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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그너스 대륙전기-121화 (121/522)

# 121

리그너스 대륙전기 121

“맞아. 그 둘을 동시에 상대하는 것은 현재 우리들의 전력으로는 힘든 일이야. 마음 같아서는 상대도 하고 싶지 않지만 아쉽게도 그건 불가능한 일이니까. 각개격파를 시도하는 거지.”

“멍멍. 알겠습니다. 사나운 기사를 잡기 위해서는 팔과 다리부터 잘라내라는 격언이 있지요.”

“굉장히 잔인한 말인데?”

호의 말에 어깨를 살짝 으쓱인 로우덴은 계속해서 말을 이어나갔다.

“브로리와 그녀의 밑에 있는 이들을 이간질하기에는 시간이 부족합니다. 멍멍. 그녀의 성격으로 보아할 때 아마 아군을 만나는 순간 불원숭이처럼 공격해 들어올 게 분명합니다.”

로우덴의 말에 호는 고개를 끄덕이며 천천히 그의 말을 듣기 시작했다.

“브로리의 무력은 정말 뛰어납니다. 일대일로는 당해낼 자가 없다고 하죠. 멍멍. 하지만 그녀는 자신의 강함을 과시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리셴르나와 쿠퍼쏘우가 부딪쳤던 전쟁에서의 소문에 따르면 그녀는 자신의 능력만을 믿고 홀로 드워프의 군대 사이로 몇 번이나 돌격해 들어갔다고 합니다. 멍멍.”

“리셴르나가 고생 좀 했겠는걸? 용병이라고는 하지만 그녀 또한 수인 영웅. 게다가 그 무력을 생각하면 쉽게 드워프들의 손에 죽게 내버려 둘 수는 없는 인물이니.”

호가 말했다. 브로리를 지키기 위해 무리해서 병사들을 움직였을 테니 병사들의 피해가 꽤 났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멍멍. 하지만 딱히 리셴르나가 고생이라고 할 것은 없었다고 합니다. 타임리스 상단의 말에 의하면 쿠퍼쏘우 휘하에 있는 드워프들은 워낙 브로리에게 호되게 당한 터라 고립된 그녀를 어떻게 할 생각도 못했다고 하더군요.”

로우덴의 말에 호는 끙하고 앓는 소리를 냈다. 한시진의 표정도 딱히 좋아 보이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병사들을 따로 빼내 그녀를 유인, 포위해 시간을 끄는 것은 현명하지 않은 생각입니다. 오히려 큰 희생만 불러 오겠죠. 멍멍.”

“그래. 그렇겠지.”

“함정을 파야 합니다. 우리가 수인족의 군대를 공격하는 동안 브로리가 꼼짝도 할 수 없게끔 만들어야 합니다.”

“로, 로우덴. 그게 가능한 일일까?”

한시진이 살짝 말을 더듬거리며 말했다. 다혈질적인 브로리의 성격상 유인은 어렵지 않을 것 같았다.

하지만 아군의 병사들이 삼만에 가까운 브로리의 병사를 패퇴시킬 때까지 그녀를 묶어놓을 수 있는 뚜렷한 수단이 없어 보였다. 호의 생각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로우덴은 다른 모양이었다.

“지금부터 가능하게 만들어야죠. 멍멍.”

로우덴이 호와 한시진을 바라보며 씩 하고 웃었다.

* * *

시원한 바람이 평원을 가로질렀다.

브로리가 이끄는 군대는 이제 에스트라다에서 하루 남짓 떨어진 거리까지 접근해 있었다. 그동안 호도 가만있지 않았다. 바로 어젯밤 켄타우로스 전사 천 명을 이끌고 수인족의 병사들에게 기습 공격을 감행했던 것이다.

