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그너스 대륙전기-62화 (62/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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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그너스 대륙전기 062화

“연구비용과 영지의 재정은 아스트리드 벨이 집행합니다. 앞으로 영지의 회계 업무는 아스트리드 벨이 맡도록 하세요. 회계 업무를 도와줄 인원을 고용하는 것은 재량에 맡기도록 하겠습니다.”

“알겠어요.”

안테로리의 규모가 규모인 만큼 커티삭에 있을 때와 비교해 훨씬 더 많은 일을 처리해야 됐다. 그러나 아스트리드 벨은 밝은 표정으로 대답했다. 커티삭에서는 자신과는 아무런 연고도 없는 페릴 예노스라는 마족을 위해 일했지만, 안테로리는 달랐다.

이 도시는 원래의 세계로 돌아가려는 자신들의 꿈을 키우는 공간이었다. 또 험난한 이 세계에서 살아남는데 큰 도움이 될 버팀목이자 보금자리였다.

“시현이는 예전처럼 영지의 주점을 관리하며 가젯 의복의 생산에 집중하도록.”

“넵!”

“가젯 의복의 품질 관리도 철저히 하고. 영지의 수입과 크게 관련된 일이니 만큼 신경 많이 써야 한다?”

“걱정 마세요, 오빠!”

시현이 손을 들며 힘찬 목소리로 말했고, 호는 그녀를 향해 가벼운 미소를 지어주었다. 이제까지 반 년 넘게 해왔던 일인 만큼 앞으로도 잘할 터였다.

이제 남은 것은 한시진과 엘 아르윈이었다.

“엘 아르윈과 한시진은 식량 저장고와 대시장 그리고 직물공장 건설에 들어가세요. 그 뿐만 아니라 영지민들이 거주할 수 있는 주거지역의 공사도 함께 진행해야 합니다. 많은 시간과 돈이 드는 일인 만큼 이 일은 저도 함께하도록 하겠습니다.”

강한 군대를 갖추기 위해 꼭 필요한 것은 바로 돈과 식량 그리고 인구였다. 지금도 안테로리는 병력을 유지할 수 있는 유지비용과 식량을 매달 충분히 걷어 들이고 있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했다. 높은 랭크의 병종, 그리고 특수 병종의 양성비용과 유지비를 생각하면 좀 더 영지의 재정과 영지민의 숫자를 끌어 올려야만 했다.

“그럼 회의는 이만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모두들 최선을 다해 주시기 바랍니다.”

“네!”

“멍!”

“냐앙!”

그렇게 회의는 끝이 났다. 모두들 자신이 맡은 일을 수행하기 위해 밖으로 나가는 모습을 호는 지켜보았다. 곧 회의실 문이 닫히자, 호는 손깍지를 끼고 앞으로 있을 수인족과의 전쟁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후우. 더럽게 운이 없는 건지, 아니면 누가 날 시기하기라도 하는 건지…….”

현재 자신이 처한 상황을 떠오르니 머리가 절로 아파왔다.

S등급 영웅이자 수인족의 상급 대장인 리셴르나.

현재 안테로리의 전력으로 대적이 불가능한 그 수인족의 괴물이 자신을 노리고 있었다. 심지어 그녀는 한 영지의 주인이 아닌 한 영토의 패자였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이 세계에서 생겨난 이벤트 퀘스트인 ‘크리솔라이트의 꿈’은 무려 SS등급이었다.

보통 게임을 시작하게 되면 초반에는 주인공의 맛좋은 식사 혹은 힘이 되어줄 만한 호구들이 지천에 널려 있어야 했다. 그래야 그들을 이용해 레벨을 올리고 세력을 키워 엔딩에 점점 가까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엔 호구는커녕 호심탐탐 주인공을 잡아먹으려는 끝판왕격인 호랑이가 바로 옆에 도사리고 있었다.

“하기야 이런 게 현실이지. 후우……. 엄덕왕으로 게임을 시작했는데 바로 옆에 조조가 있는 느낌이네.”

그 옆에 엄백호와 비슷한 평가를 받는 세력이 두 개의 영지를 보유하고 있기는 했지만 퀘스트가 걸린 까닭에 무턱대고 공격해서 세력을 흡수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만약 퀘스트를 무시하고 공격을 한다면? 뒷일은 굳이 경험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분명 근시일 내에 성난 드래곤의 브레스가 영지를 뒤덮을 터였다. 플레이어가 받은 퀘스트의 난이도에 따라 실패 패널티가 높아진다는 ‘리그너스 대륙전기’의 시스템을 생각하면 쉬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의 패널티는 아닐 터였다.

“영지를 흡수하고 병력만 끌어 모은다면 드래곤에게 대적할 수 있을까?”

