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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그너스 대륙전기-82화 (82/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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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그너스 대륙전기 082화

수인족의 상급 대장인 리셴르나가 안테로리를 노리고 있다는 정보를 입수했을 때부터 호는 최악의 상황을 가정하고 있었다. 가상현실 게임이었다면 세이브와 로드로 모든 것을 해낼 수 있었겠지만, 이 세계는 게임이 아닌 현실. 최소한 살아남을 수 있는 구멍을 마련해야만 했다.

하지만 안테로리는 리셴르나 휘하에 있는 도시 아트리그와 경계를 맞대고 있었다. 결국 도시 자체를 옮기지 않는 한 리셴르나와의 충돌은 죽었다 깨어나도 피할 수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호는 하나의 방법을 떠올렸다. 바로 엘프족을 이용하는 방법이었다.

사실 처음부터 엘프족을 방패로 삼을 생각은 없었다. 단지 시계 속의 톱니바퀴처럼 일이 딱딱 그렇게 굴러간 것이다.

그는 먼저 SS급 퀘스트인 ‘크리솔라이트의 꿈’을 클리어하려는 목적으로 엘 샤난의 호감도를 얻기 위해 엘프 보병을 양성했었다.

이는 단순히 엘프 보병이 리그너스 대륙전기에 등장하는 모든 보병 중 가장 강력한 위력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알기에 내린 결정이었다.

그러던 와중에 킬리드의 수인족이 코르다를 공격했고, 호는 그 빈틈을 노려 킬리드를 점령했다. 그리고 호의 명령에 따라 엘븐 나이트들을 이끌고 코르다에 지원군으로 파견되었던 한시진은 코르다를 공격하던 수인족들을 모조리 짐승의 밥으로 만들어 버렸다.

여기서 호는 자신들이 엘프 보병을 이끄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엘 샤난에게 소환자가 그리 나쁜 존재가 아니라는 이미지를 심어줄 수 있었다. 그리고 림드 산맥을 하나씩 점령해갔다.

이 모든 게 리셴르나가 이끄는 수인족의 공격을 엘프족을 이용해 막아보려는 과정에서 발생했다. 안테로리를 포기하고서라도 새롭게 얻은 림드 산맥의 도시들을 키워나가기 위한 계획의 일환이었던 것이다.

“림드 산맥의 점령까지는 조금 의외였지. 사실 킬리드를 포함해 주변 영지 두어 개쯤 손에 넣으려고 했는데…….”

혼잣말을 중얼거리던 호의 귀에 끼기긱 하는 기계음이 계속해서 들려왔다. 몸이 마치 롤러코스터를 탄 것처럼 하늘 위로 두둥실 떴다가 급하강을 반복하고 있었다. 현재 호는 카니앗산의 동체에 앉아 이동하고 있었다.

“좀 제대로 운전할 수 없어?”

[하…… 하지만 마장기 조종은 수인 학교에서도 몇 번밖에 해보지 않아서. 냥.]

“쩝.”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리아 캬베데의 대답에 호는 입맛을 다셨다. 게임에서는 마장기의 탑승 조건만 만족하면 영웅들이 알아서 최고의 효율을 뽑아냈건만, 이 세계는 그렇지 않은 것 같았다.

그것은 게임에서는 볼 수 없었던 숙련도라는 새로운 능력이 리아 캬베데에게 생겨났기 때문이었다. 그런 것을 생각하면 마장기를 다룰 수 있는 숙련도가 전쟁에서, 그리고 전투에서 굉장히 중요하게 작용할 것 같았다.

어쨌든 이 모든 것들이 수인족의 성질을 건드린 원인이 되었고, 결국 리셴르나가 군대를 일으켰다. 어차피 일어날 일이었기에 크게 당황하지는 않았다. 다만 수인들이 엘 샤난에게 서신을 보내 킬리드를 점령할 수 있게끔 길을 비켜달라고 말했을 때는 조금 무섭긴 했었다.

끼기기기긱. 쿵! 끼기긱. 쿵!

“…….”

묵직한 기계음 소리가 계속해서 호의 귀를 간질였다. 수인족의 C등급 카니앗산. 등에 있는 두 개의 주포와 함께 마력화살을 발사할 수 있는 보조무기가 다리와 몸통 아래쪽에 달려 있는 마장기였다.

안테로리에서 있었던 폭발 때문인지, 여기저기 부서지고 고장이 난 탓에 불안한 느낌이 들게 만드는 기계음이 계속해서 들려오고 있었다. 어차피 자신의 영지에 가져가도 마장기 제작관련 기술 연구는 개발이 완료된 게 하나도 없었기에 제대로 수리조차 할 수 없는 물건이었다. 그래도 이런 전리품을 놓고 간다는 건 예의가 아니었다.

