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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그너스 대륙전기-88화 (88/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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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그너스 대륙전기 088화

호와 한시진은 디르시나로 향하고 있었다. 던전 토벌을 위해 디르시나에서 병사들을 이끌고 떠난 지도 벌써 3주나 지나 있었다.

“긴 여정이었어.”

호는 림드 산맥에서 있었던 던전 토벌을 떠올렸다. 제법 힘들었던 일정이었다. 붉은 핏빛의 대지와는 달리 림드 산맥의 던전에는 징그러운 녀석들도, 위험한 몬스터와도 마주치는 경우가 많았다.

거기에 디르시나에서 출발해 에스트라다를 거친 후 다시 디르시나, 베코바를 지나 킬리드와 해머스를 거쳐 다시 디르시나로 향하는 일정 또한 살인적이었다.

결과만 말하자면 호는 림드 산맥에 존재하는 던전들을 모두 토벌하지는 못했다. 시간도 부족했지만, 림드 산맥에는 붉은 핏빛의 대지와는 달리 등급이 높은 던전들이 더러 있었기 때문이었다. 지휘하는 병사들의 랭크가 높다면 모르겠지만, 에바스 나이트들의 병종 랭크는 B에 불과했다.

그 때문에 호는 C등급 이상의 던전은 하나를 제외하고는 건드리지 않았다. 아니, 건드리지 못했다. C등급 던전을 공략하다가 엄청난 피해를 입었던 탓이었다. 어차피 B등급 던전을 파괴하나 E등급 던전을 파괴하나 전직 퀘스트에 필요한 카운트는 동일하게 올라갔다.

어쨌든 아직 공략하지 못한 던전들이 남아 있기는 했지만, 어차피 지금 당장 토벌을 하지 않더라도 상관이 없는 일이었다. 또 이제까지의 던전 토벌로 인해 영지의 치안이 상당히 올라간 상황이었다. 게다가 자신이 생각했던 1차적인 목표도 달성했기에 일단은 한숨을 돌릴 생각이었다.

<플레이어 정보(Status)>

1. 이름 : 한시진

2. 성별 : 여(24)

3. 종족 : 인간

4. 소속 : 마족

5. 레벨 : 63

6. 직업 : 윈드 레이지(C)

7. 세부능력

통솔 : 90 / 100(C)

무력 : 270(+68) / 300(+68)(A)

지력 : 94 / 100(C)

정치 : 42 / 50(D)

매력 : 83 / 100(C)

카리스마 : 30 / 50(D)

8. 특성 : 화랑의 정신, 강행군, 마나의 기운, 화랑의 검술.

9. 스킬

<임전무퇴> S랭크.

전쟁터에 나가서는 결코 물러서지 말고 용감히 싸우라는 화랑의 정신이 담겨 있습니다.

-효과 : 어떠한 상황에서도 부대가 물러서지 않으며 피해를 입더라도 병사 수에 따른 부대의 공격력 및 방어력의 패널티가 발생하지 않습니다. 또한 지휘하는 부대는 패닉 상태 및 어떠한 해로운 효과에도 영향을 받지 않으며, 전투 중 병사 수가 10%씩 감소할 때마다 부대의 공격력, 방어력이 10%씩 증가합니다.

<몰아치는 폭풍> A랭크.

윈드 레이지는 맹렬한 바람과도 같은 모습을 보이며 자신의 날카로운 검으로 모든 적들을 베어 버립니다.

-효과 : 5분간 자신의 무력 수치가 20% 상승합니다.

바로 한시진의 전직이었다.

‘이거 뿌듯하네.’

제법 나이가 있는 게이머들만 알고 있다는 전설의 가상현실 게임 ‘프린세스 메이커VII.’

거기 주인공 소녀를 보는 느낌이 이럴까?

급격히 성장한 한시진의 능력을 보니 입가에 절로 아빠 미소가 지어졌다. 가슴 속 깊은 곳에서 뭐라 설명할 수 없는 뿌듯함이 차오르고 있었다.

결국 한시진은 C등급의 레어 클래스인 윈드 레이지로 전직할 수 있었다. 레어 클래스답게 윈드 레이지는 무력 능력을 본래 등급에서 무려 두 단계나 높일 수 있었다. 덕분에 한시진은 무력 능력만큼은 B등급 레어 클래스인 아크 로얄인 자신과도 맞먹고 있었다.

게다가 클래스를 높이며 한시진은 던전 토벌은 물론이고, 이제까지의 전투로 인해 획득한 경험치를 모조리 쏟아 부었다. 덕분에 그녀는 자신의 능력 포인트를 굉장히 많이 높일 수 있었다. 그야말로 환골탈태라는 말이 어울리는 모습이었다.

‘그만큼 엄청나게 성장했지.’

