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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그너스 대륙전기-33화 (33/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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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그너스 대륙전기 033화

“주점 공사가 끝나면 시현이를 시장 공사에 투입시킬 생각입니다.”

“벨이 하는 공사요?”

“네, 그렇습니다.”

한시진이 탐탁지 않은 표정을 지었다. 어떤 연유인지 대충 짐작은 갔다. 벨과 한시진은 예전과는 달리 사이가 조금 멀어진 느낌이었다. 아니, 느낌 탓이 아니라 멀어진 것 같았다.

“벨 양은 회계사라는 직업을 보유한 까닭에 영지의 건물 공사만 따지면 우리 넷 중 가장 뛰어난 성과를 보이고 있습니다. 시현이도 충분히 배울 점이 있어요.”

아스트리드 벨의 정치 능력은 커티삭에 있는 소환자 중 가장 높았다. 호를 포함해도 말이다.

D등급 클래스인 상급 사관은 정치 수치에 페널티를 받아 총 30까지밖에 능력을 올릴 수 없었다. 게다가 호는 상급 사관으로 전직 이후 정치 수치를 올린 적이 없었다.

그리고 영지에 건물을 세우는 공사에는 정치 수치가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이런 호의 말은 반만 사실이었다. 한시현이 아스트리드 벨과 함께 경험을 쌓는다 하더라도 그녀에게 배울 점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영지 건물 공사를 함께한다는 것은 건물 공사의 진척 속도를 높이는 게 전부지, 함께 공사를 한다고 해서 능력치가 상승한다거나 하지는 않기 때문이었다.

물론 건물을 완공하면 경험치를 나눠 가질 수 있었고, 작업에 익숙해지는 만큼 완전히 거짓말은 아니었다.

하지만 호가 이렇게 말한 것에는 이유가 있었다.

‘일단 한시현을 아스트리드 벨에게 맡기면…….’

한시진과 함께 던전을 공략할 생각이었다. 호는 화랑 기사라는 그녀의 실력이 어떤지 눈으로 직접 보고 싶었다.

한시진은 E등급 직업으로 숙련 검사를 선택했다. 숙련 검사는 무력 수치에 보너스를 받지만, 아직 그녀의 무력 수치는 호보다도 낮았다. 하지만 화랑 기사로서 검술에 자신 있다는 그녀의 자신감은 괜히 나온 게 아니었다.

호의 무력 수치는 34, 그리고 한시진의 무력 수치는 19.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시진은 호와 대련을 벌일 때마다 한 번도 밀린 적이 없었다.

‘정보창에 나오는 무력 수치는 19에 불과하지만…….’

종종 몸이 이상하다고 툴툴거리는 것을 보면 정보창의 능력 포인트에 묶여 본신의 힘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런 것을 보면 익히고 있는 검술이라는 게 제법 영향을 미치는 것 같았다. 거기에 실전 경험까지 있다면? E등급이나 F등급 던전에서는 상당히 도움이 될 것 같았다.

“그렇다면 시현이는…….”

“벨 양과 함께할 겁니다. 같은 소환자인 만큼 딱히 문제는 없을 겁니다.”

“뭐, 그렇다면야 어쩔 수 없겠네요.”

호의 시선을 받은 한시진이 어쩔 수 없다는 듯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생이 아스트리드 벨과 함께 일을 하는 게 마음에 들지 않는지 그녀는 계속해서 입술을 샐쭉이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게다가 시현이를 벨 양에게 맡기는 것은 시진 양은 저와 함께 할 일이 있기 때문입니다.”

“제가요?”

“네, 그렇습니다. 이번 주점 공사를 마친 이후 병사들과 함께 던전 공략을 떠날 생각입니다.”

“던전 공략이라니?”

의외의 말에 한시진이 조금 놀란 표정을 지었다.

“공략 던전은 커티삭에서 하루 정도 떨어져 있는 F급 던전입니다. 아직 페릴 예노스 님의 허가는 받지 못했지만 별다른 일이 없다면 당장에라도 출진을 할 수 있을 겁니다. 이미 던전에 대한 대략적인 정보는 파악한 상황입니다. 던전의 이름은 ‘쥐의 소굴’입니다.”

“쥐라니……. 최악이네요.”

한시진이 어깨를 으쓱였다. 그녀의 얼굴에는 던전을 공략한다는 말에 대한 두려움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기사라는 걸까? 오히려 눈빛에 투쟁심이 담겨 있었다.

그런 한시진을 보며 호가 한 번 웃어 보인 후 다시 말을 이었다.

“아직 정확히 결정된 것은 아니지만 어렵지 않은 F급 던전인 만큼 오크 전사 이백과 고블린 투척병 백 마리가 함께할 예정입니다.”

“……어렵지 않은 던전이라더니 함께하는 병사 수가 꽤 많은 것 같네요.”

