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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그너스 대륙전기-115화 (115/522)

# 115

리그너스 대륙전기 115

“이, 이것들은?”

호의 부름에 따라 집무실에 찾아 온 엘 아르윈은 호의 책상에 놓인 물품들이 눈에 들어오자 자신도 모르게 몸을 떨었다. 이상하게 가슴이 심하게 두근거렸다.

뷰트의 성목, 다이아몬드, 미노타우르스의 장궁. 전부 자신이 가지고 싶었던 물건들이었다.

“엘 아르윈. 너를 위해 준비한 선물들이야.”

“아, 아아? 정말이신가요?”

“물론이지.”

호의 대답에 엘 아르윈이 그를 흘긋 바라보았다. 호를 바라보는 그녀의 시선에 담긴 감정을 눈치 챈 벨이 살짝 어깨를 으쓱였다. 자신의 동료는 이 세계의 이성들에게 굉장한 인기를 끌고 있었다.

“한 번 자세히 봐봐.”

“네? 네.”

호의 말에 엘 아르윈은 조심스럽게 자신의 낡은 활을 땅바닥에 내려 두고는 미노타우스의 장궁과 +3 생명나무의 가죽갑옷을 들어 올렸다. 그렇게 두 물건을 구경하며 행복한 표정을 짓던 그녀가 책상 위에 놓인 파이를 가리키며 물었다.

“아, 호 님. 이거 먹어도 되는 건가요? 굉장히 맛있는 향이 나요.”

“그럼. 마음대로 먹어도 돼.”

“아, 감사합니다. 호 님.”

호의 허락에 엘 아르윈은 딸기가 듬뿍 올라간 파이를 들어 올려 천천히 먹기 시작했다.

“와, 와! 와아! 굉장한 맛이에요! 세상에는 이렇게 맛있는 것들이 있었군요!”

엘 아르윈은 맛있어 보이는 딸기 파이가 굉장히 마음에 든 모양이었다.

처음에는 조그맣게 한 입 깨물던 그녀는 옆에 호와 아스트리드 벨이 있다는 것도 잊은 채 어느새 흡입하듯 딸기 파이를 먹고 있었다. 그리고 잠시 후, 하나의 메시지가 호의 눈앞에 떠오르기 시작했다.

띵동.

-엘 아르윈이 ‘맛있어 보이는 딸기 파이’를 섭취하며 굉장히 기뻐합니다.

-엘 아르윈이 ‘뷰트의 성목’을 얻고서는 굉장히 기뻐합니다.

-엘 아르윈이 ‘미노타우르스의 장궁’을 얻고서는 심장이 크게 뛰기 시작했다.

나타난 메시지는 하나가 아니었다. 그와 함께 엘 아르윈의 몸이 조금씩 연녹색으로 빛나기 시작했다. 가상현실게임인 리그너스 대륙전기에서 봤었던 승급 이벤트와 똑같은 모습이었다. 이들이 말하는 세계수의 축복이었다.

“아! 너무나 행복해요!”

눈을 살짝 감은 엘 아르윈은 지금 죽어도 여한이 없다는 모습이었다. 그녀는 자신의 몸에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 지 전혀 모르는 것 같았다.

“어어?!”

갑작스레 몸에서 연녹색의 빛이 나기 시작하는 엘 아르윈의 모습에 벨이 탄성을 터뜨렸다. 그리고 눈이 부실 정도의 빛이 호의 집무실을 가득 메우기 시작했다.

띵동.

-E등급 엘프 영웅인 엘 아르윈이 D등급 레어 클래스 중급 바람 정령사로 승급했습니다.

‘어라? 레어 클래스잖아? 운이 좋은데?’

관우는 내 여자의 공략본에 따르면 엘 아르윈은 D등급으로 승급하면서 80%의 확률로 일반 클래스인 중급 바람 마법사로 전직했고, 20%의 확률로 레어 클래스인 중급 바람 정령사로 전직한다고 나와 있었다.

