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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그너스 대륙전기-37화 (37/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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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그너스 대륙전기 037화

후드득하는 소리와 함께 비가 내렸다. 질긴 천을 팽팽하게 당겨서 만든 천막 안에 빗소리가 울리고 있었다.

다행히 수인들이 만든 막사치고는 꽤나 튼튼하게 지어졌기에 천막 내로는 빗방울이 전혀 새어들지 않고 있었다.

“커티삭의 창녀가 모습을 드러내었다고? 냐앙?”

코르기라 불리는 충성스러운 부하의 보고에 리아 캬베데가 중얼거렸다.

매년 마족, 그리고 엘프와 힘 싸움을 벌이며 티격대기는 했지만, 올해는 달랐다. 그녀는 올해만큼은 이 붉은 핏빛의 대지를 정복하리라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그렇습니다. 그녀에게 동료들이 많이 당했습니다.”

“오…… 이런 불쌍한 녀석들.”

위로하는 말과는 어울리지 않게 코르기를 향해 말하는 리아 캬베데의 목소리에는 비웃음이 담겨 있었다.

“커티삭의 창녀는 너희들의 짙은 냄새를 사랑하지. 이왕 죽을 거면 창녀의 체력을 많이 빼놨으면 참으로 좋았을 텐데? 하기야 너희들에게 그런 실력이 있을 리 없겠지.”

모욕과도 같은 리아 캬베데의 언사였지만 코르기는 무표정한 모습으로 지그시 그녀를 바라볼 뿐이었다.

리아 캬베데는 수인을 이끄는 대장이었고, 자신들은 일개 병사였다. 다만, 그녀는 수인 왕국을 이루는 종족 중 하나인 묘인족, 그리고 자신들은 견인족이라는 차이가 있을 뿐이었다.

크게 수인들이라고 불리는 수인 왕국은 각자 저마다의 세력을 이루고 있는 열둘의 종족 대표가 있었고, 그들의 합의에 따라 중대사가 결정되었다.

그중 호인족의 대표인 아쉬토가 현재 수인들을 대표하는 대왕으로 있었다. 수인들은 아쉬토의 명령을 따르며 중대사가 있을 경우 열두 종족의 회의를 열어 안건을 해결하곤 했다.

다만, 수인들은 모두가 개성이 넘치고 자유분방한 종족이었기에 각 종족은 자신들의 성격 및 특색에 따라 같은 수인 왕국이라는 한 울타리에 있으면서도 친분, 혹은 원한 관계를 만들어내곤 했다.

그리고 묘인족과 견인족은 상극이라는 말이 아주 잘 어울릴 정도로 사이가 좋지 않았다.

“…….”

하지만 일개 병사에 불과한 코르기가 안테 로리의 대장인 리아 캬베데에게 반발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너희들이 얻어온 정보는? 냥냥.”

“마족들은 페릴 예노스와 멜리아 비쉬를 포함해 칠백가량의 오크 전사로 군대를 이루고 있습니다.”

“그렇겠지.”

리아 캬베데가 고개를 끄덕였다. 예상했던 숫자였다.

“다크 엘프를 몇 목격하기는 했지만 소수에 불과했습니다. 아마 민간인을 몇 명 끌고 온 모양으로 생각됩니다. 그리고 그리 위협적으로 보이지는 않았지만, 인간으로 보이는 두 남녀를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인간?”

“네, 그렇습니다. 아마 소환자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코르기의 대답에 리아 캬베데는 미간을 찡그렸다. 소환자에 대해 안 좋은 기억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불과 몇 달 전, 대마을에서 온 소환자가 자신의 병사를 데리고 마족들을 공격하러 갔다가 병사들은 물론 본인까지 땅속에 파묻혔기 때문이었다.

“빌어먹을. 냥. 그 녀석 이름이 함진규였던가?”

“네. 그런 이름이었습니다.”

제법 적응을 잘하는 모습을 보이기에 쓸 만한 놈인가 싶어 조금 챙겨줄까 생각했더니 갑자기 콱 뒈져 버린 녀석이었다.

그 때문에 한때 리아 캬베데는 마족의 노예들에게 심하게 짜증을 잔뜩 부렸었고, 그로 인해 많은 마족 노예가 목숨을 잃어야 했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우리 묘인족은 생선을 뺏기면 무슨 일이 있어도 복수를 하지. 마족이 우리의 소환자를 죽였으면 우리도 상대의 소환자를 죽인다. 커티삭의 창녀도 함께 말이지.”

리아 캬베데가 눈을 빛냈다.

