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2
리그너스 대륙전기 112
‘만약 엘 샤난을 통해 뷰트의 성목을 구할 수 없다면 어디서 구하지?’
상단을 통해 뷰트의 성목 매물에 대해 알아본 것은 거짓말이 아니었다. 하지만 아르테미스 상단의 레드 벨벳은 뷰트의 성목은 쉽게 구할 수 있는 물품도 아닐뿐더러 엘프들이 전량 취급하는 목록이기 때문에 구하기가 힘들다고 말했고, 타임리스상단의 드워프들은 엘프의 대표적인 특산품인 뷰트의 성목에 대해 인상을 찌푸리며 손을 저었었다.
“혹시 뷰트의 성목이 필요한 거예요?”
“아아, 응. 많이는 필요 없는데…….”
“스무 상자 정도면 구해드릴 수 있어요.”
“정말?”
호의 눈이 번쩍 띄었다. 역시 퀘스트를 완료한 영웅다운 반응이었다. 그리고 뭔가 복받치는 감정을 억누르며 호는 엘 샤난을 바라보았다.
“네. 호 님께서 코르다를 도와주신 걸 생각하면, 어머님도 분명 뷰트의 성목을 내어주실 거예요. 아! 대신 돈은 조금 지불하셔야 될 것 같아요. 제 영지에서 생산되는 것이면 공짜로 드리겠는데 어머님의 영지라…….”
엘 샤난의 얼굴에는 공짜로 주지 못한 미안함이 가득 담겨 있었다. 하지만 그게 어디인가? 어차피 리스는 충분히 보유하고 있었다. 중요한 것은 가격이 아니라 확보 여부였다.
“물론이지! 만족스러울 만큼 가격을 치르도록 할게.”
“그러면 제가 어머님께 말씀 드릴게요.”
이로써 뷰트의 성목 Get. 약간의 문제가 생길 뻔 했지만, 다행이도 호는 아멘드마와 코르다에서 생산되는 특산품 뷰트의 성목을 손에 넣을 수 있었다.
* * *
[엘 아르윈(엘프족)-붉은 핏빛의 대지에 위치한 엘프의 영지에서 영입이 가능합니다. 만약 붉은 핏빛의 대지에 엘프의 영토가 없다면 영입 불가라는 조건이 붙기는 하지만 영입 난이도는 굉장히 쉽습니다. 그냥 등용 제안만 해도 바로 영입이 되는 수준.
태생 E등급이라 능력치가 좋은 편은 아니지만, 엘프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수집해 볼 만한 영웅입니다.
<엘 아르윈의 D등급 승급에 필요한 아이템>
-뷰트의 성목(다양한 장소에서 생산되지만 가장 얻기 쉬운 곳은 엘 아르윈을 영입한 장소인 붉은 핏빛의 대지에 있는 영지 아멘드마와 코르다에서 생산할 수 있습니다.)
-+3 생명나무의 가죽갑옷(타락한 앤트류 몬스터가 나오는 던전에서 생명나무의 가죽갑옷을 획득 후 강화하면 됩니다.)
-미노타우르스의 장궁(역시 붉은 핏빛의 대지인 커티삭에서 생산되는 특산품입니다.)
-다이아몬드 3개(다이아몬드 광산이 있다면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겠지만, 없다면 상인에게 구입 의뢰를 넣는 것이 가장 빠릅니다.)
-맛있어 보이는 딸기 파이(상인에게서 딸기를 구해 요리를 하셔야 합니다. 손재주와 요리 스킬이 있는 영웅이 부하로 있으면 제작 명령을 내려도 상관없습니다.)
-윈드 슈츠(붉은 핏빛의 대지 에 있는 던전 중 하나인 지하수렁에서 얻을 수 있습니다.)
<엘 아르윈이 D등급으로 승급 시 얻을 수 있는 클래스>
-중급 바람 마법사 / 80%의 확률로 전직합니다.(일반 클래스)
[통솔 D급, 지력 C급, 무력 E급, 정치 D급, 매력 D급]
-중급 바람 정령사 / 20%의 확률로 전직합니다.(레어 클래스)
[통솔 C급, 지력 C급, 무력 D급, 정치 D급, 매력 D급]
<엘 아르윈의 C등급 승급에 필요한 아이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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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미노타우르스의 장궁과 윈드 슈츠만 구하면 되는 건가.”
코르다를 떠나 커티삭으로 향하면서 호는 엘 아르윈의 승급에 필요한 아이템을 다시 한 번 확인해 보았다. 뷰트의 성목은 커티삭에서 돌아오는 길에 엘 샤난에게 직접 받기로 했고, 미노타우르스의 장궁과 윈드 슈츠는 이번 방문에서 페릴 예노스에게 부탁해 구입할 생각이었다.
