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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그너스 대륙전기-109화 (109/522)

# 109

리그너스 대륙전기 109

“그래도 드워르기니. 진짜 오랜만에 보네.”

키마라이의 운반 수단으로 사용된 마장기는 드워프 종족의 C등급 마장기인 드워르기니였다.

현대의 자동차와 장갑차를 반쯤 섞어 놓은 모습을 한 이 마장기는 병력 수송용, 지원용 그리고 전쟁에서는 정찰 및 기습용으로 주로 사용되는 마장기였다.

기마병보다도 빠른 이동속도를 지니고 있었지만, 그로 인해 무장은 굉장히 빈약하다는 단점이 있었다.

그래도 일반 병사들에게는 재앙이나 다름없는 병기였지만, 마장기전에서는 거의 쓸모가 없었다. 무기라고 해봤자 마력 화살보다 약간 센 위력을 지닌 마탄포를 발사할 수 있는 게 전부였기 때문이었다.

어쨌든 마장기의 범주에 들어가는 만큼 드워르기니 역시 어디까지나 전쟁병기로 취급을 받는 C등급의 마장기였다. 하지만 타임리스 상단은 이 드워르기니를 이용해 드워프의 영지에서 출발, 수인들의 영토를 뚫고 호가 있는 디르시나에 도착했다. 그리고 그들의 이동경로에는 다른 누구도 아닌 리셴르나가 있는 바리안스의 대지도 포함되어 있었다.

정말 배짱이 두둑한 것을 뛰어넘어 미친 녀석들이라는 생각이 다시 한 번 들었다. 잘은 알 수 없지만 저 드워르기니로 인해 경계가 뚫린 지역은 아마 난리가 났을 터였다.

“멍멍. 키마라이가 도착했습니다. 영주님.”

“보고 있어. 곧 내려가도록 할게.”

로우덴의 말에 발코니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던 호는 몸을 돌려 타임리스 상단의 드워프들에게 향했다. 그리고 호가 드워프들에게 도착하자 로우덴이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림드 산맥의 패자이신 윤호 님이십니다.”

로우덴의 말에 드워르기니의 오너로 보이는 드워프가 쿵 하고 마장기의 위에서 뛰어내리더니 호에게 다가왔다.

“오! 우리들의 고객이로군. 물건은 빠르게 배송했습니다. 한 번 확인해 보시고 여기 물건을 안전하게 잘 받았다는 싸인 부탁드립니다.”

“……택배?”

“으응?”

“아, 아닙니다.”

물음표와 함께 자신을 바라보는 드워프의 모습에 호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나저나 물건 확인이라.’

호가 키마라이를 유심히 쳐다보다 입을 열었다.

“탑승해 봐도 괜찮겠습니까?”

“뭐, 상관은 없습니다만. 키마라이는 C등급이 아니라 B등급 마장기. 다루기가 쉽지는 않을 거요.”

자신을 향해 미심쩍은 표정을 짓는 드워프의 모습에 호는 웃음이 절로 나왔다.

다루기가 쉽지 않다? 결코 흘려들을 수 없는 이야기였다. 드워프의 한마디가 자신의 자존심을 툭하고 건드리고 있었다.

‘B등급 마장기인 키마라이쯤은 가볍게 다룰 수 있다고.’

게다가 가상현실이지만 호는 B등급 마장기를 넘어 A등급 마장기와 함께 대륙을 활보한 경험도 가지고 있었다. 비록 한시진 만큼은 아니지만 자신의 마장기 조종술도 어디 가서 꿇리지는 않다는 게 호의 생각이었다.

실전경험이야 가상현실에서의 경험이 전부지만 마장기에 탑승하는 것 정도는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았다.

“그럼 한 번 시험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드워프가 뭐라 하기도 전에 말을 마친 호는 빠르게 키마라이가 있는 수레 쪽으로 향했다. 그러고는 곧바로 몸을 날려 키마라이의 조종석에 탑승했다.

B등급 클래스인 아크 로얄을 보유하고 있는 만큼 키마라이를 움직일 수 있는 조건을 만족한 상황이었다.

“오오오! 멍멍!”

물 흐르듯 부드러운 자신의 행동에 감탄했는지 짝짝짝하는 소리와 함께 로우덴이 박수를 치는 모습이 잠깐 눈에 들어왔다. 역시 주인, 아니 자신의 영주를 기분 좋게 만든 줄 아는 충성스러운 녀석이었다.

띵동.

-마족의 B등급 마장기 키마라이에 탑승했습니다. 탑승 조건을 확인합니다. 3…… 2…… 1. 완료.

-키마라이와의 싱크로율을 확인합니다. 싱크로율에 따라 마장기의 숙련도가 결정됩니다.

호는 자신의 눈앞에 뜨는 메시지를 아무생각 없이 바라보았다.

자신이 잘못 기억하고 있는 게 아니라면 이 메시지들은 리그너스 대륙전기에서 유저가 마장기를 탑승할 때 나타나는 메시지와 한 치의 다름도 없이 똑같았다.

“정말 지 맘대로 왔다갔다, 엄청 헷갈리게 하네.”

