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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그너스 대륙전기-103화 (103/522)

# 103

리그너스 대륙전기 103

투웅! 퉁!

엘븐 템플러들의 진격을 막기 위해 다람쥐 석궁수들의 화살이 허공을 수놓기 시작했지만, 하늘로 쏘아진 화살은 키마라이가 검을 휘두른 순간 그 풍압으로 인해 후두둑 떨어지며 무용지물로 변했다.

촤라라라락!

정예 실리스들도 가만있지 않았다. 아크 로드인 윤호가 지휘하는 것에 비하면 능력은 떨어졌지만, 그들을 지휘하는 리아 캬베데 또한 A등급 영웅으로 300에 가까운 무력수치를 지니고 있었다. 그렇게 발사된 화살들이 하늘을 지나 수인 병사들의 몸을 꿰뚫었다.

하지만 수인 왕국의 병사들에게 있어 엘븐 템플러와 정예 실리스보다 두려움을 주는 것은 바로 마장기의 존재였다.

콰직!

세 기의 마장기를 박살 낸 키마라이가 수인족의 진영을 휘젓기 시작했다. 거대한 동체가 한 번씩 움직일 때마다 병사 대여섯이 육중한 발에 깔려 압사하고 있었다. 그 모습은 마치 개미 떼를 짓밟는 사람의 모습처럼 보였다.

“공격! 모조리 죽여 버려!”

리아 캬베데가 이끄는 마족의 군대도 공세를 늦추지 않았다.

그렇게 마장기와 함께 엘븐 템플러들의 공격이 시작되자 마장기전의 패배로 사기가 떨어진 수인 왕국의 병사들은 수적 우위에도 불구하고 열세에 몰리기 시작했고, 급기에 도망을 치는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리아 캬베데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지금의 공격으로 저들의 군대에 커다란 피해를 입힐 수 있다면 다시 에스트라다를 노리기 위해 군대를 재정비할 때까지는 시간이 제법 필요할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더욱이 이번 전쟁으로 수인 왕국은 열기에 가까운 마장기와 함께 몇 만의 병력을 잃었다.

병력의 충원은 그렇다 치더라도 두 개 편대가 넘는 마장기의 피해는 쉽게 복구할 수 없을 터였다.

게다가 수인 왕국이 잃은 마장기 중에는 B등급의 마장기도 하나 끼어 있었다.

결국 이번 전쟁에서 잃은 전력을 복구하려면 오랜 시간이 필요했고, 자신들은 그 시간 동안 에스트라다를 정비할 수 있었다.

“절대로 녀석들을 살려 보내지 마라!”

투학!

리아 캬베데가 내지른 권풍에 나가씰의 상체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리고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또 다른 나가씰을 이단 옆차기로 날려 버린 그녀는 귀를 쫑긋거리며 온 신경을 집중하기 시작했다.

이런 난전 속에서 상대에게 더욱 피해를 주기 위해서는 지휘관 녀석을 붙잡아야 했다.

특히 재배라는 이름의 원인 영웅을 여기서 붙잡아야했다. 그래야만 상대에게 큰 피해를 줄 수 있는데다가 자신의 오너인 호에게도 칭찬을 받을 수 있었다.

“캬아아아! 재배! 엉덩이가 빨간 녀석아! 어디 있냐앙!”

리아 캬베데의 날카로운 비명이 전장에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수인 군대의 대장인 재배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고, 리아 캬베데는 그 분노를 주위에 있는 수인 병사들에게 풀기 시작했다.

* * *

“뭐?!”

호가 아군과 수인 군대와 전면전이 벌어졌다는 보고를 들은 건 윤아와의 대화를 마친 그날 저녁이었다.

공교롭게도 자신이 떠난 지 하루도 채 지나지 않아 커다란 전투가 벌어진 것이다.

갑작스러운 전투 소식에 이 세계에 온 이후 가장 평온한 분위기에서 자신의 입맛에 맞는 식사를 하던 윤아는 전투라는 말에 돌변한 분위기에 죄인이라도 된 것마냥 식사를 멈추고 바닥만 내려다보기 시작했다.

“그래서 결과는? 아니, 한시진과 리아 캬베데는 무사한가?”

엘븐 템플러에게 향하는 호의 목소리는 침착했지만, 걱정이 엷게 배어나고 있었다. 둘의 능력을 무시하는 것은 아니지만, 수인족의 전력은 마족보다 강했다. 게다가 상대에게는 마장기가 있었다.

이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전쟁 병기인 마장기를 단독으로 상대할 수 있는 존재는 최소한 전투 계열로 SS등급 이상의 클래스를 지닌 영웅 정도에 불과했다.

