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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그너스 대륙전기-80화 (80/522)

# 80

리그너스 대륙전기 080화

“돌격!”

호 또한 가만있지 않았다. 백 명의 엘븐 나이트와 함께 최전방으로 돌진한 호는 연이어 검을 휘둘러 켄타우로스 전사들을 연거푸 반으로 갈라버렸다. 제대로 검술을 배운 것은 아니었지만 가상현실에서, 그리고 이 세계에 와서 전투를 치러본 적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켄타우로스 전사들의 반격도 만만치 않았다. 중구난방으로 엘븐 나이트들과 부딪치는 동안 차지의 위력은 크게 반감되었지만, 그들은 거대한 창을 휘두르며 자신의 앞을 가로막은 엘븐 나이트들과 정예 실리스들을 두 동강 내거나 자신들의 앞발로 뭉개 버렸다.

“이길 수 있다! 물러서지 마!”

B랭크 병종이라는 압도적인 무력 앞에 엘븐 나이트들과 정예 실리스들이 겁을 먹기 낌새가 느껴지자, 호는 큰 목소리로 소리쳤다. 그 순간 스킬 두 개가 발동되었다는 메시지가 호의 눈앞에 떠올랐다.

띵동.

-<침착하라!> D랭크가 발동되었습니다.

-<지휘관의 독려> B+랭크가 발동되었습니다.

상급 사관과 전쟁 군주가 되면서 회득한 스킬들이었다. 둘 다 자신이 지휘하는 병사들의 공방 능력치를 올려주는 스킬이었다.

“좀 더 힘내자! 호 님이 함께하신다!”

“적들을 물리치자!”

스킬이 발동되기가 무섭게 뒤로 물러나려고 했던 엘븐 나이트들이 용감하게 먼저 공격을 전개하기 시작했다. 정예 실리스들도 마찬가지였다. 활을 사용할 수 없는 짧은 거리에서도 어떻게든 켄타우로스 전사들을 향해 화살을 발사하려고 했다.

또 어떤 이들은 자신의 목숨을 도외시한 채 날카로운 화살촉을 단검처럼 무기로 삼아 켄타우로스 전사의 몸뚱이를 찌르는 병사도 있었다.

콰챵!

방어 마법을 전개한 엘븐 나이트가 켄타우로스 전사의 창을 막아내는 순간, 주위에 있던 검이 곧바로 그 켄타우로스 전사를 난도질했다.

그렇게 사방에서는 비명소리와 함께 누구의 것인지 모를 붉은색의 피가 차츰 대지를 적시기 시작했다. 붉은 핏빛의 대지라는 지명이 어울리는 광경이었다.

“저, 저런 미친놈들! 도…… 도망치자!”

“우아아앗!”

섬뜩할 정도로 매섭게 달려드는 엘프와 다크엘프 연합군의 모습에 켄타우로스 전사들은 시간이 흐를수록 기가 질리기 시작했다. 기세 좋게 돌진한 것까지는 좋았다. 하지만 잔챙이라고 생각했던 녀석들의 반격이 너무나도 매서웠다.

어느새 함께하면 두려울 것 없었던 동료들이 전부 시체로 변해있는 것을 본 켄타로우스 전사들은 슬금슬금 뒤를 돌아보기 시작했다.

“난 도망갈 거야!”

“나…… 나도!”

급기야 몸을 돌려 달아나는 녀석들이 생기기 시작했고, 그 여파는 곧 힘겹게 싸움을 벌이고 있는 다른 녀석들에게 전염되기 시작했다.

“놓치지 마라!”

그때 몸 여기저기에 핏자국이 묻은 호가 소리쳤고, 도망을 치는 켄타우로스 전사들을 향해 정예 실리스들이 조준 사격을 하기 시작했다.

화살이 발사될 때마다 켄타우로스 전사들이 땅바닥에 나뒹굴었지만, 빠른 이동속도를 지닌 그들을 모두 잡아내는 것은 정예 실리스의 능력으로는 불가능했다.

띵동.

-‘아트리그’의 수인 군대를 물리쳤습니다.

-전투성과를 결산중입니다. 3…… 2…… 1. 결산완료. 이번 전투의 성과 등급은 A랭크입니다. 경험치를 4,350획득했습니다.

-총대장으로서의 활약에 힘입어 20%의 경험치를 추가적으로 획득합니다.

손을 휘둘러 눈앞에 나타난 메시지를 가볍게 날려버린 호는 리아 캬베데를 불러 전장을 정리하라는 명령을 내리고는 피해 상황을 파악하기 시작했다. 오백의 켄타우로스 전사 중 살아남은 녀석은 서른 마리가량. 그들 대부분이 그 짧은 전투에서 시체로 변했다.

하지만 켄타우로스 전사들을 물리치기 위해 아군이 입은 피해도 적지 않았다. 정예 실리스만 사백이 희생되었고, 엘븐 나이트도 삼백가량이 목숨을 잃었다.

“……큭.”