“이 세계는 게임이 아니니까요. 안전하면 안전할수록 좋죠. 게다가 F급 던전이라도 해도 던전은 던전입니다. 던전에 들어서는 순간 수백에 가까운 몬스터가 있을 겁니다.”

호의 대답에 한시진이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F급 던전 ‘쥐의 동굴’ 공략에 한시진을 합류시킨 호는 주점 공사가 끝난 직후 바로 페릴 예노스를 찾아갔다.

“쥐의 동굴?”

“네, 그렇습니다. 커티삭에서 남쪽으로 하루 정도 떨어진 큰 동굴입니다. 랫맨들이 서식하고 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랫맨은 1m 크기의 쥐 인간을 말했다. 주로 창을 사용하며 대도시의 하수구나 지하 동굴에서 무리를 지어 서식했다.

위험도는 오크 정도? 개개로는 그리 강하지는 않았지만, 일단 무리를 짓는 데다가 우두머리가 있었다. 하지만 햇빛을 싫어하는 특성 탓에 딱히 외부로 나와 활동을 하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호가 쥐의 동굴을 공략하려는 것은 역시 경험치 때문이었다.

“랫맨이라. 몇 마리 정도인데?”

“삼백 정도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우두머리는 한 마리 정도가 있는 걸로 생각됩니다.”

호는 ‘관우는 내 여자’라는 유저가 쓴 공략본에 나와 있는 내용을 토대로 페릴 예노스에게 말했다.

공략본에 따르면 쥐의 동굴은 280~300마리의 랫맨이 서식하고 커스티츠라는 우두머리가 보스 몬스터로 있다고 했다.

호가 다른 E급이나 F급의 던전이 아닌 쥐의 동굴을 공략하기로 결정한 데는 특별한 이유가 하나 있었다. 랫맨은 자기 서식지 주위의 잡동사니를 모으는 특성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중에는 높은 확률로 힐링 포션이 있을 수 있었다.

“쳇.”

호의 보고에 페릴 예노스는 얼굴에 실망이라는 표정을 가득 담았다. 아마도 지하 수렁과 같은 대규모 전투를 생각했던 모양이었다.

하기야 지하 수렁에서 가장 신을 내고, 가장 열심히 싸웠던 존재가 그녀였다.

“그것밖에 안 되면 난 안 갈래.”

그런 페릴 예노스라 허약한 랫맨, 그것도 삼백여 마리밖에 되지 않는 ‘쥐의 동굴’은 큰 흥미를 끌지 못한 모양이었다. 아무래도 D급과 F급의 차이로 보였다.

어차피 상관은 없었다. 쥐의 동굴은 F급 던전인 만큼 그녀가 없더라도 충분히 성공적으로 공략할 수 있는 던전이었다.

“오크 전사 이백과 고블린 투척병 백 마리라고 했지? 좋아. 병사들을 데리고 던전을 공략하도록 해.”

“감사합니다.”

대답과 함께 호는 꾸벅 고개를 숙였다.

* * *

“이게 그 주점이라는 건물인가?”

페릴 예노스가 자신의 날개를 활짝 펴 완공된 3층 건물의 주위를 빙빙 날아다니기 시작했다.

주점. 앞으로 커티삭에 소속이 없는 영웅을 불러들여 수입을 올려주는 한편, 그들을 영입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건물의 완성이었다.

“주점의 요리사는 요리를 할 줄 아는 엘프 노예로 배치했습니다. 앞으로 매달 커티삭에 250리스의 수입을 올려줄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흥흥.”

호의 보고에 한창 주점 주위를 날아다니다가 땅에 발을 디딘 페릴 예노스가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였다.

영주성 바로 남쪽에 위치한 주점은 앞으로 많은 사람이 오가는 커티삭의 주요 건물로 운영될 터였다.

“오늘 바로 출전하는 거지?”

“네, 그렇습니다. 한시진과 함께할 예정입니다.”

페릴 예노스의 물음에 호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주점 공사도 끝났으니 한시현을 아스트리드 벨에게 맡기고, 한시진과 함께 쥐의 동굴을 공략할 생각이었다.

“소환자 주제에 열심이란 말이야? 아주 만족스러워.”

“마족들의 영광, 그리고 페릴 예노스 님의 영광을 위해서죠.”

“입에 발린 말이지만 기분이 나쁘지는 않은데? 소환자 주제에 혀가 아주 매끄러워.”

그러면서도 활짝 웃는 게 기분이 상당히 좋아 보였다.

그런 페릴 예노스를 보며 호는 옅게 웃음을 지어 보였다. 마족들의 영광은 개뿔, 전부 자신의 경험치를 위해서였다.

일단은 커티삭의 병력들을 이용해서 영지 주위의 모든 던전을 공략, 최대한 경험치를 끌어모을 생각이었다. 전부 자신의 능력치를 상승시키기 위해서였다.

