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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그너스 대륙전기-71화 (71/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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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그너스 대륙전기 071화

“으엣취!”

갑작스레 터져 나오는 기침에 호에게 다가가던 다크 엘프 하나가 어쩔 줄 모르는 표정을 지었다. 숲의 밤은 정말로 춥다. 숲의 종족이라 불리는 엘프나 타락한 숲의 종족인 다크엘프는 이런 숲의 추위에도 아무렇지 않지만, 자신들의 영주인 호는 인간이었다.

“혹시 감기라도?”

“아니, 괜찮아. 그냥 누가 내 얘기라도 하는 건가? 귀가 간지럽네.”

귀를 만지며 대답하는 호의 말에 다크엘프의 표정이 살짝 펴졌다. 이제 킬리드까지는 이틀 남짓한 거리가 남았을 뿐이었다.

코르다에서는 여전히 대치 상황이었다. 한시진의 연기가 대단한 건지, 아니면 고르엘이라는 수인족이 멍청한 건지, 무려 사천에 가까운 병력이 움직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코르다를 포위하고 있는 수인들은 움직일 생각조차 하지 않고 있었다. 아마 자신들의 본거지인 킬리드가 공격당할 것이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았다.

“계속해서 보고하도록 해. 그래서 킬리드의 병력은?”

“정찰에 따르면 약 백오십 정도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캬하!”

다크 엘프, 정예 실리스의 보고에 호의 입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백오십. 이 세계에 처음 도착했을 때라면 모르겠지만, 지금의 호에게 있어 그 정도는 어렵지 않게 찍어 누를 수 있는 숫자에 불과했다.

성벽?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킬리드가 뒷동산에서 볼 수 있는 작은 성도 아닐 테지만, 고작 그 정도의 병력으로는 막을 수 있는 한계가 있었다.

반면 수인들에 비해 병사의 수가 현저하게 적은 코르다가 수인족의 공격에 버틸 수 있었던 것도 인시네라라는 호수가 있기 때문이다. 만약 호수가 없었다면? 아마도 한시진이 도착하기 전에 점령당했을 가능성이 농후했다.

“마장기는?”

“전혀 보이지 않았습니다.”

호의 고개가 당연하다는 듯 끄덕여졌다. 하기야 병종도 E, F랭크로 구성되어 있는 영지에 마장기가 있을 리 만무했다.

“숲은 내일이면 끝나는 건가?”

“네, 그렇습니다.”

“내일부터는 조금 바빠지겠군.”

숲에서 빠져나간 이후부터는 킬리드까지 빠른 속도로 달려야만 했다. 거기서부터는 아무리 은밀히 움직여도 수인족의 귀에 자신들의 행보가 들어갈 터였다. 한시진이 충분히 막아줄 것이라 예상은 되었지만, 호는 코르다를 포위한 수인들이 돌아오기 전에 먼저 킬리드를 점령할 생각이었다.

현재 호가 생각하고 있는 것은 하나였다. 코르다 공략에 정신이 팔려 있는 수인족의 본거지를 쳐서 킬리드를 점령하는 것이었다.

‘안테로리와 직접 오갈 수 있는 도시는 아니지만…….’

코르다의 책임자인 엘 샤난을 도와준 게 있으니 물자와 군사가 오가는 교통로는 빌릴 수 있을 터였다. 아니, 꼭 그래야만 했다. 그렇지 않으면 상당히 곤란한 상황이 발생할 것이다.

어쨌든 그렇게만 되면 호는 킬리드를 안테로리 이상으로 발전시킬 생각이었다. 아니, 아예 킬리드로 본거지를 옮길 생각도 하고 있었다.

안테로리의 주위에는 커티삭과 아트리그처럼 호가 공격할 수 없거나 공격이 불가능한 도시들밖에 없었다. 엘프의 지역도 예외였다. 그 SS등급이라는 빌어먹을 퀘스트 때문이었다.

하지만 킬리드라면 이야기가 달랐다. 킬리드가 있는 림드 산맥에는 수인들의 도시가 널려 있었는데, 정찰에 따르면 다들 발전도가 고만고만한 곳이었다.

대부분 중소도시로 이루어져 있었고, 심지어 개중에는 예전 커티삭과 똑같은 마을의 등급인 개척도시도 있었다. 한 마디로 플레이어가 세력을 키우기에는 충분한 맛집이 널려 있는 것이다.

‘어차피 키마라이는 수인이나 엘프들을 공격하라고 내려준 마장기니까. 어딜 공격해도 내 맘 아니겠어?’

S등급 영웅인 리셴르나가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안테로리는 분명 언젠가는 공격을 당할 도시였다. 좀 더 시간이 흐르면 리셴르나의 도발을 어떻게든 막아낼 수 있기야 하겠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도 생각해 봐야 했다.