칠백의 오크 전사라면 회전이 벌어지는 순간 쉽사리 물리칠 수 있었다. 다람쥐 병사들은 개개의 기량으로 오크 전사를 이길 수 없었지만, 정돈된 군대가 부딪치는 회전이라면 이야기가 달랐다.

“오크 따위야 난전만 피하면 땅에 올라온 생선 먹기지. 냐앙. 안 그래?”

게다가 다람쥐 병사들의 커다란 창을 마음껏 휘두를 수 없는 숲속에서 싸우는 것도 피해야만 했다. 그리고 그런 사실들을 리아 캬베데는 많은 경험을 통해 잘 알고 있었다.

리아 캬베데는 하나의 움직임 없이 자세를 잡고 있는 코르기를 가리키며 말했다.

“내일 진군한다. 너희들은 회전을 벌일 수 있도록 마족들을 이 장소로 유인한다.”

“순순히 그들이 쫓아올까요?”

“당연하지.”

리아 캬베데는 코르기의 말을 비웃으며 말을 이어나갔다.

“커티삭의 창녀는 남자에만 미친 게 아니야. 피에도 미친 년이지. 니들이 달려들면 그녀는 채찍을 휘두르며 죽을힘을 다해서 쫓아올 거다. 물론 너희들이 당해낼 정도로 약해 빠진 녀석은 아니니까 직접 싸우는 것은 피하는 게 좋을 거야. 냥냥.”

“…….”

“만약 전투가 벌어지면.”

리아 캬베데의 눈이 날카롭게 빛났다.

“너희들은 죽어도 좋아. 하지만 무슨 일이 있어도 그녀는 끌어내라.”

“……알겠습니다.”

“그리고 유인한 장소에서 서로의 군대가 꽝 하고 맞붙는 거지. 냐앙. 회전이 벌어지면 그년은 내가 상대한다.”

리아 캬베데는 단어 하나하나에 힘을 주어 말했다.

<영웅 정보(Status)>

1. 이름 : 리아 캬베데

2. 성별 : 여(102)

3. 종족 : 묘인족

4. 소속 : 수인 왕국

5. 레벨 : 233

6. 직업 : 제네럴(A)

7. 세부 능력

통솔 : 262 / 300(A)

무력 : 276 / 300(A)

지력 : 266 / 300(A)

정치 : 277 / 300(A)

매력 : 272 / 300(A)

피에 미친년답게 페릴 예노스는 분명 자신보다 강했다. 하지만 전쟁은 혼자서 하는 게 아니었다. 병사들과 함께하는 싸움이라면 충분히 페릴 예노스를 압도할 수 있는 자신감이 있었다.

문제가 있다면 페릴 예노스에게는 그녀의 쌍둥이와 같은 멜리아 비쉬라는 존재가 있다는 점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의 부장이자 같은 묘인족인 카르인이 상대를 하면 되었다.

* * *

“……라고 생각할 겁니다.”

“설마?”

“정말? 아니면 너 어쩔래?”

호의 이야기를 들은 페릴 예노스가 깔깔거리며 웃음을 터뜨렸다. 하지만 호의 말을 완전히 무시하는 것은 아니었다.

페릴 예노스 또한 리아 캬베데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지는 않을까 하는 예상 정도는 하고 있었다. 게다가 다크 엘프들이 보고한 수인족의 움직임들은 크게 한판 붙자는 낌새를 취하고 있기도 했다.

뭐, 중간중간에 자신의 단점을 자극하는 말들이 끼어 있기는 했지만 그녀는 넓은 아량으로 넘어갔다. 기분이야 이상했지만, 중요한 것은 아니었다.

“이거.”

페릴 예노스의 참모인 멜리아 비쉬의 입가에도 비릿한 미소가 걸렸다.

“그 고양이라면 분명 자신이 영악하다는 것을 드러내 보일 테지요. 호의 이야기는 충분히 일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멜리아 비쉬가 자신의 의견을 지지하자 호의 얼굴이 살짝 달아올랐다. 이렇게 되면 페릴 예노스는 자신의 계획을 받아들일 가능성이 높았다.

예상대로 페릴 예노스가 흥 하고 콧방귀를 뀌기는 했지만, 단지 그게 끝이었다.

‘이렇게 되면 지휘관의 인정을 받을 수 있겠어.’

자신의 작전이 받아들여지고 그대로 전투가 벌어진다면? 이 세계의 시스템 중 하나인 지휘관의 인정이 발동될 가능성이 높았다.

더욱이 이번 전쟁은 총합 이천가량의 병사들이 펼치는 전쟁이었다. 여기서 마족이 승리를 거둔다면 엄청난 양의 경험치를 획득할 수 있었다. 대략적인 추측으로는 최소한 2, 3천에 가까운 경험치를 획득할 듯했다. 거기에 지휘관의 인정을 포함하면 추가적인 경험치를 얻을 수 있었다.

