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3
리그너스 대륙전기 043화
퍼어억!!!
“끄아악!!!”
묵직한 펀치에 얻어맞은 남자가 비명과 함께 허공으로 붕 떠올렸다. 그리고 잠시 후, 우당탕하는 소리와 함께 목이 꺾여 죽은 남자의 모습을 보며 호가 쯧 하고 혀를 찼다.
F급 던전의 준보스급 몬스터였지만, A등급 영웅인 리아 캬베데를 당해내지는 못했다.
“무력 능력 276다운 솜씨야. 제법인데?”
“묘인들의 부족 중 하나인 블랙 캣은 무투술로 굉장히 유명합니다. 냥. 그리고 저는 그 무투술의 계승자 중 하나입니다.”
“알아. 그리고 너희의 그 격투술이 마르틴.H한테서 시작되었다는 사실도 알고 있지.”
“어…… 어떻게 그걸?”
호의 말에 리아 캬베데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묘인족의 격투술이 인간에게서 전파되어 발전됐다는 것을 아는 이는 그리 많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호가 어떻게 그런 사실을 알고 있는가에 대해서는 크게 의문을 가지지 않았다.
눈앞에 있는 남성은 그녀의 오너였으며 무슨 일이 있어도 명령을 따라야 하는 존재였다.
“으아악!”
“취이익! 옥스 아너!”
“호 님을 위하여!!!”
도적 소굴에서의 전투도 끝이 보이고 있었다. 안테 로리에 자리 잡은 이 도적단은 호가 지휘하는 정예 오크 전사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호의 클래스로 인해 공격력, 방어력이 뻥튀기 된 정예 오크 전사는 D랭크 병종에 가까울 정도의 능력치를 보이고 있었다.
게다가 호의 부장은 A등급 영웅인 리아 캬베데였다. 너클을 낀 그녀의 무투술은 일개 도적단이 당해내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다.
<플레이어 정보(Status)>
1. 이름 : 윤호
2. 성별 : 남(27)
3. 종족 : 인간
4. 소속 : 마족
5. 레벨 : 30
6. 직업 : 상급 사관(D)
7. 세부 능력
통솔 : 100(+10)/ 100(+10)(C)
무력 : 50(+4) / 50(+4)(D)
지력 : 40 / 50(D)
정치 : 30 / 30(E)
매력 : 50 / 50(D)
카리스마 : 50 / 50(D)
8. 특성 : 부대 강화, 통솔 상승(소)
9. 스킬 :
<침착하라!> D랭크
많은 전투를 경험한 상급 사관은 다양한 악조건 속에서도 부대의 병사들이 전투에 집중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능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효과 : 병사들이 혼란 및 이상 상태에서 쉽게 빠져나옵니다. 또한 부대의 공격력을 10% 상승시킵니다.
10. 보유 경험치 : 1,616
‘역시 던전 공략이 최고로군.’
자신의 정보창을 보며 호는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이번 원정을 통해 D등급 클래스인 상급 사관이 올릴 수 있는 능력 수치를 전부 한계치까지 올릴 수 있었다. 거기에 보유 경험치도 1,600이 넘었다.
“이제 슬슬 C등급 클래스를 생각해 봐야겠는데…….”
지금 당장에라도 전직할 수 있는 클래스가 있기는 했다. 상급 사관의 상위 클래스인 전술가라는 직업이었다. 통솔과 지력 수치에 메리트를 받는 전술가는 대규모 전투에서 뛰어난 위력을 자랑한다고 ‘관우는 내 여자’의 공략본에 나와 있었다.
하지만 호는 전술가로 전직을 할 생각이 없었다. 같은 C등급 클래스지만, 전술가보다 세부 능력에 더욱 우대를 받는 클래스가 존재했기 때문이었다.
바로 ‘전쟁 군주’라는 클래스였다.
통솔과 지력은 물론이고 무력과 매력 능력에도 플러스를 받는 클래스인 전쟁 군주는 C등급 클래스지만 B등급 클래스와 맞먹을 정도로 뛰어난 유저들 사이에서는 일명 레어 클래스로 통하는 직업이었다.
‘당연히 아무나 전직할 수 있는 것도 아니지.’
그런 전쟁 군주로 전직을 하려면 몇 가지 까다로운 조건을 만족시켜야만 했다. 그리고 호는 공략본을 통해 전쟁 군주의 전직 조건이 무엇인지 쉽게 알아낼 수 있었다. 다행히도 호는 그중 몇 가지를 이미 만족시킨 상황이었다.
전쟁 군주로 전직을 하기 위해서는 먼저 한 도시의 영주여야 했고, 휘하에 영웅 둘을 부하로 보유하고 있어야 했다.
