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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그너스 대륙전기-117화 (117/522)

# 117

리그너스 대륙전기 117

“림드 산맥의 패자가 되었고, 두 대의 마장기를 보유했으며 많은 영웅들과도 함께하고 있지.”

이 세계의 생활이 후회되는 것은 아니었다. 자신과 함께 하는 소환자인 한시진과 아스트리드 벨도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지금 당장 여신 라헬이 나타나 한시진과 원래의 세계로 돌아가는 것 중 하나를 택할 수 있다고 묻는다면 당연히 호는 원래의 세계로 돌아가는 것을 택할 터였다.

하지만 그런 감정이 며칠, 몇 달, 몇 년 뒤에도 계속되리라는 보장이 없었다. 그만큼 그녀는 어느새 자신의 감정 한 구석에 소중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그렇기에 호는 마족과 천족의 계승이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리고 여신 라헬을 대체 왜 소환자를 이 세계로 끌고 온 것인지 그러한 궁금증을 이 세계의 역사와 신화에 대해서 찾으려고 하고 있었다.

그렇게 집무실에서 책을 보던 도중 후다닥 거리며 복도를 뛰는 다급한 소리가 호의 귀에 들려오기 시작했다. 책에 보고 있던 집중이 단번에 깨질 정도로 요란한 소리였다. 그리고 누군가가 집무실의 문을 부술 듯 쿵쿵 두드리기 시작했다. 왠지 불길한 느낌이 들었다.

“들어와!”

호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로우덴이 집무실 안으로 들어왔다. 두 발이 아닌 네 발을 땅에 딛고 있는 그는 헤엑거리며 자신의 혀를 내밀어 거칠게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무슨 일인데, 그렇게 급하게 달려오는 거지? 로우덴. 수인이 쳐들어오기라도 하는 건가?”

“마, 맞습니다. 수인족의 공격입니다.”

“이런, 젠장.”

자신의 예상과 한 치의 다름도 없는 로우덴의 대답에 호는 자신의 머리를 긁적였다. 최근 들어 잠잠한 것 같더라니. 그래도 전과는 달리 호의 표정에는 여유가 넘쳐 있었다. 예전과는 다르게 지금의 자신에게는 B급 마장기인 키마라이가 두 대나 있었다.

게다가 한시진의 마장기 조종술은 굉장히 뛰어난 편이었고, 자신 또한 평범한 수인족의 마장기 오너쯤은 가볍게 상대할 수 있었다. 거기에 엘븐 템플러와 정예 실리스 그리고 B랭크 수인 기병대인 켄타우로스 전사도 소수긴 해도 모병이 되어 있는 상황이었다.

비록 전선을 확대할 여력은 없어 수인족의 도시를 향해 치고 나갈 수는 없지만, 방어가 튼튼한 에스트라다에서 그들의 공격쯤은 마장기 다수가 포함된 군단급의 병력이 아니면 충분히 막아낼 수 있었다.

“수인들의 병력은? 아니, 수인들의 위치는 어디쯤이지?”

“정예 실리스들의 말에 따르면 수인 왕국의 선봉대가 에스트라다에서 일주일 정도 떨어진 곳에서 발견됐다고 합니다.”

“흐음.”

조금 빡빡하기는 했지만 그 정도라면 어느 정도 여유는 있었다. 전에 윤아가 지휘하던 수인들의 군대도 그보다도 더욱 지근거리에서 발견되었었다.

‘영웅들의 수에 여유가 생기면 첩보 쪽도 관심을 둬야겠네.’

만약 첩보 기관이 설립되고 능력치가 높은 영웅이 배치된다면 다른 종족들의 움직임을 쉽게 감지 및 보고를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의 상황으로는 큼지막한 사건이 아니면 정보를 얻을 수가 없었다. 그것도 로우덴 덕분이었다.

“수인들의 병력은 총 삼만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오호?”

호가 눈을 가늘게 떴다. 삼 만. 예상외로 많지 않은 숫자였다. 오히려 저번 에스트라다를 공략했던 병사들보다 수가 적었다. 추정이라는 단어를 쓰기는 했지만, S등급이라는 로우덴의 능력치를 생각하면 거의 맞아떨어질 게 분명했다. 오차 범위는 ± 3000 정도?

결국 이번 수인 왕국과의 전쟁도 자신의 경험치와 전직에 필요한 퀘스트의 진행을 위한 이벤트가 될 것 같다는 좋은 느낌이 들고 있었다.

“수인족의 C등급 마장기인 카니앗산 다섯 대와 B등급인 웨어 타이거 형 마장기 두 대가 발견되었습니다.”

“병사들의 수 치고는 마장기가 제법 많은데?”

“그, 그렇습니다. 그리고 그중 웨어 타이거 한 대는 황금빛을 띄고 있다고 합니다.”

“전용기로군!”

로우덴의 말에 호는 히죽 웃었다.

