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8
리그너스 대륙전기 048화
“대량의 경험치를 얻으려면 던전 공략이 최고지.”
이제는 안테로리도 등급이 높은 건물의 건설이 가능했다. 덕분에 건물 완성 경험치도 쏠쏠한 편이었지만 던전의 공략과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리그너스 대륙전기에서 가장 많이 경험치를 획득할 수 있는 방법은 이벤트나 전투였다.
클래스의 한계까지 세부 능력을 높인 탓에 당장 경험치가 필요한 것은 아니었지만, 경험치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았다. 게다가 던전의 공략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은 경험치뿐만이 아니었다.
“지금 리아 캬베데는 무엇을 하고 있지?”
“멍. 병영에서 실리스들의 훈련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사드나인이 말했다. 그의 대답을 들으며 호는 발걸음을 옮겼다. 엘프의 마을 근처에 자리한 던전의 공략을 위해 그녀는 꼭 필요한 영웅이었다. 가상현실 게임 리그너스 대륙전기에서 다수의 전투를 경험한 만큼 호 혼자서도 E, F등급 던전 정도는 어렵지 않게 공략할 수 있었다. 더욱이 안테로리의 병력은 아이스 스파토이와 실리스로 C랭크와 D+랭크 병사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하지만 굳이 리아 캬베데를 던전 공략에 데리고 가려는 이유는 그녀의 높은 통솔력과 무력 때문이었다. 전투능력이 높은 영웅이 있다는 것은 그만큼 아군 병사의 피해를 줄일 수 있기 때문이었다. 또한 그녀는 행여나 엘프들과 충돌이 있을 경우 큰 존재감을 드러낼 게 분명했다.
그리고 며칠 뒤, 호는 천팔백의 병사와 리아 캬베데와 함께 던전을 공략하기 위해 안테로리를 떠났다.
* * *
엘 샤난은 빛이 들어오지 않는 깊은 숲 속 안에 위치한 어두운 계곡 속에 들어와 있었다. 엘프인 그녀에게 숲 속의 어두움은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았다. 그녀뿐 만이 아니었다. 샤난의 뒤에 있는 이백의 엘프 궁수들도 마찬가지였다. 숲은 그들의 집이나 다름없었다.
“우리끼리 괜찮을까요? 지금이라도…….”
남성 엘프 영웅인 엘 포르데우스가 샤난을 향해 말했다. 말을 꺼낸 그의 얼굴에는 근심이 가득 담겨 있었다. 이백의 엘프 궁수는 분명 상당한 전력이었다.
하지만 그들이 목표로 삼는 마족들의 군대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상대의 병력은 무려 천이 넘었다.
그때 엘 사냔이 속삭이듯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걱정 마. 우리는 이길 수 있어. 상대는 더러운 악마의 주구들이라고. 달의 여신님께서 우리를 지켜 주신다.”
“하지만 샤난.”
엘 포르데우스가 말을 머뭇거렸다. 달의 여신님께서 오늘의 전투에 힘을 불어넣어 주실 건 분명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신들의 수보다 몇 배가 넘는 마족의 군대를 고작 이백의 병사로만 막는다는 것은 목숨을 버리는 행위나 다름없었다. 여신님께서 지켜주신다고 해도 그들이 휘두르는 무기들에 엘프가 무사할 수 있는 것 아니었다.
“차라리 물러나서 엘 라이린 님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게 어떨까요? 샤난.”
엘 포르데우스는 붉은 핏빛의 대지에 있는 엘프들의 하이 센티널인 엘 라이린이라면 엘프들의 영역에 들어온 마족들을 물리치기 위한 올바른 방법을 내려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녀의 딸인 엘 샤난이 용맹하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녀가 당장 눈에 보이고 있는 마족과의 전력차를 뒤집을 수 있을 정도의 실력을 지니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그런 포르데우스의 말에 샤난이 거칠게 대답했다.
“어머니는 겁쟁이셔! 마족들의 도발에도 꿈쩍도 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사냔. 라이린 님은 신중하신 거지 겁이 많으신 게 아닙니다.”
포르데우스의 말에 샤난이 인상을 썼다. 그녀는 어머니가 신중하던, 그렇지 않던 붉은 핏빛의 대지에 있는 엘프들을 이끄는 하이 센티널이라면 마족들의 도발에 가만히 있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더욱이 마족들은 현재 자신들이 살고 있는 숲을 제집 드나들 듯 드나들고 있었다. 이는 이 땅의 주인인 엘프를 무시하는 처사나 다름없었다. 게다가 이런 마족들의 행위를 그냥 방치한다면 그들은 언젠가 엘프들을 노예로 삼기 위해 공격해 들어올 게 분명했다.
