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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그너스 대륙전기-120화 (120/522)

# 120

리그너스 대륙전기 120

견인과 원인들은 수인 왕국 내에서도 사이가 아주 좋지 않기로 유명한 종족이었다. 성향 자체가 전혀 맞지 않았다. 수인 왕국이라는 이름으로 묶인 연합이 아니었다면, 당장 전쟁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두 종족은 서로를 반목했다.

하지만 충성스러움으로 말미암아 수인 왕국 내에서 큰 신망을 얻고 있던 견인들과는 달리 원인들은 세력도 약한데다가 박쥐처럼 여기저기 붙어 아첨과 이간질을 일삼는 행동 때문에 많은 종족들이 기피를 하는 부족이었다. 그런 원인들과 사이가 좋은 종족은 다람쥐 혹은 뱀 종족 정도에 불과했다.

그러던 중 견인족의 영토 근처에서 마장기를 제작할 수 있는 특산품인 해양석과 마정석이 동시에 발견이 되었다. 하지만 인간들의 영토와 경계가 맞닿는 애매모호한 위치였다. 그러나 마장기를 제작하는 데 필수적으로 들어가는 물품인 그 두 특산품은 인간도 그리고 견인들도 포기할 수 없는 매력적인 특산품이었다.

당연히 이 두 개의 특산품을 두고 견인들과 티격태격하기 시작한 인간들의 세력은 블루 스케일의 발란스 후작가였는데, 그들은 전부터 가세가 기울기 시작하던 가문이었다.

그 때문에 발란스 후작이라 불리던 시니엘 발란스는 자신의 가문을 살리기 위해 마정석을 획득하는 데 모든 전력을 기울이기 시작했고, 결국 이로 인해 한 치의 양보도 없는 전쟁이 시작되었다.

‘셰발 전쟁.’

그리고 발란스 가문과의 전쟁에서 선두에 섰던 견인 부족의 이름은 셰필드. 견인들 중에서도 가장 큰 세력을 이루고 있던 종족이었다.

용맹함으로 이름 높은 셰필드 족의 맹공에 발란스 가문은 계속해서 후퇴해야만 했고, 이 틈을 타 마정석에 조그마한 지분이라도 가져야겠다는 생각을 한 수인 부족들이 하나 둘씩 전쟁에 참전하기 시작하면서 전쟁은 점점 더 커져가기 시작했다.

“수인족들을 막아라!”

“인간들을 쫓아내라!”

발란스 후작가로 인해 시작된 전쟁은 다수의 수인 종족들의 적극적인 참전으로 인해 블루 스케일까지 위협을 할 정도의 큰 전쟁으로 변질되었고, 이는 곧 다른 칠 왕국들의 참전을 불러일으키며 종족 전쟁으로 확산되었다.

하지만 계속되는 전쟁에서도 셰필드 부족은 자신들의 뛰어난 용맹함으로 연신 승리를 거두며 전공을 올렸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지.’

그리고 벌어진 셰필드의 난. 브로리의 눈동자가 로우덴에게로 향했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라는 말처럼 견인들이 잘 나가는 것을 시기하는 종족이 있었다. 바로 견인과 사이가 좋지 않은 원인들이었다.

그리고 전쟁이 한창 진행될 무렵 원인족의 장로였던 갈라고는 한 통의 편지를 발란스 후작가로 보냈다. 눈엣가시처럼 골치 아픈 셰필드 부족을 처리하고픈 발란스 후작가. 그리고 견인을 싫어하는 원인족의 장로 갈라고. 마음이 통한 둘은 곧 흉계를 꾸미기 시작했다.

그리고 일어난 셰필드의 난. 대회의에서 갈라고가 제안한 전략에 따라 어쩔 수 없이 인간들의 요새를 공략하던 셰필드 부족은 곧 백만이 넘는 인간들의 군대에 포위가 되었고, 처절한 전투 끝에 셰필드 부족은 소수의 생존자를 두고 전멸하고야 말았다.

그 전투로 인해 인간들도 엄청난 피해를 입었다. 특히 블루 스케일의 후작 가문인 발란스 가문이 그 전투에서 멸문했다. 가문에 관련된 모든 인물들이 목숨을 잃었기 때문이었다. 단, 한 사람을 제외하고 말이다.

바로 발란스 후작가의 둘째 영애였던 샤를 발란스였다. 하지만 샤를 발란스는 살아도 산 것이 아니었다. 셰필드 부족이 위험하다는 소식을 들은 수인 왕국들의 군대가 들이닥치며 그들의 손에 포로가 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동족을 잃은 셰필드 부족의 심한 고문이 그녀에게 가해졌다.

