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6
리그너스 대륙전기 036화
“제가 알아본 바로는 리아 캬베데가 이끄는 수인족의 군대는 다람쥐 병사 팔백과 코르기 삼백오십으로 총 천백오십으로 구성되었다고 합니다.”
호가 멜리아 비쉬에게 말했다. 처음 정보를 접했던 천이백에서 딱 오십이 빠지는 숫자였다.
다크 엘프 궁병들은 오크들과는 달리 움직임이 민첩하고 은밀했기에 정찰병으로 사용하기에 상당히 좋았다. 그렇기에 호는 어렵지 않게 리아 캬베데의 정보를 입수할 수 있었다. 리그너스 대륙전기에 존재하는 다양한 마족의 E랭크 병종 중 다크 엘프 궁병 개발을 먼저 끝낸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호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다람쥐 병사와 코르기는 전부 근접전에 특화된 병사들입니다. 다크 엘프 궁병을 이용해 원거리에서부터 기선 제압을 하고 들어가면 전투의 유리한 고지를 점하는 것은 어렵지 않을 겁니다.”
다람쥐 병사와 코르기. 비록 한 번뿐이기는 해도 이 세계에서 직접 상대해 본 경험이 있는 병사들이었다. 그때 호는 다람쥐 병사의 장점인 밀집대형을 무너뜨리기 위해 숲에서 난전을 펼쳐 그들을 전멸시켰었다.
“흐으응. 그렇단 말이지.”
호의 이야기를 들은 멜리아 비쉬가 콧소리를 내더니 호를 향해 눈을 흘겼다.
의도된 행동인지는 모르겠지만, 신중하게 말을 꺼내는 호의 모습은 그녀에게 마왕성의 전략가와 비슷한 느낌을 주기에 충분했다.
“아마 리아 캬베데는 자신의 수적 우세를 이용하기 위해 넓은 지형에서 회전을 벌이기를 원할 겁니다. 팔백이나 되는 다람쥐 병사가 창으로 이루어진 밀집대형을 펼친다면 아무리 정예 오크 전사들이라 할지라도 방어를 뚫어내기가 쉽지 않을 겁니다. 게다가 추격에 용이한 코르기가 있는 만큼 전황이 불리해졌을 경우 퇴각도 쉽지 않죠.”
호는 계속해서 가상현실게임인 리그너스 대륙전기를 통일했던 경험으로 말미암아 쉽게 예상할 수 있는 수인족의 전술에 관해 말을 꺼냈다.
게다가 호는 현재 커티삭으로 공격해 들어오고 있는 수인족의 대장이자 A등급 영웅인 리아 캬베데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페릴 예노스와는 다르게 그녀는 직접 앞에 나서는 맹장 스타일은 아니었어.’
자신의 무위를 뽐내며 선두에서 전투를 하는 페릴 예노스와 다르게 리아 캬베데는 신중한 타입의 영웅이었다. 무모한 전략과 전술은 세우지 않고, 자신이 위험에 빠지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공략본에도 그렇게 나와 있을뿐더러 호는 가상현실게임에서도 그녀와 함께한 경험이 있었다.
호가 기억하는 조심성이 넘치는 그녀라면 분명히 자신들의 유리함을 앞세운 전투를 하려고 들 게 분명했다.
‘은근히 쓸 만하단 말이야?’
호의 말이 이어질수록 멜리아 비쉬는 속으로 조금씩 감탄을 터뜨리고 있었다.
커티삭의 마족들에게 있어 이런 전투는 처음은 아니었다. 소환자라는 존재들이 나타나기 전에도 그녀와 페릴 예노스는 매년 다른 종족들과 전쟁을 벌였고, 개중에는 몇 천이나 되는 병사가 사투를 벌인 대규모 회전도 있었다.
그런 전투가 벌어질 때마다 커티삭의 영주이자 지배자인 페릴 예노스는 머리를 쓰는 것보다 직접 자신의 무력으로 상대 병사를 학살하는 것을 좋아했다.
당연히 뒤의 병사들을 지휘하는 역할은 멜리아 비쉬가 도맡아 했었다. 그리고 그녀가 쌓은 다년간의 전투 경험은 호의 판단이 얼추 들어맞다고 이야기하고 있었다.
“…….”
멜리아 비쉬의 반대편으로 호의 옆에서 말을 타고 있는 한시진도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몬스터가 아닌 이 세계의 다른 종족들과의 전쟁은 처음이었지만, 전문적인 군사 훈련을 받은 그녀도 호의 말에는 어느 정도 공감하고 있었다.
