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9
리그너스 대륙전기 089화
똑똑.
“들어오세요.”
집무실에서 자신의 부재중에도 많은 성장을 거듭한 디르시나의 상황을 보며 앞으로의 발전 방향에 대해 생각을 하고 있을 때였다.
호는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고개를 문 쪽으로 돌렸다. 문이 열리며 모습을 드러낸 인물은 의외의 얼굴이었다. 그 순간 혹시나 하는 표정이 호의 얼굴에 지어졌다.
“오라버니! 저희와 함께하고 싶다는 새로운 분들이 오셨어요.”
“오!”
시현의 말에 호의 입에서 감탄이 터져 나왔다. 현재 D등급 클래스로 바람의 무희라는 직업을 가지고 있는 그녀는 디르시나의 주점을 관리하고 있었다.
아직 중학생 티도 벗지 못한 소녀가 술과 과격한 말, 험난한 몸싸움이 오가는 시끌벅적한 주점을 관리하는 모습이 아이러니하게 보일 수도 있겠지만, 의외로 그녀는 자신의 임무를 잘 수행해내고 있었다.
그녀는 싹싹한 말투와 귀여운 외모로 인해 주점의 마스코트로 명성을 떨치고 있었다. 그 덕분에 디르시나에서는 호 만큼이나 영지민들에게 인기가 높았다. 그리고 디르시나에서, 아니 이 세계에서 주점 주인이 맡은 임무는 바로 다른 세력에 몸담고 있지 않은 일명 재야의 영웅들을 등용하는 일이었다.
E등급 클래스로 요리사를 선택했던 한시현이 D등급 클래스로 바람의 무희를 고른 이유 역시 그 때문이었다. 한 지역의 패자가 되자마자 S등급 영웅인 로우덴을 비롯해 케반스, 엘 라디아까지 갑자기 세 명의 영웅을 동시에 등용하는 기염을 토했다. 그런 그녀의 모습에서 호는 시현에게 인재 영입에 대한 재능의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그런 그녀가 오늘 또 다른 영웅을 붙잡은 모양이었다.
‘생각보다 제법이란 말이야?’
현재 호에게 있어 가장 필요한 것은 바로 인재였다. 림드 산맥에 있는 도시들은 디르시나를 제외하면 전부 개척지 수준으로 발전이 떨어진 상태. D등급, 아니 E등급의 인재조차도 필요할 정도로 한 손이 아쉬운 상황이었다.
‘돈은 있는데, 일을 시킬 노예들이 없다니!’
디르시나의 특산품인 해양석은 매달 아르테미스 상단에서 비싼 값에 매입하고 있었다. 호는 해양석 한 상자 당 천이백 리스 정도로 값을 예상하고 있었다.
하지만 아스트리스 벨과 로우덴이 무슨 짓을 했는지 아르테미스 상단에서는 호가 예상하던 가격보다도 훨씬 비싼, 무려 천사백오십 리스에 해양석을 구매해가고 있었다.
어쨌든 이로 인해 리스와 식량에 대한 걱정은 크게 줄어든 상황. 오히려 건물을 세우고 연구를 할 수 있는 돈은 있지만, 임무를 수행할 영웅들이 부족한 형편이었다. 심지어 베코바, 해머스는 관리하는 영웅이 단 한 명도 배치되어 있지 않았다.
그런 와중에 한시현의 이런 보고는 가뭄의 단비나 마찬가지였다. 이런 것을 기대하고 주점을 맡긴 것이기는 하지만.
“오? 그런데 분들이라면? 한 명이 아닌 모양이지?”
시현의 대답을 기다리며 호의 눈동자가 초롱초롱 빛났다.
“헤헤. 백구랑 제가 힘 좀 썼어요.”
“백구? 아아…….”
시현이 사드나인을 부를 때 쓰는 별명이었다. 사드나인의 외모는 도베르만이지만 털이 흰색이라 그런지 백구라는 별명이 붙었고, 소환자들은 대부분 그렇게 사드나인을 부르곤 했다. 그리고 백구라는 뜻을 정확히 모르는 사드나인은…….
“여신 라헬님이 소환하신 소환자들이 붙여준 이름이라고!”
그렇게 말하며 어깨를 으쓱이곤 했다. 그리고 그 옆에서 환호성을 지르며 부러워하는 녀석이 또 한 명 있었다. 어쨌든 무척이나 기분이 좋아 보이는 모습이었기에, 호는 사드나인에게 그의 별명에 대한 진실을 알려주지 않았었다.
“그러면 이번엔 몇 명이나 함께하기로 했는데?”
“헤헤헤.”
미소와 함께 시현이 손가락 두 개를 펼쳤다. 한 명이 아닌 두 명의 영웅을 등용했다는 보고에 호는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그러면 한 번 만나러 가야겠는데?”
“네! 그런데 여자는 없어요.”