전쟁 군주라는 특성으로 인해 병사들의 공방 수치를 높여주기는 했지만 병종 랭크의 차이가 이런 결과를 만든 것이다.

게다가 상대는 수인이 자랑하는 기병대였다. 수기라는 말처럼 수인족의 기병대는 리그너스 대륙전기에 등장하는 기병대 중 가장 강력한 파괴력을 자랑했다. 그리고 전쟁은 이게 끝이 아니었다.

“와아아아아!”

“저기에 소환자가 있다! 죽여라!”

첫 켄타우로스 정찰대와 맞서 승리를 거둔 호는 그로부터 반나절도 지나지 않아 또 다른 수인족 부대와 마주쳤다. 이번에는 수인족의 A랭크 병종인 호표기들이었다.

“호표기?!”

호표기. 호랑이와 표범이 섞인 외모를 지닌 그들은 빠른 이동속도를 이용해 상대에게 접근해 날카로운 발톱으로 적들을 난도질하는 수인족이 자랑하는 병사들이었다. 특히나 이들은 난전에 가장 최적화되어 있는 녀석들이었다.

“방진! 방진을 펼친다! 정예 실리스들은 엘븐 나이트들의 뒤에 숨는다!”

호가 다급하게 외쳤다. 비록 이천이 넘는 병사가 있었지만, 몇몇 호표기로 인해 부대의 진영이 무너진다면 호는 자신들이 포식자인 그들의 밥이 될 거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전투가 시작되었다.

“크아아아앙!”

“우아아앗?!”

날카로운 이빨과 발톱 그리고 육중한 덩치와 체력을 무기로 삼아 공격해 들어오는 호표기들의 공세는 상상 이상이었다.

게임 속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공포에 호는 살아남기 위해 미친 듯이 소리를 지르며 검을 휘둘렀다.

마침내 이백 마리의 호표기를 전부 시체로 만들어 버렸을 무렵, 살아남은 병사는 불과 팔백도 되지 않았다. 하지만 호는 그것도 정말 잘 막아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만큼 A랭크 병종인 호표기는 강했고, 무서웠다.

그렇게 두 번의 전투로 엄청나게 많은 경험치를 획득하기는 했지만, 호는 온몸의 생명력이 모두 빨려나간 느낌이었다.

“냥. 이제 어떻게 할까요?”

멍한 표정을 짓고 있는 호를 향해 리아 캬베데가 물었다.

“……수인족의 본대는?”

호의 물음에 리아 캬베데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건 그녀도 몰랐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호는 그 질문에 대한 답을 곧 들을 수 있었다. 멀리서 금속음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마장기가 움직이는 소리였다.

‘어?!’

벌써 마장기의 소리가 들리다니? 호는 재빨리 자리에서 일어났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예상보다 수인족의 진군 속도가 빨랐다.

어느 정도 저 녀석들의 성질을 건드리다가 도망칠 생각이었는데, 호표기와의 전투로 인해 꽤나 많은 시간을 허비한 모양이었다.

“튀어!”

쿠아아아앙!

호의 명령이 끝나기가 무섭게 거미 형태를 한 카니앗산이 모습을 드러냈고, 등에 장착되어 있는 마력포가 발사되었다. 순간 마흔이 넘는 엘븐 나이트가 먼지로 변해 사라졌고, 엄청난 충격파가 몰아닥치기 시작했다.

두 개의 포문에서 발사된 마력포는 호가 이제껏 보지 못했던 무시무시한 위력이었다. C등급 마장기라지만 마장기는 마장기였다. 일반 병종으로는 결코 당해낼 수 없었다.

“크읏! 흩어져서 도망쳐!”

충격파에서 중심을 잡기 위해 애를 쓴 호는 리아 캬베데와 함께 빠른 속도로 달리기 시작했다.

공격? 돌진? 그런 것은 자살행위였다. 지금은 살아남는 게 중요했다. 두 개의 포문에서 발사된 단 한 번의 포격으로 인해 마흔이 넘는 엘븐 나이트가 사라진 상황이었다.

그것도 병사들이 휴식을 취하느라 띄엄띄엄 자리를 잡았기에 그 정도로 피해를 입었지, 만약 뭉쳐 있었다면 백여 명이 넘는 병사가 먼지로 변해 사라졌을지도 몰랐다.

호가 탄 말이 빠르게 도망치기 시작했고, 리아 캬베데도 호의 옆에서 자신의 네 발을 이용해 열심히 달렸다.

부우우웅! 콰아아앙!

마나를 모으는 소리, 곧이어 폭발음과 등 뒤에서 느껴지는 충격파, 병사들의 비명소리가 호의 귀에 쉴 새 없이 들려왔다.

하지만 호는 뒤를 돌아볼 수 없었다. 조금이라도 속도를 늦췄다가는 자신은 먼지로 변하고 말 거라는 공포감 때문이었다.

“크하하하!”