그것도 유니크 아이템으로 몸을 둘둘 감싸고 있어야 상대가 될까 말까였다.

예를 들자면 마왕 쉐르난비체와 같은 영웅 정도가 홀로 마장기를 상대할 수 있는 존재에 속했다.

“네! 대승입니다. 본격적인 전투가 시작되기 전 마장기전이 벌어졌고, 한시진 님이 엄청난 활약을 보이며 수인족의 마장기를 모두 격파…….”

“음!”

엘븐 템플러의 보고에 호의 고개가 끄덕여졌다. 역시 한시진의 마장기 조종술은 대단했다.

처음 그녀의 전투를 봤을 때 그녀의 키마라이에 대적하는 카니앗산의 모습이 제다이에 대적하는 스톰 트루퍼라는 착각이 들 정도였으니, 정말로 무시무시한 실력이었다.

정말 그런 인재가 이 세계에서 그것도 자신과 함께하는 것은 엄청난 행운이었다.

“그리고 리아 캬베데 님께서 그 기세를 몰아 병사들을 진격시켰고, 전면전이 발생. 아군이 대승을 거두었습니다.”

“대승이라…….”

“네, 그렇습니다. 사만에 가까운 수인 왕국의 병사 중 반 정도를 세계수의 품으로 보내버렸다고 합니다.”

엘븐 템플러의 목소리는 침착했다. 하지만 목소리에 담긴 흥분은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큰 피해를 입은 수인 군대는 현재 자신들의 영토로 퇴각을 한 상황입니다. 다시 군사를 일으킬 낌새를 보이지 않기에, 리아 캬베데 님께서는 아군도 재정비가 필요하다고 판단, 현재 철수 명령을 내린 상황입니다.”

“그렇군.”

그런 엘븐 템플러의 보고를 들으며 호는 생각에 잠겼다. 대승. 듣기만 해도 기분이 좋은 보고였다. 그것도 3개월 동안이나 치러졌던 전투의 승리였다. 하지만 무언가 찜찜했다.

일단, 너무 쉽게 승리를 거뒀다. 특히 재배라는 이름의 수인 영웅이 이끄는 군대가 자신이 떠나자마자 마장기까지 감행해 공격을 감행했다는 게 잘 이해가 되지는 않았다. 어쨌든 적들은 후퇴했고, 아군은 승리했다. 그것은 변하지 않는 사실이었다.

“아군의 피해는?”

“……육천이 조금 넘는 아군이 세계수의 곁으로 향했습니다.”

“제법 많이 죽었군…….”

호가 낮은 음성으로 말했다. 이 만이 넘는 적들을 상대한 것치고는 적은 피해였다. 하지만 림드 산맥의 전력을 생각하면 엄청난 피해였다.

엘보라는 말처럼 엘프 보병 중 하나인 엘븐 템플러가 동급의 보병 중에서 가장 범용성이 뛰어나고 능력치가 좋다고는 하지만 그래봤자 A랭크는 압도적인 능력치를 지닌 최종 테크의 병종이 아닌 이상은 쪽수에는 밀릴 수밖에 없었다.

“알았다. 리아 캬베데에게 전장을 정리하고 그에 대한 보고를 제출하라고 하도록.”

“알겠습니다.”

그래도 승리는 승리였다. 더군다나 3개월이 넘게 자신들을 괴롭혔던 수인들을 물러가게 만큼 대승리였다.

이번 전쟁으로 인해 수인들의 세력은 B, C등급을 포함해 제법 많을 수의 마장기를 잃었다. 그 가격을 리스로 환산만 해도 20억 리스가 훌쩍 넘었다.

‘그 정도의 피해라면 어디선가 지원을 받지 않는 이상 원숭이들도 근시일 내에 다시 병사를 일으키기는 힘들겠지.’

워낙 강대한 세력인데다가 예비 병력들도 있을 테니, 병사들은 금방 보충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마장기 전력을 복구하는 것은 시간이 걸리는 일이었다.

더군다나 홀로 열 기의 마장기를 격파한 에이스급 오너가 자신에게 있다는 것을 깨달은 이상 쉽사리 마장기를 이용해 공격을 감행할 것 같지는 않았다.

그렇게 보고를 마친 엘븐 템플러가 경례와 함께 물러났고, 그제야 윤아는 가볍게 숨을 내쉬고는 숟가락을 들기 시작했다.

“우리 편이 승리했나 봐요?”

“응. 그런 것 같아.”

“추…… 축하드려요!”

윤아의 입에서 흘러나온 우리 편이라는 말이 조금 웃기기는 했지만 호는 내색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호는 신윤아라는 저 여인도 자신의 편으로 만들 생각이었다.