이 정도면 자신의 휘하에 있는 영웅들 중 세 손가락 안에도 들어갈 정도였다. 당연히 남은 두 영웅은 로우덴 셰필드와 리아 캬베데였다.

하지만 현재의 상황에서 만족해서는 안 됐다. 한시진이 마장기를 움직이기 위해서는 이 세계의 특수한 조건을 달성해야만 했다. 바로 B등급 클래스의 보유였다.

“이제 한 등급만 더 올리면 되겠네?”

“네, 오빠. 검의 연주자라고 하셨죠?”

“그래.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네?”

“오빠가 말해준 클래스니까요.”

한시진의 대답을 들으며 호는 그녀의 정보창을 닫았다. 반투명한 모습으로 눈에 나타나는 정보창의 존재는 다른 사람과 대화를 할 때는 제법 거슬리게 느껴졌다.

“전직을 하는데 얼마나 오래 걸릴까요?”

“왜? 빨리 전직하고 싶어?”

“물론이죠.”

한시진의 대답에 호는 살짝 미소를 지었다. 어째서 그녀가 빨리 B등급 클래스가 되고 싶어 하는지 그 이유를 충분히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한시진은 자신의 세계에 있던 화랑과 비슷한 병기인 마장기를 조종하고 싶어 했다.

“흐음. 노력에 달려 있지 않을까?”

“노력은 당연히 해야죠. 하지만 하루라도 빨리 B등급 클래스로 전직을 하고 싶어요.”

계속된 던전 토벌로 인해 피곤할 법도 했지만 호의 눈에 비친 한시진의 모습은 아주 쌩쌩해 보였다. 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피로가 몸에 가득할 터였다.

“마음은 충분히 이해가 되지만, 일단은 디르시나에서 휴식을 취하고 난 이후에 다시 던전 토벌을 시작하자. 굳이 무리해서 경험치를 올리려고 하다가 큰일이라도 나면 어떻게 하려고.”

“헤……. 걱정되세요?”

“당연하지. 내가 좋아하는 사람인걸.”

호의 말이 싫지 않았는지 한시진은 웃음을 흘렸다.

“어쨌든 검의 연주자가 되기 위해서는 일단 무력 포인트를 순수하게 300까지 높여야만 해.”

“알고 있어요. 그리고 매력 포인트도 100까지 높여야 하고요. 맞죠?”

“그래.”

“헤헤.”

자신을 칭찬해 달라고 말하는 듯 고개를 살짝 들이미는 한시진의 행동에 호는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B등급 레어 클래스인 ‘검의 연주자’는 윈드 레이지와 마찬가지로 전직 조건이 까다로운 특수 클래스 중 하나였다.

하지만 한시진은 이미 그 조건을 만족한 상황이었다. 어찌 보면 호가 보유하고 있는 ‘제네시스 - 전장의 마에스트로’와 전직 조건이 비슷하기도 했다. C등급 클래스면서 무력 한계를 A까지 높여야 한다는 점 때문이었다.

‘생각해 보니 나도 검의 연주자로 전직했었네.’

한시진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호는 예전의 추억을 떠올렸다. 검술 관련 B등급 레어 클래스 중 하나인 검의 연주자는 호도 잘 알고 있는 클래스였다. 등급에 비해 높일 수 있는 능력의 한계치가 높았던 탓에 가상현실 게임인 리그너스 대륙전기를 플레이하는 유저들이 주로 추천하는 검술 관련 직업이기 때문이었다.

호 또한 처음 리그너스 대륙전기를 플레이 했을 때 많은 사람들의 추천을 받아 검의 연주자로 전직했던 적이 있었다. 안타깝게도 그 게임은 여신 라헬의 통수와 살인적인 난이도로 인해 엔딩을 눈앞에서 두고 Game over를 당했었다.

‘어? 잠깐만.’

갑작스레 옛날의 기억을 떠올리던 호의 얼굴이 빠른 속도로 굳어지기 시작했다. 이 세계에서 바삐 살아가느라 잠시 여신의 존재에 대해 잊고 있었다.

여신 라헬. 지금부터라도 그녀에 대한 대비를 해야 했다. 어째서 이 세계의 여신인 그녀가 자신들을 소환했는지, 그 이유가 수상했다. 분명 그녀가 소환자라 불리는 자신들을 그냥 부르지는 않았을 터였다. 틀림없이 여신은 자신들에게 무언가를 원하고 있었다. 아니면 소환자들을 이용해…….

‘짐작이 가는 게 있기는 하지만.’

사실 호는 여신 라헬이 소환자들을 소환한 이유에 대해서 어느 정도 짐작하고 있었다. 라헬은 이 리그너스 대륙의 혼란을 바라고 있는 듯 보였다. Korea 사의 게임에 등장하는 설정처럼 말이다.