‘그런 다음에 병력을 생산해야지.’

그렇게 던전 공략의 보상으로 얻은 재화들로 커티삭을 발전시키며 기술력을 높일 생각이었다.

아직까지는 조용하지만, 커티삭이 위치한 ‘붉은 핏빛의 대지’에는 수인과 엘프들의 도시가 있었다. 언제 그들이 커티삭을 향해 칼을 겨눌지 모르는 일이었다.

호는 그들의 도발을 막아내는 한편 거꾸로 그들의 성을 차지하기 위해서는 특수 병과나 마장기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 D랭크 이상의 병과를 커티삭에서 양성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호가 그렇게 판단한 것에는 수인족과 전투를 벌이고 얻어낸 경험이 크게 작용했다.

‘전방 지역임에도 불구하고 붉은 핏빛의 대지의 발전도가 상당히 떨어져.’

일단 수인족의 소환자였던 함진규는 수인족의 F랭크와 E랭크 병사만 대동한 채 커티삭의 식량 창고를 공격해 왔었다. 커티삭 또한 F랭크 병사인 고블린 투척병과 E랭크 병사인 오크 전사만을 가지고 두 종족의 도발에서 버티고 있었다.

그렇다는 이야기는 다른 종족의 도시 또한 고 랭크 병사를 양성할 수 있을 정도로 기술력이 높지 않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런 와중에 D랭크 병사가 등장한다면? 어렵지 않게 그들의 마을을 공략할 수 있을 거라는 게 호의 생각이었다.

‘문명이라는 게임에서 다들 석기시대에서 놀고 있는데, 갑자기 청동기 시대의 병사가 훅 튀어나온 셈이지.’

그리고 호는 그렇게 공략한 타 종족의 도시 중 하나를 페릴 예노스가 포상으로 내려주기를 바라고 있었다. 그렇게만 하면 자신의 취향대로 마음껏 도시를 키워 나가며 이 세계에서 성장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할 수 있었다.

“취이익! 췩!!!”

“옥스! 아너어!”

“케르륵! 케륵!”

주점 완공을 기념하는 페릴 예노스의 행차가 끝난 지 세 시간이 채 되지 않아 쥐의 동굴 공략을 위한 병력이 소집되었다.

“부하들을 이끌고 작전에 투입된 게 수십, 수백 번이었는데, 이제는 저런 괴물들과도 함께 전투를 해야 하다니. 기분이 영 이상하네.”

호의 부장으로 자리에 함께한 한시진이 주위를 둘러보더니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점점 익숙해져야 할 겁니다.”

“알고 있어요. 뭐, 걱정 말아요. 팔다리가 떨어져 나가는 모습에 꺅꺅거리며 도망갈 정도로 담이 약하지는 않으니까요.”

“그렇게 되면 정말로 곤란해질 겁니다. 당신 말고 제가요.”

한시진의 농담에 호는 어깨를 으쓱였다. 그녀는 병사들을 이끌고 최전방에서 전투를 도맡는 돌격대장 역을 맡아야 했다.

“아차, 당신이 사용할 검입니다.”

호는 한시진에게 한 자루의 검을 건네주었다. 외형은 조금 투박했지만, 날이 날카롭게 벼려져 있는 검이다.

검의 이름은 브리얀드 소드. 지하 수렁 공략에서 얻은 아이템 중 하나였는데, 페릴 예노스가 던지듯 버린 것을 호가 챙긴 것이었다.

브리얀드 소드는 멋들어진 이름하고는 다르게 그냥 단순한 롱소드 계통의 검이었다. 효과 또한 무력 2를 증가시켜 주는 것밖에 없었다.

“그럭저럭 괜찮은 검이네요. 쓰레기보다도 못한 괴물들의 무기보다는 나은 것 같아요.”

호에게서 받은 검을 검집째로 몇 번 휘둘러 보던 한시진이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입가에 미미한 미소를 지어 보이는 그녀를 뒤로한 호가 손을 들어 올려 병사들에게 출전 명령을 내렸다.

“어머? 호 님께서 출전하신다!”

“취익! 오늘도 전투인가?!”

기백의 병사가 출전하는 모습에 커티삭의 영지민들이 하나둘씩 모이기 시작했다.

영지의 내정을 관리하고 여러 일을 벌인 탓에 호는 커티삭에서 나름대로의 이름을 떨치고 있었다.

수많은 몬스터들이 자신의 이름을 입에 올리는 것을 들으며 호의 어깨에 힘이 들어가기 시작했다. 앞으로 자신의 활약이 이어질 때마다 이런 몬스터 및 사람들의 목소리는 더더욱 커질 테고, 급기야는 자신의 이름을 외치는 소리가 대륙 전역으로 퍼져 나갈 터였다.

그리고 쥐의 동굴 공략은 별다른 어려움 없이 성공리에 끝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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