등급 자체가 낮은 만큼 크게 달라질 건 없었지만 그래도 레어 클래스는 일반 클래스보다 조금 능력의 한계를 높일 수 있었고, 획득할 수 있는 또한 달라졌다.

하지만 그보다도 더욱 호를 들뜨게 하는 것은 엘 아르윈이 D등급 영웅으로 승급했다는 사실이었다.

결국 가상현실게임처럼 이 세계에서 아이템을 이용해 영웅들의 클래스를 높일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낮은 등급의 영웅이라고 해서 쓸모가 없을 거라고 여길 필요는 없었다. 오히려 그 사이에 원석들이 있을 지도 몰랐다.

“이거 제법 바빠지겠는데?”

앞으로는 할 일이 더욱 많아질 것 같았다. 그리고 엘 아르윈을 D등급 클래스 중급 바람 정령사로 승급시킨 호는 곧바로 에스트라다에 있는 수인 영웅 리젤의 승급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엘 아르윈과 마찬가지로 리젤은 호의 영웅들 중에서 그나마 가장 쉽게 그리고 현실적으로 승급에 필요한 아이템을 획득할 수 있는 영웅이었다.

“개다래나무 한 상자에 오만 리스를 달라고 하는데요?”

“돌았네. 영지 자금은?”

“뭐, 아시다시피 문제가 없을 정도로 충분해요.”

“그러면 상관없어. 구매하도록 해. 그나저나 아르테미스 상단. 점점 더 마음에 안 드는데?”

“어쩔 수 없죠. 그런데 이 특산품을 구하면 다른 영웅도 승급을 하는 건가요? 엘 아르윈처럼 생김새도 바뀌고요?”

“아마도? 조금 더 성장한 모습을 보이겠지.”

그리고 영웅들의 승급에 호 만큼이나 신을 내는 인물이 있었다. 바로 에스트리드 벨이었다. 약간이긴 해도 외모가 바뀔 정도로 모습이 변화하는 영웅들의 모습이 그녀에게는 엄청난 충격으로 다가온 것 같았다.

덕분에 벨은 윤아보다도 더욱 적극적으로 영웅들의 승급에 관심을 보이고 있었다.

* * *

한시진은 아침을 알리는 엘프들의 노랫소리를 들으며 슬며시 잠에서 깨어났다. 따뜻한 살갗의 감촉이 느껴지자 살짝 고개를 돌린 그녀는 자신의 옆에서 자고 있는 호의 모습을 보고는 미소를 지었다. 최근 그녀는 매일 밤 호와 함께했다. 그렇게 서로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속삭이다가 잠이 들고 아침을 맞이하고 있었다.

“히히히.”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신혼부부와도 같은 생활을 보내고 있다는 생각에 한시진의 입에서는 참을 수 없는 웃음이 흘러 나왔다. 이윽고 호의 볼에 살짝 뽀뽀를 한 그녀는 조심스럽게 침대에서 내려와 자신의 옷을 입기 시작했다.

집무실에서 호가 밤늦게까지 업무를 보느라 피곤할거라는 생각이 들자 일찍 깨우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큰일도 없으니 최대한 늦게 일어나게끔 하고 싶었다.

“안녕하십니까?”

“좋은 아침입니다.”

“좋은 아침입니다! 한시진 님!”

그렇게 조심스레 호의 방에서 나온 시진은 자신에게 인사를 건네는 이 종족들에게 인사를 하며 자신의 스케줄을 확인하기 시작했다. 오전에는 드워프들의 주거지 건설 감독을 해야 했고, 오후에는 엘븐 템플러들의 훈련에 신경 써야 했다.

“멍멍. 좋은 아침입니다아…….”

그렇게 영주성의 1층에 있는 응접실까지 내려온 시진은 뒤에서 들려오는 누군가의 힘없는 목소리에 몸을 돌려 상대를 바라봤다. 로우덴이었다. 최근 수인들의 기병대 연구에 힘쓰고 있는 그는 존스 홉킨스와 함께 연구실에서 생활하다시피 하고 있었다.

“로우덴 님. 오늘도 밤을 새신 건가요?”

