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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그너스 대륙전기-79화 (79/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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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그너스 대륙전기 079화

“으음.”

분명 아트리그의 전 병력이 출진한 게 틀림없었다.

하지만 안테로리를, 아니 자신을 노리는 이 군대는 리셴르나의 본대가 아닌 그녀 휘하에 있는 ‘키르고스’라는 녀석이 지휘하는 군대일 뿐이었다.

본대가 아닌 선봉격인 군대에 마장기가 포함되어 있는 것을 보면 과연 인간들에게는 변경백이라는 작위와 동급으로 여겨지는 수인족의 상급 대장다운 전력이었다.

아마 그녀의 본대에는 C등급이 아닌 B등급의 마장기가 포함되어 있을 가능성이 컸다. 어쩌면 전용기가 있을지도 몰랐다.

시간이 흐르고 기술이 발전하게 되어 마장기가 전장을 가득 메우는 미래를 생각하면 별 볼일 없는 전력이겠지만, 현재 호의 병사로는 수인족의 C등급 마장기인 카니앗산 한 대도 상대하기가 버거운 판국이었다.

“후.”

“으음…….”

리아 캬베데의 보고가 끝나는 순간 여기저기서 한숨과 침음성이 흘러나왔다. 안테로리로 진격해 들어오는 수인족의 군대에 겁을 먹은 것이다. 전장에서 닳고 닳은 베테랑 호에게는 별로 크게 느낌이 오지 않는 수인족의 전력이지만, 현재 안테로리에 머물고 있는 다른 영웅들에게는 다르게 다가오는 모양이었다. 아니 호 역시 괜찮다고, 물리칠 수 있다고 마음속으로 계속해서 생각하고 있을 뿐이었다.

“…….”

호는 땀에 젖은 자신의 손바닥을 바라보았다. 지금 이 순간이 가상현실 게임인 리그너스 대륙전기였다면 아무렇지도 않았을 테지만, 몸은 지금 이 순간이 현실이라는 것을 느끼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약해져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호는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조금이라도 마음속에 공포가 깃드는 순간 모든 게 끝이었다. 지휘관은 언제나 태연한 모습을 보여줘야 했고, 승리를 거둘 수 있다는 믿음을 심어줘야 했다.

“전에 내가 지시했던 일은?”

“지시……요?”

“마법 스크롤.”

수인 군대의 전력에 잠시 마음을 빼앗긴 것일까?

멍한 얼굴로 되물어오는 아스트리드 벨의 모습에 호는 짐짓 인상을 찌푸렸다.

“아!”

그 순간 아스트리드 벨이 탄성과 함께 하나의 지도를 꺼내 회의실의 탁자 위에 펼쳐 놓았다. 그것은 안테로리 도시 내부가 그러져 있는 지도였는데, 지도 곳곳에 붉은색 점이 찍혀져 있었다. 전부 파이어 볼 마법 스크롤이 설치된 장소였다.

“엘 카닐슨. 원격으로 스크롤을 찢을 수 있는 장치의 개발은?”

“와…… 완벽하게 만들어 냈습니다. 이 통을 찌그러뜨리는 순간 파이어 볼 스크롤이 전부 찢어짐과 동시에 폭발이 일어날 겁니다.”

“시험은?”

“몇 번이나 해봤습니다. 자신할 수 있습니다.”

곧 품에서 원통형 막대를 꺼내는 엘 카닐슨을 보며 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떤 원리로 저 원통을 찌그러뜨리는 순간 파이어 볼 스크롤이 발현되는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호에게 중요한 것은 기술의 원리가 아닌 안테로리에 성 곳곳에 묻어놓은 파이어볼 스크롤이 발현이 되는가, 안 되는가 였다. 뭐, 연구가 완료된 만큼 큰 문제는 일어나지 않을 것 같았다.

“다크엘프의 기름은?”

“성 곳곳에 발라 놨어요. 짚더미들도 자연스럽게 여기저기 놓아뒀어요. 그리고 당신이 말한 대로…….”

아스트리드 벨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의 눈에는 아쉬움이 가득 담겨 있었다.

안테로리 성 곳곳에는 리스와 식량들이 여기저기 흩뿌려져 있었다. 그것은 물경 10만 리스에 달하는 금액이었다.

“리스와 식량도 성 곳곳에 뿌려 놓았어요. 숨은 보물 찾기처럼요.”

벨의 대답에 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키르고스라는 녀석이 지휘하는 군대가 얼마나 군기가 잡혀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성안 곳곳에 뿌려져 있는 금은보화들은 병사들의 눈을 돌아가게 만들기에 충분할 터였다.

무슨 일이 있어도 안테로리를 차지한 수인족이 곧바로 코르다로 진격하게끔 만들어서는 안 됐다.

