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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그너스 대륙전기-60화 (60/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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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그너스 대륙전기 060화

“호 님이다!”

“호 님이 귀환하셨다!”

커티삭을 떠난 지 일주일 후, 안테로리에 도착한 호 일행을 반긴 것은 영지민들의 성대한 환호성이었다.

‘만족도 관리의 결과물이지.’

호는 가상현실 게임에서의 경험을 토대로 영지민의 만족도가 영지의 발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영지민의 만족도가 높아질수록 영지의 발전에 탄력을 받는 만큼, 덕분에 호는 다른 무엇보다도 영지민의 만족도 관리에 크게 신경을 쏟곤 했다.

옆에서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하는 두 여인을 보니 뿌듯함이 절로 피어올랐다.

안테 로리라는 영지를 급성장시키면서도 호는 영지민의 만족도를 높일 수 있는 여러 건물들을 건설하는 데 돈을 아끼지 않고 투자했고, 그런 것들로 인해 안테로리에 거주하는 영지민의 만족도는 굉장히 높아져 있었다.

최근 많은 수의 엘프들이 안테로리에 자신들의 주거지를 만들며 영지에 합류하면서 엘프와 사이가 좋지 않은 마족과 수인들의 만족도가 크게 떨어지기는 했다. 그렇지만 안테로리에 거주하는 영지민의 전체적인 만족도는 호의 기준으로 봤을 때 상당히 높은 편에 속했다. 그리고 어차피 떨어진 만족도는 그들을 위한 새로운 건물을 지어주면 다시 올릴 수 있었다.

게다가 엘프, 수인, 마족들의 주거지들이 서로 어느 정도 떨어져 있던 까닭에 종족간의 불화로 인해 트러블이 일어날 일은 거의 없었다. 만약 사고가 벌어진다 하더라도 영지에는 영지의 치안을 담당한 정예 실리스들이 있었다.

“와…….”

“커티삭과는 차원이 다르네요.”

그런 영지민의 환호성을 보며 안테로리에 첫 발을 디딘 한시진과 아스트리드 벨은 놀란 눈을 깜박거렸다. 안테로리에 대한 그녀들의 첫 느낌은 커티삭보다 훨씬 크고 발전된 도시라는 점이었다.

그만큼 안테로리에는 그녀들이 처음 보는 건축물들이 즐비했을 뿐만 아니라 영주가 머무는 성을 중심으로는 방패처럼 네 개의 외성이 세워져 있었다.

사실 커티삭의 영주성에는 외성이라는 게 없었다. 아니, 영주성이라는 표현보다는 영주 관저라는 말이 더 옳았다.

“호 님! 호 님!”

“제발 여기 한 번만 봐주세요!”

하지만 그녀들의 놀람은 이게 끝이 아니었다. 대로를 가득 메운 여러 종족들이 섞인 영지민들을 향해 호가 손을 흔드는 순간 영지민들이 기다렸다는 듯 달려들기 시작했고, 그런 영지민들을 병사들이 막아서는 모습을 보며 두 여인은 다시 한 번 놀란 표정을 지었다.

호의 이름을 외치는 그들의 환호성에 안테로리의 영주인 호의 인기가 대단하다는 것쯤은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지만, 이것은 숫제 광신도나 다름없어 보이는 모습이었다.

“와……. 오빠, 인기가 장난이 아니네요?”

“하하하. 내가 좀 대단하지?”

“네. 정말 대단해요! 정말로!”

월드 스타를 보기 위해 모여든 팬들과도 같은 영지민들의 모습을 보며 한시진은 혀를 내둘렀다. 커티삭에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페릴 예노스가 영지 밖을 나선다? 그럴 경우 영지민들은 재빨리 자리를 피하기 일쑤였다.

그렇게 영지민들과의 조그마한 이벤트를 치룬 호는 영주성에 도착해 자신이 없는 동안 일어났던 영지의 변화를 보고받기 시작했다.

<영지 정보(Status)>

안테로리(중도시[B등급]) - ‘붉은 핏빛의 대지’

인구 – 88,451

보유 리스 – 167,214

보유 식량 – 113,672

병사 - 아이스 스파토이(C) 4,600, 정예 실리스(D+) 1,200.

내정 건물 - 대형 식량 저장고 24, 주점 1, 대시장 40, 직물 공장 6…….

군사 건물 - 대형 망루 28, 병영 4, 대장간 4, 마법 연구소 1, 커다란 성벽.

리스 수입 – 42,310 / 월

식량 수입 – 64,876 / 월

특산품 - 가젯 의복

“정예 실리스들의 수를 채워야겠어.”

“이미 병영에서 훈련에 들어가 있습니다.”

“가젯 의복의 생산 역시 차질 없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사드나인과 엘 아르윈의 보고를 들으며 영지 정보를 살펴보던 호는 그들의 보고가 끝나자 고개를 끄덕였다. 경계 지대에서의 소모전 때문에 정예 실리스들이 많이 죽은 것을 제외하면 두 개의 영지 기술이 추가적으로 개발이 끝났을 뿐, 큰 변화는 없었다.