“멍멍. 아까 전에 조금 잤습니다만 좀 더 수면이 필요할 것 같군요. 흐아암. 호 님께서는?”

“주무시고 있답니다.”

“멍멍. 그러면 보고는 나중에 해도 되겠군요…….”

한시진의 대답에 로우덴이 중얼거리듯 말했다. 그의 손에는 여러 개의 서류가 들려 있었다.

“호 씨에게 결제를 받아야 할 일이라면 제가 집무실에 가져다 놓을게요.”

“멍멍. 그래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한시진의 말에 로우덴은 반갑게 대답했다. 그러고는 좀 쉬어야겠다는 말과 함께 엉기적엉기적 자신의 방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잠시 후, 존스 홉킨스가 모습을 드러내더니 한시진에게 똑같은 것을 부탁하고는 구르듯 자신의 방으로 사라졌다.

“연구 개발이 힘들긴 힘든가 보네…….”

정확히 그들이 연구실에서 무엇을 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호가 자신에게 연구 업무를 내려주지는 않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가끔씩 연구실에서 들려오는 괴성을 생각해 보면 쉬운 일은 아닌 것 같았다. 하기야 그녀가 있던 세계에서도 화랑을 개발하는 연구원들은 매일 피로에 찌들어 있었다.

손에 들린 여러 개의 서류를 보며 시진은 몸을 돌려 호의 집무실이 있는 3층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집무실의 문을 연 순간 보이는 의아한 광경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여기서 뭐하시는 건가요? 벨 님?”

“보시다시피 청소하고 있어요.”

왜 그러냐는 듯 물어보는 아스트리드 벨의 행동에 시진은 기분이 조금 나쁘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남편의 물건을 다른 여자가 건드리는 것을 목격한 느낌이었다.

“청소요? 왜 시녀들을 통하지 않고서?”

“언제나 영주님의 집무실은 제가 직접 청소를 했답니다. 혹시나 시녀로 위장한 비밀문서를 첩자들이 빼돌릴 수도 있을지 모르잖아요? 당연히 영주 대리인 제가 조심해야 할 일이죠.”

“그, 그런가요?”

벨의 당당한 대답에 한시진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말한 가능성이 아예 없는 것도 아니었고, 영지의 내정을 담당하는 아스트리드 벨이 직접 그렇다고 말하는 데 뭐라 할 말이 없었다. 하지만 기분은 굉장히 좋지 않았다.

뭔가 찜찜한 구석이 느껴지기는 했지만, 호는 림드 산맥의 패자이자 디르시나의 영주였고 그녀는 디르시나의 재정을 책임지고 있었다. 서로 간에 보고하고 공통적으로 알아야 하는 것들이 많은 건 당연했다.

“……후우.”

시진은 조용히 마음을 가다듬었다. 굳이 이런 것에 일희일비 할 필요가 없었다. 아니, 오히려 신경을 쓰는 게 이상했다. 좀 더 태연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호는 자신을 사랑했고, 자신은 호의 애인이었다.

“그건 뭔가요?”

아스트리드 벨이 한시진의 손에 들린 서류더미를 보며 물었다.

“아, 호 씨에게 보고 해야 할 사안이에요.”

“제가 봐도 되는 건가요?”

“죄송해요. 민감한 사안이라서요.”

아스트리드 벨의 말에 한시진은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그러고는 침을 꿀꺽 삼켰다. 생각해 보면 손에 들고 있는 서류가 그렇게 대단한 것도 아닌데 자신이 왜 그런 대답을 했는지 알 수가 없었다. 태연하게 행동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은 게 10초도 되지 않았다. 갑자기 아스트리드 벨의 얼굴을 보는 게 힘들어졌다.

“……그렇군요.”

벨의 중얼거림을 들은 시진은 빨리 이 자리를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얼굴이 화끈거렸다. 재빠르게 호의 책상 서랍에 서류를 넣어 놓은 한시진은 조심스레 종이에 서랍에 서류가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글을 적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서랍에 서류가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내용의 글만 적었지만, 눈을 뜨고 자신의 행동을 바라보는 벨의 시선이 느껴지자 어느새 사랑해라는 말과 함께 뒤에 하트까지 그리고 있었다.

