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5
리그너스 대륙전기 095화
“그리고 이 병력들은 골든 크로우가 아닌 블루 스케일이 비밀스럽게 유지한다. 맞습니까?”
“그래.”
호의 대답에 그나이 칼츠만은 고개를 끄덕였다. 림드 산맥에서 골든 크로우의 영토까지는 엄청난 거리를 이동해야만 했다.
그 거리를 엘프 보병과 수인 기병대가 움직인다?
당연히 말이 나오기 마련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되면 아이리스 성국의 뒤를 봐주고 있는 천족은 대놓고 자신들의 병력을 아이리스 성국으로 보낼 게 분명했다.
이런 문제를 피하기 위해 내린 결론이 바로 림드 산맥과 경계를 맞대고 있는 팔 왕국 중 하나인 블루 스케일을 이용하는 일이었다. 그리고 호는 그나이 칼츠만이 왜 블루 스케일을 선택했는지 알고 있었다.
‘양국의 사이가 굉장히 좋은데다가 이레네 아르티아와 세이라 클리퍼드는 먼 친척지간이기도 하지.’
자신이 기억하는 리그너스 대륙전기의 설정은 그랬다. 그만큼 골든 크로우와 블루 스케일은 혈맹국이라는 말이 딱 들어맞는 국가였다.
어찌되었든 자신은 마장기의 제작 기술만 전수받으면 되는 일이었다. 거기에 라헬교의 준동이라는 이벤트를 실패로 돌아가게끔 만들어야 했다.
“그나저나 2차 소환자라…….”
계약을 마치자 아르테미스 상단의 레드 벨벳과 그나이 칼츠만는 곧장 떠났다. 그들의 뒷모습을 보며 호는 인상을 찌푸렸다.
전혀 생각지도 못한 사실을 알게 되었다. 게다가 2차 소환이 있었다는 이야기는 3차 소환 또한 일어날 거라는 말과 동일했다. 그리고 그중에 자신처럼 리그너스 대륙전기에 대해 아는 인물이 없으리라는 법은 없었다. 또한 한시진처럼 뛰어난 능력을 지닌 인물이 있을지도 몰랐다.
“마치 시간제한이 걸려 있는 게임을 하는 기분이야.”
갑작스레 마음이 무거워졌다. 그러고 보니 자신과 함께 소환된 다른 소환자들이 현재 무엇을 하고 있는지도 궁금했다.
이 세계에서 자신의 세력을 키우는 데에만 신경을 쏟았던 탓일까?
호는 자신의 라이벌이라 할 수 있는 다른 소환자들이 얼마나, 그리고 어떻게 성장을 했는지도 파악해야겠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당장은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전 대륙을 아우를 수 있을 정도의 정보단체를 운용할 수 있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당장 서둘러야 한 일은 마정석의 생산을 위해 해머스를 발전시키는 것과 수인 기병대와 관련된 기술의 개발이었다. 또한 훗사르의 양성에 필요한 특산품인 한혈마의 생산을 위해 에스트라다의 개발도 병행해야 했다.
“호 님을 위하여! 오늘도 열심히 일하자!”
“안전! 안전! 안전!”
그렇게 재야의 영웅을 모집하고, 영지를 발전시키는 나날이 계속되었다. 그러던 도중 하나의 서신이 디르시나로 날아들었다. 서신을 보낸 주인공은 에스트라드의 영주인 리아 캬베데였다. 그리고 그녀가 보낸 내용에는 에스트라다를 향해 수인 왕국의 군대가 오고 있다고 적혀 있었다.
* * *
“벨! 모든 영웅들을 소집하고, 디르시나의 병사들이 출전 할 수 있도록 바로 준비를 부탁해!”
“알겠어요!”
대답을 하며 달려 나가는 아스트리드 벨의 뒷모습을 보며 호는 드디어 올 것이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제까지 수인 왕국, 아니 원인들이 눈치만 볼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사실 호전적인 그들의 특성을 생각해보면 그동안 꽤 오래 참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수인족의 병력은…….’
리아 캬베데가 보내온 서신에 따르면 에스트라다를 향해 진군하는 수인 왕국의 병사는 삼만 명가량. 거기에 C등급 마장기인 카니앗산 네 대로 이루어진 한 개 편대가 포함되어 있다고 했다.
그렇다면 마장기를 제외해도 림드 산맥 전체에 퍼져 있는 모든 병사들의 수를 합쳐도 적은 만 이상이나 많은 전력으로 진군해 오고 있었다.
그나마 희망적인 사실은 적들의 마장기 전력에 B등급 마장기가 포함되어 있지 않다는 점이었다. 다행히 에스트라다는 비록 반쪽짜리이기는 해도 주포를 사용할 수 있는 카니앗산이 성벽 위로 배치되어 있었다.
