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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그너스 대륙전기-67화 (67/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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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그너스 대륙전기 067화

“안테로리의 발전 상황을 예상하지 못한 제 실책입니다. 빠르게 발전하고 있는 안테로리에서 자애로운 마음씨 정도는 쉽게 연구를 끝낼 수 있겠지요. 다음에는 좀 더 영주님의 마음에 들 만한 물건을 가져오도록 하겠습니다.”

“음.”

“그래도 저희의 성의를 봐서 부디 ‘자애로운 마음씨’를 익힌 기술자는 받아주시길 바랍니다.”

고개를 살짝 숙이는 레드 벨벳을 보며 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필요한 기술이었으니…….’

레드 벨벳이 저렇게 말하지 않아도 아르테미스 상단이 주는 기술자는 받을 생각이었다. 공짜로 기술을 획득할 수 있는 것을 받지 않으면 그건 멍청한 짓이었다. 게다가 자애로운 마음씨는 호가 목표로 두고 있는 엘프의 A랭크 병종인 엘븐템플러의 개발에 선행되는 연구 기술이기도 했다.

자애로운 마음씨로 시작해 여러 단계의 연구를 거쳐야만 훗날 엘븐템플러의 개발에 필요한 전투 중 회복 마법을 사용할 수 있는 연구에 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아르테미스 상단과의 만남이 끝나고, 며칠 뒤 특산품인 가젯 의복들의 판매 대금이 들어오자 안테로리에는 또다시 많은 돈이 유입되었다. 그리고 호는 특산품을 판매해 얻은 돈에서 4만 리스 정도를 따로 빼내 커티삭으로 보냈다.

페릴 예노스와 멜리아 비쉬의 성격으로 보아 분명 흥청망청 돈을 물 쓰듯 쓰며 영지의 재정 상태를 엉망으로 만들어 놓을 게 훤히 보였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지금의 커티삭은 옛날 오크 전사와 있을 때와는 달리 고 등급의 병사들까지 보유하고 있었다. 그만큼 고정적으로 지출하는 비용도 꽤 많을 터였다. 그러니 커티삭의 재정 상황으로는 버틸 수 없을 정도라는 건 굳이 커티삭의 영지 정보를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내가 관리해 주지 않으면 커티삭의 영지가 파산하는 건 시간문제겠지.”

게다가 커티삭의 파산은 호에게 있어 피할 수 있으면 꼭 피해야만 하는 상황이었다. 만일 커티삭의 빈 영지를 자신이 차지한다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어떤 문제가 발생할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커티삭의 지배자인 페릴 예노스나 멜리아 비쉬는 호를 우호적으로 생각하고 있었지만, 다른 마족들까지 그러리라는 법은 없었다. 그리고 같은 종족들 사이에서도 트러블과 영지전은 심심치 않게 벌어지곤 했다. 특히나 마족같이 전투적인 성향을 지닌 종족이라면 더더욱 그러했다.

호가 커티삭에 자금을 보내는 이유는 꼭 그뿐만이 아니었다. ‘멜리아 비쉬의 마음’이라는 퀘스트의 달성 조건에는 여러 환락가 건설과 관련된 조건들이 있었다. 호는 멜리아 비쉬가 자신의 자금으로 커티삭에 퀘스트와 관련된 환락가를 건설하기를 바라고 있었다. 그래야 퀘스트를 성공적으로 완료하고, 그녀를 동료로 만들 수 있기 때문이었다.

* * *

한 여성 엘프가 온몸이 멍투성이가 된 체 드러누워 생기가 대부분 사라진 눈으로 천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는 원숭이들의 장난감으로 괴롭힘을 당하다가 죽어가고 있는 엘프였다.

“쯧쯧. 유통기한이 다 됐군.”

나뭇가지로 그런 엘프의 몸을 쿡쿡 찌르는 원숭이의 행위를 지켜보고 있던 커다란 덩치가 쯧쯧 혀를 차며 말했다. 그는 림드 산맥에 위치한 수인족의 도시 킬리드를 지배하는 대장 고르엘이었다. 원숭이보다는 거대한 고릴라에 가까운 외형을 지니고 있는 그는 검은색과 갈색이 섞인 털을 지닌 원인족이었다.

고르엘은 커다란 양쪽 팔 근육에서 나오는 강력한 힘으로 원인족들 사이에서 두각을 드러냈다. 그 후 원인족 장로의 눈에 들며 수인족의 도시 킬리드의 대장에 임명되었고, 벌써 수년째 킬리드의 영주로 군림하고 있었다.

“우끼익! 벌써 네 명이나 죽었습니다. 대장.”

부하의 보고에 고르엘은 인상을 찌푸렸다. 부하의 입에서 나온 죽은 것들이란 포로로 잡아온 엘프들을 뜻했다.

코르다와의 경계 지역에서의 벌어지는 전투를 통해 수시로 엘프들을 붙잡았다. 그들을 노예로 만들어 괴롭히는 것은 고르엘에게 있어 최고의 재미를 주는 행위였다.

