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2
리그너스 대륙전기 122
“호!”
그리고 호가 위험하다는 것을 느낀 한시진이 브로리에게로 달려들었다. 이번 작전에서 한시진의 임무는 호에게로 향하는 브로리의 집중 공격을 막아내는 것이었다.
‘브로리의 성격상 그녀는 자신의 치부를 건드린 호 님만을 공격할 겁니다. 그렇기에 한시진 양은 무슨 일이 있어도 호 님을 브로리의 공격에서 지켜주셔야 합니다. 마장기가 반파되는 한이 있더라도 호 님만큼은 무사하셔야 합니다.’
이게 한시진에게 내린 로우덴의 명령이었다.
“버러지 같은 자식! 방해하지 마라!”
콰드득!
“꺄아아악!”
황금색의 웨어 타이거가 움직였고, 비명소리와 함께 강철과 특수 합금으로 만들어진 키마라이의 동체가 움푹 파였다. 대한제국을 대표하는 화랑기사단의 단장. 그리고 이 세계의 평범한 마장기사들을 상대로 스톰 트루퍼 앞의 제다이 나이트와 같은 포스를 보여주며 농락하던 한시진의 마장기가 비명소리와 함께 요란한 소리를 내며 나자빠지고 있었다.
“……미친. 더럽게 세네.”
그리고 그 모습을 보며 호는 침을 꿀꺽 삼켰다. 만화 속에서만 보던 주인공이 분노한 모습이 저러할까? 황금색의 웨어 타이거 주위로 기의 아지랑이가 보이는 착각이 들었다.
전투 능력만 놓고 보면 브로리는 이 리그너스 대륙에서 손꼽을 수 있는 강자. 한시진이 아무리 잠재능력이 뛰어나고 뛰어난 실력을 지녔다고는 하지만 지금 당장 브로리를 상대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리고 이는 자신도 마찬가지였다.
리그너스 대륙전기라는 가상현실게임을 통해 셀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한 적들을 상대해 봤다고는 하지만, 게임 속의 자신과 지금의 자신은 다른 사람이나 다름없다는 것을 호는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한시진에게 잠깐 정신이 팔려 있는 브로리를 떼어낼 수 있을 정도의 꼼수 정도는 가지고 있었다.
‘키마라이의 대검에 마나를 응집시킨 후 위로 밀어낸다!’
리그너스 대륙전기를 플레이하는 유저들 사이에서는 일명 올려 베기라 불리는 기술이었다. 유저들이 주로 사용하는 마장기술 중 고급에 속하는 기술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무턱대고 쉽게 사용할 수 있는 기술도 아니었다.
고오오!
하지만 호는 리그너스 대륙전기의 베테랑 플레이어. 이 세계에서 올려 베기를 사용하는 것은 처음이지만 어렵지 않게 마나를 운용, 빠른 속도로 마나를 끌어올릴 수 있었다. 그렇게 호가 키마라이의 대검에 마나를 응축시키기 시작했다.
“……뭐지?”
갑작스럽게 느껴지는 위화감에 한시진을 공격하던 브로리의 시선이 호에게로 향했다. 그리고 순간적인 움직임으로 웨어 타이거에게 접근한 호의 키마라이가 자신의 대검을 밑에서 위로 강하게 쳐올렸다.
투학!
거대한 대검이 하늘 위로 솟구쳤고, 강철 대검의 검면에 얻어맞은 웨어 타이거의 커다란 동체가 힘없이 허공으로 튀어 올랐다.
“크으읏!”
조종간을 당기는 손에서 느껴지는 묵직한 압박감에 호의 입에서 절로 신음성이 흘러 나왔다. 마음 같아서는 이대로 브로리의 웨어 타이거를 반으로 쪼개버리고 싶었지만, 안타깝게도 황금색의 마장기를 반으로 갈라버릴 정도의 위력은 담을 수 없었다.
현재 자신의 실력으로는 아무리 마나를 가득 실었다고 해도 마장기의 단단함을 이겨낼 수 없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상대에게 어느 정도의 충격은 줄 수 있었다. 모르긴 해도 브로리는 지금 쯤 주먹으로 턱을 제대로 얻어맞은 느낌일 터였다.
“크허억!”
호의 예상대로 생각지도 못한 일격을 얻어맞은 충격에 브로리의 입에서 기침이 터져 나왔다.
“이 자식들이!”