‘지금이 기회야. 마족의 전력이 나뉘어졌을 때 공격해야 해!’
마족의 도시가 되어버린 안테로리는 현재 자신들의 전력으로는 공략할 수 없는 도시였다. 안테로리 자체가 단단한 방어를 구축하고 있는 것도 있지만, 안테로리에는 B등급 마장기가 포함된 마족의 군대가 진을 치고 있었다.
그리고 포르세우스가 이어서 말했다.
“게다가 샤난, 현재 마족들은 엘프들에게 해를 끼치지 않고 있습니다. 오히려 엘프들을 위험에 빠뜨리게 만드는 던전들을 파괴하고 있지 않습니까? 아마 그들은…….”
“입 닥쳐, 포르데우스.”
사냔은 주먹을 움켜쥐었다. 엘프들은 전부 바보인 것일까? 눈앞의 남성 엘프는 마족들이 자신들의 친우, 동료들에게 어떤 행동을 했는지 잊은 것 같았다. 마족은 이 세계에서 모조리 죽여야 할 대상이었다.
“화살부터 준비해.”
엘 샤난이 명령했다. 그리고 화가 난 센티널의 말에 엘 포르데우스는 어쩔 수 없이 뒤에 대기하고 있는 엘프들을 향해 손을 들어 올렸다. 그러자 엘프 궁수들이 화살을 시위에 메기기 시작했다.
포르데우스의 눈에 들어온 엘프 궁수들의 표정은 전부 겁에 질려 있었다. 그들도 눈과 귀가 있는 만큼 마족이 어떤 전력을 구성한 채 엘프들의 숲에 들어왔는지 잘 알고 있었다.
“…….”
잠시 후, 멀리서 던전을 파괴하고 나오는 마족들의 모습이 포르데우스의 눈에 들어왔다.
‘저들이 마족들의 대장인가?’
엘 샤난은 눈을 가늘게 떴다. 엄청난 수의 스켈레톤과 다크 엘프 무리의 가장 앞으로 인간 한 명과 수인족이 보이고 있었다.
엘 포르데우스의 눈동자가 샤난에게로 향했다. 그는 마족을 지휘하는 인간이 안테로리의 영주라는 사실을 어렵지 않게 눈치챌 수 있었다. 그가 마족의 소환자 중 하나라는 이야기와 함께 많은 소문이 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는 엘 샤난이 무모한 명령을 내리지 않기를 빌었다.
저 전력을 상대로 고작 이백의 엘프 궁수만을 가지고 덤빈다는 것은 정말로 자살행위나 다름없었다. 최소한 붉은 핏빛의 대지에 있는 엘프들의 모든 전력을 집중시켜야만 상대가 가능했다.
‘오 제발…….’
하지만 엘 사냔의 눈동자는 마족 군대의 가장 앞에 서 있는 한 남성만을 향하고 있었다. 그녀 역시 마족 무리의 가장 앞에서 말을 타고 움직이는 남성이 안테로리의 영주라는 것을 눈치챈 모양이었다.
그리고 마족의 군대가 점점 다가오는 모습을 보며 엘 샤난이 신록의 나무로 만들어진 거대한 자신의 활을 천천히 잡아당기기 시작했다.
그런 샤난의 모습을 보며 포르데우스는 눈을 질끈 감았다. 그녀를 막을 수는 없었다. 그녀의 계급은 자신보다도 높은 센티널이었다. 그리고 남자를 노리던 샤난의 손길이 조금씩 떨리기 시작하더니 팽하는 소리와 함께 화살이 쏘아졌다.
* * *
“후후후. 좋아, 좋아.”
호는 환한 미소를 지었다. 벌써 다섯 개의 던전 공략에 성공했기 때문이다. 등급은 낮아도 던전은 던전. E, F등급에 불과한 낮은 난이도의 던전이지만, 던전은 호에게 상당한 양의 경험치와 아이템 그리고 돈을 선물해주었다.
비록 당장 경험치를 사용할 수는 없지만, 이렇게 모아둔 경험치는 훗날 C등급의 클래스로 승급을 하고 나면 단번에 능력치를 폭발시킬 수 있는 원동력이 될 터였다.
<플레이어 정보(Status)>
1. 이름 : 윤호
2. 성별 : 남(27)
3. 종족 : 인간
4. 소속 : 마족
5. 레벨 : 50
6. 직업 : 상급 사관(D)
7. 세부능력
통솔 : 100(+10) / 100(+10)(C)
무력 : 50(+4) / 50(+4)(D)
지력 : 50 / 50(D)
정치 : 30 / 30(E)
매력 : 50 / 50(D)
카리스마 : 50 / 50(D)
8. 특성 : 부대 강화, 통솔 상승(소)
9. 스킬 :
<침착하라!> D랭크.