야간 기습인 만큼 우렁찬 소리를 내는 마장기는 제외됐지만 실력이 뛰어난 한시진과 리아 캬베데까지 포함된 공격이었다. 그러나 결론만 말하자면 호는 브로리의 병사들에게 그리 큰 피해를 주지는 못했다. 켄타우로스 전사가 B랭크라는 그다지 높지 않은 등급의 기병대라는 점도 있었지만, 상대에게 큰 피해를 입히기에는 머릿수가 적었다.

휘하 병사들의 공격력, 방어력 수치를 증폭시켜줄 수 있는 호의 스킬인 지휘의 함성과 아크 스피릿이 있기는 하지만 이를 제외하면 기병대의 공, 방 수치를 높일 수 있는 스킬을 보유한 영웅은 없었다.

게다가 브로리의 진영에는 마장기, 그것도 일곱 대의 마장기가 존재했다. 그중 한 대만 가동하더라도 기습은 실패였다. 켄타우로스 전사가 B랭크 기병대라고는 하지만 마장기를 상대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래도 처음 기습에는 나름 상대의 진영을 흩뜨리고 큰 피해를…….

“호 님.”

“음?”

갑자기 들려온 목소리에 자신의 막사에 앉아 있던 호는 생각을 멈추고는 소리가 들려온 쪽을 바라보았다.

다크엘프가 하나가 무릎을 살짝 굽히는 모습이 호의 눈에 들어왔다. 그 뒤로 익숙한 수인 영웅의 모습이 보이고 있었다.

“로우덴 님이 오셨습니다.”

“호오. 로우덴. 좋은 계획이라도 떠올랐나?”

막사 안으로 들어오는 로우덴을 바라보며 호는 부드럽게 미소를 짓고는 깊이 숨을 들이쉬었다. 하지만 속은 내심 답답함으로 가득 차 있었다. 이제 내일이면 브로리의 군대가 에스트라다에 모습을 드러낼 터였다.

일인군단이라는 브로리의 무력을 생각하면 전면전은 필패였다. 수성전도 딱히 유리할 것 같지 않았다. 어떻게든 이번 전쟁에서 승리를 거두기 위해서는 그녀와 그녀가 이끄는 병사들을 따로 상대해야만 했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뾰족한 수가 보이지 않고 있었다.

그나마 기대를 걸어볼 만한 이는 로우덴이었다. 적어도 그는 이곳에 있는 영웅 중 머리가 가장 뛰어났다.

“호 님. 혹시 메이즈 케이지라는 곳을 아십니까? 멍멍.”

“메이즈 케이지?”

갑작스러운 로우덴의 질문에 호는 얼굴을 찌푸렸다. 분명 어디선가 들어본 것 같은데 기억이 가물가물했다. 그리고 메이즈 케이지라는 곳을 검색하기 위해 공략본을 열려는 찰나 로우덴의 말이 이어졌다.

“에스트라다 부근에 위치해 있는 D등급 던전입니다. 멍멍.”

“아하!”

기억났다. 딱히 중요한 전리품을 획득할 수 있는 곳은 아니었지만, 탐험가 계통의 클래스를 보유한 D등급 영웅의 승급에 필요한 아이템을 획득할 수 있는 던전 중 하나였다.

‘D등급 던전 치고는 약한 몬스터인 홉 고블린과 코볼트가 서식하고 있는 곳이긴 한데.’

난이도만 따진다면 D등급이 아닌 E등급 아니 E +등급이라고 해야 옳을 정도로 메이즈 케이지는 상대가 쉬운 몬스터들이 서식하는 곳이었다.

하지만 메이즈 케이지가 E등급이 아닌 D등급 던전으로 평가받는 이유는 바로 개미굴은 저리가라 할 정도로 심한 미로와는 던전의 지리 때문이었다.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드워프 혹은 노움이 살던 곳을 몬스터들이 빼앗았다고 하던데, 호는 그런 소문이 거짓은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호가 찾았던 메이즈 케이지는 고블린과 코볼트의 조잡스러운 기술로는 결코 만들어낼 수 없는 공간이었다. 그만큼 메이즈 케이지의 통로는 굉장히 넓고 컸으며, 미로와도 같은 굴이 사방으로 뚫려 있었다.