잠시 고민을 하던 호는 곧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 세계는 세이브와 로드가 가능하지 않다. 그러니 목숨을 걸고 모험을 하는 건 사양하고 싶었다.

B등급 마장기? 드래곤의 공격에 저항은 어느 정도 할 수 있겠지만 결국 고철이 될 게 분명했다. 그 후의 결과는 보지 않아도 뻔했다. 일반 병사들이 드래곤의 브레스를 막아낼 리 만무했다.

붉은 핏빛의 대지에 있는 엘프의 영지를 점령하고 난 이후 어느 정도 대적이 가능할 정도로 시간이 많이 흐른다면, 드래곤이 나타나도 승산은 있었다. 하지만 불확실한 가정만 가지고 드래곤을 상대하겠다는 위험을 감수할 수는 없었다.

“그래. 드래곤은 적으로 만나는 것보다 동료로 만나는 게 훨씬 좋지.”

결국 붉은 핏빛의 대지에 있는 크리솔라이트 부족의 엘프들은 드래곤과 연관이 된 퀘스트의 패널티 때문에라도 건드릴 수 없었다. 엘프들도 마족을 건드릴 수 없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E, F랭크의 병사들만 가지고 커티삭과 안테로리를 노린다? 그건 자살 행위나 다름없었다.

“어쨌든 일단 A랭크 병종까지는 개발을 끝내고 싶은데…….”

마음 같아서는 리셴르나와 본격적인 전쟁을 벌일 때까지 보병, 궁병, 기병을 전부 A랭크까지 만들고 싶었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많은 돈과 시간이 필요했다. 동시에 여러 연구를 가능하게 해주는 연구소가 최근 완공되기는 했지만, 별 효용이 없었다. 지력 수치가 높거나 연구에 도움을 주는 스킬을 보유한 영웅이 안테로리에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전쟁은 보병, 궁병, 기병만 가지고 치르는 게 아니었다. 그럼에도 호는 최소한 보병만큼은 A랭크까지 만들고 싶었다.

“왜 엘프가 궁병이 아니라 보병으로 최강인지 몰라. ‘엘프는 활이 최고다’라는 사람들의 관념을 깨고 싶었나?”

호는 입맛을 다시며 리그너스 대륙전기에 등장하는 엘프의 모든 병종을 머릿속으로 떠올렸다. 보병만큼은 최강이라는 평가를 받는 엘프의 A랭크 병종은 ‘엘븐템플러’라 불리는 병사들이었다.

엘프의 A랭크 병사들인 이들은 커다란 방패와 보호 마법을 사용해 웬만한 원거리 공격은 쉬이 막아낼 수 있었다. 거기다가 큰 효과는 아니었지만 회복 마법까지 쓸 수 있어 난전과 방어의 스페셜리스트로 많은 게이머들에게 사랑을 받았다. 아마 지금도 그럴 것이다.

다만 이들을 양성하기 위해서는 많은 연구와 기술 개발을 끝내야 했고, 양성하는 데도 특산품이 필요한 만큼 여러 까다로운 조건을 충족시켜야 했다. 그럼에도 그만큼 전쟁에서 확실한 효과를 보이는 병종이었다.

이처럼 여러 난관이 있지만, 호는 연구의 개발만 끝낼 수 있다면 병사의 양성만큼은 어렵지 않을 거라고 자신하고 있었다.

“엘븐템플러 양성에 꼭 필요한 특산품은 세계수의 자식이라 불리는 뷰트의 성목.”

이 세계에 존재하는 특산품 중 하나로 뷰트의 성목은 엘프의 병사 양성에 꼭 필요한 재료일 뿐 아니라 지팡이와 활과 같은 나무로 만들 아이템 제작에도 필요한 물건이었다. 그리고 호는 이런 뷰트의 성목을 어디서 얻을 수 있는지 ‘관우는 내 여자’라는 게이머의 공략본을 통해 잘 알고 있었다.

그곳은 붉은 핏빛의 대지에 살고 있는 엘프들의 도시인 아멘드마와 코르다. 이 두 영지에서 생산할 수 있는 특산품이 바로 뷰트의 성목이었다.

“퀘스트로 진행해야 하는 만큼 조만간 작업에 착수해야겠네.”

호는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나며 자신에게 더러운 퀘스트를 안겨준 한 엘프를 떠올렸다.

* * *

“후아아!”

엘 아르윈의 귀가 파닥파닥 움직였다. 기지개를 쭈욱 펴고 숨을 크게 들이키자 시원한 바람이 몸 내부 구석구석까지 파고들며 상쾌함을 선사해 주었다.