게다가 고칠 수는 없어도 써먹을 데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수인족의 또 다른 공격 루트 중 한 곳인 에스트라다의 성벽에 카니앗산의 주포만 배치해도 엄청난 위력과 압박감을 상대에게 안겨 줄 수 있었다.

‘이거 일이 너무 잘 풀리는데? 너무 잘 풀려서 불안해.’

자신이 리셴르나의 군대를 상대로 시간을 끌 수만 있다면 엘프는 아니더라도 마족의 군대가 도와줄 거라는 예상은 하고 있었다. 처음 안테로리를 점령했을 무렵, 볼 붸르니체스의 군대가 리셴르나의 군대를 상대로 대신 방어를 해줬던 적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볼 붸르니체스의 명령을 받은 마족이 커티삭으로 향하고 있다는 보고를 받기도 했었다. 다만 엘프의 군단급 전력이 코르다로 온다는 것은 조금 의외였다.

하지만 그건 나쁜 일은 결코 아니었다. 리셴르나가 마장기가 네 기나 배치된 엘프의 군단급 전력을 뚫고, 킬리드를 공격하는 멍청한 일은 하지 않을 거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이제는 쉽사리 진격 명령을 내리지는 못하겠지.”

호는 폐허가 된 안테로리를 떠올렸다. 지금의 안테로리는 한때 십만에 가까운 인구가 거주했던 마족의 도시가 아니었다. 이제 그곳은 C등급 마장기 한 대와 함께 A, B랭크 병종으로 이루어진 일만의 수인 시체들이 묻혀 있는 거대한 무덤이나 다름없었다.

자신이 계획한 일로 인해 일만이 넘는 생명체가 목숨을 잃었다. 무섭다 못해 몸이 덜덜 떨려야 정상이지만, 왜일까? 오히려 마음이 평온했다.

그렇게 한참 동안 카니앗산의 동체에 누워 있던 호는 지형이 변하는 모습을 보며 몸을 일으켰다.

“리아. 여기서부터는 오른쪽.”

[냥!]

이제 코르다의 영토에 진입한 것을 보니, 킬리드까지는 아직 한참이나 더 가야 했다.

* * *

“캬앙! 말도 안 돼!”

C등급 마장기가 포함된 군대의 전멸. 거기에 생존자는 단 17명에 불과한 그 어마어마한 피해에 리셴르나는 경악성을 내뱉었다. 자신이 수인족의 상급 대장으로 있으면서 입었던 피해 중 가장 큰 피해였다. 심지어 상대방은 아무런 피해조차 입지 않았다.

리셴르나는 안테로리에서 살아남은 생존자의 말을 들을수록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군대와 군대끼리 맞붙은 전투도 아니었다. 살아남은 병사들은 모두들 하나같이 천둥의 군주가 소리를 질렀고, 화염의 악마가 혀를 날름거렸으며, 땅바닥이 저절로 갈라졌다고 말하고 있었다.

살아남은 생존자들의 보고를 믿을 수 없었던 리셴르나는 곧바로 정찰대를 안테로리에 보냈다. 그리고 며칠 뒤 그들의 말이 거짓이 아니었다는 것을 보고받을 수 있었다. 안테로리는 말 그대로 폐허가 되어 버렸다.

“소환자의 능력인가?!”

리셴르나는 이를 빠드득 깨물었다. 예상에도 없었던 엄청난 피해는 둘째 치고, 안테로리에서 정확히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 수 있는 방도가 없었다. 그녀가 아는 무기 중에는 이런 엄청난 파괴력을 지닌 것들은 없었다.

수인족의 전설로만 내려오는, 수인 왕국을 이루는 종족들의 전설적인 마장기가 합쳐진 초대형 마장기 ‘알바트로스’의 힘이라면 가능할 수도 있겠지만, 알바트로스는 말 그대로 전설로만 전해 내려오는 마장기였다. 게다가 ‘알바트로스’는 소환자는 움직일 수 없는 수인족의 마장기이기도 했다.

“캬아아악!”

결국 리셴르나는 안테로리를 향해 군사를 진격시킬 수도 없었다. 안테로리에서 있었던 엄청난 일들이 병사들에게 퍼져 나가며 공포가 전염된 탓도 있었지만, 윤호라는 이름의 소환자가 어떻게 해서 천둥 군주의 힘과 화염의 악마를 불렀는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무턱대고 병사를 진격시키다가는 피해만 늘어날 게 불을 보듯 뻔했다.

