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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그너스 대륙전기-46화 (46/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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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그너스 대륙전기 046화

“하…… 하하…… 씨발. 마족 만세!”

키마라이의 등장에 허탈한 웃음을 흘리고 있는 호의 입가에는 미소가 번지고 있었다.

키마라이가 포함된 이 정도 규모의 마족 군대라면 아트리그에 주둔하고 있는 수인족의 병사들은 물론이고, 그들의 마장기인 카니앗산도 두렵지 않았다.

비록 카니앗산이 원거리에서 공격할 수 있는 마장기라지만 카니앗산은 결코 키마라이의 상대가 될 수 없었다.

게다가 마족의 마장기는 수는 많지 않아도 개개의 위력만큼은 그 어떤 종족의 마장기보다도 강력했다. 또한 공성 및 포격 전용으로 설계된 카니앗산과 다르게 키마라이는 대마장기 전용으로 설계된 마장기이기도 했다.

“나자르 T 스테르다.”

“안테 로리의 영주인 윤호입니다.”

창백한 얼굴에 길고 검은 수염을 지닌 뱀파이어 영웅의 말에 호는 최대한 공손하게 대답했다.

자신은 안테 로리의 영주고, 그는 볼 붸르니체스의 부하라고 하지만 호는 현재 나자르와 자신 사이에 넘을 수 없는 벽이 존재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게다가 나자르 T 스테르는 안테 로리 바깥에 주둔하는 만여 명에 가까운 병사를 지휘하는 인물이었다. 나쁘게 보여서 좋을 게 하나도 없었다.

호의 말에 스테르는 고개를 꼿꼿이 세우며 말했다.

“형편없는 영지의 주인이로군.”

“아직 부족한 게 많은 영지입니다. 하지만 곧 마족의 전초기지로 성장해 나갈 겁니다.”

호는 비굴하지 않게, 하지만 공손한 목소리로 스테르에게 말했다.

성격이 괴팍한 마족들의 비위를 맞춰주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하나는 조심해야 했다. 그들은 비굴해 보이는 모습을 가장 싫어했다.

“수인족의 손에서 이 영지를 빼앗았다는 이야기는 들었다.”

스테르의 시선이 지금 이 자리에 있는 리아 캬베데에게 향했다. 호를 보며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고 있는 그녀는 나자르 T 스테르와 동급인 A등급 영웅이었다.

이어서 나자르의 시선이 시현에게 향했지만 그의 눈동자가 그녀에게 머문 시간은 1초도 채 되지 않았다.

자신과 비슷한 실력을 지닌 수인족의 영웅이 있는 도시를 점령하고 부하로 만들었다는 사실 때문일까? 호는 자신을 바라보는 스테르의 인상이 조금 부드러워졌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위대하신 만마의 지배자 쉐르난비체 폐하의 충신 볼 붸르니체스 각하의 명령에 따라 아트리그의 늙은 고양이는 우리가 맡도록 하겠다. 너는 이 도시를 발전시키는 데 주력하도록.”

“알겠습니다.”

호는 소리를 치고 싶은 욕구를 감춘 채 최대한 침착하고 공손하게 대답했다.

그의 말대로 나자르가 이끄는 병사가 안테 로리에 주둔하기 시작하면 아트리그의 수인족은 쉽사리 병사를 일으키지 못할 게 분명했다. 그리고 이는 엘프도 마찬가지였다.

B등급 마장기가 포함된 만 단위 규모의 군대는 결코 우습게 볼 수 있는 전력이 아니었다. 그만큼 나자르 T 스테르가 이끄는 군대는 충분한 전쟁 억지력을 지니고 있었다.

“흐…… 흐냐아앙!”

나자르 T 스테르와 만나고 집무실로 돌아온 호의 손길에 리아 캬베데의 입에서 고양이 울음이 터져 나왔다.

그 옆에서 시현이 부럽다는 눈빛으로 둘을 바라보았다. 그녀 또한 고양이의 얼굴을 한 리아 캬베데와 친해지고 싶었지만, 리아 캬베데는 호를 제외한 그 누구에게도 자신의 몸을 허락하지 않았다. 덕분에 시현은 아주 가끔 그녀의 부드러운 털을 몇 번 만진 게 전부였다.

“저 병사들은 뭐예요, 오빠?”

“우리를 지켜줄 병사들.”

“아…… 그러면 아까 그 시체 같아 보이는 사람도?”

“시체가 아니라 뱀파이어야. 시체라고 말하면 엄청나게 화를 낼걸?”

호는 시현의 말을 정정했다. 시체와 뱀파이어는 하늘과 땅 정도로 큰 격의 차이가 있었다.