그리고 호는 안테 로리의 군주이며 리아 캬베데와 한시현을 부하로 보유하며 조건들을 만족한 상황이었다.
또한 천 명 이상의 병사를 지니고 있어야 했는데 이는 시간이 지나면 해결할 수 있었다.
“문제는…….”
호는 ‘관우는 내 여자’의 공략본을 열어 다시 한번 전쟁 군주의 전직 조건을 확인했다. 그러고는 한숨을 푸욱 내쉬었다.
전쟁 군주의 전직 조건 중 마지막 내용 때문이었다.
<전쟁터에서 만 명의 적을 물리쳐야 합니다.>
그리고 호는 이 세계에서 이제까지 3,421명의 적을 물리쳤다. 토벌한 던전의 몬스터도 포함된 숫자였다. 하지만 조건의 숫자 중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는 것은 다름 아닌 수인들이었다.
어쨌든 만 명의 적을 물리쳐야 한다는 조건이 있는 이상 지금 당장 전쟁 군주로 전직을 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렇다고 다른 상위 등급의 클래스로 전직을 했다가 전쟁 군주로 클래스를 체인지하는 것도 불가능한 일이었다. 가상현실게임 ‘리그너스 대륙전기’ 내에서 유저가 클래스를 바꾸기 위해서는 100만 이상의 경험치를 필요로 했기 때문이었다.
“이건 뭐, 엘프족과 전쟁을 벌여도 불가능하겠어.”
붉은 핏빛의 대지에 엘프의 마을 두 개가 있다고는 하지만, 그들의 마을이 커티삭이나 안테 로리와 발전도가 비슷하다는 것을 생각하면 많아도 이천 정도의 병사를 보유하고 있는 게 전부일 것 같았다.
어쨌든 마을 하나를 통째로 불태우지 않는 이상은 전쟁 군주의 전직 조건인 만 명의 적을 물리치라는 것은 달성하기가 쉽지 않을 것 같았다.
어차피 급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었다. 지금 당장 C등급 클래스로 전직을 한다 하더라도 지닌 경험치가 얼마 되지 않아 능력치를 크게 상승시킬 수도 없었다.
띵동.
-F급 던전 무적 파워 도적단 소굴의 ‘파레드’를 물리쳤습니다.
-전투 성과를 결산 중입니다. 3…… 2…… 1. 결산 완료. 이번 전투의 성과 등급은 B랭크입니다. 경험치를 140 획득했습니다.
-총지휘관으로 직접 던전을 클리어했습니다. 20%의 경험치를 추가적으로 획득합니다.
-F급 던전 무적 파워 도적의 소굴을 완벽하게 클리어했습니다. 경험치를 150 획득했습니다.
호가 전직에 관해 생각을 하는 동안 리아 캬베데와 정예 오크 전사들에 의해 도적 떼가 모조리 쓸려 버린 모양이었다.
눈앞으로 떠오르는 메시지를 보며 호는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F급 던전을 공략한 대가치고는 만족스러운 수치였다.
“자! 전리품을 챙겨라!!!”
“취이익!!! 췩!”
호의 명령에 따라 전투에서 살아남은 정예 오크 전사들이 커다란 콧김과 함께 무적 파워 도적단의 소굴을 뒤지기 시작했다.
도적단의 전투에서 가장 큰 활약을 보였던 리아 캬베데는 어느새 호의 뒤로 이동해 서 있었다.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그녀의 모습은 혹시나 하는 위험을 방지하기 위해 경계를 하는 것 같았다.
“냥냥냥.”
오너 시스템이 발동된 이후 호에 대한 리아 캬베데의 호감도는 100+. ‘무조건적인 충성’이 발휘된 상황이었다. 그것을 증명하기라도 하듯 그녀는 호의 명령에 따라 안테 로리 주위의 던전 공략에서 그 누구보다도 뛰어난 활약을 보여줬다.
띵동.
-던전의 전리품 수급이 끝났습니다.
-F급 던전 ‘무적 파워 도적단의 소굴’에서 920리스와 1,850의 식량을 획득했습니다.
-F급 던전 ‘무적 파워 도적단의 소굴’에서 아이템…….
수색이 끝나자 리스와 식량, 그리고 잡다한 아이템을 획득했다는 메시지가 계속해서 올라오기 시작했다. F급 던전이라 그런지 얻을 수 있는 전리품이 많은 편은 아니었지만, 아이템까지 감안하면 수확이 나쁜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안테 로리 주위에 있는 F급 던전은 방금 전 공략에 성공한 이 무적 파워 도적단 소굴만이 아니었다.
“좋아. 그러면 다음 던전으로 이동하자.”
“취익! 췩!!!”
공략이 끝났으면 이제는 또 다른 던전을 공략하기 위해 이동을 할 차례였다.