하지만 가까스로 전투에서 살아남은 셰필드 부족의 전사들은 갈라고를 위시한 갑작스런 원인들의 공격에 의해 모두 목숨을 잃었고, 종족의 다른 이들 역시 원인들의 손에 모조리 죽어나갔다.

그리고 샤를 발란스는 원인들의 포로로 신세가 변하고 말았다. 그러던 도중 태어난 아이가 바로 브로리였다.

“후후후.”

기억도 나지 않은 오래전의 일. 훗날 여러 수인들에게 들었던 이야기를 떠올리며 브로리는 반사적으로 웃음을 흘렸다.

“맞아. 원숭이들. 그 찢어먹어도 시원치 않을 녀석들. 하지만 로우덴 셰필드. 너 또한 착각하는 게 있다. 이 건방진 강아지야.”

잠깐 무언가를 회상하던 브로리의 얼굴이 이윽고 분노로 딱딱하게 굳는 모습을 본 로우덴은 일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직감할 수 있었다.

“샤를 발란스를 원인들에게 넘긴 것은 바로 견인들이었어. 그 덕분에 내가 태어날 수 있었지.”

“그, 그건 틀린 말입니다. 멍멍! 견인은 원인들에게 샤를 발란스를 넘기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우리 부족을 몰살시키고 빼앗아 간 것이었을 뿐입니다!”

“그건 중요치 않아.”

브로리가 빙글대며 웃었다.

“중요한건 샤를 발란스가 원인들에게 넘어갔다는 사실이야. 그때 너희들은 내 어머니를 죽였어야 했어. 나 같은 존재가 태어나지 않도록 말이지. 그리고 뭔가 착각하는 게 있는데, 내가 너희들을 공격하는 것은 버독이나 갈라고 녀석이 좋아서가 아니야. 전부 돈 때문이라는 거. 모르지는 않을 텐데?”

“멍멍.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도 만족할 만한 조건을 제시할 수 있…….”

로우덴의 말에 브로리는 잠시 그를 바라보다가 킥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그런 브로리의 반응에 로우덴은 하던 말을 멈추고는 그녀를 바라보았다.

“아니. 됐어. 돈 따위 지금은 중요하지 않아. 더 중요한 게 생각났거든.”

“……더 중요한 것? 멍?”

“그래. 더 중요한 것.”

“그게 무엇입니까?”

로우덴이 내처 물었다. 왠지 불안한 느낌이 들었다.

“셰발 전쟁. 그 빌어먹을 재앙의 시발점이 되었던 것은 바로 마정석이었지. 그러나 셰발 전쟁이 끝난 이후 마정석은 인간들도 그리고 수인들도 차지하지 못했다.”

브로리의 말에 로우덴의 얼굴이 난처한 듯 붉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 마정석을 사용하고 있는 녀석들이 있어. 모든 것의 시작이었던 빌어먹을! 그 마정석을 말이지!”

“그, 그건……!”

브로리의 경멸스러운 눈초리가 로우덴에게로 향했다.

“로우덴, 그대는 기억하겠지? 그 옛날 발란스라는 이름을 지니고 있던 도시. 지금은 해머스라고 불리던가? 마침 잘 됐어. 난 그 곳을 지워버리겠다.”

분노에 가득 찬 브로리의 목소리에 로우덴은 고개를 푹 숙일 수밖에 없었다.

* * *

협상은 깨어졌고, 브로리가 이끄는 군대는 계속해서 에스트라다로 향하고 있다는 보고를 들으며 호는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로우덴을 바라보았다. 자신만만한 했던 녀석이 풀이 팍 죽어 있었다. 일단 숨을 고르고, 전략을 짜고, 전열을 가다듬어야 했다.

전력은 백중세. 마장기의 대수가 차이가 나긴하지만 브로리를 제외하면 충분히 자신들이 상대할 수 있는 전력이었다.

‘문제라면 과연 브로리를 상대할 수 있느냐인데.’

무력 능력 964에 금파신이라는 SS등급 클래스를 가지고 있는 영웅. 자신과 한시진의 실력으로는 맞상대는 절대적으로 불가능했다.

분명 한시진의 실력은 뛰어났다. 그건 인정할 수 있었다. 만약 상대가 평범한 마장기 오너들이었다면 충분히 그녀의 실력으로 정리할 수 있었다.

