장하지 않는 이상은 호의 앞길을 가로막을 몬스터는 아무도 없었다.

“케에엥!”

“키잇!”

또한 고블린과 코볼트의 존재는 호의 도주에도 어느 정도 도움이 되고 있었다.

“브로리가 있나 보네.”

멀리서 들려오는 몬스터의 비명소리에 호는 자리에 멈춰 소리가 들리는 쪽의 반대 방향으로 몸을 돌렸다. 몬스터들의 비명은 분명 브로리가 만들어내고 있는 게 틀림없었다. 동굴을 울리는 마장기의 소리가 들리지 않는 것을 보아하니 그녀 또한 자신처럼 마장기에서 내린 모양이었다.

‘마장기를 움직이는 데 필요한 마정석의 마나가 전부 떨어졌나 보네.’

그에 반해 호의 품에는 아직 두 개의 마정석이 남아 있었다. 이 정도의 양이면 던전에서 아군의 본진이 있는 곳까지는 충분히 이동할 수 있었다.

어느덧 가까워지는 몬스터들의 비명소리에 호는 공략본을 열어 메이즈 케이브의 지도를 확인하고는 다시 어둠속으로 몸을 숨기기 시작했다.

고블린과 코볼트는 무섭지 않지만 브로리와 마주치는 것은 무슨 일이 있어도 피해야 했다.

* * *

“성공이군! 멍멍!”

콧잔등에 걸치는 조그마한 안경을 낀 견인 영웅, 로우덴이 눈에 띄게 환한 목소리로 말했다. 브로리로 추정되는 황금색 웨어 타이거가 자신의 영주 호와 탑승한 키마라이와 함께 메이즈 케이지에 들어갔다는 보고가 막 도착했기 때문이었다.

과거 노움 종족의 도시가 있었을 거라고 여겨지는 거대한 동굴은 마장기가 충분히 드나들 정도의 넓었고, 복잡했다.

“호 님의 안전은?”

“아직 파악되지 않았습니다.”

“으으음…….”

정예 실리스의 보고에 로우덴은 나직한 침음을 흘렸다. 눈에 보이는 작전은 성공했다. 하지만 이번 작전으로 인해 영주인 윤호의 신체에 어떤 위해라도 생기게 된다면 작전은 실패하느니만 못했다.

“어쩔 수 없지. 호 님을 믿는 수밖에…….”

현재의 상황에서는 메이즈 케이지 내부에 있는 호와 연락을 취할 수 있는 방도가 없었다.

“수인들의 동태는 어떻지? 멍멍.”

“뭐, 혼란스러워 하는 것 같기는 한데……. 큰 동요는 없어 보인다. 냥.”

로우덴의 질문에 대답을 한 이는 리아 캬베데였다.

“멍멍. 브로리를 찾으러 가려는 모습은? 분명 무슨 반응이 있었을 텐데?”

“흐응. 듣고 보니 조금 이상한데? 냥. 정예 실리스들과 정찰을 했을 때는 딱히 그런 분위기를 느끼지 못했다.”

“……그렇단 말이지.”

린드 산맥을 대표하는 개와 고양이. 그 두 영웅과 함께 회의실에 자리를 차지한 윤아는 가만히 앉아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두 동물의 대화에 집중했다.

귀여운 외모를 지닌 수인들이지만, 로우덴과 리아 캬베데라는 S급과 A 급의 영웅. 이 세계에 온지 얼마 되지 않는 자신하고는 비교도 되지 않는 존재감을 자랑하는 대륙의 영웅들이었다.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그리고 로우덴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을 보던 윤아가 궁금한 표정으로 물었다.

“브로리라는 영웅은 수인족의 대장이 아니었던가요? 왜 수인들이 가만히 있는 거죠?”

“멍멍. 눈에 보일 때는 대장, 눈에 띄지 않을 때는 원수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네에?”

로우덴의 대답에 윤아가 눈을 뜨며 반문했다.

“왜요? 수인들의 특성인가요? 아니, 내가 했던 게임에서는 그런 건 없었는데. 아니아니, 게임이 아니라 저는 그래도 다른 수인들이 도와주려고 했었는데…….”

“쉽게 얘기하자면 브로리는 자신의 잔악함과 공포로 병사와 부하들을 통솔했다고 보면 됩니다. 멍멍. 그렇다 하더라도 지금 저들은 자신들이 어떻게 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을 게 분명합니다.”

“그러면 이때를 노려서 공격해야 하지 않을까요? 어차피 작전은…….”

브로리와 수인 병사들을 떼어낸 후 통솔할 지휘관이 없는 수인 군대를 무력화 시킨다는 내용이었다.

“네, 그럴 겁니다. 멍멍. 하지만 지금의 전력만 가지고서는 수인들을 상대로 전투를 벌일 수가 없습니다. 마장기 때문이죠.”

“아아.”

병사들의 대다수가 엘프의 A랭크 보병인 엘븐 템플러로 구성되어 있다고는 하지만 수인 군대의 병사는 자신들의 숫자보다도 더욱 많았다.

치명적인 것은 브로리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에게는 웨어 타이거급 마장기를 포함해 여섯 기의 마장기가 더 존재한다는 점이었다.

엘븐 템플러가 회복 마법을 사용해 자신의 부상을 치유할 수 있는 병사라고 해도 그들을 믿고 마장기를 공격하는 것은 바위에 계란치기나 다름없는 일이었다.

“멍멍. 하지만 곧 공격 명령을 내려야겠죠. 브로리가 없는 지금의 기회를 놓칠 수는 없으니까요.”

“마장기는 어떻게 하고요?”

그러나 이어진 로우덴의 말에 윤아는 자신의 눈을 동그랗게 떠야 했다. 아무리 엘븐 템플러들이 용맹하다고 해도 마장기는 마장기였다. 마장기의 무서움은 그녀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윤아가 말을 마친 순간 멀리서 쿵쿵 하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어디선가 들어본 적이 있던 익숙한 소리는 처음에는 작았지만, 점점 빠른 속도로 커지고 있었다. 거대한 동체가 움직이는 소리. 바로 마장기가 움직이면서 내는 소리였다. 그리고 로우덴이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우리의 비밀병기인 한시진 양께서 해결할 거니까요. 멍멍.”

“나도 있다고, 냐앙.”

리아 캬베데도 끼어들었다. 비록 반파되기는 했지만, 멀쩡하게 주포를 사용할 수 있는 카니앗산도 있었다. 직접적인 전투는 불가능하지만 멀리서 지원 사격정도는 충분히 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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