어쨌든 단순한 국지전으로 끝날 전투는 아닌 것으로 보였다. 마장기까지 동원한 것을 보면 수인 왕국은 정말로 이 림드 산맥을 차지하기 위해 공격하고 있는 게 틀림없어 보였다.
그럼에도 에스트라다는 호에게 있어 절대로 빼앗기면 안 되는 지역이기도 했다.
‘에스트라다를 빼앗기면…….’
골든 크로우와의 거래 또한 무너진다. 자신이 호언장담했던 훗사르를 양성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에스트라다의 특산품인 한혈마 때문이라도 무슨 일이 있어도 이번 공세를 막아내야만 했다. 그렇다고 힘겹게 막아내서도 안 되었다.
“우리의 병력이 부족하다는 것을 알게 되면 원인 녀석들은 옳다구나 하고 또다시 병사들을 보내올 테지.”
그렇게 되면 끝장이었다. 최대한 압도적으로 승리를 거둬, 자신이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세력이라는 것을 그들에게 보여줘야만 했다. 이번 전투는 안테로리의 전투만큼이나 중요했다.
곧 수인 왕국이 쳐들어온다는 소식을 들은 디르시나의 영웅들이 하나 둘씩 호의 집무실로 모이기 시작했다.
“현재 에스트라다를 향해 진군해 오고 있는 수인족의 병사는 총 삼만. 거기에 C등급 마장기인 카니앗산 편대가 포함되어 있다고 하더군.”
“사단 병력쯤 되겠네요.”
“그래……?”
한시진이 말에 호가 눈동자를 살짝 굴렸다.
그녀의 세계에서는 저 정도의 병력 구성이 사단 급으로 불리는 모양이었다. 자신이 있던 세계와는 대략 3배 이상 차이가 났다.
“멍멍! 적은 수는 아니로군요.”
“공성전을 염두하고 있는지 수인 왕국이 자랑하는 기병대는 포함되어 있지 않다고 하더군. 일반 병력은 수인족의 B랭크 병사인 나가씰과 다람쥐 석궁수, 그리고 치키니가 포함되어 있다고 한다.”
“다람쥐 석궁수는 들어본 적이 있는 것 같은데, 나가씰과 치키니는 뭐예요?”
모두가 호의 말을 듣고 있는 가운데, 시현이 손을 번쩍 들더니 호에게 질문을 했다. 전쟁을 경험해 본 적이 없는 그녀는 호가 말하는 수인족의 병사들이 어떻게 생긴 것인지조차 몰랐다. 아스트리드 벨도 고개를 기우뚱하는 것을 보니 무슨 말인지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모양새였다. 그건 한시진도 비슷했다.
“그건 제가 설명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때 호의 눈빛을 받은 로우넨이 몸을 일으켰다.
“수인 왕국은 많은 종족들의 연합체나 다름없는 왕국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각 부족의 특성을 살린 병사들이 존재합니다. 일단 나가씰은 뱀 부족의 병사들입니다. 상체는 인간과 비슷하지만 하체는 뱀의 형태를 지닌 B랭크 보병으로, 무기는 주로 삼지창을 사용합니다.”
말과 함께 로우넨은 다른 사람들이 이해하기 쉽도록 나무로 만들어진 넓은 판에 나가씰의 생김새를 대략적으로 그리기 시작했다. 수인족의 B랭크 보병인 나가씰은 그 이름대로 나가나 라미아와 비슷한 생김새를 지녔다.
주 무기는 삼지창. 그들은 자신의 하체를 이용해 미끄러지듯 빠르게 접근해 강력한 찌르기로 상대 병력을 분쇄시킬 수 있는 장점을 지니고 있었다. 아군이 제대로 진형을 갖추기도 전에 쉭쉭거리는 소리와 함께 순식간에 접근하는 나가씰의 접근 속도는 상당히 위협적이었다.
하지만 약점 역시 확연했다. 특히 땅바닥에 날카로운 송곳을 박아놓는 것 같은 장애물에는 굉장히 취약했다. 성격이 고약한 유저들은 수인 왕국과의 전쟁에서 날카롭게 벼려진 칼날을 땅에 박아놓고 나가씰들이 고통 속에서 죽도록 만들기도 했다.
“아아. 이제 알겠어요.”
“삼지창이라. 리치가 꽤 긴 무기네요.”
로우덴의 설명을 들으며 아스트리드 벨과 한시현은 감탄성을, 그리고 한시진은 날카로운 눈빛을 보이고 있었다. 아마 머릿속으로 상대의 약점을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그렇게 나가씰의 설명이 끝나자, 이번에는 다람쥐 석궁수의 설명으로 이어졌다.
그런 로우덴의 설명을 한 귀로 흘리며 호는 이번에 수인족이 구성한 병종 중 하나인 치키니를 떠올렸다.