많은 전투를 경험한 상급 사관은 다양한 악조건 속에서도 부대의 병사들이 전투에 집중할 수 있도록 만들어 줄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효과 : 병사들이 혼란 및 이상 상태에서 쉽게 빠져 나옵니다. 또한 부대의 공격력을 10% 상승시킵니다.
“음음!”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자신의 능력치를 살펴본 호는 오와 열을 이뤄 자신의 뒤를 따라오는 병사들을 바라보았다. C랭크와 D+랭크인 아이스 스파토이와 실리스들은 예전 오크나 고블린들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강력한 병사들이었다.
덕분에 호는 별다른 희생 없이 무사히 던전들을 공략할 수 있었다. 거기에 리아 캬베데의 통솔력과 무력도 큰 도움이 되었다. 영웅의 통솔력과 무력은 아군 병사들의 공격력, 방어력에 영향을 주기 때문이었다.
어쨌든 호는 던전들이 있는 엘프들의 영토를 거리낌 없이 마음대로 드나들고 있었다. 어차피 엘프들은 자신의 군대를 건드릴 만한 재간이 없었다. 그래도 직접적으로 트러블을 일으키는 것은 곤란했기에 호 역시 그들의 영토 깊숙한 곳까지는 들어가지 않고 있었다. 직접적으로 엘프들을 건드리지도 않았고, 마주치는 것도 피했다.
“이제 남은 곳은…….”
총 다섯 개의 던전을 공략했다. 하지만 엘프의 마을 가까운 곳에 위치한 던전을 제외하고도 앞으로 일곱 곳의 던전을 더 공략할 수 있었다. 이미 던전의 위치는 ‘관우는 내 여자’의 공략본을 통해 파악한 상태였다.
그때 호의 옆에서 나란히 가고 있던 리아 캬베데가 호를 향해 속삭였다.
“호님. 적이다냥.”
“적……?”
리아 캬베데의 말에 호가 그녀를 흘깃 쳐다보고는 그녀의 시선을 좇았다. 리아 캬베데가 눈으로 가리키는 곳에는 거대한 나무와 수풀만이 호의 눈에 들어오고 있었다.
“……엘프로군.”
하지만 가상현실 게임에서 단련된 촉은 어디 가지 않았다. 수풀 쪽으로 시선을 돌리는 순간 따끔따끔한 느낌과 불안감이 호의 감각을 찌르고 있었다.
잠시 적들의 반응을 살펴보기 위해 호가 대기라는 명령을 내리려고 할 때였다. 은색의 빛이 자신을 향해 날아오고 있었다.
“……!”
순간적으로 보이는 빗살에 호는 눈을 부릅떴다. 머릿속으로 여러 가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일단, 당장 몸을 움직여야만 했다.
하지만 생각과는 다르게 몸의 행동은 너무나도 느렸다. 아니, 그보다도 리아 캬베데의 움직임이 빨랐다.
“캬아아앙!”
날카로운 목소리와 함께 그녀가 주먹을 뻗자 파앙 하는 소리와 함께 권풍이 생겨났다. 그 여파로 날아오던 화살이 힘을 잃더니 툭 하고 떨어져 내렸다.
“휘유. 역시 A등급 영웅.”
마치 만화속의 한 장면 같은 모습을 보던 호가 하나 둘씩 수풀에서 나타나는 적들을 보며 소리를 쳤다.
“적이다!”
그렇게 엘프와 마족. 서로는 같은 하늘을 두고 살 수 없다는 불구대천의 원수들끼리 전투가 시작되었다.
‘괜히 병사들 랭크만 믿고 너무 나댔나?!’
호는 뒤로 몸을 빼며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 엘프들을 노려보았다. 이 정도의 랭크와 병사 숫자라면 붉은 핏빛의 대지에 살고 있는 엘프들이 알아서 피해가리라 생각했지만, 마족에 대한 엘프들의 원한은 그 이상으로 깊은 모양이었다.
그나마 다행으로 생각되는 것은 모습을 드러낸 엘프들의 병사들이 E랭크로 보이는 엘프 궁사라는 점이었다. 게다가 그 수 또한 많지 않았다.
“적들에게 세계수의 분노를!”
“호 님을 위하여!”
이백의 엘프 궁수들은 아이스 스파토이와 다크엘프인 실리스들을 상대로 정말로 용감하게 싸웠다. 특히나 가장 선두에서 단검을 휘두르며 화살을 날리던 여성 엘프 영웅의 무용은 대단할 정도였다.
판타지 영화인 반지의 제왕에 등장하는 레골라스와 비슷한 외모를 지닌 남성 엘프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상성이 너무나 안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