결국 안테로리에서 선봉대가 전멸하는 엄청난 피해 때문에 리셴르나가 진격을 머뭇거리는 사이, 커티삭과 코르다의 성 근처에는 마족과 엘프족의 군단이 거주하는 요새가 건설되기 시작했다. 그렇게 안테로리를 둘러싸고 수인과 마족 그리고 엘프의 군단급 병력들이 대치하며 일촉즉발의 상황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하지만 서로가 앙금을 품고 있는 세 종족이 모인 탓에 저마다 눈치를 보느라 전면전이 벌어지는 일은 없었다. 다만 여기저기서 소규모 국지전이 일어나기는 했다.

호는 엘 샤난과 함께 산발적으로 벌어지는 그 국지전에 참여해 그녀와 관련된 퀘스트를 열심히 진행시켰다. ‘엘 샤난의 마음’ 이라는 퀘스트의 세부 내용에는 그녀와 함께 수인들을 격퇴해야 한다는 조건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수고하셨습니다. 대장님! 멍멍.”

엘 샤난과 함께 C랭크 엘프 보병인 문 나이트들을 이끌고 수인과 전투를 벌이고 킬리드로 귀환한 호를 향해 견인족 하나가 재빠르게 튀어나와 인사를 했다. 로우덴이었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과도한 충성심을 보이던 로우덴은 수인족의 선봉대가 전멸한 ‘안테로리의 비극’의 이야기를 들은 후부터는 거의 호의 추종자처럼 행동하고 있었다. 오죽하면 호가 저 녀석에게 실수로 오너 시스템을 사용한 게 아닐까 싶어 손목의 숫자를 확인해 봤을 정도였다.

“대…… 대장님. 멍멍!”

로우덴을 향해 손을 살짝 휘젓고 말에서 내린 호는 마치 사병처럼 차렷 자세를 하고 있는 로우덴을 잠시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리고 품에 있는 것을 꺼냈다. 그것은 한 손에 잡힐 정도의 크기를 지닌 야구공만한 공이었다.

자신의 품에서 공이 등장하는 순간 로우덴의 눈이 아까 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반짝반짝 빛나는 것을 본 호는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역시 개는 개였다. 호는 어금니를 으득 깨물고는 온 힘을 집중하기 시작했다.

“우주의 별이 되어라!”

“머어엉!”

마나까지 이용해 호가 하늘 높이 공을 던지는 순간, 로우덴이 엄청난 속도로 뛰쳐나가기 시작했다.

“미친 개새끼. 지랄도 병이다.”

뒤에서 그 모습을 보던 한 수인 영웅이 심드렁하게 말을 내뱉었다. 리아 캬베데였다.

현재 킬리드에는 호를 포함해 에이스라고 부를 수 있는 S등급과 A등급인 두 영웅만이 주둔하고 있었다. 나머지 인물들은 전부 디르시나의 개발에 힘쓰고 있었다.

한시진은 에스트라다에서 수인족의 공격을 방어하기 위해 도시를 요새화시키고 있었다. 하지만 ‘안테로리의 비극’이라 불리는 사건의 영향 때문인지, 에스트라다를 향하려던 수인족의 기세가 점점 주춤하는 모양새였다. 물론, 호에게는 좋은 일이었다.

“그나저나 마스터. 우리는 언제쯤 이 쓸모없는 전투를 그만두고 디르시나로 돌아가나요?”

리아 캬베데가 물었다. 그녀는 호가 엘프와 연합해 수인족의 군대와 전투를 벌이는 것이 탐탁지 않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들에게 이득이 없기 때문이었다. 오히려 디르시나에서 양성되고 있는 최정예 병사인 문 나이트만이 죽어나가고 있었다.

“이제 곧.”

호는 그런 리아 캬베데의 머리를 강하게 쓰다듬어 주고는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그는 엘 샤난과 관련된 퀘스트를 완료하고 나면 디르시나로 돌아갈 생각이었다. 그리고 ‘엘 샤난의 마음’ 퀘스트는 거의 달성해 가고 있었다. 이제 남은 것이라고는 그녀와 함께 인시네라라 불리는 코르다의 호수를 구경하고, B랭크 이상의 엘프 병종 연구를 마치는 것뿐이었다.

게다가 B랭크의 엘프 병종 연구는 이제 곧 있으면 완료될 예정이었다. 바로 C랭크 보병인 문 나이트의 상위 병종인 에바스 나이트의 연구가 거의 끝나가고 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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