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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그너스 대륙전기-44화 (44/522)

# 44

리그너스 대륙전기 044화

<영지 정보(Status)>

안테 로리(개척 도시[E등급]) - ‘붉은 핏빛의 대지’

인구 - 5,371

보유 리스 - 12,940

보유 식량 - 32,749

병사 - 정예 오크 전사(E+) 23, 고블린 투척병(F) 30.

내정 건물 - 식량 저장고 8, 중형 식량 저장고 2, 시장 6, 주점 1, 대시장 2

군사 건물 - 망루 1, 병영 1

리스 수입 - 3,310 / 월

식량 수입 - 4,876 / 월

호는 남은 두 개의 E급 던전도 모두 공략을 끝내고 안테 로리로 돌아왔다.

계속된 던전 공략으로 인해 남은 병사의 수가 서른도 되지 않았지만 던전을 클리어하고 얻은 전리품을 생각하면 큰 걱정이 들지는 않았다.

어쨌든 던전을 클리어하고 얻은 전리품 덕분에 안테 로리에서는 정예 오크 전사의 개발을 마치고 훈련에 들어가 있었고, 현재 다크 엘프 궁병 양성과 관련된 연구가 한창 진행 중이었다.

적지 않은 지출에도 불구하고 안테 로리는 아직 충분한 리스와 식량을 보유하고 있었다.

“후우…….”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니 여느 때와 같이 날씨는 맑았다. 성의 집무실에서 밖을 바라보니 오크들이 커다란 늑대에 탑승한 채로 마을 주위를 순찰하는 모습이 들어왔다.

“늑대 탑승 연구도 끝내야 할 텐데.”

그들이 타고 다니는 대형 늑대는 마을 순찰을 위해 타고 다니는 일종의 이동 수단이었다. 그리고 그와 관련된 연구를 끝내고 나면 보병이 아닌 기병을 양성할 수 있었다.

당연히 기술 개발이 끝나기 않았기에 늑대 기수를 양성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앞으로의 일을 위해서라면 기병대 역시 필요했지만 지금 당장은 아니었다.

“흐음……. 도착했나?”

그렇게 밖을 바라보던 도중 호의 눈에 안테 로리를 향해 빠른 속도로 달려오고 있는 사두마차가 들어왔다.

호가 옆에 있는 리아 캬베데를 향해 물었다.

“누가 탔는지 볼 수 있나?”

“커다란 자주색 망토를 걸친 인간 여성입니다. 옆에는 오크 한 마리가 타고 있는 것 같습니다. 냐앙.”

“마차에 그려져 있는 문장은?”

“활을 든 여인의 모습입니다. 냥.”

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망설임 없이 대답을 하는 것을 보면 그의 눈에는 흐릿하게 보이는 모습이 그녀의 눈에는 굉장히 선명하게 보이는 모양이었다.

어찌 되었든 활은 든 여인이 그려진 문장은 호가 기다리는 사람이라는 것은 의미했다. 바로 아르테미스 상단이었다.

가상현실게임 리그너스 대륙전기에서 상단의 역할은 유저들이 급하게 필요한 아이템들을 판매해 주는 존재였다. 물론, 비싸기도 상당히 비쌌다.

또한 이들은 유저가 딱히 필요하지 않는 던전의 전리품들을 구매해 주기도 했다.

‘여기서도 상단이 실제할 줄은 생각도 못 했는데…….’

이런 상단의 존재는 리그너스 대륙전기를 유저들에게 엄청난 도움이 되었다. 특히 고 랭크 병사들의 양성에 필요한 특산품을 구입하기 위해서는 상단과의 좋은 관계는 필수나 다름없었다.

안테 로리의 입구에 도착해 오크들의 검문을 받는 사두마차를 보며 호는 피식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아무리 이 세계가 리그너스 대륙전기의 판박이라고는 하지만 종족을 가리지 않고 거래를 하는 상단들이 진짜로 있을 줄은 생각조차 못했다.

잠시 후, 호는 한 여인이 영주성 앞에서 오크의 손을 잡고 마차에서 내리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여인이 작은 건지, 혹은 오크의 덩치가 큰 것인지 여인의 손은 오크의 손가락 세 개를 잡는 것도 힘겨워 보였다.

“이제 내려가야 할 것 같습니다. 냥.”

리아 캬베데의 말에 호는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아르테미스 상단. 호가 안테 로리에서 얻은 전리품들을 처리해 줄 상단이었다.

페릴 예노스가 영주로 있는 커티삭에서는 호에게 상단을 호출할 만한 권리가 없었기에 던전을 공략하고 얻은 전리품에 손도 댈 수 없었다. 하지만 안테 로리에서는 달랐다. 이곳에서의 그는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존재였다.

“이렇게 만나게 되어 반갑습니다. 안테 로리의 지배자이자 소환자이신 윤호 님. 제 이름은 레드 벨벳이라고 합니다.”