경험치만 얻을 수 있으면 소환자들이 이 세계의 영웅들보다 능력 포인트를 올리는 게 훨씬 쉬울뿐더러 그녀는 이 리그너스 대륙전기에 어느 정도 알고 있는 여인이었다.

하지만 그만큼 조심해야 할 것도 있었다. 식사를 하면서 호는 이세계의 소환자 중에서는 패러럴 월드에서 온 사람도 있다는 것을 그녀에게 일러줬다.

“그리고 시진이도 우리와는 다른 세계에서 온 사람이야.”

“아…… 그 대체 역사 소설에 나오는 것과 비슷한 상황인 건가요?”

“아마도? 어쨌든 우리가 이 세계와 흡사한 가상현실게임 리그너스 대륙전기에 대해 알고 있다는 것은 입 밖에도 꺼내지 마. 괜한 오해를 살 수도 있으니까.”

“아, 네.”

그런 호의 설명에 조금 놀란 모습을 보이기는 했지만, 윤아는 금방 호의 말을 이해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이상한 세계로 끌려온 경험이 있는데 패러럴 월드라는 다른 세계에서 온 사람이 있다는 것을 믿지 못할 것도 아니었다.

이제까지 함께해 온 시간이 있는 만큼 시진을 못 믿는 것은 아니지만, 호는 괜한 분란의 소지를 만들고 싶지 않았다.

특히나 자신이 다른 세계에서 왔고, 이 세계에 대해 미리 알고 있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실망감을 나타낼 시진, 시현 자매나 아스트리드 벨의 모습은 보고 싶지 않았다.

다만, 패러럴 월드라는 개념과 함게 자신이 대한제국이 아닌 다른 세상에서 온 사람이라는 것은 조만간 밝힐 생각이었다.

하지만 리그너스 대륙전기에 대해 알고 있다는 것만큼은 무슨 일이 있어도 비밀로 할 생각이었다. 공략본에 대해서는 더더욱 말이다.

* * *

와아아아아!

전쟁에서 승리한 병사들이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 엄청난 환호성이 에스트라다에 울려 퍼졌다.

그 소리가 얼마나 큰지 조금 과장하자면 에스트라다 성벽을 둘러싸고 있는 마나 보호막이 잠시 출렁거리는 게 보일 정도였다.

이런 영주민들의 환호성은 모두 승리를 거두고 돌아오는 용감한 병사들에게 향하는 선물이었다. 다크 엘프와 오크를 비롯해 엘프, 수인 심지어 인간들까지 함께 모여 함성을 지르는 모습에 윤아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자신이 살던 곳과는 달리 여러 종족이 뒤섞여 있는 모습이 신기했기 때문이었다.

“리그너스 대륙전기에서 몇 번 봤던 모습 아니야?”

“그, 그건 게임이지만 여기는 현실이잖아요. 게다가 수인들의 마을에 있었을 때는 수인들만 봤었다고요. 이렇게 다른 종족이 함께 모여 살 수 있다는 것은 생각지도 못했어요. 수인을 제외한 다른 종족들은…… 전부 노예로만 취급받았거든요.”

“그래?”

그런 윤아의 말을 들으며 호는 내심 안도감이 들었다. 아무래도 수인 왕국에는 자신과 같은 소환자가 없는 모양이었다.

어쨌든 입을 살짝 벌리며 이리저리 고개를 돌리는 윤아의 모습에 잠시 아빠미소를 짓던 호는 천천히 정면을 돌아보았다. 격한 전투를 치렀다는 것을 보여 주듯 여기저기가 부서진 키마라이가 눈에 들어오고 있었다.

‘빨리 마장기 수리 기술을 획득해야 하는데…….’

연구가 한창 진행 중이기는 했지만 단시간 내에 이뤄낼 수 있는 일은 아니었다. 마장기를 수리하기 위해서는 마장기의 제작만큼이나 많은 선행 기술을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키마라이의 뒤로는 이번 전쟁에서 큰 활약을 보였던 엘븐 템플러와 정예 실리스들도 도열해 있었다. 하지만 이번 전쟁으로 입은 피해가 상당했던 탓에 처음과는 달리 그 수가 크게 줄어 있었다.

‘그리고…….’

몇 개인지 짐작이 가지 않는 수레에는 이번 전쟁에서 획득한 전리품이 담겨져 있었다. 병사들이 끌고 오는 수레는 성 내부는 물론이고, 성 밖까지 늘어져 있었다.

대부분 수인 병사들이 사용하던 무기와 방어구들이었지만, 호의 시선을 끄는 것은 그런 잡다한 것들이 아니었다.

거대한 동체를 지닌 고철더미들. 바로 수인 왕국의 마장기 카니앗산과 릴라릴라의 잔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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