보병과 궁병의 비율은 1 : 0.7로 맞추는 게 가장 바람직했다. 지금이야 안테로리에서 양성되는 정예 실리스의 숫자보다 경계 지대에서 죽어나가는 수가 더욱 많았지만, 그런 소모전도 며칠 후에는 끝날 것이라는 게 호의 생각이었다. 아니, 생각이 아니라 확신이었다. 바로 내일이면 안테로리의 영주성에 커다란 마장기가 모습을 드러낼 예정이기 때문이었다. 마족 전용의 B등급 마장기인 키마라이였다.

‘키마라이가 나타났다는 소식이 곧 리셴르나의 귀에 들어가겠지.’

회의를 마친 호는 홀로 집무실에 남아 영주성의 공터에 있는 커다란 마장기를 떠올렸다. 그렇게 되면 리셴르나 또한 지금처럼 쉽사리 도발을 가할 수 없을 것이다. 마장기가 전장에 나선다는 것은 영지의 사활을 건 큰 전쟁이 벌어진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리셴르나가 국경지대에 위치한 한 영토를 지배하는 수인족의 상급 대장이라고 해도 B등급 마장기는 무시할 수 없는 전력이었다.

하물며 붉은 핏빛의 대지에 있는 커티삭과 안테로리는 상급 마족 볼 붸르니체스의 휘하에 있는 영지이기도 했다. 그렇기에 호는 키마라이의 존재를 숨기지 않고 적나라하게 드러내며 리셴르나에게 경계심을 심어주는 한편, 그녀를 상대할 수 있는 시간 또한 벌 생각이었다.

“솔직히 전력을 숨겨봤자 내가 이득을 볼 수 있는 것도 아니고.”

B등급 마장기인 키마라이는 분명 전장에서 대단한 위력을 보이는 병기였다. 하지만 키마라이를 가동하기 위해서는 B등급 이상의 클래스를 지닌 소환자 혹은 마족의 영웅이 필요했다. 그리고 안테로리에서 그런 조건을 만족시킬 수 있는 영웅은 호를 포함해 단 한 명도 존재하지 않았다.

결국 마장기는 지금 당장은 사용할 수가 없는 빛 좋은 개살구에 불과했다. 그렇다면 마장기를 드러내 우리에게도 마장기가 있다는 액션을 취하며 상대에게 경계심을 심어주는 것만이 답이었다. 그리고 하루라도 빨리 자신이 되었든 아니면 다른 사람이 되었든 간에 마족에 소속된 한 영웅이라도 B등급 클래스가 되어야만 했다.

그 순간 호는 안테로리에 거주하고 있는 존재 중 마장기의 오너에 어울릴 만한 인물의 얼굴을 머릿속으로 떠올렸다.

“솔직히 진짜로 놀랐지.”

그건 바로 한시진이었다.

‘어…… 화랑?’

한시진이 처음 키마라이를 보고 꺼낸 말이었다. 붉은색의 동체를 지닌 거대한 거인을 보며 그녀의 눈동자는 당혹스러움이 가득했었다.

“마장기가 실제 그쪽 세계의 무기와 흡사하다니…….”

혹시나 하는 상상을 한 적은 있었다. 하지만 단지 상상일 뿐이었다. 그러나 호가 살던 세상과는 다른 패러럴 월드에 존재하는 화랑, 모빌 슈츠, 라, 쟌이라는 여러 국가에서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는 거대한 크기의 로봇 병기.

한시진은 이 세계에서 마장기라 불리는 병기인 키마라이를 가리켜 그렇게 말했다. 그리고는 자신이 화랑 기사라는 것을 증명하기라도 하려는 듯 능숙하게 키마라이의 조종석까지 올라타기도 했었다.

‘뭐, 뭐야?! 왜이래?’

그리고 비슷하면서도 조금은 생소한 키마라이의 조종석에 앉아 약간 애를 먹기는 했지만 한시진은 자연스럽게 키마라이를 가동시키며 호의 입을 떡 벌어지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녀는 키마리아를 움직일 수 없었다. 가동은 시켰지만 키마라이가 그녀의 조작에도 말을 듣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오빠? 이거 어딘가 잘못된 게 아닐까요? 전 분명히 제대로 조종했는데…….’

그렇게 한참 동안 키마라이와 씨름하다가 조종석에서 내려온 한시진의 얼굴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던 것은 물론이고 급기야 울먹이기까지 한 모습은 아직까지도 생생하게 기억이 날 정도였다.

호는 어째서 그녀가 키마라이를 조종하지 못했는지 그 이유를 알고 있었다. 사실 그녀는 숙련 검사라 불리는 E등급 클래스에 불과했다. 그리고 B등급 마장기를 조종하려면 최소한 B등급 이상의 클래스를 보유하고 있어야 했다.

“어쨌든 한시진은 자신이 대한제국을 대표하는 화랑 기사단, 그것도 최연소 단장이라고 했어.”