이 세계가 현실이 아닌 가상현실게임이 아닐까 하는 착각이 다시 한 번 들었다. 하지만 호는 곧 고개를 흔들었다.

이런 생각들이 전혀 의미가 없다는 것을 2년이 넘도록 몸으로 느끼고 있었다.

-확인 완료. 사용자와 키마라이와의 싱크로율은 82%입니다.

-마장기의 숙련도가 79로 정해졌습니다. 이는 사용자의 능력과 상태에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

“좋아.”

메시지를 보며 호는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첫 탑승에 싱크로율 82%는 굉장히 높은 수준이었다. 가상현실에서 마장기를 탑승했던 경험이 어느 정도 반영이 된 게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한시진과 비하면 조금의 차이는 있었지만 숙련도 역시 높은 편이었다.

“그럼, 어디 한 번 움직여 볼까?”

호의 눈이 기대로 물들기 시작했다. 거의 3년 만에 조종해 보는 마장기였다. 다행이도 마장기의 내부 인터페이스는 가상현실게임인 리그너스 대륙전기와 동일했다.

우우웅!

수레에 누워 있던 키마라이에 불이 들어오며 요란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마정석에 마나가 응집하는 소리였다. 그 말은 마장기가 곧 움직일 것이라는 것을 의미했다.

“어어어? 자네들의 영주라고 했지? B등급 마장기를 조종할 줄 알다니 제법 실력이 뛰어난데?”

“멍멍. 대단한 분이시오.”

드워프의 말에 로우덴은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했다. 사실 호가 마장기를 조종하는 모습은 그도 보지 못했다. 그래도 로우덴은 자신감 넘치게 키마라이에 올라타는 모습에 숨겨 놓은 한 수가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고 있었고, 그의 예상은 정확히 맞아떨어지고 있었다.

쿠쿠쿵!

천천히 몸을 일으킨 키마라이가 몸을 풀 듯 가볍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며 드워프들은 연신 엄지손가락을 치켜 올렸다. 마장기를 조종할 수 있는 오너가 적은 편은 아니었지만, 키마라이는 B등급에 속하는 마장기였다. 게다가 지금 마장기를 조종하는 인물은 여신 라헬로 인해 이 세계에서 생활하게 된 소환자라고 알려진 남자였다.

“소환자가 제법인데?”

“무기도 사용할 줄 알까? 제법 움직임은 부드럽지만 막상 무기를 사용하지 못하면 거품 빠진 맥주나 다름없잖아?”

연신 감탄을 터뜨리던 드워프 중 한 명이 지적하듯 말했다. 그 때였다.

철컥. 쿠웅!

키마라이가 등 뒤에 고정되어 있던 자신의 대검을 꺼내 앞으로 겨누기 시작했다. 그리고 잠시 후, 검신이 푸른빛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마장기의 오너가 마나를 운용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리고 잠시 후, 키마라이가 자신의 검을 천천히 휘두르기 시작했다. 자신의 움직임을 시험해보는 것 같은 모양이었다. 덕분에 드워프들의 함성이 더욱 커지고 있었다.

“후! 오랜만이라 느낌이 조금 어색한데?”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호는 자신의 이마에서 땀이 흐르는 것이 느껴졌다. 마나의 운용으로 인해 온몸에서 기운이 빠져나가는 이 느낌이 어색하기도 했지만, 힘도 꽤나 들었다. 아마 이 감각에 익숙해지려면 조금 시간이 더욱 필요할 것 같았다.

“B등급 마장기가 이런데, A등급 마장기에 탑승하게 되면…….”

호는 시간을 확인했다. 키마라이의 대검에 마나를 운용하기 시작한 지 고작 10분이 조금 넘었을 뿐이었다. 만약 지금 탑승한 마장기가 키마라이가 아닌 A등급의 마장기였다면 1분 만에 체력이 고갈되어 헉헉 거렸을지도 몰랐다.

마음 같아서는 여기서 한국군의 총검술을 대검으로 딱 선보이며 자신을 무시했던 드워프들의 기를 확 눌러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더 이상의 마나를 유지하는 건 무리였다. 괜한 오기로 무리하고 싶은 생각도 없었다.

“아쉽지만 천천히 익숙해져야겠네.”

말과 함께 호는 키마라이의 무기를 다시 수납하고는 마나 운용을 풀었다.

“오오오! 대단하십니다! 영주님!”

조종석을 열고 호가 모습을 드러내자 로우덴이 자신의 꼬리를 크게 흔들며 찬사를 보냈다. 호가 마장기를 운용한다는 말에 약간의 의구심을 보냈던 드워프들도 연신 박수를 보내고 있었다. 비록 대단한 모습을 보이지는 않았지만, 움직임이 부드러웠고, 커다란 대검에 마나를 감쌀 정도의 실력자였다.

그 모습에 뿌듯함을 느끼며 땅 바닥에 발을 디딘 호는 뒤통수가 따끔거리는 것을 느끼며 뒤를 돌아보았다. 어느새 자리에 도착했을까? 한시진이 자신을 보며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런 그녀의 눈동자에는 흥미로움이 가득 담겨 있었다.