그 정도면 D급 던전이었던 지하 수렁에서 획득한 경험치와 맞먹었다.

“좋아. 그러면 어떻게 해야 되지?”

페릴 예노스가 호를 보며 물었다. 그녀는 항상 자신들에게 깔짝거리는 수인들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특히나 수인족의 대장인 리아 캬베데는 언제나 그녀를 커티삭의 창녀라 부르며 무시하는 눈빛을 보내곤 했었다.

‘그년을 사로잡게 되면 서큐버스의 마력을 잔뜩 주입시킨 다음에 오크들에게 던져줘야겠어. 과연 어떤 표정을 짓나 이 눈으로 똑똑히 봐주지.’

그런 생각을 하며 페릴 예노스는 기대에 몸을 부르르 떨었다.

호 역시 머릿속으로 여러 가지 생각이 스치고 지나갔다. 이번 전투에서 호는 리아 캬베데를 붙잡고 수인족의 마을인 안테 로리를 손에 넣고 싶었다. 그리고 그 안테 로리의 영주로 페릴 예노스가 자신을 인정하면 금상첨화였다.

‘그렇게만 되면…….’

호가 상세하게 자신의 계획을 둘에게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한시진과 몇 번이나 의견을 나누고 만든 작전이었다.

그리고 호의 이야기를 들은 리아 캬베데와 멜리아 비쉬는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끝난 거야?”

작전의 개요에 대한 보고를 끝내며 막사에서 빠져나오니 한시진이 기다리고 있었다.

“후우, 응. 방금 전에.”

“과연 그들이 오빠가 생각한 대로 움직여 줄까?”

호는 한시진이 말한 그들이 누구를 지칭하는지 어렵지 않게 알아챌 수 있었다. 그녀의 눈동자가 자신의 뒤에 있는 막사에 향해 있었기 때문이었다.

호는 자신의 뺨을 살짝 긁으며 말했다.

“잘될 거야.”

페릴 예노스의 다혈질적인 성격은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었다. 그런 그녀의 성격을 최대한 반영해서 짠 전술이니만큼 어느 정도 원활하게 돌아가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멜리아 비쉬는 아마 계획대로 움직여 줄 것 같았다.

혹시나 잘못되지 않을까 하는 무서움도 있었다. 그러나 가상현실게임으로 리그너스 대륙전기를 플레이했던 경험을 떠올렸을 때 지금과 같은 전력 차에서는 조금 잘못이 된다 하더라도 크게 문제가 되지는 않을 터였다.

“그러면 방패 역은 페릴 예노스가?”

“응. 우리 중 그녀만큼 오크들을 이끌고 전투를 잘 펼칠 수 있는 사람은 없으니까.”

호는 그렇게 말하며 한시진의 옆에 서서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아마 수인들은 내일부터 행동을 개시할 것이다.

페릴 예노스 역시 병사들에게 충분한 휴식 명령을 내렸다.

기습은 없을 터였다. 밤이 깊어질수록 전투 본능이 살아나는 마족들과 야간에 전투를 치르는 것은 불구덩이에 섶을 들고 뛰어가는 행위와 똑같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수인들은 그런 사실들을 오랜 경험을 통해 알고 있을 게 분명했다.

“내일이면 정말로 전투가 벌어지는구나. 여기도 그리 평온한 곳은 아니네.”

“선택의 신전에서 봤던 일곱 종족이 세력 싸움을 하는 곳이니까.”

“그랬었지…….”

선택의 신전에서 있었던 일을 떠올리던 시진은 느릿하게 자신의 어깨를 감싸는 호의 행동에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누가 보면 어쩌려고 그래…… 요?”

“볼 사람이 누가 있는데? 오크와 다크 엘프들? 쟤네들은 우리한테 아무런 관심도 없을걸?”

“아……. 그렇지.”

“게다가 내 여자 내가 안고 있는 건데, 그게 어때서?”

싱긋 웃는 호의 모습에 한시진은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고 가만히 그를 바라보았다.

이 이상한 세계에서 동생과 함께 유이하게 믿을 수 있는 오빠이자 남자라는 생각 때문일까? 내 여자라고 말하는 그의 행동에 한시진 역시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다.

‘그래. 어차피 원래 세계로 돌아간다는 보장도 없으니까…….’

이미 호감을 가지고 있던 상대였고, 조심스럽게 사귀고 있는 사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대로 동생과 함께 언제까지나 그의 곁에 있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시진이 조심스럽게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이 세계에서도 결혼이라는 게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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