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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그너스 대륙전기-108화 (108/522)

# 108

리그너스 대륙전기 108

“그렇군! 이거 소환자들의 마장기 조종술도 무시할 수 없겠는데? 이정도의 실력자라면 아크칸과도 좋은 상대가 되겠어.”

‘아크칸?!’

밴더빌트의 입에서 나온 이름을 듣는 순간 호는 몸에 절로 힘이 들어갔다.

아크칸. 리그너스 대륙전기의 엔딩을 본 호의 기억 속 분명하게 남아 있는 이름이었다. 드워프 족의 SS등급의 영웅으로 드워프 왕국에서 마장기 조종술이라면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영웅이기도 했다.

“어쨌든 이 릴라릴라 상태가 굉장히 좋은걸? 좋아. 얼마에 팔 생각인가?”

밴더빌트가 호에게 말했고, 호는 침을 꿀꺽 삼켰다. 거래는 지금부터 시작이었다.

“아르테미스 상단은 3억 리스를 제시했습니다.”

“아르테미스 상단? 아아! 골든 크로우에 본점을 둔 상단 말이지. 최근 세력을 불려나가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자네와 관계가 있었구만.”

진지한 표정으로 자신의 턱을 쓰다듬던 밴더빌트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그래도 우리 타임 리스에 비교할 만한 곳은 아니지. 어쨌든 저 릴라릴라는 상태도 좋으니 수인 기술자들과 함께하면 수리하는 게 그리 어렵지도 않을 것 같고. 또 존스 홉킨스의 체면도 있으니까. 5억 리스 어떤가? 카니앗산들의 상태도 나쁘지 않은 것 같으니 다해서 8억 리스 쳐주겠네.”

“……!”

밴더빌트의 말에 호는 순간적으로 알았다고 대답할 뻔했다. 8억 리스. 지금 림드 산맥의 생산량으로는 몇 년이 지나도 쉽게 얻을 수 없는 어마어마한 자금이었다. 그리고 그때 로우덴이 나섰다.

“멍멍. 존스 홉킨스 경께서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드워프들이야 말로 그 어떤 종족보다 마장기를 잘 알고 사랑하는 종족이다’라고 말이지요. 유일하게 드워프들은 마장기가 전투 병기가 아닌 예술 작품으로 이해한다고도 하셨죠.”

“음! 맞아, 맞아! 자네, 수인이지만 우리 드워프들에 대해 아주 잘 알고 있구만!”

로우덴의 말에 밴더빌트가 고개를 끄덕였다. 존스 홉킨스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조그마한 목소리로 내가? 내가 그런 말을 했던가? 라고 중얼거리는 소리가 귀에 들려왔지만, 호는 가볍게 그런 존스 홉킨스의 중얼거림을 무시했다.

뭐, 존스 홉킨스가 그런 말을 했고, 안했고는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8억 리스라는 어마어마한 돈에 기가 질린 탓에 넘어갔던 대화의 주도권이 다시금 밴더빌트에게서 자신들에게로 넘어 왔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우리는 이 마장기들의 잔해와 타임 리스 상단 아니 밴더빌트 경께서 보유하고 있는 B등급 마장기 키마라이와의 교환을 원합니다. 멍.”

“……쿨럭.”

호의 입에서 절로 헛기침이 터져 나왔다. 로우덴의 말은 너무나도 단도직입적이었다. 돌려 말한다는 것은 생각하지도 않고 있는 그야말로 꽉 찬 직구였다.

“……키마라이?”

그리고 밴더빌트에 눈에 못마땅한 기색이 떠올랐다.

“그렇습니다. 멍.”

“자네, B등급 마장기의 가치가 얼마나 하는지 알고 있나?”

“물론입니다. 밴더빌트 경께서 말한 8억 리스보다 비싸지요. 멍멍.”

훨씬 비싸다. C등급 마장기를 제작하는 데 필요한 특산품과 아이템 그리고 돈을 계산하면 약 1.3억 리스. 그리고 B등급의 마장기는 그 열 배가 넘는 자금이 필요했다.

‘이거 쉐르난비체에게 감사라도 해야겠네.’

무슨 생각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녀는 페릴 예노스를 통해 자신에게 B등급 마장기 키마라이를 건네주었다.

그리고 그 마장기는 이번 전쟁에서 엄청난 도움이 되었다. 만약 쉐르난비체가 하사한 키마라이가 아니었다면 저번 에스트라다 전투 때 모든 것을 잃고 죽었을 터였다.

“그런데 그 사실을 알고서도 그런 말을 나한테 하는 건가? 타임 리스의 상단주인 이 밴더빌트에게? 상인이 상단에게 손해가 가는 행동을 할 것 같아?”

로우넨과 밴더빌트. 그 둘의 대화는 계속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대화에 호는 끼어들지 않았다. 아니, 끼어들 수가 없었다. 왠지 자신이 끼어들었다가는 팽팽한 실이 끊어질 것 같았다. 노기가 담겨 있는 밴더빌트의 말에 로우덴은 자신의 머리를 숙였다.