덕분에 호 역시 한시진과 함께 메이즈 케이지를 토벌 했을 때 미로와도 같은 구성 때문에 고생을 제법 했었다.

“아아, 끔찍한 던전이었지. 생각해 보니 근처에 있었어.”

호가 넌더리를 내며 말했다. 메이즈 케이지의 미로는 리그너스 대륙전기의 공략본을 봐도 잘 이해가 되지 않을 정도로 복잡했다.

“멍멍. 근처라고는 해도 에스트라다에서 반나절은 가야만 하는 곳이지요. 어쨌든 메이즈 케이지의 악명은 에스트라다에 사는 종족이라면 누구나 다 알 정도로 유명합니다.”

“그래. 들어가면 웬만해서는 나오기 힘든 곳이지.”

“그렇습니다. 멍멍. 그렇기에 호 님. 우리는 메이즈 케이지로 브로리를 유인해야 합니다. 그녀를 메이즈 케이지에 가둬 놓는 곳이지요.”

“흐음?”

로우덴의 말에 호는 모호한 표정을 지었다. 메이즈 케이지에 브로리를 가둬 놓는다?

제법 괜찮은 생각인 것 같았다. 브로리가 아무리 뛰어난 전사라고 해도 뛰어난 실력이 미로에서 빠져나오게끔 만드는 것은 아니었으니 말이다.

더군다나 메이즈 케이지는 리그너스 대륙전기의 엔딩을 본 경험이 있고, 공략본을 통해 던전의 내부 지도까지 가지고 있는 자신조차도 혀를 내두르게 만들 정도의 복잡한 구조를 지닌 동굴이었다.

하지만 문제가 없는 것도 아니었다.

“괜찮은 생각이기는 한데…… 분명 브로리만 없다면 그녀의 군대를 상대하는 것은 어느 정도 할 만한 전투가 될 테니까. 그런데 어떻게 브로리를 메이즈 케이지까지 유인할 거지?”

브로리가 이끄는 군대가 에스트라다에 도착할 때까지는 이제 하루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그건 호 님께서 도와주셔야 합니다. 멍멍. 조금 위험한 일이 될 지도 모릅니다.”

로우덴이 엷게 미소를 짓고는 말을 이어나갔고, 그의 말을 듣던 호의 고개가 천천히 끄덕여졌다. 조금 위험한 방법이기는 했지만, 전투에서 이기기 위해서라면 아니, 이 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해야만 했다.

“나보고 유인을 하라는 것 같은데. 좋은 방법이라도 있어?”

“그렇습니다. 브로리를 유인하는 방법은 어렵지 않습니다. 멍멍. 그녀의 역린을 건드리면 되는 일이니까요.”

“그녀의 역린이라면?”

“브로리는 셰·발 전쟁의 희생자라고 할 수는 영웅입니다. 멍. 그리고 아시다시피 셰·발 전쟁은 마정석 때문에 일어난 전쟁이죠. 정확히 말하자면 해머스의 마정석 때문이지요.”

그 이야기에 대해서는 얼핏 알고 있었다. 로우덴이 말을 해줬기 때문이었다.

“그녀의 말대로 브로리는 해머스를 완전히 파괴할 때까지 공격을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멍멍.”

“셰·발 전쟁의 원인이 되었던 마정석 때문이로군.”

“그렇습니다. 멍멍.”

몸에 땀이 나는지 혀를 내밀던 로우덴은 자신의 콧잔등에 걸려 있는 안경을 살짝 끌어올리며 말했다.