모두의 보고가 끝나자 호는 살짝 눈을 감았다.

“후우…….”

마치 다짐이라도 하듯 깊은 한숨이 호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그리고 잠시 후, 호는 감았던 눈을 번쩍 떴다.

모든 것은 준비되었고, 이제는 거대한 불꽃놀이에 참여할 배우들이 무대에 오를 일만 남아 있었다.

“아스트리드 벨과 카닐슨은 남은 사람들을 데리고 킬리드로 피한다. 아니, 디르시나로 가도록.”

“알겠습니다.”

“알겠어요. 그런데…….”

아스트리드 벨의 시선이 호에게 향했다. 호를 바라보는 그녀의 눈동자에는 불안과 두려움이 가득 담겨 있었다. 또한 안타까움도 섞여 있었다. 그녀는 호에게 함께 가지 않느냐고 묻고 있었다.

호는 그런 아스트리드 벨을 향해 고개를 살짝 흔들었다.

“엘 카닐슨. 원통형 막대에 대한 사용법을 다시 말해줬으면 하는데.”

“네. 이렇게 이렇게 해서 저렇게 저렇게……. 아! 그리고 안테로리에서 도보로 20분 정도의 거리 안에 있지 않으면 작동하지 않습니다.”

“알았습니다.”

엘 카닐슨에게 파이어 볼 스크롤을 원격으로 터뜨릴 수 있는 원통형 막대를 건네받았다. 그리고 호는 눈을 빛내는 리아 캬베데를 바라보았다.

“리아!”

“냥!”

호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리아 캬베데가 소리를 높였다.

“너는 나와 함께 여기서 대기한다. 수인족과 전투를 벌이다가 빠르게 도망치는 게 우리의 목표다. 정확히 말하면 수인 병사들을 이 성으로 유인하는 거지.”

“흐냐앙!”

다시 한 번 소리를 높이는 리아 캬베데를 바라보며 호는 눈을 빛냈다.

이제는 정말로 리셴르나가 안테로리를 노린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부터 머릿속으로 생각하고 있었던 그 작전 ‘로리는 싫어’를 시작할 때였다.

* * *

“와아아아!”

호는 평원에서 자신이 이끄는 군대와 함께 정면으로 점점 다가오는 수인족의 병사를 지켜보았다. 삼천의 병사들을 데리고 안테로리에서 출전한 지 두 시간 남짓 되었을까?

오백 정도 되어 보이는 수인족의 병사들이 자신들을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모두 B랭크 병종인 켄타우로스 전사로 이루어진 것을 보니 본대와 어느 정도 거리를 둔 정찰대인 것 같았다.

“흐음….… 설마 공격해 들어올 생각은 아니겠지?”

한데 모여 있는 안테로리의 군사들은 비록 D랭크와 C랭크 병종으로 이루어져 있기는 했지만 물경 삼천에 가까운 병사였다.

하지만 “와와우와” 하는 환호성이 들리는 순간, 호는 인상을 와락 찌푸렸다. 저 소리는 켄타우로스가 상대를 공격할 때 내뱉는 소리였다.

수인족의 군대의 기세가 대단하다는 것은 이미 짐작하고 있었다. 마족의 영지를 지나 안테로리로 향하면서 제대로 된 반격도 경험하지 못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저렇게 상대를 업신여기는 행동은 전쟁에서는 지양해야 할 태도였다.

“빌어먹을 새끼들. 캬앙! 뼈를 확 다 발라버릴라!”

무려 이천 이상이나 수가 적음에도 불구하고 덤비려는 켄타우로스 전사들의 행동에, 리아 캬베데가 자신의 손톱을 쫙 빼내었다. 저들의 자만심과 콧대를 완전히 박살내 버리고 싶다는 생각에 벌써부터 몸이 근질근질 해오고 있었다.

켄타우로스 전사들을 바라보는 엘븐 나이트들과 정예 실리스들의 표정에는 변함이 없었다. 그들은 오와 열을 유지한 채 오로지 호의 신호를 기다리고 있을 뿐이었다.

그때 요란한 말발굽 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켄타우로스 전사들의 돌진이었다.

“방패! 방패!”

호의 지시에 따라 엘븐 나이트들이 각기 방패를 들고 앞으로 나서기 시작했다. 켄타우로스 전사들의 돌진을 막아서기 위해서였다.

‘B랭크 병종 500마리면…….’

랭크가 조금 있으니 저 녀석들을 모조리 쌈 싸먹는다면 그래도 제법 경험치를 얻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또한 키르고스라는 녀석의 얼굴을 향해 펀치를 한 방 날린 기분도 느낄 수 있을 것 같았다.

“사격준비!”

다시 한 번 호의 명령이 떨어졌다.