* * *

키마라이를 싣고 왔던 수레는 곧 수인 마장기들의 잔해로 가득 채워지기 시작했다. 일반적인 운송 수단이라면 커다랗고 무거운 잔해들을 옮기는 게 쉬운 일이 아니겠지만 운송 수단이 마장기인 드워르기니인 만큼 별 문제는 없어보였다.

또한 타임리스 상단의 드워프들은 사흘 정도 디르시나에 머무르며 한시진의 키마라이를 수리해주기까지 했다. 물론 그에 대한 수리비는 따로 지불해야만 했다.

마음 같아서는 에스트라다에 있는 카니앗산도 수리하고 싶었지만, 아직 타임리스 상단과의 관계가 좋지 않아서일까? 아쉽게도 호의 제안에 드워프들은 에스트라다까지 가는 것을 거부했다.

하루라도 빨리 드워프들의 수도인 콜스타인까지 돌아가야 한다는 게 그 이유였다.

그래도 두 대나 되는 B등급 마장기를 손에 넣은 덕분에 호는 앞으로 수인들이 도발을 걸어도 충분히 나가서 맞상대를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마음속에서 가득해 있었다.

“좋아!”

오늘도 여전히 집무실의 의자에 앉은 호는 디르시나의 영지 정보를 확인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기술의 개발도 순조로웠고, 다른 도시들도 빠르진 않지만 꾸준히 발전하고 있었다.

이대로 순조롭게 일들이 진행된다면 이 세계에서 어느 정도 무언가를 할 수 있을 정도의 힘을 손에 넣을 수 있었다.

그렇다고 모든 것이 만족스러운 것은 아니었다. 현재 자신의 휘하에 있는 영웅들은 소환자들을 포함해 총 열넷에 불과했다. 적은 수는 아니었지만, 많은 수는 더더욱 아니었다. 림드 산맥내에 존재하는 다섯 개의 도시에 세 명의 영웅조차도 배치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게다가 로우덴이나 리아 캬베데와 같이 S, A등급의 클래스를 보유한 영웅도 있기는 했지만, 대부분 D등급의 영웅에 불과했다.

소환자야 경험치만 획득할 수 있으면 곧바로 전직을 통해 상위 등급의 클래스를 보유할 수 있었기에 큰 문제는 없었지만, 영웅들을 그렇지 못했다. 그들을 승급시키기 위해서는 특별한 아이템들이 필요했다.

시현이 주점에서 새로운 영웅들을 동료로 끌어들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지만 한계가 있었다. 게다가 발전도가 떨어지는 림드 산맥에 높은 등급의 재야 영웅이 찾아올 일도 드물었다.

그래도 영웅들의 수는 주점이 있는 이상 시간이 해결해 줄 수 있었다. 하지만 영웅들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는 현재 자신의 휘하에 있는 영웅들을 상위 등급으로 전직을 시켜야만 했다.

“적어도 A등급은 되어야 할 텐데…….”

이 세계에서 1인분을 하기 위한 호의 최소 기준이었다.

가상현실게임 리그너스 대륙전기에서 영웅들의 등급을 올릴 수 있는 방법은 특수한 이벤트를 발동시키거나 클래스 등급을 올리는 데 필요한 아이템을 영웅에게 선물로 주면 되었다. 그리고 이는 이 세계도 비슷할 터였다. 아니, 비슷해야만 했다.

하지만 지금 당장 그에 대한 결과를 알아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영웅들의 클래스 업, 일명 승급작업이 가능한 지 불가능한지를 알기 위해서는 일단 특산품과 아이템이 필요했다.

“디 보자.”

호는 ‘관우는 내 여자’의 공략본을 열어 가장 먼저 로우덴과 리아 캬베데의 승급에 필요한 아이템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이 둘은 자신의 휘하에 있는 영웅들 중 가장 뛰어난 능력치를 보유하고 있었다. 만약 로우덴을 SS등급으로 상승시키고 리아 캬베데를 S등급으로 상승시킨다면 앞으로의 일에 큰 도움이 될 게 분명했다.

“역시…….”

하지만 등급이 높은 영웅답게 둘의 클래스를 승급시키는 데 필요한 아이템은 당장 현재로서는 구할 수 없는 아이템이 대부분이었다. 림드 산맥 근처에서 획득할 수 있는 아이템도 있기는 했지만, 현실적으로 봤을 때는 무리였다.

“쩝.”

어느 정도 예상을 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아쉬운 마음에 호는 입맛을 다시며 다시 공략본을 읽어 내려갔다. 그러고는 예전 리그너스 대륙전기를 플레이 했을 때의 기억을 떠올렸다. 그 때도 많은 영웅들에게 애정을 주며 승급 작업을 했던 기억이 있었다.

수인 영웅이라 그런지 로우덴과 리아 캬베데의 등급을 한 단계 높이기 위해서는 공통적으로 필요한 특산품이 있었다. 하지만 이는 수인족의 수도 사파리에서만 생산되는 특산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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