다만 한 가지, 리아 캬베데라는 상대가 호의 말대로 수적인 우위를 바탕으로 회전을 치르려 들 것인가에 대한 의문이 들기는 했지만 호의 표정이 워낙 진지했다.
“그래서 어떻게 하자는 거지?”
호가 계속해서 말을 하려는 순간, 허공 위에서 여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날개를 펼치고 있는 커티삭의 지배자 페릴 예노스였다.
언제부터 말을 들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녀는 지금 호에게 굉장한 관심을 나타내고 있었다.
“그건…….”
“괜찮아. 말해봐.”
페릴 예노스가 자신의 이를 드러내 보이며 히죽 웃었다.
그녀는 자신이 커티삭의 영주가 된 이후 이렇게까지 영지를 발전시켜 본 적이 없었다.
다른 영주들은 멋들어진 건물을 건설하고 강력한 병사들을 양성했지만, 커티삭은 매번 엘프 및 수인들과 전투를 치르느라 발전은 꿈에도 못 꾸고 있는 형편이었다.
그러나 소환자들이 도착하고 나서부터 커티삭은 달라졌다. 정확히 말하면 호에게 내정을 맡기고 나서부터였다. 영지민도 크게 늘었고, 조금씩이지만 높은 건물들도 올라오기 시작했으며, E+랭크의 용맹한 병사들도 배치되어 있었다.
“너 분명 좋은 방법을 알고 있는 것 같은데?”
그리고 그녀는 리아 캬베데가 이끄는 수인들을 전멸시키고, 수인족의 마을 안테 로리까지 손에 넣고 싶었다.
페릴 예노스의 재촉에 잠시 고민을 하던 호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회전입니다. 수인족의 전 병력과 우리의 모든 병력이 부딪치는 거지요.”
“수적으로는 수인족들이 더 우위 아니야? 아까 하는 얘기로는 회전은 피해야 하는 뉘앙스 같았는데?”
호의 대답에 페릴 예노스가 뭐라고 말을 하려는 찰나, 멜리아 비쉬가 먼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그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호는 조금의 표정 변화도 없이 계속해서 말을 이어나갔다.
대체 이제까지 어떻게 전투를 치렀는지 궁금할 정도로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영웅들이었다.
“그것은 아닙니다. 회전은 상대를 한 번에 전멸시킬 수 있는 좋은 방법입니다. 아시다시피 전투에서 있어서 병력의 수는 중요한 요소지만, 절대적인 승리를 보장하는 것은 아닙니다.”
모두의 고개가 끄덕여졌다.
“팔백의 다람쥐 창병이 만들어내는 밀집대형은 굉장히 위협적입니다. 창이라는 긴 리치를 이용해서 정예 오크 전사의 돌격을 막아낼 수 있죠. 특히나 넓은 장소에서는 창을 사용하는 데 전혀 제약을 받지 않습니다. 또한 코르기들은 난전에서도 강한 모습을 보이는데다가 추격전에도 용이한 병사들이죠. 그러나……”
“우리에게는 궁병이 있죠.”
호의 말을 들으며 고개를 끄덕이고 있던 한시진이 이어서 말했다. 현대전의 개념에 대해 알고 있는 그녀는 먼 거리에서 공격이 가능한 궁병의 중요성을 다른 이들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당신의 계획이 효과를 보려면 일단은 상대가 회전에 응하지 않을 경우를 대비해 궁병의 존재를 숨기고 회전을 치를 수 있는 장소를 탐색해 상대를 깊숙하게 유인해야 해요. 한 번의 전투로 상대를 끝내지 못하면 분명 궁병에 대한 대처를 할 테고, 그렇게 되면 전쟁은 필연적으로 길어질 가능성이 높아요.”
게다가 그녀는 화랑 기사로서 실제 전쟁에 관해서는 게임 속 전략가인 호보다도 훨씬 뛰어난 진짜 전략가였다.
그런 둘의 대화를 들은 페릴 예노스와 멜리아 비쉬는 서로를 바라보며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 * *
“여름이라 그런지 꽤나 덥네요.”
“여기의 여름은 때때로 겨울보다 춥다고 하던데?”
한시진을 향해 호가 그렇게 말했다.
“그렇지만…….”
얼굴이 달아올라 있는 그녀는 현재 호의 주머니에 손을 넣고 있었다. 호의 손에 잡힌 채 말이다.
던전에서의 전투 경험 때문인지 점점 다가오고 있는 수인들과의 전투는 둘에게 별다른 긴장감을 주지 못하고 있었다.