그 때문에 호는 리셴르나가 도발을 해올 경우, 마족과 엘프를 방패삼아 킬리드에 본거지를 만들어 피할 생각이었다. 만약 리셴르나가 킬리드까지 점령하기 위해 군대를 일으킨다면 붉은 핏빛의 대지를 눈여겨보고 있는 고위급 마족과 엘프도 가만히 있지는 않을 터였다.

킬리드가 있는 림드 산맥과 리셴르나가 있는 바리안스의 대지는 같은 수인의 영지이긴 하지만 이름을 알 수 없는 높은 산맥에 막혀 있었다. 그래서 안테로리와 코르다를 통하지 않고서는 지나갈 수가 없는 땅이었다. 그 길을 행여나 지나가려면 마장기를 움직이는 것은 불가능했고, 고위 랭크의 병사도 엄청난 손실을 각오해야 했다.

“그렇게 되면 좀 더 안전해지겠지. 마족의 손에서도 벗어날 수 있을 테고……. 좋아!”

일단은 킬리드를 점령하고, 고르엘과 그의 병사를 처리하는 게 우선 순위였다.

* * *

킬리드뿐 아니라 어느 성이나 혹은 마을들도 다 그렇겠지만, 성벽 위에는 화톳불이 꺼지지 않게 관리하는 불침번들이 항상 존재했다. 먼 대도시나 발전도가 높은 도시의 경우라면 불침번이 원시적으로 화톳불을 관리하는 게 아니라 마법 횃불로 시야를 밝히겠지만, 킬리드의 상황에서는 그런 건 꿈도 꾸지 못하는 기술이었다.

“우끼. 우끼끼.”

“바나나. 버내너. 버내노우.”

오늘 킬리드의 불침번은 원숭이 투석병들이었다. 수인 왕국을 이루는 종족 중 원인들은 장난을 가장 좋아하는 종족이었다. 그런 성향 때문에 불침번이라는 역할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자신들의 식량 혹은 무기로 사용되는 바나나를 가지고 장난을 치며 놀고 있었다. 긴장감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모습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킬리드와 연결되어 있는 주위 도시는 전부 수인족의 마을이었고, 경계를 맞대고 있는 엘프 영지는 현재 자신들의 대장이 공격을 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끼이?”

“저…… 적?”

“설마. 우끼. 우리를 향해 쳐들어 올 병사가 없을 텐데? 어어?! 적이다!”

자신의 식량을 탐하려는 동료들의 장난에서 벗어나 여유롭게 바나나를 까먹고 있던 한 원숭이 투석병이 멀리 보이는 군대를 발견하고는 화들짝 놀라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우끼?”

“끼이익? 우끼익?! 끼이익! 끼이이익!”

“적이다! 적!”

장난을 치던 다른 원숭이 투석병들의 머리도 방금 전 소리를 질렀던 동료가 가리킨 방향으로 향했다. 그리고는 누가 먼저라 할 것도 없이 요란스러운 괴성을 내지르기 시작했다. 그런 원숭이 투석병들의 고함에는 다급함이 가득 담겨 있었다. 지금 킬리드를 노리며 진군해 오는 군대는 결코 적은 수가 아니었다.

“에…… 엘프?!”

“멍?! 엘프가 어떻게? 아니 마족! 마족이다!”

그때 원숭이 투석병들의 비명소리를 듣고 코르기들이 다급하게 성벽 위로 올라왔다. 그들은 곧 킬리드 성 가까이까지 도착한 병사들을 보고는 얼굴이 하얗게 질리기 시작했다.

엘븐 나이트뿐만 아니라 그 뒤쪽에는 수천 명의 다크엘프들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바로 윤호가 지휘하는 안테로리의 병사들이었다.

“이거 정확한 타이밍에 도착했는데?”

원숭이 투석병의 사정거리에 닿기 전 진군을 멈춘 호는 커티삭 정도 크기의 성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우렁찬 소리와 함께 킬리드 성문이 지금 막 닫히고 있었다. 그것만 봐도 자신들이 이곳으로 진격해 오고 있다는 것을 몰랐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건 역으로 코르다에 있는 고르엘이라는 녀석이 지휘하는 수인들 또한 자신들의 본거지가 공격당하고 있다는 걸 모른다는 이야기였다. 지근거리에 위치한 다른 수인들의 마을이나 성도 마찬가지였다. 아니, 알아도 이제는 소용이 없을 것이다.

코르다에서 킬리드까지 오려면 최소 오 일이라는 시간이 필요했다. 그리고 호는 자신의 군대가 킬리드를 점령하는 데는 하루면 충분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원인족들이 굉장히 영악하다고 하던데, 그게 머리가 좋다는 것을 의미하는 건 아닌 모양이야.”

“전혀 예상하지 못했을 겁니다.”