하지만 브로리는 그녀가 이제까지 상대했던 마장기의 오너와는 차원이 다른 이 세계의 실력자였다. 훗날이라면 한시진과 좋은 상대가 될 수 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시진이 브로리와 일전을 겨루기 위해서는 아직 성장이 필요했다.

게다가 브로리는 통솔 능력도 나쁘지 않았다.

442. 그녀의 무력 능력에 비교하면 굉장히 떨어지는 편지만 현재 호와 휘하 영웅들의 통솔력과 비교한다면 상당히 높은 편이었다.

현재 아크 로얄이라는 B등급 클래스를 보유하고 있는 호도 통솔 능력은 370에 불과했다. 그것도 아이템의 힘을 빌린 상황에서 나오는 수치였다.

그런 두 개의 능력에 반해 브로리의 지력과 정치력은 굉장히 낮았다. 111과 99. 둘이 합쳐 200을 간신히 넘었다. 무력 능력에 비교하면 정말 초라한 수치였다.

‘이거 삼국지의 여포가 따로 없네.’

절대적인 무력. 그에 반해 없다시피 한 머리. 돈과 같은 재물을 좋아한다는 특징도 생각하면 딱 여포였다. 굳이 여포와 다른 점을 찾자면 여포는 남자였지만, 브로리는 여자라는 점?

“정찰병들의 말에 따르면 브로리의 군대는 앞으로 사흘 후면 에스트라다에 도착할 것 같아요.”

호가 브로리에 대한 생각을 하는 동안 조용했던 침묵을 깬 것은 한시진이었다. 로우덴은 여전히 고개를 들어 올리지 못하고 있었다.

“그렇군. 결국 전쟁을 피할 수는 없겠어.”

“멍멍. 면목이 없습니다.”

“아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고 생각해.”

호는 말과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조금의 투덜거림은 담겨 있었지만, 결과를 원망하거나 로우덴에 책임을 묻는 뉘앙스는 전혀 없었다.

“일단 상대의 전력을 정확히 분석해 봐야겠어.”

호가 말했다. 피할 수 없는 전쟁이라면 지금부터라도 철저하게 준비해야만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일단 상대를 정확히 파악할 필요가 있었다.

“브로리 휘하에 있는 이름난 수인 영웅들이 있나?”

“멍멍. 아뇨. 없습니다.”

“없어……?”

로우덴의 대답에 호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무려 삼만이 넘는 군대에 마장기만 일곱 기가 포함되어 있었다. 그런데 이름난 수인 영웅이 없다니? 심지어 삼국지의 여포에게는 진궁과 고순이라는 인재가 있었다.

“멍멍. 분명 그녀는 수인들의 땅에서 자신만의 세력을 만들어 낸 대단한 인물입니다. 하지만 수인들은 기본적으로 인간과 수인의 혼혈인 브로리를 자신의 동족이라고 인정하지 않습니다.”

“뭐? 하지만 브로리는…….”

호의 시선이 로우덴에게로 향했다. 그녀는 삼만이 넘는 군대의 지휘관이었다. 만약 수인들이 정말로 그녀를 동족으로 인정하지 않았다면 군대의 지휘관이 될 수도 없었을 터였다.

“그들은 단지 그녀의 힘에 굴복했을 뿐입니다. 아마도 정말 그녀를 진심으로 따르지는 않을 겁니다. 멍멍.”

“……그게 또 무슨 소리람.”

적이지만 불쌍하다고 해야 할까? 뭔가 씁쓸한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이 점을 파고들면 뭔가 해결책이 나올 것 같았다. 안쓰럽긴 해도 적의 약점을 노리는 것은 전략에 있어서 기본 중의 기본이었다. 그리고 로우덴의 귀가 쫑긋 움직였다.

“멍멍. 좋은 생각이라도 있으십니까?”

로우덴이 물었다. 한시진도 차분한 표정으로 호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잠시 후, 호는 자신이 생각했던 내용을 천천히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우리를 공격하는 수인들의 군대가 무서운 이유는 바로 브로리 때문이야. 정확히 말하자면 그녀가 조종하는 황금색 마장기를 당해내기가 힘들어서지.”

브로리 말고도 여섯 대의 마장기와 삼 만이라는 수인 병사들이 있기는 했다. 쉽게 생각할 수 없는 전력이기는 하지만 브로리에 비한다면 그래도 충분히 해볼 만 한 상대였다.

“하지만 수인족의 병력은 그렇지 않지.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브로리를 고립시킨다.”

“고립이라면? 브로리와 수인족의 군대를 떼어놓으시려는 생각이로군요.”

지력이 높은 영웅답게 로우덴은 호의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눈치 챈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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