황금색 마장기. 어느 정도 실력이 있는 수인 왕국의 영웅이 탑승한 마장기로 보였다. 만약 마장기가 없는 상황이라면 벌벌 떨었겠지만, 자신에게는 한시진이 있었다. 한시진의 키마라이와 이름 모를 수인 영웅의 웨어 타이거. 꽤나 좋은 대결이 펼쳐질 것 같았다.

하지만 로우덴의 불안한 표정은 여전했다.

“호, 호 님. 멍멍! 이건 쉽게 생각할 일이 아닙니다. 황금빛입니다. 무려 황금빛이라고요!”

로우덴이 소리치듯 말했다. 흥분한 로우덴의 모습은 꽤나 드문 일이었기에 호의 표정도 조금은 진지해지기 시작했다. 지력 수치가 높은 S등급의 영웅, 로우덴이 이렇게 흥분한 것에는 분명 이유가 있을 터였다.

‘황금색의 전용기를 사용하는 녀석, 굉장히 대단한 녀석인가 본데?’

전용기. 일반적인 마장기의 오너들보다 뛰어난 실력을 지니고 있는 영웅들이 탑승하고 있다는 것을 나타내는 마장기로 보통 평범한 마장기에 비해 색이 다르거나 외형이 조금 변화된 모습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에이스급 마장기의 오너가 아니라면 전용기라고 해도 그 능력은 일반 마장기와 비해 별반 다르지 않았다. 약간의 차이가 있기는 했지만 단지 그뿐이었다. 전용기를 타고 전쟁터에서 홀로 무쌍을 찍을 수 있을 정도로 엄청난 실력을 지닌 마장기의 오너는 몇 존재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중 하나가 바로 한시진이었다.

“그래. 알아. 하지만 너 한시진의 마장기 조종술 본 적 없지?”

이 세계에서 전용기가 등장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어떻게 보면 굉장히 빠른 등장이기도 했다. 전용기를 보유했다는 것은 이 세계에서 어느 정도 명성이 있는 녀석이라는 것을 의미했으니 말이다. 그만큼 림드 산맥의 자신들이 수인들에게 눈엣가시인 모양이었다.

‘그래도 이제부터는 슬슬 골치 아파 지겠네.’

어느 정도 선을 긋고 끝내려면 좋으련만, 아직도 림드 산맥은 수인들이 탐을 낼 만 한 만만한 땅에 불과했다. 하기야 마장기도 B등급이기는 하지만 달랑 두 대 밖에 없었다.

“멍멍. 저번 전투에 대한 소문은 들었습니다. 멍. 한시진 양의 조종술이 뛰어나다는 것도 알고 있고요.”

“황금색의 전용기를 보유한 수인 영웅이 대단하다고 해도 한시진도 만만치 않을 걸?”

그래도 호의 목소리는 자신만만했다. 수인들의 전용기가 등장했다지만 그래봤자 한시진에게는 상대가 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녀의 마장기 조종술은 리그너스 대륙전기의 엔딩을 보며 대륙의 수많은 영웅들과 함께했던 호도 감탄할 정도였다.

아직까지도 제다이 나이트처럼 카니앗산의 광선포를 키마라이의 대검으로 쳐내는 모습은 머릿속에 생생하게 남아 있었다. 거기에 자신이 도와준다면? A등급 마장기가 등장하거나 각 종족을 대표하는 에이스급 오너가 아니라면 버티는 것은 어렵지 않을 것 같았다.

더군다나 상대 마장기는 웨어 타이거급 마장기. 가상현실게임에서 셀 수도 없을 정도로 많이 상대해 본 마장기였다. 하지만 로우덴은 그렇지 않은 듯했다.

“멍멍! 호 님. 황금빛의 전용기는 제가 아는 수인 왕국의 영웅 중에서도 딱 두 명만이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그만큼 특별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두 명?”

호의 입이 다물어졌다. 로우덴은 특별이라는 단어까지 써서 분위기를 긴장시키고 있었다.

“네, 그렇습니다!”

흥분하기라도 한 듯 로우덴의 눈은 꽤나 커져 있었다. 그 때문일까? 호 역시 자연스럽게 로우덴의 말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중 한 명은 여기에 나타날 일이 없는 수인 영웅이니 제외하도록 하겠습니다. 멍멍.”

‘대체 누구기에?’

순간 궁금증이 들었지만, 호가 뭐라고 말하기 전에 로우덴의 말이 이어졌다.

“멍멍! 그리고 남은 한 명의 주인공은 브로리입니다! 브로리!”

“브로리?”

“멍멍. 네 그렇습니다. 황금색의 웨어 타이거는 바, 바로 브로리의 마장기입니다! ‘수인 왕국의 최강 로리’ 그 브로리 말입니다!”

“……미친놈.”

흥분하다 못해 광분한 로우덴을 보며 호는 자신도 모르게 욕설을 내뱉었다.

사실 이 세계에 와서 말문이 막힐 정도로 놀란 일이 거의 없었었다. 여신 라헬이라는 존재로 인해 정체를 알 수 없는 이 이상한 세계로 끌려오기는 했지만, 자신이 알고 있는 가상현실 게임과 흡사한 배경을 지니고 있던 데다가 다른 세계로의 여행은 가상현실게임들로 인해 어느 정도 내성을 가졌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방금 전 로우덴이 외치듯 말한 내용은 호가 할 말을 잃기에 충분했다.