브로리의 머리끝까지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이 정도 쯤은 충분히 맞아줄 수 있었다. 하지만 이 대가는 톡톡히 치르게 할 생각이었다. 이제는 단숨에 저 두 녀석들을 잡아 마장기와 함께 몸을 반으로 찢어버릴 생각이었다. 하지만 상대의 공격은 이게 끝이 아니었다.
‘여기서 멈춰서는 안 돼!’
호는 브로리가 전투 모드에 들어가게 되면 자신과 한시진이 아무리 힘을 합쳐도 당해낼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게다가 이번 작전의 성패는 브로리를 제압하는 데 달린 게 아니었다.
작전은 어디까지나 그녀를 메이즈 케이지 안으로 유인만 하면 되는 일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들과 그녀와의 거리를 벌려야 했다.
콰득!
호의 대검에 얻어맞은 브로리의 마장기가 지면으로 떨어져 내리려는 찰나 호의 마장기가 웨어 타이거의 다리 중 하나를 붙잡았다. 그러고는 천천히 그렇지만 점점 빠르게 자신의 몸 전체를 돌리기 시작했다.
“으아아아!”
“저…… 저게 뭐야?!”
브로리의 공격에 나자빠졌던 한시진이 마장기의 동체를 일으키고는 브로리와 호가 탑승한 마장기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부웅 거리는 소리와 함께 웨어 타이거의 뒷발을 붙잡은 키마라이가 투포환 선수라도 된 듯 자신의 몸을 크게 빙글빙글 돌리고 있었다. 자이언트 스윙. 프로 레슬링에서나 나올 법한 모습이 마장기전에서 나오고 있었다.
WWE의 광팬인 리그너스 대륙전기의 유저가 마장기로 레슬링을 하던 동영상을 본 적은 있었다. 그 유저가 마장기를 이용해 사용했던 기술 중에는 자이언트 스윙도 끼어 있었다.
하지만 호가 실제로 마장기를 이용해 자이언트 스윙을 펼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단지 어떻게든 브로리를 떼어내야겠다는 생각과 웨어 타이거의 다리를 보고 무의식적으로 만들어낸 결과였다.
“크읏! 이거……!”
눈으로 보기에는 그리 어렵지 않아 보였는데, 생각보다 어지럽고 힘들었다. 하지만 이대로 멈출 수는 없었다. 마치 기회를 노리는 맹수처럼 브로리의 웨어 타이거가 내뿜는 살기가 온몸을 찌르고 있었다.
“이대로 멀리…… 꺼져 버리라고!”
그리고 웨어 타이거의 날카로운 시선과 눈이 마주치는 순간 호는 그대로 자신의 손을 던지듯 놓아버렸다.
우지끈! 쿠아앙!
하늘 위로 높게 솟구쳐 오른 웨어 타이거가 멀찌감치 보이는 언덕 너머로 사라지며 요란한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꽤나 높은 곳에서 떨어졌으니 그 충격이 만만치 않으리라. 하지만 지금 당장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는 없었다.
“한시진!”
호의 입에서 고함에 가까운 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리고 한시진은 어째서 호가 자신을 불렀는지 모를 정도로 어리석은 여자가 아니었다.
쉴 틈도 없이 쿠웅 하는 소리와 함께 두 기의 키마라이가 빠른 속도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 둘이 향하는 곳은 메이즈 케이지였다.
“죽여 버리겠다!”
그렇게 두 대의 키마라이가 자리에서 벗어나자마자 날카로운 고함과 함께 마나로 이루어진 충격파가 웨어 타이거가 떨어졌던 언덕 너머에서 시작되어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조그마한 나무는 그대로 꺾어버릴 정도인 흡사 허리케인을 방불케 하는 충격파였다.
그리고 우지끈 하는 소리와 아름드리나무를 그대로 뭉개버린 웨어 타이거가 마치 광기에 휩싸인 듯 빠른 속도로 키마라이가 사라진 방향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살려달라고 할 때까지 온몸을 갈가리 찢어주마!”
황금색 웨어 타이거의 오너인 브로리. 그녀의 영롱한 황금색 눈동자는 실핏줄이 터지기라도 한 듯 짙은 핏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 * *
“허억! 허억!”
“하악. 하악.”
숨이 턱 끝까지 차올랐다. 마나라는 이름을 지닌, 이 세계에서만 사용할 수 있는 미지의 힘이 계속해서 몸에서 빠져 나가고 있었다.