호의 말에 한시현이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서큐버스라는 괴물도 있는 마당에 뱀파이어가 없을 리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나자르 T 스테르에게 호는 조금이나마 안테 로리의 식량을 지원해 주겠다고 말했었다. 하지만 나자르 T 스테르는 호의 제안을 단호히 거절했다. 볼 붸르니체스의 영지에는 식량이 풍족하게 있다는 이유였다.

조그마한 마을에 불과한 안테 로리에 기대고 싶지 않다는 고위 마족의 자존심일 수도 있었다. 어쨌든 호의 입장에는 좋은 일이었다. 전쟁 억지력을 지닌 군대를 보유하는 것과 동시에 식량조차 소모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거 일이 술술 풀리는데?’

환상적으로 변한 주변의 상황에 오히려 걱정조차 들 정도였다.

어쨌든 그들의 군대가 안테 로리에 주둔지를 만든 이상 타 종족의 도발은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그럼 오빠, 이제 우리는 어떻게 해야 돼요?”

“딱히 달라질 건 없어. 그냥 하던 대로 하는 거지.”

한시현의 질문에 호는 그렇게 대답했다. 안테 로리를 발전시키고, 병사를 보유하는 일. 그게 전부였다.

하지만 세부적인 계획은 바꿀 필요가 있었다. 불필요한 개발을 하고 병력을 보유하는 것보다는 오로지 내정과 기술 개발에만 집중하는 게 좋을 것 같았다.

볼 붸르니체스의 군대가 안테 로리에 머무르는 동안 최대한 안테 로리의 모든 전력을 동원해 영지의 덩치를 키우는 일에 집중해야 했다. 이미 호의 머릿속에는 몇 개의 계획이 세워지고 있었다.

“좋아! 결정했어.”

그리고 호의 명령에 따라 안테 로리에 대규모 공사가 시작되었다.

가장 먼저 지어지기 시작한 것은 바로 돈줄. 즉, 리스 수입에 영향을 주는 건물이었다. 호가 본래 있던 세계와 마찬가지로 이 세계에서도 무언가를 하려면 돈이 필수적이었다.

물질만능주의라는 단어는 이 세계에서도 통했다. 돈만 있다면 상단을 통해 무엇이든지 할 수 있었다.

‘볼 붸르니체스의 군대가 언제까지 안테 로리에 머무를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

그 전까지는 최소 아트리그에 대항할 수 있는 힘을 길러야만 했다. 이제부터는 시간 싸움이었다.

따아앙! 따앙!!!

“이 주위의 부지에 시장이 건설되면, 주변의 시장 네 개를 묶어서 대시장의 건설에 들어가도록.”

“취이익! 췩!!! 네!”

거친 망치질 소리가 밤낮을 가리지 않고 울려 퍼졌다. 호와 리아 캬베데는 인부들에게 쉴 새 없이 명령을 내리며 감독했다.

시현도 마찬가지였다. 흉측하게 생긴 마족의 몬스터들에게 명령을 내리는 것이 아직 익숙지 않아 보이긴 했지만, 그래도 동물과 비슷한 외형을 지닌 수인족의 감독은 나름대로 잘 해냈다.

그렇게 몇 개의 대시장 건설을 끝내고 리스의 수입을 대폭 늘린 호는 한시현에게 계속해서 시장과 대시장을 건설하라고 명령을 내리는 한편 새로운 작업에 들어갔다. 상단을 통해 크게 리스 수입을 올릴 수 있는 안테 로리의 특산품을 생산하기 위해서였다.

“안테 로리에서 생산할 수 있는 특산품은 가젯 의복과 초클로라 불리는 간식이지.”

호는 홀로그램처럼 눈앞에 나타난 리그너스 대륙전기의 공략본을 바라보았다.

이 세계로 오기 전 운 좋게 다운받았던 공략본에는 안테 로리에서 어떤 특산품이 생산되며, 어떤 조건을 만족시켜야만 생산이 가능한지에 대해 자세하게 나와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가상현실게임 리그너스 대륙전기에서 활동하는 상단들은 각자의 성향에 따라 똑같은 특산품임에도 불구하고 취급하는 가격이 저마다 달랐다.

그리고 호는 이 세계의 상단도 성향이 비슷할 거라고 생각했다.

“초클로보다는 가젯 의복이다.”

결국 호는 안테 로리에서 생산할 수 있는 두 개의 특산품 중 가젯 의복을 생산하기로 결정을 내렸다.

그렇게 결정을 내린 이유는 안테 로리와 첫 거래를 튼 아르테미스 상단이 직물과 섬유, 그리고 무기를 주로 취급하는 상단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지금 당장 가젯 의복을 생산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특산품을 생산하기 위해서는 아직 더 많은 건물을 짓고 까다로운 조건을 만족해야 했다.

“인간으로 게임을 시작했을 때 생산했던 첫 특산품은 쿠크다스였는데……”

인간들의 부드러운 최고급 비스킷이었던 쿠크다스. 유저들에겐 가루 과자라고 불릴 정도로 잘 깨지는 성질이 있기에 취급도 보관도 힘든 특산품이었지만 그런 성질 때문인지 어마어마한 가격을 자랑했었다.