그렇게 계속된 던전의 공략으로 안테 로리의 주변에 있는 던전 중 남은 것은 단 두 개뿐. 둘 다 E급 던전이었다.
던전을 공략하기 위해 병사들을 이끌고 나온 지 벌써 보름째. 이 정도의 속도라면 일주일 내에 안테 로리 주위의 모든 던전을 클리어하겠다는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확실히 리아 캬베데의 존재가 컸다. 그녀의 존재로 인해 던전을 공략하면서 병사들의 피해를 크게 줄일 수 있었고, 보스의 공략도 가능했기 때문이었다.
‘딱히 안테 로리에서 문제가 일어난 것 같지는 않고…….’
영주 대리인 시현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나름대로 잘 지내고는 있는 모양이었다. 자신에게 보고가 없는 것을 보면 큰 문제도 없는 것 같았다.
다행히 조금 우려했었던 엘프들의 침입도 없었다. 안테 로리 주위를 돌아다니면서 식량 저장고 근처의 수인들이 자신들을 향해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하는 모습을 보기만 해도 알 수 있었다. 만약 엘프들의 침입이 있었다면 농사를 짓는 수인들은 코빼기도 보지 못했을 터였다.
‘던전 공략을 마치면 바로 연구 개발에 들어가야겠어.’
병사들과 함께 수인들의 논밭을 지나가면서 호는 저 멀리 엘프들이 살고 있는 영지가 있는 방향을 바라보았다.
계속된 던전의 공략으로 인해 자금은 충분히 마련할 수 있었다.
호는 던전 공략을 마치고 나면 가장 먼저 E+랭크의 정예 오크 전사와 E랭크 병종인 다크 엘프 궁병의 연구에 들어갈 생각이었다.
그 두 병종의 개발이 완료되면 딱히 엘프의 도발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었다.
‘커티삭에서의 연구가 공유가 되면 좋을 텐데…….’
그렇게만 되면 시간과 자원을 두 배로 낭비할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어떤 이유에서인지는 모르겠지만 페릴 예노스가 영주로 있는 커티삭과 그가 영주로 있는 안테 로리에서는 개발한 기술이 공유가 되지 않았다.
몇 가지 의심 가는 이유가 있기는 했지만 정확한 사실은 아직 알 수 없었다.
어쨌든 그 두 병종만 훈련시킬 수 있다면 엘프가 공격해 올 경우 야전은 무리더라도 농성 정도는 충분히 할 수 있었다.
물론, 가장 베스트는 그들이 커티삭이나 안테 로리를 공격하지 않는 것이었다. 하지만 가능성이 그리 높은 일은 아니었다.
“자연과 평화를 사랑하는 종족은 개뿔. 머리 긴 간디 같은 놈들.”
호는 자신이 플레이했던 가상현실게임 ‘리그너스 대륙전기’에 등장하는 엘프들을 떠올렸다.
제작사의 설정에 따르면 엘프는 자연과 평화를 사랑하는 종족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숲을 건드린다거나, 나무를 꺾는다거나, 혹은 자연을 훼손시키거나 자신들의 마음에 들지 않는 존재에 대해서는 너무나도 쉽게 화살을 날리는 존재였다.
자연은 사랑하지만 평화를 사랑하는 종족은 결코 아니었다.
더군다나 엘프는 천족과 함께 마족에 대해서는 이빨을 부득부득 가는 종족이기도 했다.
“마족이 딱히 할 말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커티삭에 있는 엘프 노예만 봐도 그들이 어째서 마족들에게 이빨을 부득부득 가는 지 알 수 있었다. 거의 헐벗은 채 생활하는 그들의 모습과 일과에는 호조차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하루건너 목숨을 끊는 노예들이 나올 정도였으니 대우가 얼마나 열약한지는 굳이 말할 필요가 없었다.
어쨌든 붉은 핏빛의 대지에 살고 있는 엘프들은 언젠가 커티삭과 안테 로리에 자신들의 생명수를 심으려고 들 게 분명했다. 마족이 피와 살육을 좋아하는 종족인 것처럼 그것이 그들의 본능이었다.
그리고 그게 오늘이 될지 아니면 내일이 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었다.
설령 엘프들이 먼저 공격을 하지 않더라도 커티삭의 지배자인 페릴 예노스 역시 엘프들을 점령하기 위해 병사를 일으킬 터였다. 그리고 그때를 위한 대비는 지금부터라도 해야 했다.
“최소 D랭크의 병사 정도는 양성해야지.”
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높은 랭크의 병사는 전쟁에서 그의 생존율을 더욱 높여줄 게 분명했다. 하지만 그것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안테 로리는 아직 발전이 필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