Korea 사의 가상현실 게임 리그너스 대륙전기에서 여신 라헬은 플레이어를 리그너스 대륙으로 부르는 역할을 했다. 혼란스러운 리그너스 대륙에 평화를 가져다 달라는 식으로 말이다.

꽤나 예쁘장한 외모에 몸매도 빵빵. 게다가 남자의 마음을 홀리는 아름다운 목소리는 초창기 라헬을 추종하는 팬클럽이 생겨날 정도였다. 뭐, 지금은 희대의 개년이 되었지만.

어쨌든 유저들이 자신의 모든 능력과 기술을 동원해 하나하나 각 세력들을 정복하고 결국 리그너스 대륙의 통일을 눈앞에 두었을 때 여신 라헬은 다시 등장했다. 수고했다는 말과 함께 말이다. 당연히 여신 라헬의 등장에 플레이어들은 좋아했다. 아무리 가상현실이지만 예쁘장한 여인이 고생했다며 안겨오는 게 기분이 나쁠 리 없었다. 게다가 힘겨웠던 게임의 마지막을 여신과 함께 장식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플레이어의 착각이었다. 여신 라헬은 리그너스 대륙을 정복하려는 플레이어를 악으로 규정하고 신의 군대를 이용해 공격을 감행했다.

‘진짜 더럽게 센 놈들이었지…….’

그때의 기억은 다시 떠올려도 이가 갈릴 정도였다. 라헬의 군대는 대비를 철저히 한 플레이어가 아니면 막아내기 힘들 정도로 강했다. 그리고 신의 군대를 막아내지 못하면 게임 오버.

만약 거기에서 끝났다면 라헬이 그렇게까지 나쁜 년이라는 소리를 듣지 않았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여신 라헬과 신의 군대에게 게임 오버를 당하면 그 다음 회차는 무조건 새로 시작을 해야만 했다. 세이브와 로드가 통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런 이유로 인해 많은 유저들이 멘탈 붕괴에 빠졌고, 에디터라는 금단의 비술에 손을 되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런 유저들 중에는 호도 끼어 있었다.

그것이 바로 여신 라헬, 그녀가 리그너스 대륙전기를 플레이하던 유저들에게 희대의 쌍년이 된 이유였다.

‘라헬은 분명 지금 신의 군대를 키우고 있을 거야. 갑자기 소환자들을 등장시킨 것도 각 대륙의 영웅들의 시선이 자신에게 향하는 것을 막으려는 의도일 게 틀림없어.’

호 역시 리그너스 대륙전기의 1회 차 시절, 여신 라헬로 인해 게임 오버를 당했었다. 그리고 어째서 여신 라헬이 플레이어를 공격했는지도 배드 엔딩을 통해서 봤었다.

그녀는 리그너스 대륙을 정복한 후 이 대륙에 숨겨져 있는 힘을 이용해 창조신 리그로우와 세리너스를 소멸시키고 자신이 세계의 유일한 신이 되기를 바라고 있었다.

‘하지만 이 세계의 라헬이라면……?’

분명 이 세계는 Korea 사에서 제작한 게임이 아니었다. 하지만 리그너스 대륙전기의 판박이와 같은 이 세계의 배경을 생각해보면 자신들을 이 세계에 소환한 라헬이 먼 훗날 신의 군대를 이용해 소환자와 대륙에 존재하는 영웅들의 뒤통수를 칠 가능성은 충분히 있었다.

“읏……!”

그때 힘이 조금 들어갔는지 호의 품에 안긴 한시진의 입에서 달뜬 소리가 흘러나왔다. 조금 불편해 보이는 모습이지만 한시진은 호의 품에서 벗어나려고 하지 않았다. 덕분에 호는 계속해서 라헬에 대한 생각을 이어갈 수 있었다.

‘오호 신장과 신의 군대.’

여신 라헬의 수족인 그 다섯 천사는 마지막에 등장하는 적들답게 모든 능력치가 SSS등급인 녀석들이었다. 게다가 이들은 그냥 등장하는 것이 아니라 무려 A등급 마장기에 탑승한 채 등장하기까지 했다.

거기에 난이도에 따라 조금 달라지기는 하지만 신의 군대 또한 모두가 SSS랭크의 병종이었다. 그 수가 무려 500만. 거기에 A, B, C등급의 마장기가 약 만 기 정도가 포함되어 있었다.

상상만 해도 기가 질릴 정도의 병력이었다. 하지만 이 병력들을 사그리 물리칠 수 있어야만 여신 라헬의 야욕을 꺾을 수 있었다.

‘후우…….’

한숨이 절로 나왔다. 지금의 상황으로는 신의 군대는커녕 오호 신장 중 하나만 등장해도 멸망의 길을 갈 터였다.

설마 그런 것이 또 등장할까 싶은 생각이 들기는 했지만, 대비는 미리미리 해놓는 게 현명할 것 같았다. 앞으로 할 일이 더욱 많아질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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