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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그너스 대륙전기-42화 (42/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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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그너스 대륙전기 042화

“백구! 이거 고양이 언니한테 가져다줘.”

“멍!”

마치 애완동물을 부리듯 견인족 하나를 불러 음식 접시를 건네는 한시현의 모습에 호가 손을 내뻗으며 말했다.

“잠깐. 그거 내가 가져다줄게.”

“고양이 언니에게 가보시려고요?”

“응. 조금 이따가.”

호가 대답했다. 한시현이 말하는 고양이 언니란 리아 캬베데를 말했다.

“그 언니 조금은 불쌍해요…….”

하루, 한 시간이 멀다 하고 오크들에게 매질을 당하는 것을 봤기 때문일까? 한시현의 말에서 리아 캬베데에 대한 연민의 감정이 느껴졌다.

수인들과 전쟁을 경험한 시진이었다면 다른 반응을 보였을 테지만 시현은 이 세계의 무서움은 알아도 아직 전쟁과 적에 대해서는 모르는 소녀였다. 그리고 호는 그런 시현의 순수함을 나름대로 좋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래, 불쌍하지. 그래서 오늘은 한번 이야기를 해보려고.”

“어떤 이야기요?”

“우리랑 함께하자는 그런 이야기?”

“우와?! 진짜요?!”

“물론이지. 그 언니가 은근히 능력이 좋거든. 이 영지의 전 영주이기도 했고.”

호는 미소와 함께 어깨를 과장스럽게 으쓱이며 말했다. 하지만 그런 호의 눈동자는 전혀 웃지 않았다. 그리고 한시현은 호의 변화를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슬슬 오너 시스템을 사용할 때가 됐네.’

오크들의 매질과 계속된 노예 생활로 인해 리아 캬베데의 마음은 완전히 꺾이기 일보 직전이었다. 시스템을 통해 확인해 본 결과 조만간 하루, 이틀 내에 그녀에게 오너 시스템을 적용시킬 수 있을 것 같았다.

“맞아요. 다들 대단한 언니라고 하던데, 그 언니가 도와주면 정말 좋을 것 같아요.”

시현이 눈을 크게 뜨고는 재잘재잘 말했다.

그렇게 식사를 마치는 동안 한시현과 어울려 이야기를 나누던 호는 아직 따뜻한 온기가 남아 있는 식사를 들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러면 시현이가 관심 있어 하는 고양이 언니를 설득하러 가볼까?”

“꼭. 꼭 설득해 주세요.”

“물론이지.”

파이팅 포즈를 짓는 시현을 보며 호는 보일 듯 말 듯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러고는 자신이 머무는 영주성으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리아 캬베데는 그곳의 지하 감옥에 묶여 있었다.

“취익. 이곳입니다. 췩!”

정예 오크 전사의 안내를 받아 안테 로리의 지하 감옥에 도착한 호는 자신의 손 위에 있는 음식 접시를 바라보았다.

주점을 떠날 때쯤에는 따뜻하던 접시의 온기는 이곳으로 향하는 동안 어느새 사라지고 없었다.

“열어라.”

“취익!! 췩!!!”

호의 명령에 따라 오크들이 거친 숨소리와 함께 지하 감옥의 문을 열기 시작했다.

그그긍거리는 쇳소리와 함께 지하 감옥의 문이 열리는 순간 차가운 냉기가 호의 몸을 휘감았다. 그 감옥의 한구석에서 리아 캬베데가 무릎에 고개를 파묻은 채 앉아 있었다.

띵동.

-리아 캬베데의 마음이 100% 꺾였습니다. 오너 시스템의 사용이 가능합니다.

“굳이 내일까지 기다릴 필요가 없겠네.”

호가 죽은 듯 가만히 있는 리아 캬베데의 정보를 살펴보고는 말했다.

아직 오너 시스템을 사용할 때까지 시간이 남아 있을 줄 알았는데, 정예 오크 전사들의 매질과 고독한 감옥의 생활이 생각보다 빠르게 그녀의 마음을 꺾어버린 모양이었다.

“…….”

갑작스러운 인기척에 리아 캬베데가 살며시 눈을 뜨더니 길쭉한 타원형의 노란색 눈동자로 호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묘인족 특유의 날카로움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큼지막하게 흔들리는 그녀의 눈동자는 호를, 아니, 정확히 말하면 호의 옆에 서 있는 오크들을 두려워하는 모양새였다.

그리고 호가 음식이 담긴 접시를 그녀의 앞에 내려놓으며 말했다.

“먹어라.”

“……냥.”

명령과도 같은 호의 말에 리아 캬베데가 조심스럽게 자신의 얼굴을 접시에 가져다 대었다. 그러고는 조금씩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참 그 모습을 바라보던 호는 자신의 손목에 새겨진 숫자를 바라보았다.