안테로리의 대회의가 끝난 후 근 이주 동안 엘 아르윈은 안테로리로 이주해오는 엘프들이 살 수 있는 거주지를 만드는 데에만 신경을 썼다

북동부 지방에서 몇 년 동안 계속되고 있는 엘프와 인간들의 전쟁 때문인지, 전쟁을 피해 도망친 엘프 무리가 하루에도 서너 번 꼴로 안테로리에 도착하곤 했다. 게다가 최근에는 살기가 편하고 좋다는 소문이라도 돈 모양인지, 그 수가 조금씩 늘어나고 있는 실정이었다.

“호 님께서 우리 엘프들을 잘 대해주니까 그런 거겠지? 호 님을 위해 좀 더 열심히 일해야 해.”

비록 마족에 소속되어 있다고는 하지만 엘 아르윈은 호가 다른 마족들과는 다르다고 굳건하게 믿고 있었다. 실제로 호는 외형적으로는 마족이 아닌 인간이었다.

게다가 안테로리는 마족에 소속된 인간과 엘프 그리고 수인까지, 어떻게 보면 서로 융합될 수 없는 종족이 모조리 모여 생활하고 있는 도시였다. 이것은 그 어떤 마족과 엘프 그리고 수인도 해내지 못한 대단한 일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테로리에서는 종족간의 불화로 인해 사건 사고가 벌어지는 일이 극히 드물었다.

“정말 호 님은 우리 엘프족을 위해 여신님이 내려주신 존재임이 틀림없어.”

그런 사실들을 떠올리며 엘 아르윈은 계속해서 고개를 끄덕였다. 최근에는 언제나 정예 실리스가 맡았던 임무인 도시 경비를 엘프 보병들이 대신하기도 했다. 그 덕분에 엘프인 그녀의 콧대가 조금 높아지기도 했다.

게다가 안테로리의 영주인 호가 직접 엘프 보병을 정예 엘프 보병으로 만들기 위해 나섰다는 소문이 엘프족 사이에 파다하고 돌고 있었다.

잠시 후, 엘 아르윈은 엘프들의 거주지에 도착했다.

“엘 아르윈 님, 나오셨어요?”

“어머, 아르윈 님 이것 좀 드셔 보세요.”

“오늘은 남동쪽 주거지 건설에 들어가는 겁니까? 아르윈 님?”

아르윈이 나타나자 거주지에 살고 있는 엘프들이 저마다 말을 건넸다. 그런 엘프들을 향해 가볍게 미소를 지어준 아르윈은 곧 엘프 인부들을 이끌고 주거지 공사에 들어가기 시작했다. 그 수는 그리 많지 않았는데, 엘프들이 본격적으로 안테로리에 거주하게 된 지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세계의 은혜가 당신들의 앞에 있기를. 오늘도 소중한 우리들의 친구를 위해 열심히 힘을 내 봅시다.”

“알았습니다. 엘 아르윈 님.”

“맡겨만 주십시오!”

엘 아르윈의 말에 곱상하게 생긴 남성 엘프들이 팔을 걷어붙이고 공사장에 들어서기 시작했다. 미의 종족이라는 말답게 어느 누구도 조각미남이 아닌 엘프가 없었다.

“만약 내가 있던 곳에서 살던 여자들이 이 모습을 봤으면 가슴을 부여잡고 쓰러졌을지도 모르겠군. 아니, 분명 쓰러졌을 거야. 최택, 김정봉이 울고 갈 정도로 멋지고 매력적인 미남들을 이런 거친 노동 현장에 밀어 넣었으니…….”

“"아? 호…… 호 님?!”

한참 공사 현장을 관리하던 아르윈은 뒤에서 들려오는 익숙한 목소리에 번개같이 몸을 돌렸다. 윤호. 안테로리의 영주이자 자신의 마스터가 눈앞에 있었다.

“호 님이다!”

“우앗! 호 님이시다!”

호를 발견한 것은 엘 아르윈 뿐 아니라 인부들도 마찬가지였다. 자신들에게 소중한 삶의 터전과 함께 안전을 마련해준 영주에게 다들 흠모의 눈빛을 보냈다.

띵동.

-엘프들의 주거지 건설 현장을 방문했습니다.

-공사에 참여한 영지민들의 사기가 상승했습니다. 앞으로 1시간 동안 공사 효과가 20% 상승합니다.

눈앞에 나타난 메시지를 확인한 호는 메시지를 지우고는 엘프들을 향해 손을 한 번 흔들어 주고는 자신을 바라보는 엘 아르윈을 향해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크리솔라이트 부족에 관해 할 말이 있는데, 시간을 좀 내주지 않겠어?”

“……크리솔라이트 부족이요?”

“그래.”

호의 말에 엘 아르윈은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의 마스터인 그의 명령을 거부할 이유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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