그런 쿠크다스에 비해 가젯 의복은 직물류의 특산품. 화재만 조심하면 딱히 걱정할 게 없었다.

* * *

여신의 부드러운 빛이 천장 위에 있는 스테인드글라스 창으로 들어와 넓은 중앙실을 채웠다. 그리고 중앙실에는 기도하듯 양손을 맞잡은 채 숲의 이야기를 듣는 한 여성 엘프가 있었다.

그녀의 이름은 엘 라이린. 600살이 넘은 엘프로 붉은 핏빛의 대지에 있는 엘프들의 마을 아멘드마와 코르다를 지키는 하이 센티널이었다.

“후우…….”

한참 기도를 하던 엘 라이린의 입에서 자그마한 한숨이 흘러나왔다. 숲이 해주는 이야기들은 온통 좋지 않은 말뿐이었다. 붉은 핏빛의 대지에 있는 초목들은 연신 세력이 커지는 마족을 조심하라고 외치고 있었다.

초목들의 말대로 점점 세력이 강성해지고 있는 마족들은 하이 센터널인 엘 라이린의 근심이자 불안감의 근원이었다.

“이래서는 안 되는데…….”

엘 라이린은 다시금 눈을 감은 채 마음속의 불안함을 몰아내려고 했다. 하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명상을 하면 할수록 초목들의 경고성과 불안감은 더더욱 커지고 있었다.

“하아아.”

결국 그녀는 기도를 멈춰야만 했다. 기도를 하는 게 오히려 그녀의 불안감을 증폭시키고 있었다.

엘프와 마족. 그 두 종족의 관계는 탄생 이후 지독하리만치 뒤얽혀 있었다. 태생적으로 상반된 존재에서 태어났으니 당연히 어울리는 게 불가능했다. 천족과 마족이 어울리지 못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렇게 수천 년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마족과 엘프들은 자신들의 안전을 위해, 혹은 대륙의 패권을 위해 쉬지 않고 전쟁을 벌였고, 그 여파로 셀 수도 없을 정도로 많은 종족이 희생되었다.

그리고 그 전쟁은 지금도 계속해서 이어져 내려오고 있었다.

그나마 붉은 핏빛의 대지는 조용한 편이었다. 이곳에서 유니콘을 타고 몇 달을 이동해야 하는 대륙의 서쪽에서 마족 및 정령들과 경계를 맞대고 동족은 하루가 멀다 하고 전쟁을 벌이고 있다고 했다.

그때 활을 든 한 여성 엘프가 엘 라이린의 눈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도 아는 이였다. 그녀의 딸인 엘 샤난이었다.

“세계수의 은혜가 당신 앞에 있기를.”

“세계수의 은혜가 당신 앞에 있기를. 샤난, 여기는 어쩐 일이니?”

가늘고 앳된 외모를 지닌 엘 샤난은 엘프답지 않게 호전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자신의 용맹함을 통해 세계수의 은혜를 받는 많은 엘프의 존경을 받았다.

또한 엘 샤난은 붉은 핏빛의 대지에 영지를 가지고 있는 입에 담기도 싫은 악마가 지휘하는 마족들과 싸워 몇 번이나 그녀들을 격퇴한 전적도 있었다.

“어머니. 안테 로리와 커티삭의 일은 들으셨어요?”

엘 샤난의 말에 라이린의 안색이 살짝 어두워졌다.

붉은 핏빛의 대지에 있는 엘프의 마을인 아멘드마와 코르다의 책임을 맡고 있는 하이 센티널인 그녀에게 있어 가장 큰 근심거리가 바로 그 마족들의 마을이었기 때문이었다.

몇 달 전, 마족과 수인들이 콜리안의 숲에서 큰 전투를 벌였고, 그 전투에서 마족이 승리하면서 수인들은 자신들의 마을인 안테 로리를 빼앗겼다.

그로 인해 수인족의 상급 대장이자 십이멀인 리셴르나가 움직임을 보이면서 한바탕 큰 전쟁이 일어날 뻔했지만, 마족의 고위 군대가 붉은 핏빛의 대지에 모습을 드러내며 아직까지 큰 충돌 없이 흘러왔다.

하지만 갑작스레 등장한 마족의 마장기와 고 랭크 병사들로 이루어진 군대에 엘프들도 화들짝 놀란 건 마찬가지였다.

그 여파로 엘프들의 수도 트오세에서 장로 회의가 열렸고, C등급 마장기 두 대가 아멘드마 북쪽에 위치한 엘프들의 요새 토갈론에 배치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심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 마족들의 도시인 안테 로리와 커티삭은 붉은 핏빛의 대지에 있는 엘프들과는 비교를 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발전을 거듭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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