숫자 1. 오너 시스템을 한 번 사용할 수 있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지금 리아 캬베데에서 오너 시스템을 사용하면 적어도 몇 달은 지나야 다시 오너 시스템을 사용할 수 있었다.

‘그래도 A등급 영웅을 부하로 부릴 수만 있다면 남는 장사지.’

호는 그렇게 생각을 하고는 리아 캬베데를 바라보았다.

“수인족의 A등급 영웅 리아 캬베데. 오너의 이름으로 명령을 내린다.”

갑작스런 호의 목소리에 밥을 먹고 있던 리아 캬베데가 고개를 들어 올렸다.

“내 이름은 윤호. 너의 영혼에 나의 이름을 새겨 넣어라, 리아 캬베데.”

그 순간 리아 캬베데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호의 손에 새겨져 있던 숫자는 어느새 사라지고 없었다.

띵동.

-꺾인 리아 캬베데의 마음속에 오너의 이름이 새겨지기 시작합니다. 그녀는 앞으로 소환자 ‘윤호’를 오너로 따르게 됩니다. 리아 캬베데의 영혼에 새겨진 오너의 이름은 특수한 상황이 아니면 지워지지 않습니다.

“……좋아.”

그리고 나타나는 메시지를 보며 호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메시지는 자신이 A등급 영웅 리아 카베데를 손에 넣었다고 말해주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합류는 앞으로 자신에게 엄청난 도움이 될 터였다.

할 일이 많았다. 먼저 그녀를 데리고 안테 로리 주변의 던전의 공략에 나서야 했다.

하지만 당장 떠날 수는 없었다. 쇠약해진 그녀의 체력을 회복시키는 게 급선무였다.

“리아 캬베데를 깨끗하게 씻겨서 영지의 집무실로 보내도록. 그리고 안테 로리의 지하 감독은 오늘부로 비운다. 너희들로 부대에 합류하도록.”

“취이익!”

감옥 내에 있던 정예 오크 전사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중 두 마리는 리아 캬베데의 양팔을 붙잡고는 끌듯이 어디론가 데려가고 있었다. 그 뒤를 따라 호도 지하 감옥을 빠져나왔다.

차가운 냉기가 가득한 지하 감옥은 앞으로 쓸 일이 없었다. 새로운 영웅이 포로로 붙잡히지 않는 이상은 말이다.

* * *

“흐음.”

깔끔하게 씻은 뒤 수인족의 옷을 챙겨 입고 집무실에 나타난 리아 캬베데를 보며 호는 낮게 소리를 내었다.

눈빛이 살아 있는 리아 캬베데는 호가 지하 감옥에서 봤던 모습과는 완전히 딴판이었다. 불과 그 짧은 시간 동안 그녀는 온전히 A등급 영웅다운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무력 수치 276. 현재의 그 정도는 단숨에 죽일 수 있는 무력을 지니고 있는 A등급 영웅이 앞에 서 있었지만 호는 아무 걱정도 들지 않았다. 그만큼 오너 시스템을 믿기 때문이었다.

그녀의 영혼에 새겨진 호의 이름이 지워지지 않는 한 그녀는 앞으로 그의 명령을 따를 터였다.

“언제까지 서 있을 생각이지?”

“……앉아도 될까요?”

그녀의 눈동자에 담긴 알 수 없는 조심스러움을 느끼며 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오너 시스템의 영향을 받았는지 확실히 리아 캬베데는 자신을 마스터로 여기고 있는 것 같았다.

이제부터는 그녀의 능력을 이용해 빠른 속도로 안테 로리를 발견시켜 나가야 했다.

“호 오빠!”

집무실 밖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호의 이름을 불렀다. 시현이었다. 그리고 다다다거리는 소리와 함께 문 밖에서 멈춘 인영이 잠깐 무언가를 하는 것 같더니 곧 문을 열고 들어왔다.

집무실 안으로 들어온 그녀의 얼굴에는 기대감이 가득 담겨 있었다.

“우와. 진짜네?!:

그리고 호와 리아 캬베데의 얼굴을 번갈아 보던 시현이 놀라 탄성을 터뜨렸다. 정말로 호가 리아 캬베데를 설득할 줄은 몰랐던 모양이었다.

“안녕하세요? 전 한시현이라고 해요.”

“…….”

털의 윤기가 좔좔 흐르는 리아 캬베데를 향해 한시현은 벌써부터 친근감을 보이고 있었다. 주점에서 듣기로 그녀와 시진은 원래의 세계에서 살았을 때 애완동물로 고양이를 한 마리 키웠다고 했다.

“주점은?”

“아, 잠깐 백구한테 맡겼어요. 찾아오는 영웅도 없고 아직 식사 시간도 좀 남았거든요. 그, 괜찮…… 죠?”

“백구? 아아.”