‘치키니까지 등장할 줄이야.’
그렇게 위협적인 녀석은 아니었다. 하지만 치키니는 호가 이 세계에서 처음으로 만나는 비행병이었다. 게다가 누가 이름을 지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치키니는 라헬교보다도 더욱 많은 신도를 보유하고 있었고 ‘치킨교’를 믿는 많은 리그너스 대륙전기의 유저들에게 신성 모독이라는 질타를 받았던 병과이기도 했다. 그 이름처럼 치키니의 생김새가 닭을 꼭 빼닮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닭과 다른 점은 비록 짧은 시간이지만 하늘을 날 수 있었고, 폭탄을 투하해 상대방에게 어느 정도의 피해를 줄 수 있었다. 그리고 그런 치키니의 폭탄은 끔찍할 정도로 고약했다.
‘……으으. 빌어먹을.’
마치 닭이 알을 낳듯 치키니의 엉덩이에서 떨어지는 폭탄을 떠올리며 호는 인상을 구겼다. 치키니의 폭탄은 수류탄처럼 폭발력도 어느 정도 있었지만, 일단 냄새가 굉장히 고약했다. 그 때문에 유저들에게는 응꼬탄 혹은 똥탄 이라는 별명으로도 악명이 높았다. 파괴력보다 냄새 때문에 더욱 더 죽을 것 같다는 말이 심심치 않게 나왔을 정도였다.
어쨌든 첫 비행병의 등장이기는 하지만 치키니에 대해 딱히 걱정은 들지 않았다. 냄새가 지독한 것을 제외하면 파괴력이 그리 큰 편이 아니었고, 치키니는 고작해야 C랭크 비행병에 불과했다. 그리고 비행병은 궁수 계열의 병사들에게는 엄청난 약점을 보였다.
아마도 정예 실리스들의 일제 사격이라면 하늘을 빼곡하게 메울 정도의 다수가 몰려오는 게 아닌 이상 치키니들의 폭격을 어렵지 않게 막아낼 수 있을 터였다.
“문제는 마장기지만…….”
상대에는 무려 네 기나 되는 카니앗산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들이 동시에 발사하는 주포 사격이라면 에스트라다 성벽이 그리 오래 버틸 것 같지는 않았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자신 또한 마장기의 오너를 보유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것도 B등급 마장기 키마라이의 오너였다.
“…….”
호의 눈동자가 한시진에게 향했다. 두 달 전, 검의 연주자로 전직한 그녀는 마장기와 관련해 무려 96%의 숙련도를 보이며 호를 경악하게 만들기도 했었다. 더욱이 공성에 최적화되어 있는 카니앗산과는 다르게 키마라이는 마장기 전에 상당한 강점을 보이는 마장기였다. 불리한 점이 많은 만큼 쉬운 전투는 아니겠지만, 충분히 붙어 볼 만했다.
“디르시나에서 출진할 수 있는 병력은?”
“엘븐 템플러 만이천과 정예 실리스 이천오백이요.”
이미 준비를 하고 있었던 모양인지, 벨이 빠르게 대답했다.
“모든 준비를 마치고 출전하려면 얼마나 시간이 걸리지?”
“급하게 출발하면 이틀이면 될 거예요. 하지만 보급대의 편성까지 전부 마치려면 최소 일주일은 걸려요.”
“그러면 너무 늦어.”
디르시나에서 에스트라다까지 가는 시간도 생각해야만 했다. 벨의 말대로 일주일 뒤에 출발할 수 있다면 너무 늦었다. A등급 영웅인 리아 캬베데가 있는 만큼 에스트라다가 그렇게 쉽게 무너지지는 않겠지만, 수인 군대를 지휘하는 영웅이 누군지도 감안을 해야 했다.
만약 대륙에서 이름 높은 S등급 이상의 수인 영웅이 지휘관이라면? 아무리 리아 캬베데가 성벽을 끼고 있다 해도 오래 버티지는 못할 터였다.
아스트리드 벨의 대답에 잠시 생각에 잠겨 있던 호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당장 급한 건 병사들이니 일단은 에스트라다로 지원군부터 보내도록 하자. 그리고 보급 부대는 최대한 빠르게 벨과 로우덴 자네가 맡아서 에스트라다로 보내도록 해. 당장 필요한 만큼은 에스트라다에도 물자가 비축되어 있을 테니 어느 정도는 버틸 수는 있을 거야.”
“알겠습니다. 멍멍!”
“그리고 한시진.”
“네, 오빠.”
자신을 호명하자 한시진의 눈동자가 호에게로 향했다. 그녀에게 있어 이번 전쟁은 다른 종족과 싸우는 두 번째 전쟁이었다. 그런 이유 때문일까? 호를 바라보는 그녀의 눈동자에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다양한 감정이 뒤섞여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