영주성의 응접실에서 한 여인이 살짝 무릎을 굽혀 안테 로리의 영주인 호에게 예를 표했다.

아르테미스 상단에서 나왔다는 그녀의 이름은 레드 벨벳. 이름이기보다는 가명, 혹은 애칭이라는 표현이 맞을 것 같았다.

그리고 호는 그런 레드 벨벳의 예를 당연하게 받아들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한때는 제국의 황제였던 몸. 저런 레드 벨벳의 행동이 전혀 부담스럽다거나 어색하지 않았다. 그런 호의 반응에 레드 벨벳의 눈에 살짝 이채가 흘렀다.

“저희 아르테미스 상단은 저희와 거래를 하시고자 싶으신 윤호 님의 제안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제가 찾아오게 되었습니다.”

말과 함께 레드 벨벳은 화사한 미소를 호에게 선사했다. 아름다운 모습이었지만, 호는 저 웃음이 상단의 고객에게만 지어주는 웃음이라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호는 나름 영주로서의 위엄을 가장하기 위해 무표정한 모습과 함께 고저 없는 목소리를 유지한 채 리아 캬베데를 향해 말했다.

“물건을 가져오도록.”

“네.”

곧 호가 던전에서 얻은 잡다한 전리품이 응접실에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호와 리아 캬베데가 사용할 D등급 무기 두 개를 제외한 전부였다.

잘 벼려진 검들과 방어구, 그리고 다양한 전리품들. 일명 잡템들을 보는 레드 벨벳이 무표정한 얼굴을 지어 보였다.

호의 표정이 연기에 가까웠다면 전리품들을 바라보는 레드 벨벳의 얼굴은 정말로 무관심해 보였다.

뭐, 예상했던 반응이었다. E, F급 던전에서 나온 전리품이 좋아봤자 거기서 거기였다. 적어도 상단의 인물들이 우와! 하고 관심을 가질 만한 아이템들은 최소 B급 던전 이상에서부터 나왔다.

그나마 D급 던전인 지하 수렁에서 나온 전리품은 만 리스 정도의 가치가 있어 보였지만, 이번 던전 공략에 얻은 물품 중 그 정도로 가치가 높은 아이템은 전혀 없었다.

“이것을 매각하실 생각이십니까?”

“그렇다.”

“그럼 잠시 감정을 해도 되겠습니까?”

호가 고개를 끄덕이자 레드 벨벳이 물품들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상단에서 나온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듯 물건을 감정하는 그녀의 눈빛은 굉장히 진지했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레드 벨벳이 자그맣게 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그 모습에 호는 그녀가 물건의 감정가를 결정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만칠천 리스.’

전리품들에 대한 호의 감정가는 만칠천 리스. ‘리그너스 대륙전기’를 플레이한 경험에서 나온 가격이었다. 몇 번이나 아이템들을 살펴보고 살펴봤지만, 아무리 많이 받아봤자 만팔천은 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래도 최소한 만육천 리스는 받을 생각이었다.

그리고 그 돈이면 안테 로리를 더욱더 크게 발전시킬 수 있었다.

잠시 후 레드 벨벳의 붉은 입술이 떨어졌다.

“제 짧은 식견으로는 이 모든 병장기의 가치는 만팔천 리스라고 생각됩니다. 어떻습니까?”

“콜.”

그녀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호가 대답했다. 그의 예상가보다 천 리스나 더 많은 가격이었다. 그리고 천 리스는 E+랭크의 정예 오크 전사를 백 마리나 양성하고도 남는 자금이었다. 물론 유지비는 제외한 가격이었지만.

거침없이 나오는 호의 대답에 레드 벨벳의 붉은 눈썹이 살짝 움직였다. 너무나도 순순히 거래를 받아들인 호의 모습이 무언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행동이었다.

하지만 이미 거래는 끝났고, 아르테미스 상단은 물건의 대금으로 만팔천 리스를 호에게 지급해야 했다.

‘생각보다 별거 없네. 아이템의 등급이 낮아서 그런가?’

어떻게든 물건 값을 깎고, 올리고 하는 치열한 설전이 펼쳐질 줄 알고 이런저런 멘트를 준비했는데 전부 필요가 없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아르테미스 상단과의 거래는 만족, 대만족이었다. 곧 아르테미스 상단의 인부들이 들어와 병장기들을 챙기기 시작했고, 레드 벨벳이 돈 꾸러미를 리아 캬베데에게 건네주었다.

“첫 거래가 깔끔하게 진행되어 정말로 감사드립니다.”

“나야말로. 앞으로 종종 부탁하도록 하지.”

안테 로리의 던전 공략은 끝났지만, 붉은 핏빛의 대지에는 아직도 많은 수의 던전이 남아 있었다.

그리고 돈 꾸러미를 살펴보던 리아 캬베데가 얼굴에 이채를 띠며 말했다.

“냐앙? 만팔천오백 리스인데요?”