“글쎄요? 멍멍. 과연 손해가 가는 행동일까요?”

“으응?”

걸음을 옮긴 로우덴이 수레에 담긴 릴라릴라의 동체를 손바닥으로 몇 번 두드리더니 말을 이었다.

“현재 우리들은 수인 왕국과 전쟁 중인 상황입니다.”

“말은 바로 해야지. 수인 왕국은 무슨. 킁! 걔네들이 직접 나섰으면 너희들은 단숨에 쓸려 버렸을 거다. 키마라이의 오너가 실력이 뛰어나다고 해도 아무 소용 없었을 걸?”

“…….”

“정정하겠습니다. 정확히 말해 원인들과 전쟁 중입니다. 멍멍.”

“그래. 그리고 묘인 녀석들도 노리고 있다고는 하지만 뭐, 그네들은 지크 로리에서 더 이상 진군 할 생각을 하고 있지 않은 것 같으니. 굳이 신경을 쓸 필요는 없겠지.”

밴더빌트의 이야기를 들으며 호는 목에 고인 침을 삼켜 넘겼다. 역시 상단답게 림드 산맥의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었다.

“맞습니다.”

그리고 호는 대답을 하는 로우덴의 눈이 날카롭게 변한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그리고 전쟁이 진행 중이다, 라는 말은 앞으로도 마장기전이 계속 펼쳐질 것이라는 것은 의미합니다. 맞습니까?”

“뭐, 그렇겠지. 원인들의 세력이 예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이 줄어들었다고는 하지만 사파리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수인족의 대부족 중 하나니까. 고작 마장기 몇 기를 잃었다고 망할 녀석들은 아니라고.”

이어지는 밴더빌트의 말에 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맞는 말이었다. 더욱이 리그너스 대륙의 패권을 다투는 세력 중 마장기를 가장 많이 보유한 세력이 바로 수인 왕국이었다.

비록 수인들이 왕국이나 종족이 멸종 위기에 빠지는 위급한 상황이 아니라면 뭉치지 않는 개인주의적이며 연합체적인 성격을 보이고 있기는 하지만, 어쨌든 그들이 보유한 마장기는 다른 종족들이 보유한 마장기 수의 1.5배 정도나 될 정도로 많았다.

“그렇습니다. 그리고 아군에게는 릴라릴라를 단 세 합에 보내버릴 수 있는 뛰어난 실력을 지닌 유능한 마장기 오너가 있습니다.”

한시진이 릴라릴라를 세 합에 무너뜨렸던가? 허풍이 조금 심하긴 했지만, 호는 딱히 로우덴에 말에 지적을 하지는 않았다. 밴더빌트가 관심을 보이는 모습에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흐음? 세 합? 그렇게나 실력이 뛰어난가?”

“그렇습니다. 어쨌든 아군은 원인들과의 전쟁을 위해서라도 마장기가 필요합니다. 또한 아군에는 릴라릴라를 무찌른 오너와 비슷한 실력을 지닌 마장기의 오너가 한 명 더 있습니다.”

‘어…… 어이…….’

말과 함께 자신을 향해 살짝 윙크를 하는 로우덴의 모습에 호는 입술이 바짝 마르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 멍멍이. 이제 봤더니 허풍이 심해도 너무 심했다. 물론, 리그너스 대륙전기라는 가상현실에서 많은 마장기전을 경험한 탓에 호 역시 마장기를 조종술에 대해 어느 정도 자신은 있었다.

그러나 한시진에 비한다면? 제다이처럼 카니앗산의 마력포를 튕겨내던 키마라이의 모습이 아른거리자 호는 곧 고개를 저었다. 자신은 결코 그런 무위를 보일 수 없었다.

그리고 그런 호의 눈에 황당한 모습이 들어오고 있었다. 밴더빌트가 그런 로우덴의 과장된 말에 다시 엄청난 관심을 보이고 있었다.

“소환자의 마장기 조종술이 그, 그렇게나 뛰어나다고? 믿기 힘든데?”

“하지만 증거가 눈앞에 있지 않습니까?”

“그건 그러니. 나 원 참.”

“저희는 마장기를 생산할 수 있는 기술을 보유하고 못했습니다. 하지만 전투를 통해 마장기의 잔해를 획득할 수는 있죠.”

“……?!”

그 순간 호의 머릿속으로 벼락이 스쳐 지나갔다. 어째서 로우덴이 수인과의 전쟁에 대해 이야기를 꺼냈는지, 또한 아군 마장기 오너들의 실력이 뛰어나다는 것을 강조했는지 이제야 할 것 같았다.

“아!”

절로 감탄성이 터져 나왔다. 저 녀석은 진짜 똑똑한 녀석이었다. 그리고 자신이 머릿속으로 떠올린 게 맞다면 밴더빌트도 분명 관심을 보일 게 분명했다.