“엘프 노예들이 더 필요하겠어. 이번에는 큰 원형경기장을 만들어 놓고 맨몸으로 몬스터들에게 던져 놓고 지켜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아.”

“우끼익! 탁월한 선택입니다. 대장. 끼익! 하지만 노예를 많이 만들려면 코르다의 엘프들을 지키는 센티널을 잡아야 합니다.”

“센티널, 아, 엘 샤난. 엘 샤난. 크흐…….”

코르다의 센티널인 엘 샤난.

고르엘은 자신의 영토를 넓히기 위해 코르다를 침략했고, 그 전장에서 처음 그녀를 볼 수 있었다. 그리고는 단번에 그녀의 아름다움에 반해 버렸다.

“크…… 크흡…… 크흡…….”

엘 샤난의 아름다운 모습을 떠올린 고르엘의 커다란 코에서 콧김이 세차게 뿜어져 나왔다.

푸른색 갑주를 입고 화살을 날리는 그녀의 아름다운 모습이 떠오르자, 온몸에 뜨거운 피가 확 쏠리고 있었다.

“최근 코르다의 병사들이 더 늘었다는 보고가 있었는데, 사실이야?”

“우끼익. 보병이 오백 명 정도 늘었습니다. 아멘드마의 지원군이 틀림없어 보입니다.”

실제로는 안테로리의 지원군이었지만, 수인들이 그런 사실을 알 리가 없었다. 엘프와 마족은 수인과 엘프 이상으로 적대적인 종족. 그런 그들이 서로 손을 잡고 병사를 보내주었다는 건 그들의 상식으로는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크흐흐흐. 아멘드마? 그러면 아멘드마의 병사가 그만큼 줄었다는 이야기겠군.”

“우끼. 현재로써는 그렇습니다만, 시간이 지나면 그들도 병사를 보충할 게 분명합니다.”

“어쨌든 좋아. 사백이라…….”

고르엘은 엘프족과 잦은 전투를 벌이면서 아멘드마와 코르다에 대한 대략적인 정보를 계속해서 파악해 두고 있었다. 그가 아는 아멘드마의 병력은 구백 정도였다. 그중 반수가 코르다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었다. 거기에 원래 코르다에 있었던 병력은 사백 가량. 모두 합치면 팔백의 병력이 코르다에 주둔하고 있는 셈이었다.

“으흐흐…….”

고르엘의 입에서 음흉한 웃음이 흘러나왔다. 적지 않은 병력이 코르다에 있었지만, 고르엘은 전혀 걱정이 되지 않았다.

코르다와 경계 지역에서 전투를 벌이면서 고르엘은 훈련소에서 양성한 자신의 병사들을 조금씩 엘프들의 눈에 띄지 않는 곳에 숨겨 놓고 있었다. 마치 전세가 팽팽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척하며 한 번에 엘프들의 마을을 점령하기 위해 병사들을 감추어 두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그가 숨겨둔 전력은 F랭크의 다람쥐 창병과 원숭이 투석병, 그리고 E랭크의 코르기로 이루어져 있었다.

“엘프들은 대장님이 숨겨 놓은 병력이 얼마나 되는지 모를 겁니다. 우끼.”

“그래. 대장이 되려면 머리가 똑똑해야 되지. 엘프들은 예쁜데 멍청해.”

“우끼익. 맞습니다. 우리 대장은 똑똑합니다. 그리고 아주 자애롭습니다.”

여러 원숭이들이 한 목소리로 외쳤다. 그들에게 고르엘은 엘프들을 노예로 나눠주는 착한 대장이었다. 게다가 엘프들은 원인들의 눈을 휘둥그레 만들 정도로 아주 예뻤다.

“몰래 숨겨놓은 녀석들이 몇 마리나 되지?”

“팔백입니다.”

부하의 보고에 고르엘은 입술을 뒤틀며 짓궂은 미소를 지었다.

“그 병사들이 앞으로 천 마리가 되면, 우리는 모든 전력을 동원해 코르다를 공격한다. 단숨에 코르다와 아멘드마를 손에 넣고 아름다운 엘프들을 우리들의 부인으로 만드는 거다! 하렘을 외쳐라!”

“우끼! 우끼! 부인! 부인! 하렘! 하렘! 하렘! 하렘!”

“모두들 부인은 세 명씩!”

“세 명! 세 명! 세 명!”

“대장인 나는 열 명!”

“대장님은 열 명! 열 명!”

광신도처럼 연신 소리를 지르는 원숭이들 사이로 쓰러져 있던 엘프의 안색이 하얗게 질렸다. 어서 이 사실을 코르다에 있는 친구들에게 전해야 했다. 하지만 죽어가는 그녀가 그것을 전할 방도는 없었다.

그렇게 킬리드에서 고르엘이 음모를 꾸미고 있을 무렵, 안테로리에서는 한 고양이의 환호성이 터져 나오고 있었다. 그 환호성의 주인공은 리아 캬베데. 연구실에만 박혀 있던 그녀가 환호성을 지른 이유는 드디어 D급 병종인 엘븐 나이트의 연구를 끝냈기 때문이었다.