거래 대금은 만팔천 리스. 하지만 레드 벨벳이 준 돈은 그보다 오백리스가 더욱 많았다.

리아 캬베데의 말에 호는 의아한 표정으로 아르테미스 상단의 레드 벨벳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호의 시선을 받은 그녀는 살짝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앞으로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를 바라는 아르테미스 상단의 마음입니다. 그리고…….”

그녀의 대답에 호는 고개를 끄덕이다가 다시 한번 레드 벨벳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말이 아직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정확하지는 않습니다만 아트리그에서 병사를 준비한다는 소문이 있습니다. 오백 리스로 양성할 수 있는 병사는 많지 않겠습니다만, 안테 로리의 방어에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넣었습니다.”

“뭐?!”

레드 벨벳의 말에 호는 자신도 모르게 몸을 벌떡 일으켰다. 아트리그. ‘붉은 핏빛의 대지’와 경계를 맞대고 있는 영토 ‘바리안스의 대지’에 위치한 수인족의 도시였다.

* * *

“하아……. 돌겠네.”

아르테미스 상단이 떠나고 집무실로 돌아온 호는 어깨를 짓누르는 중압감에 머리를 흔들었다.

아르테미스 상단과의 거래는 만족스러웠다. 지금 당장은 필요가 없는 아이템을 판매해 상당한 거금을 획득했으니 말이다. 이 돈은 앞으로 안테 로리의 발전에 큰 힘이 될 터였다.

얻은 것은 이것만이 아니었다. 레드 벨벳은 또 하나의 중요한 정보를 호에게 가져다주었다.

아트리그의 심상치 않은 분위기. 다만, 레드 벨벳은 정확하지는 않다고 말을 덧붙이기는 했다.

“정확하지 않을 리가 없지.”

그러나 호는 아르테미스 상단의 말이 사실일 거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정확하지도 않는 정보에 돈에 죽고 돈에 사는 상단이 첫 거래라는 이유로 오백 리스의 자금을 선물로 주었을 리 없었다.

레드 벨벳이 추가적으로 준 오백 리스에는 어떻게든 아트리그의 공격에서 버티고 버텨 자신들과의 거래를 계속 이어나가자는 의미가 담겨 있는 게 분명했다.

“아트리그에서 전쟁 준비를 하고 있다는 것은 사실일 가능성이 높아.”

갑작스레 허탈한 느낌이 들었다. 기껏 뭔가 궤도에 오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또 하나의 적이 나타난 셈이기 때문이었다.

예상 못 한 일은 아니었다. A등급 영웅인 리아 캬베데가 영주로 있던 안테 로리는 원래부터 수인들의 마을이었다. 당연히 그들이 자신들의 영지를 빼앗기고 가만히 있을 리 없었다.

호가 안테 로리의 영주가 된 지는 두 달이 조금 넘었다. 예전의 경험을 밑바탕으로 최대한 발전을 시키기는 했지만, 원체 발전도가 꽝인 도시였던 만큼 전과 비교해 눈에 띌 정도로 달라진 점은 없었다.

게다가 전쟁이 일어나면…….

“영웅이 부족해. 출전할 수 있는 장수는 고작 나와 리아 캬베데뿐이잖아.”

한시현은 제외해야 했다. 전쟁이라는 것을 전혀 알지 못하는 그녀에게 병사를 맡기느니 차라리 오크와 다크 엘프 궁병만 출전시키는 게 차라리 나았다.

전쟁에서 병사들을 지휘할 수 있는 지휘관의 수는 상당히 중요했다.

리아 캬베데가 이끌던 수인과의 전투만 봐도 그랬다. 그녀는 분명 마족에 비해 더욱 많은 병사를 지휘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가 이끌었던 수인들은 허무하게 패배했다. 이유는 원거리 병종인 다크 엘프 궁병의 존재도 있었지만, 수인족 측에 병사를 지휘할 수 있는 영웅이 없었다는 것도 한몫했다.

다만, 한시현과 같이 전쟁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지휘관이라면 차라리 있으나마나였다. 그런 지휘관들은 오히려 병사를 혼란스럽게 하고 사기를 낮출 뿐이었다.

“…….”

호는 양손을 몇 번 쥐었다가 펴기를 반복했다. 이런 위기는 또 하나의 기회가 될 수 있었다. 리아 캬베데와의 전쟁에서처럼 말이다.

하지만 이 세계는 게임이 아닌 현실. 전쟁의 패배는 곧 죽음을 의미했다. 아니면 죽음보다 더한 고통을 받거나.

“바로 준비해야겠어.”

그렇다고 눈만 뜨고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언제일지는 모르겠지만, 아트리그의 수인 영웅은 분명 안테 로리를 탈환하기 위해 공격을 해 올 게 분명했다. 그때를 대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해야만 했다.

그리고 가장 먼저 호가 시작한 것은 커티삭의 지배자 페릴 예노스에게 편지를 쓰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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