윈드 슈츠는 커티삭 주위의 D급 던전인 지하 수렁에서 구할 수 있다고 나와 있지만, 호는 페릴 예노스의 휘하에 있을 무렵 지하 수렁을 공략했던 경험이 있었다. 그때 윈드 슈츠라는 아이템이 나왔던 것도 톡톡히 기억하고 있었다.
“그나저나 커티삭은 어떻게 변했으려나?”
림드 산맥에 있으면서도 종종 커티삭에 대한 소식은 듣고 있었다. 멜리아 비쉬의 마음이라는 퀘스트를 위해 매 달 어느 정도의 리스도 보내주고 있었고 말이다. 하지만 호가 마지막으로 커티삭을 방문했을 때는 예전 안테로리의 영주로 있었을 때로 림드 산맥을 손에 넣기도 전의 일이었다.
강산이 변할 정도로 많은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찾아가는 것은 아니었지만, 많은 사건을 겪은 탓인지 아주 오랜만에 커티삭을 찾는 기분이었다.
“휘유. 이동하는 것도 일이네.”
뜨거운 햇빛에 호는 이마에 송글송글 맺히는 땀을 닦아내었다. 엘 샤난이 있는 코르다를 떠나 아멘드마를 거쳐 이동한 지 며칠. 저 멀리 커티삭이 보이고 있었다.
엘프의 영토라 그런지 코르다와 아멘드마에는 커다란 숲을 쉽게 찾아볼 수 있어 따가운 햇볕을 피할 수 있었지만, 마족의 영지인 커티삭으로 들어서는 순간 숲은커녕 커다란 나무조차도 보기가 힘들었다.
그나마 시원하게 불어오는 바람이 아니었다면 버티기가 힘들었을 것 같았다.
오랜만에 보는 커티삭은 볼 때마다 느끼는 감정이지만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외형적으로 상당히 달라진 모습이었다. 페릴 예노스와 멜리아 비쉬의 정치 능력을 보았을 때 믿기지 않는 일이었지만, 일단 예전보다는 훨씬 발전된 모습이었다.
아마도 리셴르나의 도발을 막기 위해 볼 붸르니체스의 군단이 커티삭 근처에 주둔하고 있기 때문인 것 같았다. 군단이 주둔하는 전진기지로서 선택된 만큼 많은 물자들이 오갈게 분명했고, 그로 인해 도시가 발전했을 가능성이 컸다.
“어떻게 보면 땡잡은 거지.”
가만히 있어도 리스의 수입이 크게 늘어난다. 비록 영지 개발의 자유가 조금 제한되기는 하지만 커티삭 같은 조그마한 영지에서는 상당한 이득이나 다름없었다.
“엘프?!”
“누구냐?”
엘븐 템플러들로 이루어진 무리가 커티삭 근처까지 다가오자 커티삭의 성벽 위에 있던 정예 실리스들이 화살을 겨누며 소리를 질러 대었다. 갑작스러운 엘프 군대의 등장에 당황한 모습이 가득 느껴졌다.
‘데스 나이트인가?’
그런 정예 실리스들의 사이사이에 검은 색의 갑주를 입은 기사들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아마 마족의 B랭크 보병인 데스 나이트가 틀림없었다. 분명 커티삭의 병사는 아닐 테고, 볼 붸르니체스 휘하에 있는 병사들인 것 같았다.
“림드 산맥의 패자인 윤호 님이십니다.”
그리고 한 엘븐 템플러가 나서 자신들의 정체를 밝혔다. 그런 엘븐 템플러의 목소리는 딱히 고운 편이 아니었는데, 같은 마족의 병사이기는 하지만 엘프와 마족이라는 서로 어울리기 힘든 상극에 가까운 특성 때문인 것 같았다. 게다가 이들은 림드 산맥의 마족도 아니었다.
“림드 산맥?”
“윤호? 아!”
“호? 자신의 영지인 안테로리까지 부셔가면서 수인들을 막아냈던 그 소환자?”
엘븐 템플러의 말에 성벽 위가 분주해졌다. 윤호. 이 세계에 등장한지 얼마 되지 않은 소환자이지만 뛰어난 능력을 선보이며 수인 왕국의 군대를 마법으로 단숨에 전멸시켰고, 현재는 림드 산맥의 패자로 최전선에서 수인 왕국과 용맹하게 싸우는 마족의 영웅이었다.
호 본인은 잘 모르겠지만, 마족의 최심부이자 마왕 쉐르난비체가 머무르고 있는 블라디션에서는 호를 나름대로 높게 평가하고 있었다. 위대하신 마왕 쉐르난비체가 직접 B등급 마장기 키마라이를 하사했을 정도니 그 기대가 상당하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리고 잠시 후, 커다란 소리와 함께 굳게 닫혀 있던 커티삭의 성문이 열리기 시작했다. 호가 도착했다는 소식에 가장 먼저 모습을 드러낸 영웅은 멜리아 비쉬였다. 오랜만에 만나는 반가운 얼굴이었다.