최연소. 그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는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그만큼 엄청난 재능과 실력의 소유자란 이야기였다.

한시진을 떠올리자 호의 눈동자가 조용히 가라앉았다. 아무리 자신이 가상현실 게임인 리그너스 대륙전기에서 마장기를 많이 움직여 봤다고는 하지만 한시진과 비교하면 상대가 되지 않을 것 같았다.

호가 기껏 가상현실 게임에서나 마장기를 움직여 본 유저인데 반해 그녀는 정말로 마장기를 타고 실전에 나섰던 엘리트 군인이었다. 그녀의 기량이 어느 정도인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적어도 자신보다는 나을 것 같았다.

“키마라이는 시진이에게 맡겨야겠어.”

그녀라면 충분히 키마라이의 좋은 오너가 될 것 같았다. 그리고 자신에게 내려진 마장기를 그녀에게 준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자신에 대한 한시진의 믿음 역시 지금보다도 더욱 돈독해질 터였다.

하지만 아직 문제가 남아 있었다. 한시진의 클래스는 E등급. 그녀가 마장기를 조종하려면 최소 B등급까지 자신의 직업 등급을 올려야만 했다.

“으으음…….”

그렇게 호의 시름이 깊어지기 시작했다. 이것만큼은 아무리 고민을 해도 뾰족한 수가 떠오르지를 않았다. 하물며 이 주위의 던전은 모조리 자신이 토벌한 상황이기도 했다.

“경계 지대의 수인들이 조금씩 물러나는 것 같다는 리아 캬베데 님의 보고입니다.”

“좋아. 리아 캬베데에게 어느 정도 감시 인원을 배치해 두고, 남은 정예 실리스들을 데리고 철수하라고 전달하도록.”

며칠 뒤, 수인들이 철수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호의 예상은 다행이도 정확하게 맞아떨어졌다. 리셴르나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결과적으로 경계 지대에 모습을 드러내는 수인들의 수가 눈에 띄게 줄어들기 시작한 것이다. 역시나 마장기의 전쟁 억지력은 대단했다.

그렇게 나흘 후 리아 캬베데가 안테로리로 복귀했고, 호의 휘하에 있는 모든 소환자와 영웅들이 한자리에 모이게 되었다.

* * *

천장의 마법등이 은은한 빛을 발하고 있었다. 안테로리의 영지에서 가장 나이가 어린 영웅인 시현은 영지성 곳곳은 물론, 자신의 방에도 여러 개가 부착되어 있는 이 마법등이 좋았다. 과거 자신이 살던 세계에서처럼 박수 하나만으로도 쉽게 불을 끄고, 켤 수 있는 현대 문물의 느낌이 강했기 때문이다.

“히히히.”

게다가 일 년 만에 다시 재회한 언니와도 함께 있을 수 있었다. 호 오빠와 언니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앞으로는 평생 헤어질 일 없이 같이 있을 거라고 했다. 비록 자신이 살던 세계로 언제 돌아갈 수 있을지는 정확히 알 수도 없었지만, 지금 당장은 언니와 함께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녀는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었다.

그렇게 행복한 표정으로 침대 위를 굴러다니던 시현이 문득 앗 하고 탄성을 터뜨렸다. 조금 있다가 회의실에서 중요한 회의가 열린다는 사실이 막 머릿속에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늦으면 안 돼!”

곧 우당탕 하는 소리와 함께 방에서 나온 시현은 곧바로 회의실이 있는 방향을 향해 빠른 걸음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그러면서도 중간 중간 마주치는 다른 종족들에게 인사를 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렇게 사오십 명은 너끈히 들어갈 수 있는 회의실의 문 앞에 시현은 도착했다. 그리고 자신의 앞을 가로막는 거대한 문을 바라보며 침을 꿀꺽 삼키고는 양손으로 힘을 주어 문을 열었다.

“휴우. 안 늦었다.”

많은 자리 중에서 채워진 자리가 두 개밖에 되지 않은 것을 확인한 시현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다행히도 회의실에는 엘 아르윈과 사드나인만 도착해 있을 뿐이었다.

그때였다.

“나도 들어가도록 할게.”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시현이 고개를 돌렸다.

“언니!”

“쉿. 회의실에서 소리를 지르면 어떻게 해.”

“아……. 미안.”

언니 시진의 질책에 시현은 혀를 살짝 내밀고는 머리를 긁적였다. 그리고는 재빠르게 자신의 자리에 앉아 시계를 바라보았다. 아직 회의가 시작되려면 시간이 조금 남아 있었다.

잠시 후, 아스트리드 벨과 리아 캬베데가 회의실에 도착했고, 마지막으로 호가 회의실에 모습을 드러냈다.

“……으음.”

상석으로 향하는 호의 모습을 보며 한시현의 눈동자가 데구르르 움직이기 시작했다. 오늘 호의 모습은 예전과는 다른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잘 모르겠지만, 쉽게 말을 걸기가 힘들었다. 다른 이들도 비슷한 생각인지 다들 표정이 그 어느 때보다도 진지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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