최강 로리, 브로리.

그 이름을 듣는 순간 호는 부끄러움에 절로 눈이 감겼다.

대체 어떤 정신 나가고 생각 없는 놈이 저런 별명을 자신 있게 사용하는지 지금이라도 그 얼굴이 보고 싶을 정도였다.

“하, 하아아.”

호는 천천히 고개를 내저었다. 수인과의 전쟁. 그냥 전쟁도 아닌 모든 것이 걸린 전쟁이었다. 거기에는 자신도 또한 자신을 믿고 따르는 휘하 소환자들의 생명도 걸려 있었다.

당연히 긴장이 가득해야 했건만 최강 로리, 브로리라는 그 어이없는 이름을 듣는 순간 전쟁의 긴장감이 확 사라져 버렸다. 하지만 로우덴의 말은 아직 끝나지 않고 있었다.

“마, 맞습니다. 멍멍! 상대는 미친놈. 아니, 미친년 브로리라고요!”

‘……그 미친놈이라는 수식어는 브로리가 아니라 로우덴 너에게로 향한 거였는데.’

호가 자신의 생각을 입으로 꺼낼까 말까 고민하던 사이 로우덴은 콧잔등의 안경을 검지로 스윽 올리고는 계속해서 말을 이어 나가기 시작했다.

자신을 바라보는 호가 떨떠름한 표정을 짓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진지함을 유지하고 있었다.

“호 님. 이는 엄청난 위기입니다. 멍멍. 결코 우습게 볼게 아니라고요.”

우습게보고 있지 않았다. 다만, 로우덴의 행동과 최강 로리라는 차마 말로 내뱉을 수 없는 그 단어가 에스트라다를 노리고 오는 수인, 콕 집어서 황금색의 대장기를 보유한 수인 영웅을 우습게 만들고 있었다. 그리고 리그너스 대륙전기를 개발한 개발자들의 네이밍 센스가 미친 듯이 우스워 보였다.

“우습게보고 있지는 않아. 하지만 로우덴, 그 녀석이 그렇게 대단한 인물이야?”

“멍멍. 물론입니다. 제가 아는 브로리는 수인 왕국의 가장 강력한 전사입니다.”

“엉?”

호의 눈이 불신에 물들기 시작했다. 로우덴은 브로리를 가리켜 수인 왕국의 가장 강력한 전사라고 말했다. 어떻게 보면 엄청난 수식어였다. 한 종족 최고의 전사라는 것은 적어도 SSS등급의 능력을 지니고 있거나 전쟁의 전황을 뒤바꿀 수 있을 정도로 상상을 넘어서는 강력한 스킬을 보유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했으니 말이다.

그러나 브로리라는 이름은 호가 리그너스 대륙전기의 엔딩을 봤음에도 불구하고 들어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로우덴이 이렇게까지 이야기하는 것을 보면 거짓은 아닌 것 같았다.

“최고의 전사? 그만큼 강해?”

“그렇습니다. 멍멍. 아쉬토도 그녀 앞에서는 한 수 접어줄 정도입니다.”

“……어? 그 아쉬토가 내가 아는 사파리에 있는 아쉬토는 아니겠지?”

수인 왕국의 제왕 아쉬토. 정말 오랜만에 듣는 이름이었다.

현재 자신이 수인 왕국과 전쟁을 벌이고 있다고는 하지만 아쉬토가 있는 사파리와 림드 산맥은 엄청난 거리가 있었다. 그리고 아쉬토는 수인 왕국의 제왕 위치에 어울리듯 리그너스 대륙전기라는 가상현실게임에서 굉장히 강력한 영웅으로 등장했었다. 이는 이 세계도 마찬가지일 터였다.

“맞습니다. 멍.”

“정말로 수인족의 대장으로 있는 그 아쉬토가 맞는 건가? 로우덴?”

“멍멍. 맞습니다. 제156대 수인족의 대왕이지요.”

“……그런데 그 브로리가 아쉬토보다 강력하다고?”

“그렇습니다. 멍멍.”

어이없음을 시작으로 불신으로 바뀌었던 호의 표정이 당황으로 바뀌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수인족의 대왕 아쉬토. 정확히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아쉬토는 분명 무력의 한계가 SS급인 클래스를 보유한 SS등급의 영웅이었다. 그런 만큼 전투 능력이 굉장히 뛰어난 영웅이기도 했다.

하지만 아쉬토의 무서움은 단순히 수치로 표현되는 전투 능력이 아니었다.

유저들이 좌절하는 모습에 쾌감을 느끼는 KOREA사의 개발자들이 게임 속에 등장하는 한 종족의 지도자를 약하게 만들어 놓을 리 없었다.

그런 만큼 수인 왕국의 대왕답게 아쉬토는 SS등급의 영웅임에도 불구하고 SSS등급의 영웅들과 비벼볼 수 있을 정도로 보유하고 있는 특성 및 스킬이 굉장히 화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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