“그런 말을 하는 의도가 뭔가?”

“제가 말씀드려도 되겠습니까?”

그리고 호가 앞으로 나섰다. 방관자처럼 이제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던 림드 산맥의 패자의 등장에 밴더빌트는 알 수 없는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만약 타임리스가 이 마장기의 잔해들을 키마라이와 교환해준다면 저희는 앞으로의 전쟁에서 나오는 마장기의 잔해 중 일부를 타임 리스 상단에게 무상으로 넘겨드리겠습니다. 밴더빌트 님께서 손해를 보셨다고 생각한 차액만큼 말입니다.”

“오, 오호라……?”

호의 말에 밴더빌트는 놀란 표정으로 호와 로우덴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분명 흥미가 가는 제안이었다. 전쟁이 계속될수록 마장기전 역시 필연적으로 일어날 테고, 분명 잔해는 계속해서 생길 터였다.

“추가로 B등급 마장기를 포함해 최소 세 기 이상을 넘겨드리겠습니다.”

“다섯.”

“넷은 어떻습니까? 잔해라고는 해도 엄청난 가치를 가지고 있을 텐데요?”

“……좋다.”

밴더빌트가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 정도라면 충분히 남는 장사였다.

하지만 이 거래에서 자신이 이득을 보기 위해서는 분명한 전제조건이 필요했다. 바로 소환사의 세력이 수인과의 마장기전에서 계속해서 승리를 거둬 잔해를 획득해야 한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이들이 보유한 잔해들의 상태를 보면 소환자의 마장기 조종술은 충분히 믿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자신이 아는 원인 영웅 중 이렇게나 뛰어난 마장기 조종술을 보유한 녀석들은 아무도 없었다. 동수라면 분명 마족 진영이 승리할 게 분명했다.

문제는 전쟁이 마장기로만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밴더빌트가 그에 대해 말을 꺼내려는 찰나 로우덴이 말했다.

“아! 저희들은 나크 평원으로 진격할 생각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결국 일반 병사들끼리의 전쟁은 의미가 없죠. 오로지 에스트라다를 공격해 오는 마장기만을 격퇴할 테니까요.”

“어쩔 수 없지. 좋아. 존스 홉킨스의 체면도 있으니 일단 내가 한 발 양보하도록 하지.”

힘겹게 고개를 끄덕이는 밴더빌트의 모습에 호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이로써 B등급 마장기인 키마라이를 두 대나 보유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현재 자신의 진영에 있는 영웅 중 마족의 마장기인 키마라이를 다룰 수 있는 인물은 자신과 시진밖에 없었다.

일이 이렇게 됐으니 수인들과의 전쟁이 벌어지기 전까지 한시진에게 마장기 조종술에 대해 어느 정도 배워둬야 할 것 같았다. 가상현실 세계에서 마구잡이식으로 배운 것과는 달리 그녀는 군사학교에서 체계적으로 마장기를 다루는 법에 대해 배운 엘리트였다.

* * *

‘시간은 리스다.’라는 모토를 지닌 타임리스 상단의 상단주답게 밴더빌트의 행동은 굉장히 빨랐다. 마치 번갯불에 콩 볶아 먹는다는 표현이 딱 들어맞았다.

“제 정신이 박힌 드워프 같지는 않았는데…….”

호는 디르시나 영주성의 발코니에 서서 밖에 보이는 삐까번쩍한 마장기를 보며 혀를 내둘렀다.

타임리스 상단과 계약서를 작성하고 난 후 일주일 뒤인 오늘 디르시나에 마장기 한 대가 커다란 수레에 실려 배송되었다. 마족의 B등급 마장기 키마라이였다.

그만큼 타임리스 상단의 일처리는 호의 예상을 훌쩍 뛰어넘을 정도로 빨랐다. 게다가 그들은 마장기가 실린 커다란 수레를 끄는 수단으로 말이나 소 같은 게 아닌 드워프의 특색이 딱 어울리는 엄청난 수단을 사용했다.

“진짜 미친놈이었어.”

타임리스 상단의 드워프들이 키마라이의 운송 수단으로 사용한 것은 다름 아닌 바로 마장기였다.

덕분에 더 이상 이 세계의 일에 대해 놀라지 않을 거라 마음먹고 있었던, 호는 자신의 입이 벌어지는 걸 막을 수가 없었다.

“우하하하하! 어때? 콜스타인에서 디르시나까지 열나흘 하고도 8시간 43분! 내 신기록이라고!”

“정말 대단해! 최고라고!”

“자! 새로운 기록에 축배를 들자!”

미용실에서 수염을 한 것일까? 예쁘장하게 수염을 꼬아놓은 중년의 남성 드워프들이 차량 형태를 한 마장기의 위에서 가슴을 드러내며 소리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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