“응. 그렇겠지.”

엘븐 나이트의 말에 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호도 이건 예상하지 못한 결과였다. 리그너스 대륙전기라는 게임에서는 이렇게 다른 종족의 길을 빌려 자신들의 영지와 길이 연결되어 있지 않은 도시를 공격할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하지만 이 세계는 게임과 비슷하면서도 어떤 측면에서는 게임과 확연이 달랐다.

‘변수는 최대한 조심해야 돼.’

호의 눈빛이 차가워졌다. 이런 공격 방법은 지금의 자신에게는 도움이 되고 있었지만, 훗날 각지에서 전쟁이 벌어지게 되면 여러 가지 변수로 나타날 가능성이 컸다.

“뒤통수는 삼국지에만 있는 줄 알았는데.”

이런 플레이가 가능한 Korea 사의 가상현실 게임이 있기는 했다. 바로 연희삼국지 시리즈였다. 연희삼국지 V 이전까지는 불가능했지만, 그 이후의 삼국지 시리즈는 다양한 전략과 전술을 이유로 여러 플레이들이 가능해졌다.

그런 차이 때문에 연희삼국지VI 이후의 게임들과 연희삼국지 온라인은 통수와 통수의 게임이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플레이들 간의 눈치 싸움이 치열했다.

“내일 아침 바로 공격에 들어간다. 그리고 지금 당장 정예 실리스들은 스무 명씩 조를 나누어 킬리드 성을 포위한다. 성 밖으로 빠져나가는 녀석들은 모조리 화살밥으로 만들어 버리도록.”

“네. 적들에게 어둠을 선물해 주도록 하겠습니다.”

잠시 옛날을 생각하던 호는 곧 고개를 흔들더니 명령을 내리기 시작했다. 밤새 킬리드에 거주하는 수인족들은 두려움에 잠도 제대로 이루지 못할 터였다.

“후후. 저런 성을 점령하는 것은 식은 죽 먹기지.”

현재 킬리드에는 영웅이라 부를 수 있는 녀석이 없었다. 결국 병사들을 지휘할 만한 우두머리가 없다는 것. 이는 전투에 굉장히 큰 영향을 미쳤다. 지금도 성벽 위에서 우왕좌왕하며 혼란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는 게 그 증거였다. 아마 킬리드의 병사들은 내일쯤이면 머리가 아프다 못해 기진맥진할 터.

자신의 군대가 킬리드에 입성하는 상상을 떠올리자, 호의 입에서 절로 미소가 흘러 나왔다.

“킬리드 성을 점령하면.”

그 다음 타깃은 고르엘이라는 녀석이었다.

* * *

“대장님. 적들이 움직입니다!”

아직 해가 뜨려면 한참의 시간이 더 흘러야 했다.

루시의 언덕 위에 튼튼하게 지어진 지휘관 막사에서 쉬고 있던 한시진은 엘븐 나이트의 보고를 받자 재빠르게 밖으로 나섰다.

짙은 어둠 속에서 요란스러운 소리가 언덕 아래쪽에서 들리고 있었다. 그 요란스러운 소리의 주인공은 수인들이었다.

자신들의 진영에 있는 횃불과 코르다의 성 위에서 간간히 날리는 불화살이 수인들의 진영을 밝혀주고 있었다. 몇몇의 수인 병사들이 재빠르게 달려들어 불을 끄기는 했지만, 잠시 동안 비춰진 시야는 그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한시진이 짐작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그들은 현재 퇴각 준비를 하고 있었다.

“퇴각하는 모양입니다.”

“우리가 승리한 건가?”

모두의 얼굴에 기쁨이 어리기 시작했다.

그때 한시진은 계속된 전투로 인한 피로 때문에 조금은 침침해진 눈으로 뚫어지게 수인족의 진영을 살펴보았다.

수인 병사들은 전군이 가벼운 채비만 갖춘 채 이동하고 있었다. 이는 퇴각이 분명했다.

‘오빠가 제대로 움직였나 보네?’

웃음이 절로 나왔다. 한시진은 수인 군대가 이런 반응을 보일 것이라고 이미 짐작하고 있었다. 자신에게 보낸 사백의 엘븐 나이트를 제외한 나머지의 본대가 행방이 묘연할 때부터 말이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우려는 있었다.

분명 호는 자신보다 이 세계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이 세계를 잘 알고 있다는 것과 전략과 전술을 구사할 수 있다는 건 전혀 다른 이야기였다. 전문적인 군사 훈련도 받지 않은 사람이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전쟁 상황을 파악해 전략을 세우고, 상황에 맞춰서 병사를 움직인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한시진은 호가 리그너스 대륙전기에서 만큼은 셀 수도 없을 정도로 전쟁을 치렀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물론 그녀로선 그것을 알 길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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