천오백의 정예 실리스들이 일제히 활시위를 당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하늘 높이 치켜 올라갔던 호의 손이 내려지는 순간, 화살이 하늘을 가득 메우기 시작했다.

두두두두두두!

“히히힝! 히힝!”

켄타우로스 전사들은 자신들의 빠른 스피드를 이용해 화살이 떨어지기도 전에 자리에서 벗어났다. 하지만 수많은 화살 중 일부는 켄타우로스 전사의 몸에 명중했고, 여기저기서 반인반마들이 비명과 함께 땅바닥에 나뒹굴었다.

“나이스. 다 뒤져라!”

리아 캬베데가 소리쳤다.

하지만 그녀의 생각과는 달리 정예 실리스들의 화살에 쓰러진 켄타우로스 전사의 숫자는 기껏 해야 스물도 채 되지 않아 보였다. 랭크의 차이 때문이었다.

곧이어 켄타우로스 전사들이 아군을 향해 달려들었다. 차지에 이은 그들의 돌진은 얕볼 수 없었다. 특히나 근접전에서의 궁병들은 기병대의 밥이 될 뿐이었다.

하지만 그런 켄타우로스 전사들의 돌진을 보며 호는 입가에 미소를 짓고 있었다. 켄타우로스 전사들은 화살을 피하느라 자신들의 장점인 차지 진영이 무너졌다는 것을 눈치채지 못하는 것 같았다.

궁병이 기병에 약하다는 것은 가상현실 게임 리그너스 대륙전기를 플레이해 본 유저라면 상식 중의 상식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게임을 플레이하는 플레이어들의 머리, 아니 꼼수는 위대했다. 궁병을 이용한 교묘한 전술로 기병을 상대하는 효율적인 공략법이 계속해서 사이트에 올라왔고, 호 또한 그런 전술을 몇 개나 알고 있었다.

“멍청한 놈들.”

정예 실리스들은 계속해서 화살을 쏘고 있었다. 물론, 화살에 맞고 죽는 적은 별로 없었다.

“다크엘프쯤이야 내 창으로 다 죽여 버리겠어!”

“우리의 속도에 화살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켄타우로스 전사들은 살기등등한 눈으로 점점 가까워지는 엘프와 다크엘프들을 향해 외쳤다. 자신들이 접근만 하면 그들은 죽은 목숨이나 다름없었다. 특히나 화살을 쏘아대는 다크엘프들은 자신들의 거대한 기병창 하나에 두세 명씩 반으로 갈라버릴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다크엘프들의 화살을 피하느라 자신들의 진영이 쐐기형이 아니라 중구난방으로 무너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병사를 지휘하는 영웅이 있었다면 달랐겠지만, 오백의 켄타우로스 전사들을 지휘하는 수인 영웅은 아무도 없었다.

그에 반에 리아 캬베데가 지휘하는 엘븐 나이트들의 진영은 굉장히 탄탄했다.

“……온다.”

호가 중얼거리듯 말했다.

지금 문제라면 켄타우로스 전사들은 B랭크, 그리고 그들을 정면에서 막아내야 하는 엘븐 나이트들은 D랭크라는 점이었다. 하지만 호는 전쟁 군주라는 자신의 직업과 통솔력, 그리고 무력 수치를 믿었다.

그 순간, 질풍처럼 달려온 군마와 엘븐 나이트들이 부딪치며 요란한 소리를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콰콰카캉!

“으아악!”

“크아아앗!”

비록 진영을 무너뜨리기는 했지만, 켄타우로스 전사들의 돌진은 결코 무시할 수 없었다. 엘븐 나이트들이 종잇장처럼 이리저리 하늘 위로 날아가는 모습을 보며 호는 낮은 신음성을 내뱉었다.

만약 궁병을 이용해 저 녀석들의 돌진력을 조금이라도 줄이지 않았다면? 상상만 해도 끔찍했다.

그렇게 조금씩 시간이 흐를수록 켄타우로스 전사들의 속도가 줄어들었고, 곧 난전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죽어!”

“더러운 수인족 새끼들아! 여기가 네 녀석들의 무덤이다!”

“내 창을 막을 자 누구냐!”

사방에서 거친 욕설과 고함소리, 창칼이 부딪치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크냐앙!”

그런 혼란 속에서 리아 캬베데는 자신이 A등급 영웅이라는 것을 증명하기라도 하듯 홀로 켄타우로스 전사들을 향해 공격을 감행하고 있었다. 같은 수인족이지만, 그녀의 손에는 자비가 없었다.

“억!”

퍼억!

철로 만든 너클을 낀 그녀의 정권 지르기 한 방에 켄타우로스 전사들의 복부가 터져 나갔고, 날렵한 움직임에 이은 로우킥은 단단해 보이는 그들의 다리를 수수깡처럼 부러뜨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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