“하하하…….”
시현의 말에 호는 웃음과 함께 머쓱한 표정을 지었다. 엘 아르윈, 아스트리드 벨, 엘 라디아 등 호의 곁에는 외모가 뛰어난 여인들이 여럿 존재했다. 어디 그뿐인가. 엘프나 다크엘프, 서큐버스 등 디르시나의 길거리에는 빼어난 미모를 자랑하는 영지민들이 굉장히 많았다.
그 때문일까? 한시현은 자신이 언니가 아닌 다른 여자에게 관심을 쓰는 것을 경계하는 모습을 몇 번 보이곤 했다. 그래봤자 어린아이의 장난처럼 눈에 확 티가 나는 정도라 호의 눈에는 귀엽게 보일 뿐이었다.
“없으면 뭐 어때. 내 눈에 보이는 예쁜 여자는 시진이뿐인데.”
“하긴. 오빠에겐 언니밖에 없죠?”
“당연하지.”
그런 한시현을 보며 호는 속으로 미소를 지었다.
곧 주점으로 발걸음을 옮기니 범상치 않은 외모를 한 영웅들이 호를 기다리고 있었다. 새로 합류한 영웅은 다크엘프와 드워프였다.
“안녕하십니까?”
“오호? 자네가 바로 림드 산맥의 패자로군. 잘 부탁하네.”
다크엘프는 진 카라얀이라는 이름을 한 마족의 D등급 영웅이었다. 그는 무력 수치가 높은 근접 전투계열 영웅이었다.
“일할 수 있는 환경과 좋은 맥주만 있다면 언제든지 나를 부려먹어도 좋네.”
‘드워프라…….’
드워프의 영입은 호로서도 조금 의외였다. 마족이나 수인, 엘프는 디르시나, 아니 림드 산맥에 자신들의 생활 터전을 이루고 살아가고 있는 종족들이었다.
하지만 드워프는 그렇지 않았다. 그들은 바리안스의 대지 남쪽에 거주하고 있었다. 보통 그 지역에 터전을 잡고 있는 종족의 영웅들만이 등용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을 생각하면, 이번 드워프의 등장은 조금 의외이긴 했다. 하지만 다른 종족의 영웅이 등용되는 일이 아예 없는 일도 아니었으니, 어찌 보면 운이 좋은 모양이었다.
“상단을 통해 좋은 맥주를 계속해서 구매해야겠군요.”
“우하하! 그래 주면 나야 좋지.”
호의 말에 140cm도 되어 보이지 않는 드워프가 호탕하게 웃음을 터뜨렸다. 존스 홉킨스라는 이름의 B등급 영웅이었는데, 등급이 낮은 편은 아니라 그런지 능력치도 나쁘지 않았다. 특별히 높은 수치는 없었지만, 그렇다고 떨어지는 수치도 없었다. 게다가 드워프들은 다른 종족들이 갖지 못한 특성이 하나 있었다.
‘손재주.’
그건 생산 건물 혹은 연구를 맡겼을 경우 생산량을 올리거나 연구 시간을 줄여주는 특성이었다. 덕분에 리그너스 대륙전기를 플레이하는 플레이어들에게 있어 연구를 가장 빠르게 끝낼 수 있는 최고의 공돌이는 바로 손재주 특성을 지닌 SSS등급의 지력과 정치 포인트를 지닌 드워프라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이거 제대로 된 노예가 한 명 들어왔군.’
맥주와 생활 터전 그리고 흥밋거리만 제공한다면 드워프들은 자신이 살고 있는 터전에서 벗어나려 하지 않았다.
“시현아. 아스트리드 벨을 불러주겠어?”
“네? 네!”
호는 그 즉시 존스 홉킨스가 보는 앞에서 벨을 불러 그녀에게 드워프가 좋아하는 최고급 맥주를 구입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그리고 그날 밤, 존스 홉킨스는 호의 공돌이가 될 것을 자처했다.
* * *
진 카라얀 이라는 다크엘프는 그렇다 치더라도 새로 영지에 합류한 존스 홉킨스는 곧 자신이 어째서 드워프라는 종족이라고 불리는지 거침없이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특산품을 생산할 수 있는 해양석 어장이 영지 발전 수준의 한계치까지 지어졌고, 영지 기술 개발에도 탄력이 붙었다.
그와 더불어 로우덴의 특성에 영향을 받은 영웅들이 계속해서 영지 개발에 달라붙었기에 디르시나는 하루가 멀다 하고 성장하기 시작했고, 어느새 디르시나는 중도시였던 안테로리를 뛰어넘는 발전도를 자랑하고 있었다.
<영지 정보(Status)>
디르시나(대도시[A등급]) - ‘림드 산맥’
인구 – 132,322
보유 리스 – 829,313
보유 식량 – 1,281,212
병사 – 에바스 나이트 10,500(B), 정예 실리스 2,000(C).