그렇게 한시진의 손을 잡고 있던 호는 흘깃 주위를 돌아봤다. E+랭크의 병사인 정예 오크 전사들은 오크 전사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질서 정연한 모습으로 각자 무언가를 먹고 있었다. .
“수인족의 위치는 파악됐어요?”
호의 주머니에서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던 한시진이 물었다.
“응. 다크 엘프들이 계속해서 정보를 보내오고 있어.”
“다크 엘프들이 있어서 정말 다행이네요. 오크들이라면 정찰이 불가능했을 텐데요.”
“접근하기도 전에 취익 하고 콧바람을 내쉬다가 다 들켰을걸?”
호의 농담에 한시진이 키득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현대전에 대해 알고 있는 둘은 전쟁에 있어서 정찰이 얼마나 중요한지 잘 알았다. 그런 연유로 호는 이백의 다크 엘프 궁병 중 오십을 따로 차출해 정찰병으로 쓰고 있었다.
날랜 그들은 정찰이 들켜도 쉽사리 코르기의 추격도 따돌릴 수 있었다. 수인을 이끌고 있는 영웅 리아 캬베데에게만 걸리지 않는다면 괜찮았다.
행여나 리아 캬베데가 다크 엘프 궁병에 대해 눈치챌까 싶어 정찰을 나가는 다크 엘프들은 무기조차도 착용하지 못하게 했다. 또한 수인족의 정찰병으로 간간이 모습을 드러내는 코르기는 페릴 예노스가 직접 나서서 처리했다.
덕분에 수인족들은 아직까지 궁병의 존재를 눈치채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았다.
“회전을 펼칠 장소는 정했어요?”
“대충.”
한시진과 함께 마른 풀밭에 앉은 호는 품속에서 지도를 꺼내 펼쳤다.
현재 수인들과 마족의 군대가 대치하고 있는 장소는 ‘붉은 핏빛의 대지’의 면적 중 10%가량을 차지하고 있는 콜리안의 숲이었다.
숲이라고는 하지만 지금 마족의 주둔지처럼 나무들이 없는 장소도 듬성듬성 있었고, 그중에는 이천 명의 병사가 회전을 벌일 만한 넓은 장소도 더러 존재했다.
“이곳이야.”
그리고 호는 한시진이 볼 수 있게끔 지도를 둘 사이로 이동시키며 말했다.
호가 가리킨 장소는 수인과 마족의 주둔지 사이에 있는 커다란 평원이었다. 아마 수인족의 대장인 리아 캬베데도 전투를 벌일 만한 장소로 비슷한 생각으로 하고 있을 터였다.
“아마 리아 캬베데는 여기서 결판을 지으려고 할 거야.”
호는 지도에 원을 그리며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단순히 그것만으로 전투를 승리로 이끌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상대의 심리를 파악하는 전략과 전술이 뒷받침되어야만 했다. 그리고 호도 한시진도 현대 전략과 전술에 대해 배운 사람들이었다.
단지 화랑 기사로서 군사교육을 받은 한시진하고는 다르게 호는 2년이 넘는 군 생활을 하며 수색대의 분대장을 맡았다는 차이가 있었다.
다만, 호는 리그너스 대륙에서만큼은 수많은 전쟁과 전투를 치르며 대륙을 통일했던 역전의 용사였다.
“흐음……. 저도 그럴 것 같아요.”
한시진의 눈동자가 지도에 틀어박힌 동안 호는 슬쩍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몸에 찰싹 달라붙은 가죽 갑옷의 라인이 눈에 들어왔다.
호는 시선을 돌리고는 슬그머니 말했다.
“문제는 리아 캬베데가 이끄는 다람쥐 병사와 코르기의 전투력이 어느 정도나 될지 알 수 없다는 점이야. 정면으로 부딪치는 순간.”
“확하고 우리 편이 깨져 버리면 곤란해질 테니까요. 그런데 문제 될 게 있어요? 어차피 상대의 전력에 대해 알고 있잖아요. 갑자기 약을 먹고 덤벼들 것도 아닐 텐데. 아니, 이 세계에는 그런 게 있을지도 모르겠는데…….”
“아아……. 걱정 마. 없어.”
너무나 자연스럽게 없을 것을 전제로 한 호의 말에, 시진은 순간 뭐가 이상한지도 알지 못한 채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이야기는 계속해서 이어졌고, 가상현실게임 전문가와 군사 전문가의 조합은 의외로 괜찮은 결과를 도출해 낼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