“그래? 이제 개발이 끝났단 말이지.”

엘븐 나이트의 연구를 마친 포상으로 리아 캬베데에게 아르테미스 상단을 통해 구한 특산품 캣닢을 잔뜩 안겨준 호는 안테로리의 정보창을 열어 도시 정보를 확인하기 시작했다.

현재 안테로리의 방어 병력은 사천 오백의 C랭크의 병종인 아이스 스파토이와 그와 동급인 사천의 정예 실리스들이 포진하고 있었다.

그렇게 C랭크 병종만 약 구천. 거기에 추가적으로 약 이천가량의 정예 엘프 보병들이 마을 내에 주둔하고 있었다.

“생각보다 사드나인이 열심히 했군.”

“냥. 원인이 대장으로 있는 수인 마을을 공격할지도 모른다는 소문 때문이에요. 수인 왕국의 종족 중에서도 원숭이와 개는 특히 사이가 좋지 않거든요.”

“견원지간이라는 말이 있긴 한데, 그거야 우리 세계에서 통하는 이야기고. 이 세계에서는 그 이유가 뭐지?”

호가 리아 캬베데의 얼굴을 바라보며 물었다.

“견인족의 충성심을 이용해 원인들이 의도적으로 견인족들을 전쟁 지역으로 보냈거든요. 그 때문에 수인 왕국이라는 명분 아래 많은 견인족들이 희생됐죠. 냥냥. 뭐, 가장 크게 사이가 벌어진 이유는 셰필드의 난 때문이고요.”

“셰필드의 난?”

“네. 원인족의 음모에 빠진 견인 부족이 전쟁터에서 인간들에게 통째로 몰살당한 사건입니다. 무려 31만 마리가 허무하게 희생된 끔찍한 비극이었죠. 그 바람에 수인 왕국 내에서 견인족의 존재감도 확 줄었고요.”

“휘우…….”

리아 캬베데의 설명을 듣자 호의 입에서 절로 휘파람이 터져 나왔다. 이는 원인족의 야비함에 대한 비난의 제스처였다. 어쩐지 사드나인이 원인족에게 이를 갈고 있더라니, 이런 뒷내용이 숨어져 있었던 모양이다.

계속해서 호는 영지가 보유하고 있는 자금을 확인했다. 며칠 전, 아르테미스 상단과의 거래가 있었던 까닭에 안테로리는 이천의 정예 엘프 보병을 엘븐 나이트로 승급시키기에 충분한 양의 돈을 보유하고 있었다.

“이제 움직일 때가 됐나.”

이천의 엘븐 나이트면 킬리드의 대장이라는 이름 모를 원숭이 정도는 가볍게 처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미 킬리드에 대한 정보는 정예 실리스들을 통해 파악하고 있었다.

기껏 아멘드마나 코르다와 비슷한 발전도를 지닌 킬리드에 주둔해 있는 병사가 이천가량이나 된다는 정보에 조금 놀라기는 했지만, 단지 그뿐이었다. 그래봤자 어차피 F, E랭크로 이루어진 병종들이었다.

“좋아. 정예 엘프 보병을 엘븐 나이트로 승급시키고, 승급이 끝나면 곧바로 전쟁을 위한 병력 편성에 들어가겠다. 목표는 킬리드. 리아, 한시진을 불러오도록.”

수인족과의 전투 그리고 엘 샤난과 관련된 퀘스트의 공략은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 * *

“고르엘이 쳐들어오고 있습니다. 샤난.”

엘 샤난이 깨끗하고 아름다운 호수 인시네라에서 물을 마시려고 할 때, 한 엘프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또 고르엘의 도발인가?’

수인족의 도발은 매번 있었던 일이었다.

하지만 보고를 위해 달려온 엘프는 평소와는 달리 안색이 더욱 하얗게 질려 있었다.

“수인족의 도발은 매번 있었던 일이 아닌가요? 경계 지대에서 대치하고 있는 엘프들을 도와 수인족을 요격할 준비를 하겠습니다.”

“샤난. 이번엔 수인족의 수가 굉장히 많습니다. 경계 지대의 초소가 이미 무너졌습니다.”

“……?!”

엘 샤난이 눈을 크게 떴다. 이제까지 고착상태를 유지하며 전투를 치러나갔던 경계 지역의 엘프들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무너지다니?

“살아남은 친구들이 말하길, 수인족의 수가 천오백이 넘는다고 했습니다.”

“천오백?!”

엘 사냔은 그 보고를 믿을 수 없었다.

하지만 엘프는 다급하게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며 샤난은 이를 뿌득 갈았다. 최근 들어 공격이 잠잠하다 싶더니, 그동안 이런 수를 준비한 모양이었다.

현재 코르다에 주둔하고 있는 병력은 총 사백가량. 코르다의 지형적인 조건을 이용하면 천 마리가 넘는 수인들은 어떻게든 방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렇게 하면 성 밖에서 거주하는 친구들이 수인족의 손에 유린당하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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