내정 건물 - 대형 식량 저장고 48, 대형 주점 1, 대시장 62, 대형 어장 42, 해양석 어장 20…….
군사 건물 – 견고한 대형 망루 26, 병영 6, 대장간 12. 마법 연구소 1, 아주 견고한 성벽 1.
리스 수입 – 69,270 / 월
식량 수입 – 124,272 / 월
특산품 – 해양석
“좋아, 좋아.”
급격하게 인구수가 늘어나며 어느새 대도시가 되어버린 디르시나의 정보창을 바라보며 호가 웃음을 흘렸다.
수인과 엘프는 물론이고 마족을 포함한 서로의 종족들은 디르시나에서 자신들의 구역을 나누어 트러블 없이 잘 생활하고 있었다. 또 최근에는 드워프 종족이 영지의 남동쪽에 자리를 잡기 시작하며 인구가 큰 폭으로 늘어난 상황이었다.
리스 수입과 식량 수입도 걱정이 없었고, 스무 개나 되는 해양석 어장에서는 매달 이백 상자의 해양석이 계속해서 생산되었다. 한 달에 특산품의 판매로만 무려 580만의 리스 수입이 들어오는 것이다. 그리고 현재 이 돈의 대부분은 기술 연구와 영지민들의 생활 편의에 쓰이고 있었다.
영지 기술의 개발도 문제없었다. 곧 있으면 호가 그렇게나 간절히 원했던 A랭크의 병종인 엘븐 템플러를 육성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안테로리가 있었으면 더욱 좋았을 텐데…….”
호는 자신이 파괴해 버린 도시를 떠올렸다. 엘 샤난의 말에 따르면 안테로리에는 마족과 엘프족 그리고 수인족의 싸움으로 인해 피해를 본 피난민들과 리셴르나의 명령에 따라 새롭게 이주한 수인족들이 모여 조그마한 마을을 이루기 시작했다고 했다. 덕분에 이그 름도 바뀌었다. 지크로리로.
‘어디선가 많이 들어본 이름인 것 같지만.’
착각이겠지, 하는 생각과 함께 호는 엘 샤난이 말해줬던 지크 로리의 상황을 떠올렸다. 영지의 인구수는 고작해야 백 명 정도로, 개척도시보다 못한 게 지크 로리의 현실이었다.
어쨌든 안테로리가 있었다면 영지의 성장에 더욱 탄력을 받았을 것이다. 최소한 특산품을 생산하며 리스를 벌어들일 수 있는 도시가 두 군데는 될 테니까.
그래도 딱히 아깝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안테로리를 파괴해 수인족의 진군을 늦추지 않았더라면, 지금쯤 자신은 수인족의 밥이 되고도 남았을 터였다.
“좋아. 일단 엘븐 템플러의 연구가 끝나면…….”
마음 같아서는 엘프 보병의 연구를 계속해 S랭크의 보병을 만들고 싶었다. 하지만 S랭크 보병을 만드는 것은 E랭크에서 A랭크까지 연구를 거듭한 것보다도 훨씬 많은 시간과 자원을 필요로 했다.
그러니 적어도 디르시나라는 도시 하나의 힘만으로는 해낼 수 없다는 것을 호는 경험을 통해 알고 있었다. 게다가 무턱대고 연구를 시작한다면 그 효율성도 높지 않았다.
“…….”
호는 잠시 생각에 잠겨들었다. 그의 손가락과 책상이 부딪치며 내는 소리가 집무실에 울려 퍼졌다.
A랭크 병종을 양성할 수 있다 하더라도 엘븐 템플러는 단지 보병일 뿐이었다. 궁병을 비롯한 다른 병과들은 아직 C랭크로, 심지어 모병조차 할 수 없는 병과도 존재했다.
비록 림드 산맥의 모든 도시를 보유하며 한 지역의 패자가 되었다고는 하지만 호는 자신의 전력이 다른 지역의 패자들에 비교해 현저히 떨어진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어떻게 엘프 군단을 끌어들여 리셴르나의 공격을 막아내고는 있었지만, 에스트라다를 향해 수인족의 군대가 언제 몰려올지 모르는 일이었다.
게다가 세이라 클리퍼드가 여왕으로 있는 북쪽 나라 블루 스케일도 아군이라고 부를 만한 관계가 아니었다.
“마장기. 마장기를 제작해야 돼.”
그때 눈을 감은 호의 입에서 확신에 가까운 말이 흘러나왔다. 지금의 세력과 안전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더욱 강한 전력이 필요했다. 바로 리그너스 대륙의 최종병기라 불리는 거대한 강철거인 마장기.
잠시 후, 호는 고심하는 얼굴로 공략본을 보면서 앞으로의 계획을 종이에 써내려가기 시작했다. 그 내용들은 앞으로 디르시나의 발전에 큰 영향을 미칠 계획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