“오랜만에 뵙겠습니다. 멜리아 비쉬 님.”
“무사해서 다행이야. 소문은 귀가 따갑게 들었어.”
실외임에도 불구하고 가슴이 훤히 드러나 보일 정도로 노출이 심한 의상을 입은 서큐버스, 멜리아 비쉬가 호를 향해 호들갑스럽게 말했다.
“이제는 제법 멋져 졌, 아니 지셨는데……요?”
호의 뒤에 있는 엘븐 템플러의 표정이 동시에 굳어지는 모습에 멜리아 비쉬가 움찔하며 슬며시 말을 높였다. 예전에는 호에게 편하게 말을 놓았다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라져 있었다. 비록 소환자라도 해도 호는 림드 산맥의 패자로 다섯 개의 마족 영지를 지배하는 인물이었다.
그에 반해 멜리아 비쉬는 커티삭에 주둔하고 있는 일개 마족 영웅에 불과했다. 비록 서로의 등급은 똑같았지만 말이다.
“예전처럼 편하게 말씀하셔도 됩니다.”
“호, 호호. 그래도 될까?”
“물론이죠.”
은근 엘븐 템플러들의 눈치를 보는 멜리아 비쉬의 모습에 호는 신경 쓰지 말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그녀가 존칭을 하던 반말을 하던 딱히 상관은 없었다. 그녀가 말을 편하게 놓는다 하더라도 그게 자신을 무시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었다.
오히려 그녀와 관련된 퀘스트를 위해서라도 멜리아 비쉬와 친근해지기 위해서는 그녀가 자신에게 말을 놓는 편이 더욱 좋았다.
“좋아. 그러면 앞으로도 편하게 말을 하도록 할게?”
“알겠습니다.”
호의 대답에 멜리아 비쉬가 크게 고개를 끄덕이며 가슴을 내밀었다. 아스트리드 벨만큼이나 커다란 가슴이 출렁거리는 모습이 눈에 들어오자 호는 자신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확실히 서큐버스의 몸매는 정상적인 남성에게는 해로운 무기였다.
“그런데 어떻게 이렇게나 빨리 강해진 거지? 예전의 약해빠진 모습은 기억조차 나지 않겠어.”
멜리아 비쉬의 말에 호는 조용히 미소만 지어 보였다. 하기야 전과는 달리 지금은 자신은 B등급 클래스를 보유한 영웅이었다. 그것도 레어 클래스라 할 수 있는 아크 로얄이었고, 거기에 많은 경험치를 투자해 능력 포인트와 레벨도 한계까지 올렸으니 그녀가 저런 말을 하는 것도 충분히 이해가 되었다.
괄목상대라는 말처럼 처음 이 세계에 도착했을 때의 자신과 지금의 자신은 하늘과 땅 만큼의 차이가 있었다.
“그만큼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그래도 불공평하잖아. 나는 수백 년을 살았는데, 소환자는 이렇게나 빠르게 강해질 수 있다니…….”
호의 팔을 흔들며 멜리아 비쉬가 투정하듯 말했다.
그녀 역시 승급이라는 시스템을 이용해 아이템과 리스 그리고 일련의 특산품으로 성장을 할 수 있었지만 이들에게 있어 그러한 행위는 마신의 축복이라 불리며 전설 속에서나 내려오는 행위로 여겨지고 있었다.
그리고 호는 멜리아에게 굳이 승급에 대해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아직은 아이템을 이용해 영웅들의 승급이 가능한지도 정확히 알지 못하는 상황이기 때문이었다. 하물며 승급을 시킬 수 있다 하더라도 그녀는 자신의 영웅도 아니었다. 결국 호가 화제를 돌렸다.
“그런데 커티삭의 모습이 꽤나 바뀌었네요?”
“아아. 볼 붸르니체스 각하의 군대 주둔하기 시작하면서 많은 물자들을 보관해야 될 곳이 필요해서 말이야.”
“커티삭이 물자를 보관하는 도시로 선택되었군요.”
“뭐,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이지. 붉은 핏빛의 대지에 있는 마족의 도시라고는 커티삭 밖에는 없으니까.”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대답을 하는 멜리아 비쉬의 어투에는 불편함이 가득 담겨 있었다.
“그런 이유로 인해 전에 니가 주었던 돈들도 전부 창고 건설로 사용되어서…….”
“아아.”
볼 붸르니체스의 군대가 주둔하기 시작하면서 자신이 짓고 싶었던 환락가를 마음대로 짓지 못했기 때문인 것 같았다. 그리고 이는 호에게도 딱히 도움이 되는 사실은 아니었다. 멜리아 비쉬의 마음을 손에 넣기 위해서는 그녀를 위해 전설적인 환락가를 건설하고 환락가를 관리할 수 있는 배경 또한 만들어 줘야만 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