주점에서 봤던 흰털 의 견인을 떠올리던 호는 알았다는 뜻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잠깐 자리에서 이탈한 것 가지고 뭐라 하고픈 생각은 없었다. 다른 영웅이나 성인이라면 모를까, 그녀는 아직 열넷에 불과했다.

그리고 호는 시현이 조심스러운 발걸음으로 리아 캬베데의 주위를 빙글빙글 도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마치 그녀를 관찰하는 것 같은 행동에 호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앞으로 잘 부탁해요. 고양이 언니?”

“…….”

리아 캬베데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호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얼굴에는 당황스러움이 가득 담겨 있었다.

어떻게 반응을 해야 할지 자신에게 물어보는 것 같은 리아 캬베데의 흔들리는 눈동자를 보며 호는 큭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고는 리아 캬베데만 볼 수 있도록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리아 캬베데와 한시현은 안테 로리에서 한솥밥을 먹으며 생활할 사이. 둘이 친하게 지내도 나쁠 것은 전혀 없었다. 게다가 그게 시현에게는 정신적으로 큰 도움이 될 것 같았다.

“나도 잘 부탁한다. 냥.”

그리고 리아 캬베데의 입에서 목소리가 흘러나오는 순간 시현이 환한 미소를 지었다.

어쨌든 안테 로리의 세 영웅이 모였으니 이제는 계획을 진행할 차례였다. 어차피 리아 캬베데에게 오너 시스템을 사용하고, 병사들의 준비가 끝나면 발표할 내용이었던 터라 지금 이야기를 해도 상관은 없을 것 같았다.

“한시현.”

“응? 아! 네?”

조금은 묵직한 호의 목소리에 한시현이 장난스럽게 대답을 하려다가 곧 태도를 바꿨다. 뭔가 심상치 않은 느낌이 든 탓이었다.

어린 나이지만 시현은 이 세계에서 생활을 하면서 공과 사를 확실하게 구별할 줄 알게 되었다. 리아 캬베데 또한 꼬리를 바짝 세웠다.

“나와 리아 캬베데는 앞으로 정예 오크 전사들을 이끌고 던전 공략에 나설 거야. 그게 뭔지는 알지?”

“아, 네.”

잠시 생각을 하던 한시현은 곧 고개를 끄덕였다. 커티삭에서 호가 언니인 시진과 함께 커티삭 주위의 던전을 파괴했던 사실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그때까지 안테 로리는 너한테 맡겨두도록 할게. 딱히 할 일은 없을 거야.”

“아……. 그러면 혼자 자야 되는 건가요?”

“응? 원래 혼자 잤잖아?”

호가 고개를 갸웃했다.

“아…… 아니. 그 말이 아니라…….”

시현이 불안한 표정을 지었다. 안테 로리의 주인은 호였다. 게다가 호와 리아 캬베데가 던전을 공략하기 위해 안테 로리를 떠나고 나면 수인들과 몬스터가 득실득실한 이 도시에 자신만 혼자 남아 있게 되는 셈이었다.

그 사실이 시현에게는 두려움으로 다가왔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담담하게 그것을 받아들이기에 시현은 너무나 어렸다.

그리고 잠시 머뭇거리던 그녀가 호의 눈치를 살짝 보더니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오빠, 저도 같이 가면 안 될까요?”

“……음.”

그녀의 말에 고민을 하던 호는 곧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단순히 던전 공략이라고는 하지만 시현에게는 굉장히 힘들고 끔찍한 일이 될지도 몰랐다. 아니면 돌이킬 수 없는 사태가 벌어질 수도 있고 말이다. 전투나 전쟁은 조금 더 그녀가 이 세계에 익숙한 뒤에 경험하는 게 좋을 것 같았다.

“아.”

호의 대답에 한시현은 안타까운 표정을 지어 보였다. 하지만 곧 주먹을 불끈 쥐더니만 힘찬 목소리로 고개를 끄덕였다.

“네! 걱정 마세요! 안테 로리는 제가 지키고 있을게요.”

내심 씩씩한 모습을 보이는 그녀의 행동이 귀여웠는지 리아 캬베데가 자신의 꼬리로 한시현의 머리를 쓸어내렸다.

그것으로 출정이 결정되었다. 던전을 파괴하기 위해 안테 로리에서 출진하는 영웅은 호와 리아 캬베데. 그리고 병사는 정예 오크 전사 백 마리였다.

모든 병력을 던전 공략에 투입시켰기 때문에 안테 로리에 남는 병사는 고블린 투척병 서른 마리에 불과했다.

그러나 엘프들의 위협만 아니면 큰 문제는 일어날 일이 없었다. 안테 로리의 치안은 고블린 투척병만으로도 충분했다.

그렇게 경험치 및 안테 로리를 발전시킬 수 있는 자금을 획득하기 위한 던전의 공략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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