그 여파로 온몸이 물 먹은 솜처럼 무거워지고 있었다. 하지만 호와 한시진은 한시라도 걸음을 늦출 수가 없었다. 바로 뒤에서 무시무시한 맹수가 자신들의 목을 물어뜯기 위해 달려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저 녀석은 지치지도 않나……!”
호가 투덜거리듯 말했다. 자신들은 죽을 것 같은데 황금색의 웨어 타이거는 점점 더 가까이 자신들에게로 접근하고 있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두 남녀의 눈에 D등급 던전 메이즈 케이지의 입구가 눈에 들어오고 있다는 점이었다.
“한시진! 이제 준비해!”
“네! 오빠! 마정석은 있죠?”
“물론이지! 챙겨뒀어!”
마장기를 운용하기 위해서는 소환자의 마나뿐만 아니라 마정석이라는 물품도 필요했다. 쉽게 설명하자면 마정석은 마장기라는 기계를 움직이기 위한 기름과도 같은 존재였다.
메이즈 케이지 내에서 브로리를 떼어내기 위해서는 한참 동안이나 메이즈 케이지 내부를 돌아다녀야 했다. 당연히 계속해서 마장기를 운용하기 위해서는 마장기의 동력이나 다름없는 여분의 마정석은 필수였다.
“던전의 입구까지 도착하면 안으로 들어가기 말고 바로 좌측으로 빠져!”
“네!”
어느새 눈앞에 메이즈 케이지의 입구가 보이고 있었다. 그리고 커다란 입구가 쩍하고 자신의 입을 벌리는 순간 한시진은 좌측으로 마장기의 조종간을 꺾어 당겼다. 메이즈 케이지에 진입해야 하는 건 던전 내부의 지리를 알고 있는 호 혼자뿐이어야 했다.
이제부터 자신은 본대와 합류, 로우덴의 명령에 따라 리아 캬베데와 함께 브로리가 떨어져 나간 수인 군대를 상대할 예정이었다.
그리고 황금색의 웨어 타이거는 메이즈 케이지 내부와 외부로 나뉘어 도망치는 두 대의 키마라이 중 호가 탑승한, 그러니까 자신에게 제대로 한 방 먹였던 키마라이를 향해 메이즈 케이지 내부로 거리낌 없이 달려가기 시작했다.
‘브로리의 성격상 그녀는 자신을 농락한 호 님만을 노릴 게 분명합니다. 분명 그렇게 갈라진다 해도 그녀는 한시진 님이 아닌 호 님만을 따라갈 게 틀림없습니다.’
“후우. 정말이네.”
그 모습을 보며 시진은 가슴을 쓸어내렸다.
작전에 돌입하기 전, 로우덴이 확신하듯 말하긴 했지만 혹시나 하는 변수에 불안한 마음이 든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브로리와 맞부딪치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어떻게든 버텨내겠다는 생각은 이미 그녀의 한 방에 나가떨어진 이후로 바뀐 지 오래였다.
만약 정말로 브로리가 자신을 노리고 들어왔다면 자신은 리그너스 대륙이라는 이곳에서 뼈를 묻었을 가능성이 높았다.
“……젠장.”
요란한 소리와 함께 어두컴컴한 동굴 속으로 사라져 어느새 모습이 보이지 않는 키마라이와 웨어 타이거의 뒷모습에 시진은 자신의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대한제국의 화랑기사단장이자 적들에게는 검은 악마라 불리는 자신의 별명이 지금만큼은 너무나도 부끄럽게 느껴졌다.
조금만 더 자신이 강했더라면, 더 실력이 뛰어났다면. 호를 위험천만한 일에 빠뜨리지 않았을 텐데 라는 생각이 그녀의 머릿속을 가득 채우기 시작했다.
“조심해요, 오빠.”
메이즈 케이지 내에 들어가 제대로 숨을 수만 있다면 호는 안전할 터였다.
아무리 브로리가 대단하다 하더라도 메이즈 케이지의 미로는 쉽게 빠져나올 수 있는 곳이 그리고 쉽게 상대를 추격할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아니, 무슨 일이 있어도 무사해야만 했다.
기이잉! 쿵!
그렇게 잠시 동안 메이즈 케이지의 안쪽을 바라보던 한시진의 마장기가 쿵쿵 거리는 소리와 함께 움직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