“그러면 수고하세요. 전 이만 호 씨가 부탁한 게 있어서요.”

괜히 드는 부끄러움에 한시진이 재빠르게 고개를 살짝 숙이며 호의 집무실에서 나가려고 했다. 그 때였다.

“한시진 양.”

“네?”

“혹시 승급이라는 거 알고 계세요?”

“승급? 아뇨, 잘 모르겠어요. 그러면 전 이만 바빠서…….”

아스트리드 벨의 말에 잠시 생각을 하던 한시진은 곧 고개를 저었다. 승급? 어디선가 들어본 것 같기는 했다. 하지만 이어지는 벨의 말을 듣지도 않은 채 그녀는 곧바로 문 밖으로 뛰쳐나갔다.

“흐응.”

그렇게 한시진이 나간 문을 바라보는 아스트리드 벨은 안타까운 표정을 지어 보였다. 하지만 그녀의 입 꼬리는 살짝 올라가 있었다.

이 세계 영웅들의 클래스를 높일 수 있는 아주 중요한 일인 승급에 대해 아는 소환자는 호와 자신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슬쩍 문 밖으로 고개를 내밀어 보니 한시진은 어느새 사라지고 없었다. 정말 굉장히 급한 용무가 있던 모양이었다. 다시금 청소를 재개하려던 벨은 호의 책상에 놓인 한시진의 글을 보고는 머리를 긁적였다.

굉장히 투박한 글씨체로 내 남자 사랑해, 힘내요 라는 말과 함께 하트가 적혀 있었다. 잠시 자신도 모르게 한시진의 글씨가 적힌 종이에 손을 대려던 벨은 곧 멈칫 손을 거둬들였다. 그러고 보니 오늘은 영주인 호가 조금 늦게 일어나는 것 같았다. 아침부터 승급에 대해 중요하게 물어볼 말도 있었다.

“아마 방에 있겠지?”

어차피 청소도 거의 끝난 상태였으니 여기서 마무리를 해도 될 것 같았다.

“안녕하십니까? 아스트리드 벨 님.”

“좋은 아침입니다.”

자신에게 인사를 건네는 이 종족들을 향해 아스트리드 벨은 손을 흔들어 보였다. 커티삭에 있었을 때는 자신이 이렇게 인사를 해야 하는 입장이었지만, 지금은 달랐다. 지금의 자신은 디르시나의 내정을 책임지고 있었고, 호가 없을 때는 디르시나의 영주 대리로 모든 전권을 위임받은 인물이었다.

“한시진 양은요?”

“드워프들의 거주지 건설 감독을 하러 방금 전에 나가셨습니다.”

“그렇군요.”

시종의 이야기를 들으며 벨의 눈썹이 살짝 올라갔다 내려갔다. 그녀는 정말로 급한 용무가 있었던 모양이었다.

“호 님께서는?”

“아직 기침하지 않으신 것 같습니다.”

“알겠어요.”

호의 방이 어디인지는 잘 알고 있었다. 자신의 방과도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이었다. 왠지 모르게 발걸음이 조금씩 빨라지는 것 같았다. 그와 비례해 심장도 조금씩 두근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호의 방문 앞에 도착한 아스트리드 벨은 가볍게 심호흡을 하고는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통로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고 있었다.

“아스트리드 벨이에요. 들어갈게요.”

똑똑 하는 노크소리와 함께 3 초간 기다렸을까? 안에서 아무런 대답소리도 들어오지 않자 벨은 방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문을 닫곡는 곤히 자고 있는 호의 모습을 확인한 후 호기심이 가득 담긴 눈으로 호의 방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자신의 머무르고 있는 방과 거의 흡사한 방이었다. 영주의 방이라 뭔가 다를 줄 알았는데, 그건 아닌 모양이었다.

“그럼 어디 깨워볼까?”

벨의 얼굴 위로 장난이 가득 생겨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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