“그렇기에 그녀의 역린이자 그녀를 탄생시키게 만들었던 전쟁의 시발점인 마정석을 이용해 그녀를 유인하는 겁니다. 아마 노예를 대하듯 마정석을 던져주면 브로리는 무슨 일이 있어도 호 님을 쫓아올 게 분명합니다.”

로우덴이 확신하듯 말했다. 그리고 세부적인 작전이 곧 그 자리에서 세워지기 시작했다. 브로리를 메이즈 케이지까지 유인하는 것은 호가 맡았다.

“위, 위험해요! 차라리 제가 할게요!”

호가 브로리를 유인하는 임무를 수행하는 것에 대해 한시진은 당연하게 반대했다. 워낙 위험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번 전쟁의 승패는 브로리를 메이지 케이지까지 끌어들이고 그녀가 동굴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도록 하는 데 달려 있었다.

“어쩔 수 없는 일이야.”

“하, 하지만!”

그런 한시진의 반응에 호는 천천히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공략본을 지니고 있는 호는 메이지 케이지의 지리를 알고 있는 유일한 인물이었다. 그렇게 작전이 시작되었다.

* * *

쿠아앙!

“크윽!”

전력을 다해 내려친 황금색 마장기의 공격을 붉은색의 기체, 키마라이가 힘겹게 막아내었다. 그러나 강력한 힘 때문에 브로리의 공격을 완벽하게 흘리지 못한 호의 마장기는 한 쪽 무릎을 땅바닥에 꿇을 수밖에 없었다.

“이 버러지 같은 자식! 감히!”

마력 통신구를 통해 브로리로 추정되는 여성의 분노에 찬 목소리가 호의 귀로 들려왔다. 하지만 호는 브로리의 목소리에 신경을 쓸 여유가 없었다. 까닥하다가는 여기서 죽을 수도 있었다.

‘이거 생각보다 위험하겠는데…….’

호는 자신의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로우덴의 계략대로 마정석이라는 브로리의 역린을 건드려 그녀를 유인하는 것은 성공적이었다.

“죽여 버리겠다!”

심지어 작전의 완벽함을 위해 마정석 몇 개를 그녀의 얼굴을 향해 던져 버리는 도발도 했었다. 당연히 브로리의 반응은 로우덴의 예상대로였다.

몇몇 수인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오른 브로리가 자신의 마장기에 탑승하기 시작했고, 그녀의 황금색 웨어 타이거가 움직이는 순간 호와 한시진이 탑승한 키마라이는 계획대로 메이즈 케이지를 향해 도망치듯 내달리기 시작했다.

이대로 브로리를 메이즈 케이지 안까지 유인하면 작전은 성공이었다.

‘이번 작전은 호 님의 마장기 운용술에 달려 있습니다.’

작전에 돌입하기 전 로우덴이 호에게 한 말이었다. 그의 말대로 이번 작전은 호가 얼마나 브로리의 추격을 잘 뿌리칠 수 있느냐에 따라 달려 있었다. 그리고 호는 나름 브로리의 추격을 어렵지 않게 뿌리칠 수 있을 것이라는 자신감을 가지고 있었다.

비록 이 세계에서 직접 마장기를 운용해 본 경험은 적었지만 호는 가상현실게임 리그너스 대륙전기에서 셀 수도 없이 마장기를 움직여 본 경험이 있었다. 하지만 분노에 찬 브로리의 황금색 마장기는 호와 한시진 그리고 로우덴의 예상을 훌쩍 뛰어넘을 정도로 빨랐다.

정보에 따르면 브로리의 마장기는 수인족의 B등급 마장기인 웨어 타이거급 마장기. 그러나 황금색으로 도색된 브로리의 웨어 타이거는 일반적인 웨어 타이거급 마장기의 성능과는 궤를 달리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덕분에 어느새 점점 서로의 거리가 가까워지기 시작하더니 아직 메이즈 케이지가 있는 곳까지 거리가 제법 남았음에도 불구하고 브로리에게 따라잡히며 전투가 벌어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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