그때, 번쩍이는 섬광과 함께 먼지로 변해 사라지는 적의 병사들을 보며 수인족의 영웅 키르고스는 웃음소리를 높였다. 마치 개미떼처럼 그들은 마장기의 공격을 피해 사방으로 도망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뒤를 켄타우로스 전사들과 호표기들이 뒤쫓고 있었다.

“하찮구나! 하찮아! 저런 미개한 녀석들이 감히 수인족의 영토를 침범하다니!”

뺨에 칼자국이 나있는 키르고스는 견인족의 영웅이었다. 그는 바리안스의 지배자이자 사막의 꾀주머니라 불리는 리셴르나의 부하로서 그녀에게 충성을 다하고 있었다. 오랜 시간동안 그녀를 보필했고, 드워프들과의 전쟁에서 공을 세워 아트리그라는 도시를 통치하는 권한을 얻기까지 했다.

“안테로리까지는?!”

사방으로 도망친 엘프와 다크엘프들이 자신의 부하들에 시체로 변해 끌려오는 모습을 보며 키르고스는 옆에 대기하고 있던 한 호표기를 향해 소리쳤다.

“네! 앞으로 하루면…….”

“반나절로 줄인다! 행군 속도를 높여라!”

호표기의 말을 중간에 끊으며 키르고스가 명령을 내렸다. 자신의 부대는 그 누구보다 빨라야 했다. 그리고 키르고스의 부대는 그의 말대로 정말로 반나절 만에 안테로리에 도착해 너무나도 쉽게 성을 점령해 버렸다.

“아무도 보이지 않습니다.”

“전부 도망간 것 같습니다만…… 뭔가 낌새가 이상합니다.”

“주위를 정찰해 볼까요?”

너무나도 고요한 안테로리의 모습에 몇몇 부하들이 의문을 제기했다.

“흥! 됐다! 그런 겁쟁이 놈들 따위!”

하지만 부하들의 말을 키르고스는 콧방귀를 뀌며 무시했다. 마족들에게 자신들에게 덤빌 만한 전력이 있었다면 안테로리를 차지하기 전에 덤볐을 터였다.

키르고스는 카니앗산의 공격에 먼지처럼 사라진 마족 병사들의 모습을 떠올렸다. 그는 숨겨둔 병사는 없는 게 분명하다고 확신했다.

아니, 있어도 이제는 상관이 없었다. 안테로리는 높은 성벽이 있는데다가 이미 두 대의 카니앗산이 대포처럼 자리를 잡고 있었다. 이런 방어 태세라면 키르고스는 자신들의 전력의 세 배가 넘는 병사가 몰려와도 물리칠 자신이 있었다.

“병사들에게 휴식을 내린다! 그리고 포로로 잡은 엘프와 다크엘프를 데리고 오도록.”

“네!”

키르고스의 명령에 너무나도 조용한 안테로리의 분위기에 경계심을 나타냈던 수인족들은 곧 긴장을 풀기 시작했다. 그들은 키르고스의 명령에 쉬지도 않고 행군해 왔다. 그 때문에 계속해서 경계심을 유지하기엔 피로감이 너무나도 컸던 것이다.

그렇게 안테로리를 점령한 수인족 병사들이 왁자지껄 떠들며 휴식을 취하고 있을 때였다.

수인족의 공격에 가까스로 살아남은 호와 리아 캬베데는 멀리 떨어진 곳에서 카니앗산이 배치되어 있는 안테로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후……. 살았어.”

“마장기는 정말로 무서운 병기입니다.”

“그래.”

리아 캬베데의 말에 호도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어째서 리그너스 대륙전기의 최종병기를 마장기라고 말하는지, 그 이유를 몸으로 똑똑히 느낄 수 있었다. 아직도 죽음의 공포가 몸에서 가시지 않고 있었다.

“후우.”

“냐…… 냐낭?!”

크게 심호흡을 한 호는 자신의 품에서 기다란 원통을 꺼냈다. 호가 꺼낸 원통을 보던 리아 캬베데의 눈이 크게 흔들렸다. 그것은 안테로리에 설치된 파이어 볼 마법을 터뜨릴 뇌관 역할을 하는 물품이었다.

“자. 이제 불꽃놀이를 할 시간이다. 잘 가라, 안테로리!”

호가 있는 힘을 다해 손바닥으로 원통의 양옆을 강하게 눌러 짜부라뜨렸다. 잠시 후, 화려한 섬광이 안테로리를 뒤덮기 시작했다.

고오오오오!

호는 가볍게 불던 바람이 멈춘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아니, 그건 착각이 아니었다. 그 짧은 시간, 침이 절로 목구멍으로 넘어갔다.

그 순간, 안테로리를 뒤덮은 화려한 섬광은 곧 엄청난 폭발음을 일으키며 삽시간에 사라졌다.

쿠아아아앙!

시간과 공간이 일그러지는 모습을 보며 호는 자신도 모르게 눈을 질끈 감았다. 멀리서 수인족들이 내지르는 고통스러운 비명소리가 귀에 들리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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